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18화
테스타 숙소 거실에는 항상 거대한 TV가 있었다·
첫 숙소에서야 회사에서 적당히 구색 맞춰 끼워준 옵션 TV였으나 이젠 멤버들이 신중한 고민하에 직접 골라 구매해 만장일치로 애용 중이었다·
다 지난 몇 년간의 사용 경험 덕이었다·
-그거 좀 보자·
-오케이~
테스타는 거실에 둘러앉아 다 함께 TV로 모니터링도 하고 모여서 휴식도 하며 노닥거리는 경우가 유난히 잦았으니까·
어딘가 친근하고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햇빛 잘 드는 테스타의 거실 숙소에서는 TV가 돌아가고 있었다·
[—]
다만 스케줄을 나간 테스타는 이 자리에 없다·
비록 화면 속에서 그 모습이 나오고 있더라도·
[테스타 : 안녕하세요 테스타입니다!]
[마법소년에서 괴도를 넘어 호텔리어 비밀요원까지· 각종 글로벌 언론에서도 아티스트적 실험정신을 인정받은 컨셉형 아이돌·]
[명실상부 KPOP 실세 대상 가수의 등장!]
티홀릭이 추진했던 소속사 단체 예능이 흘러나왔다·
밝은 얼굴로 풀밭에 편하게 앉아 있는 익살맞은 얼굴들과 자막이 화면을 스친다·
컴백이 겹친 지난 몇 주간의 긴장감이 무색하게도 화면 속 테스타는 VTIC과 만나도 예능답게 즐겁고 신이 난 모습들이었다·
두근거린다는 얼굴로 챙겨온 작은 캐러멜들을 꺼내 카메라 앞에 내미는 선아현의 들뜸은 귀여워 보였다·
[테스타 박문대 : 아현이가 이런 MT는 처음이래요·]
[티홀릭 하태준 : 오 아현이만?]
[테스타 박문대 : (냉큼) 사실 저 형도 처음이에요·]
[테스타 배세진 : !!]
지목당해 놀란 배세진의 검은 애착 가방에서 우르르 대용량 세안 도구가 쏟아졌다·
[티홀릭 마틴 : 으하하하하!]
[MT 초보자 집합소 ~테스타~]
티홀릭의 집요한 놀림 속에서 배세진도 결국 외쳤다·
[테스타 배세진 : 박문대도 처음인데요!]
[테스타 박문대 : !!]
[테스타 배세진 : 쟤 도시락 싸야 하냐고 작가님께 물어보고 다녔다고요!]
화면 속에서 도망가려다 잡혀 와서 MT 첫 소감 인터뷰를 당하는 박문대의 모습을 비췄다·
-연쇄 지목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스타 의외의 셀링 포인트 : 자기들밖에 친구 없음
-하 박문대 너무 귀여워
-아니 대학 OT냐곸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소개 중 마지막으로 등장한 VTIC·
그들도 등장 직전에는 긴장된 BGM을 깔며 분위기를 조성했으나····
[VTIC 채율 : 와 하늘 어떡하지? 주단아 저기 하늘 좀 봐!]
[VTIC 신오 : MT는 역시 이런 날에 가야지!]
[이 사람들의 MT 경험 : 0]
막상 등장해서는 해맑게 MT를 잔뜩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
밖에서 성적으로 싸움이 나든 말든 지금은 실시간 시청자들도 그저 속 편하게 웃었다·
뒤돌아 곰곰이 생각하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당장은 그저 웃고 재밌게 시청하는 분위기·
제작진이 혹여 어느 쪽 팬의 기분이 상할까 아주 섬세하게 편집과 자막 작업을 한 덕이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만 약아빠지거나 선을 넘지는 않으며 수더분하게 구는 모습들이 스크린에 비친다·
-새삼 우리나라 잘난 아이돌들 많다···
-뭔가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ㅠㅠ뭔가뭔가임
-다들 연차 꽤 됐는데 아직도 열정 넘치고 풋풋한 느낌 드네
여전히 TV는 멈추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흐른다·
노트북 화면 속 반응들과 TV의 자막이 교차한다·
[갑자기 토론 중]
[티홀릭 마틴 : 에이 환경을 생각하면 종이 신문보단 당연히 온라인 뉴스지·]
[VTIC 주단 : 흐음 이게 흔히 생기는 편견입니다· 데이터가 친환경이라는 착각이죠·]
[티홀릭 마틴 : ??]
영상 속의 인물은 ‘온라인 뉴스 동영상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 그에 비해 신문지는 이면지로도 사용 가능하니 경제적이다’ 등의 설명을 쏟아냈다·
[티홀릭 윤 : 어? 그럼 우리 MT 방송도 인터넷으로 보면 환경에 안 좋다는 이야기?]
-탈룰라 각ㅋㅋㅋㅋ
[VTIC 주단 : 예· 그렇죠·]
[티홀릭 윤 : 앗·]
[티홀릭 윤 : (당황) (동공지진)]
-?!?!?
[VTIC 청려 : 주단아· 이런 건 안 이겨도 괜찮은 거야·]
[VTIC 주단 : ····]
[VTIC 주단 : 네·]
[(형 우리 언제나 이기는 VTIC 아니었어···?)]
-주단 ㅅㅂㅋㅋㅋㅋㅋㅋ
-이런 캐릭터였음?
-아니 어떻게 숨긴 거예요
└놀랍게도 숨긴 적 없습니다
└우리 애 원래 이랬음 그저 머글들이 오해해 줬을 뿐··
웃고 떠들며 기분 좋은 이야기들이 올라온다·
모니터링을 하는 눈에도 살짝 긴장이 풀렸다·
편안한 반응들·
“····”
그러나 화면에 한 인물이 중심으로 등장하는 순간 그 편안함은 얄팍해진다·
[그가 왔다!]
[티홀릭 원석 : 아니 초록팀 구성 미쳤다고!]
[스페이서 이학 : 헉 선배님!]
류청우·
화면 속 그는 더없이 건재해 보인다· 그러나 시청자는 더 이상 마음 편히 응원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중단한’ 멤버니까·
-아 청우ㅠㅠ
-이렇게 보니까 조금 가라앉아 보이기도··
-잘생겼다
-아 헤메코 지리는데 본인도 많이 아쉽긴 할 듯
그가 활약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분위기가 된다·
화면 속 류청우가 반사신경 미니 게임에서 우승을 해도 숨바꼭질에서 박문대를 절묘한 발상의 전환으로 멋지게 이겨도 마찬가지다·
잠시간 감탄과 ‘역시 국대’ 같은 소리도 댓글창을 점령하지만 곧 다시 우려 섞인 흥미로운 추측이 돌아왔다·
-류청우 랜덤플레이댄스 빨리 포기한 것도 어지럼 증상 염려해서 였나
└아···
└ㅜㅜ
└고생했네 정말··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때 진짜 힘듬 태연하기도 어려웠을 거야 이해해
└푹 쉬자 청우야
페이지를 내린다·
-청우가 저 때 힘들었다 직접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여기 추측성 루머가 많아 정신 차려
└걱정해도 지랄임?
└활동 중단할 정도면 아픈 게 맞지 팬들 마음 아픈 건 알지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자
└그래 공지까지 떴는데 추측이라고 화내는 것보단 류청우 응원이나 해줘라
페이지가 넘어간다·
-청우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우리 리더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서 걱정말고 잘 있었으면ㅠㅠ
-ㄹㅊㅇ 다음 앨범에는 복귀하려나?
└정신질환이 노오력으로 뚝딱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쉽게 생각하지 말자 언제든 잘할 수 있을 때 복귀하면 되는 거야
└그렇긴 하지ㅠ
초점이 변한다·
-류청우 파트 부르는 박문대 vs 이세진 취향 감별기
-테스타 다 잘해서 멤 공백 거의 안 느껴지네 굿
-인사 선창 베세가 하는구나 칼 같은 연장자 우대 제돜ㅋㅋㅋ
-얘들아 나 테스타 프로다워서 맘에 든다
-새삼 멤버들 무대 잘한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테스타 6인 활동인가?
-문제 없구만 이렇게 된 거 취소한 음방 다시 잡아줬으면
-테스타 댄브 대형 잘 고쳤다
-청우 보고 싶지만 잘 참고 있음ㅠ
그리고·
-오늘자 테스타 3대3 논쟁ㅋㅋ
-레드카펫 행사 테스타 정장 보실 분
-류청우 어지럼증 이유가 뭘까
-테스타 중요한 시기라고 다 이 악물고 해서 오히려 서사 생기는 듯
류청우의 몸 상태 병명 추리· 불안 흥미 추측 걱정 즐거움·
테스타의 활동 이야기 칭찬 기대감 감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모든 태도 매끄러운 진행·
-6인 활동도 괜찮다
-아 춤춤 영상에 류청우 없었구나 무슨 일 있어?
-류청우 왜 아픈 거야?
-테스타 이번 활동 언제까지야? 나 입덕한 듯 너무 좋아ㅜㅜ
-청우 국대 은퇴했을 때랑 혹시 증상 비슷함?
그리고·
“····”
-몸 아픈 사람 억지로 일하게 하는 게 잘못된 거지 류청우 영앤리치인데 그냥 쉬어도 됨ㅋㅋ
그게·
“류청우!”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후욱·
시야가 트였다·
확 시원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와하하하!]
밝은 TV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프로그램이 끝난 자리에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
아·
류청우는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이 얼얼하도록 들여다보던 밋밋한 액정의 광이 어느새 사라지고 시야의 빈 공간 사이로 입체감이 돌아왔다·
어두운 저 뒤편의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너 뭐 하냐·”
그의 옆에서 얼굴을 굳힌 멤버 하나가 자신의 노트북을 뺏어 들고 있었다·
박문대·
“왜 이런 걸 보고 있냐고·”
“····”
그의 친척 형·
갑자기 나타난 멤버였다·
손에 든 노트북의 인터넷 페이지와 글들을 확인하는 박문대의 눈은 빠르고 매서웠다·
그래도 이상한 욕이나 루머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조금 누그러들긴 했다·
‘대부분 걱정이나 염려군·’
류청우는 안 그래도 이미지가 좋았고 아프기까지 하다니 웬만한 물밑을 찾아보지 않고서야 이게 정상이긴 했다·
그래도 박문대는 이 말은 해야 했다·
“···상담받을 때 인터넷에 네 이름 검색해 보지 말라는 말 못 들었냐·”
“····”
“못 들었냐고·”
“···악플은 보지 말라고 하셨지·”
멍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대답한다·
“그래도 팬들의 응원이나 걱정은 확신이 필요하면 가끔 봐도 괜찮다고 했어·”
“····”
아마도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힘을 얻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문대가 보기엔 이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놈 거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고·’
늪에 가라앉듯이 말이다·
오죽하면 현관에 들어오던 박문대가 보자마자 낌새를 느끼고 달려와서 노트북을 쳐 냈겠는가·
박문대는 한숨을 참았다· 혹시 몰라 들리길 잘했다·
“챙길 게 있어서 잠깐 확인하려고 들린 건데 일단 이야기 좀 하자·”
“····”
“내 생각엔 넌 지금 여론 같은 건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우선 마음 놓고 쉬는 게····”
“쉬기 싫어·”
“···!”
불쑥 답이 튀어나왔다· 날카롭도록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아·’
류청우는 미동도 없이 소파에 앉아 양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있었다·
혼자 있다가 급습당한 덕에 무의식중에 본능적으로 나온 말인 것 같았다·
‘····’
박문대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차라리 기회다·’
그는 노트북을 닫아서 바닥에 내려놓고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물었다·
“그럼 활동할까·”
“못 하잖아·”
“못 할 건 없어· 지금이라도 조금씩 활동 병행해 보겠다고 이야기하고 복귀하면 되는····”
“형·”
류청우가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무대를 못 하는데 어떻게 프로로 활동을 해·”
“····”
“내가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아니잖아· 형도 쉬라고 했잖아·”
박문대는 조건반사적으로 답을 도출했다·
그가 잘하는 일이었다· 여론 만들기·
“그거야 양해를 구하면 되는 일이고·”
“····”
“네가 무대에서 좀 멈칫하더라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만들 수는 있····”
“그게 싫다고!”
“····”
“···아니 미안해·”
류청우는 높였던 언성을 바로 낮추고 다시 최대한의 차분함을 되찾았다·
“화를 낼 게 아니었는데 내가 지금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아니· 차라리 낫다·”
박문대가 소파에 고쳐 앉으며 시선을 내렸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좀 듣는 것 같아서·”
“····”
“그래서 네가 무대를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은 보이는 건 프로로서 싫다··· 그거냐·”
가수로서 프라이드의 문제인가?
그러나 류청우는 길게 침묵했다·
‘···뭐가 더 있나 보군·’
박문대는 묵묵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린 응답은 뒤늦게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지 말라잖아·”
“누가?”
“다들 그러지 말라고 하잖아·”
류청우가 손을 쥐었다 풀었다·
“나한테 쉬라면서·”
“····”
그는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는 사람을 쉽게 감별했으나 그런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청우야 어깨도 안 좋다는데 그 가수 활동은··· 아· 이제 우리 아들 쉴 거지? 응! 엄마랑 아빠 당연히 다 괜찮지! 다행이다 다행이다····
-내 보기엔 청우 니 양궁 계속해 봤자 팔만 더 상한다· 지금이라도 거 새 진로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나· 내도 알아볼 테니까····
너 이제 못 하니까 그만두자·
더는 네가 못 할 것에 괜히 계속 마음 주고 마음고생 몸 고생할까 봐 걱정된다·
예기치 못한 환경에 좌절당할 때마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가 정을 주고 아끼고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렇게 만드는 건 안 되지·”
“····”
“그러니까 들어야지····”
꽉 눌린 듯한 목소리로 류청우는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 되뇌듯이·
“미안하다·”
“····”
“미안해·”
류청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모든 대화에서 정답이 없어 보였으나 박문대는 생각했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