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39화
“사람들 많이 오셨어?”
“많지·”
큰세진이 웃으며 살짝 옆으로 비켜서자 녀석 뒤에 있던 창 너머로 관중석이 보였다·
잠실 주경기장 5만 명에 달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와아아-
열린 창문 너머에서 해 질 녘에 부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온갖 들뜬 소리들이 공명하듯 울리며 여기까지 뻗어왔다·
“····”
언제 봐도 장관이다·
“기억난다· 우리 첫 콘서트 때 래빈이랑 유진이가 막 몰래 화장실 가는 척 밖에 보고 왔잖아· 사람 많다고 흥분해서 왔었는데·”
“Ooooh 저 기억해요!”
“즐거웠습니다····”
김래빈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첫 콘서트 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단독 콘서트에 흥분했던 그 찌릿한 감각이 되살아난 모양이었다·
이제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미 경험해 보았으니까 더 아드레날린이 돌 것이다·
‘아는 맛이 더 먹고 싶은 법인가·’
나도 다를 건 없군· 나는 창밖을 보고 심호흡했다·
머리끝까지 호르몬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럼 준비하러····”
“잠깐 잠깐!”
큰세진이 냉큼 끼어들었다·
“구호는 해야죠~”
“아·”
“그래· 중요하지·”
멤버들이 웃으며 붙어섰다·
본래는 손을 모아서 전형적인 파이팅 자세를 했었지만 이번 활동부터 유독 이렇게 다 붙어서 어깨를 맞대고 팔을 걸치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까지 맞댄 녀석들 사이로 구호가 지나간다·
평소보다 힘 있고 진지해서 마치 결승전 직전 같은 목소리가·
“테스타 오늘 뭔가 보여준다·”
“····”
“예·”
모여서 어깨동무를 한 녀석들 사이로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숨소리 체온·
그리고 동시에 일어선다·
“가자·”
콘서트의 시작이었다·
* * *
관계자석에 앉아서 숨 막히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테스타 올팬은 손을 꿈지럭거렸다·
‘서 설레기만 해야 하는데·’
그 고등학생은 설레면서도 주변 환경에 대한 압박감으로 침을 삼키고 있었다·
관계자들·
옆자리의 잘생긴 (추정) 연예인까지·
‘아냐· 끝나면 진짜 재밌는 추억이 될 거야···!’
SNS로 자신에게 표를 양도해 준 빅문이 어디에 있는지라도 물어보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았다·
‘휴····’
새로 산 응원봉을 사전 연결해 둬서 다행일 뿐이다·
그녀는 응원봉을 의미 없이 껐다 켰다· 새롭게 산 작은 사원증 키링이 달랑였다·
옆 사람도 뭔가를 만지는 게 그래도 이 사람은 응원봉을 꺼내나보다 했는데····
카메라였다·
“엥·”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낸 고등학생은 옆자리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자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아 저··· 관람에 방해되지는 않을 거예요·”
말투는 놀랍도록 상냥했다·
고등학생은 침을 삼켰다·
“아 아뇨·”
공연 중 일반 관객의 등 뒤에 서서는 남의 어깨에 백통을 멋대로 올려두는 등 촬영을 명목으로 비매너 행동을 일삼는 몇몇 홈마나 데이터 팔이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든 카메라는 소형이라서 관람을 방해할 것 같진 않은 데다가 묘하게 덜 긴장한 분위기가 있었다·
‘관계자가 어디 쓸 공식 사진 찍는 것 같기도·’
반만 맞았다·
‘허락받았으니까!’
큰달은 당당히 생각했다· 형들에게 허락도 받았어!
-관람 방해만 안 될 정도면 괜찮다·
박문대가 여차하면 자신의 사진을 공적으로 이용해서라도 쉴드를 쳐줄 거란 것까진 짐작도 못 했으나 어쨌든 큰달은 ‘방해만 안 되면 된다’란 명제는 확실히 되새겼다·
‘소형이고···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게 고정해서 조심히 무릎에 둬야지·’
물론 큰달은 자신이 영 사진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흡····’
게다가 막상 콘서트가 시작하면 전처럼 다 잊어버리고 또 한 컷도 못 찍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 보고 싶었다·
‘형이 했었으니까····’
형이 찍은 영상들을 보면서 힘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어린 자신의 기억이 아직도 그의 안에 선명했다·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더라도 알아보고 싶었다·
형이 이걸 찍으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에 대해서·
“후·”
큰달 박문대는 심호흡을 하며 류건우의 몸으로 카메라 점검을 끝냈다·
중앙제어가 잘 연결된 응원봉도 챙기고 이제 콘서트 시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 신경 쓰이는 게 있긴 했다·
‘아직도 사람이 없어·’
자신의 왼쪽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표를 가진 사람이 안 온 것이다·
혹시 표를 받아놓고 안 오는 걸까? 관계자석에서 이런 일이 빈번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쩐지 참 아깝고 약간 분하기까지 했다·
저 자리가 간절해서 우는 사람이 SNS에 그렇게 많았단 말이다!
‘그 간절함을 모르는 사람보단 팬이 콘서트를 보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가 빈 옆자리를 더 흘겨보기도 전에·
주변 조명이 꺼졌다·
“···!”
관객석 시야를 밝히던 불들이 그렇게 사라진 동시에 전광판에서도 광고 영상이 뚝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선 밴드의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앙 전광판에서 뜨는 문장·
[See you in the epilogue]
[by TeSTAR]
폭죽과 함성이 터졌다·
“아·”
나온다·
큰달은 숨까지 참으며 자리에서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보았다·
테스타의 이번 콘서트 테마는 에필로그·
게임과 VR을 거쳐 어트렉션 리믹스 활동까지 이어져 온 스토리의 완결판이라는 뜻인 듯했다·
자신의 옆자리에 드디어 사람이 들어와서 앉는 기색이 느껴졌으나 그는 이제 그걸 신경 쓸 여지 없이 온 정신을 VCR에 쏟았다·
장엄했던 오케스트라 밴드 음악이 잦아들고 화면에서는 안락해 보이는 다락방과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배경을 채웠다·
흩어진 7개의 방석 담요·
그리고 따스하고 작은 전구의 불빛들·
[····]
테스타가 앨범 당시 함께 보드게임을 하던 세계관 영상의 배경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옹기종기 모여 있던 7인의 멤버들은 없다· 그 자리에 앉은 건 선아현 혼자였다·
먼지가 햇빛에 반사되는 한낮 화면 속 선아현이 조용히 보드게임을 정리했다·
살짝 빗겨 간 화면이 다락방 구석에 떨어진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비추었다· 그 위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들까지·
-우리 또 놀자!
-졸업하고서도 연락해·
멤버들은 나이가 들었고 졸업해서 이제 게임을 하러 자주 오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선아현은 보드게임을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
그 옆얼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카메라가 내려오며 보드게임을 비춘다·
[다시 우리가·]
화면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보드게임 속으로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빨려 들어간 이미지는 마치 워프를 통과하듯 푸르고 붉은 그래픽들을 뚫고 지나 다시 다락방으로 튀기듯 나왔다·
보드게임을 보던 선아현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다락방은 비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보드게임? TRPG를 하자고?]
[맙소사·]
[왜 재밌어 보이는데·]
투덜대는 차유진부터 당황하는 이세진 분위기를 띄우려는 류청우까지·
7인의 테스타로 가득한 작은 방이 복작거렸다·
바로 선아현이 그들을 부른 첫날이다·
[그래서··· 네가 게임을 진행할 거지?]
[응·]
[이런 게임 많이 해봤어?]
선아현이 고개를 들어서 전광판 너머 관객을 응시한다·
[응·]
크읍·
큰달은 자신의 옆에서 SNS 친구가 입을 틀어막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이 VCR의 화면 움직이며 카메라가 차례대로 멤버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래 좋아·]
멤버들이 씩 웃는다·
[재밌게 하자·]
꺼진 전광판에서 마지막 말이 울리고 무대의 조명이 켜진다·
픽·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Epilogue’에 빛이 들어오고 톱니바퀴 모양 무대 장치가 함께 마법처럼 움직인다·
기계가 작동하는 소음만을 배경인 상황·
무반주 속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Bad Feelings-!]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전광판이 열리며 그 속에서 7인의 테스타가 수많은 댄서들과 함께 뛰어나왔다·
콘서트에 걸맞게 화려한 흰 정장을 입고·
“와!!”
가 원곡 버전 그대로 장엄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라 반주를 뚫고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오프닝무대를 열었다·
[해가 지고 달빛이 내려도
잊지 못할 feelings]
전광판에 얼굴이 가득 찰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몰입과 열기 즐거움 기대와 각오로 가득한 얼굴이 빛났다· 마치 이전에 류건우가 찍었던 직캠들 속 인물들처럼·
아니 그것보다도 더!
[네 손에 닿아
또 감기는 My tape!]
이어지는 까지 몰아치는 선곡!
[Let’s Start 난전을 시작해]
차유진이 박차고 나와서 센터에서부터 새로운 댄스 브레이크가 화려하게 삽입된다·
끄으윽·
오른쪽에서 괴성인지 신음인지 환호인지 모를 것이 들렸다· 무아지경 중에도 남은 표를 보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저 잘 진짜 잘 쓴 것 같아요!!’
[Just roll the dice!]
그는 무대 위에서 군무를 맞추는 그의 형을 보며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다가 무릎이 같이 움직이며 그 위에 놓은 물건까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 카메라!!’
다행히 작동 중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제자리에 맞추는 사이 곡이 끝났다·
그 사이에도 시선은 무대에서 떼지 못했다·
-와아아아악!!!
뜨거운 야외 경기장에 시원할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 울렸다·
귀가 들리지 않을 듯 터질 듯 컸지만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며 마이크를 다시 잡자 또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안녕하세요 러뷰어·]
안녕!
으아아악!
으아으안느아녕····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개인 멘트들과 괴성이 섞이며 판치자 관객석이 잠시 조용해지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테스타도 어깨를 들썩이다가 기분 좋게 외쳤다·
[테스타의 콘서트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재밌게 놀아요!]
다시 터질 듯한 함성·
아래에서 황급히 건네준 물로 목을 축인 테스타가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그간 재밌는 시도 독특한 시도를 많이 했잖아요· 다양한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서·]
확실히 테스타는 콘서트마다 독특한 테마를 잡곤 했고 신기한 아이템이나 신기술을 사용한 적도 많았다·
이번에도 VR 선택지가 나올지에 대해서 SNS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을 큰달은 떠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러분에게 가장 큰 감동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테스타 중 김래빈이 눈을 반짝이며 마이크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다른 것 없이 완전히 저희의 노래와 무대만으로 꽉 채워봤습니다! 세트리스트를 최대한 추가해서!]
콘서트의 근원·
내가 아는 곡을 듣는 즐거움!
김래빈의 말에 어딘가 벅찬 구석이 느껴져 관객석에서 다시금 환호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큰세진이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토크도 거의 없이 달릴 거예요· 여러분이 아는 곡 다 나와요 진짜!]
‘와!!’
다시 미친 듯한 함성· 그 소리를 들으며 큰달은 어마어마한 내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맨눈으로 그것을 볼지 아니면 토크라도 좀 카메라를 제대로 보면서 찍어볼지···!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들어줄까요·”
“···?”
옆을 보자 어느새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그 사람은··· 청려였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심지어 청려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쓴 얼굴이 불쑥 하나 더 튀어나왔다·
“어어 안녕하세요! 그분이시구나· 잘 지내셨어요?”
“네 네···?”
채율이었다·
큰달의 동공이 떨렸다·
VTIC이 왜 여기서 나와···?
설마 그의 형이 VTIC에게 표를 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큰달은 숨을 들이켰지만 사실 그렇게 특출난 상황은 아니었다·
두 회사가 자본금으로 묶여서 일종의 ‘같은 라인’이 되었으니까 콘서트는 오히려 일종의 비즈니스로서 방문했다고 대중이 납득할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큰달의 당혹스러움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왜 왜 내 카메라를?!’
옆자리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진 청려는 여전히 눈가를 휜 채로 자신의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안 봐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
조금 무서웠다· 아주 조금·
“괘 괜찮아요·”
“네·”
청려는 선선히 포기했으나 큰달은 침을 삼키며 조용히 무대로 시선을 뒀다·
한쪽은 고등학생인 SNS 친구·
다른 한쪽은 형의 라이벌 아이돌·
주의를 분산시키는 환상의 자리 운이었다····
‘으아악·’
하지만 이곳이 콘서트장이라는 걸 실감하면 그런 것들은 정말 아무래도 좋을 상념이 되는 것이다·
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는 아이돌을 보고 있노라면·
[다음 곡 가겠습니다·]
큰달은 멍하니 다시 정면을 보았다·
스테이지에 선 테스타 박문대가 관자놀이에 맺힌 땀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닦아냈다·
콘서트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