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16화
류청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그런 말을 듣곤 했다·
얘는 참 복을 타고났다는 말·
-어린데 벌써 인물도 훤칠하고 똑 부러지고 애기가 엄마아빠를 닮아서 참 복됐어· 어휴~ 얼마나 좋아?
이 이야기는 자라는 내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주변 환경에 따라 어투만 달라졌을 뿐이다·
-야 앞으로 형님이라고 불러야겠다· 너 X나 잘한다·
-아 청우는 형이라고 불러야지 X신아ㅋㅋ
-류청우 국대 선발이라는데? 저 새끼 진짜 다 가졌네·
때로는 은근한 공격이 되기도 했다·
-솔직히 태어났는데 저런 거잖아·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님?
-저 몸으로 양궁 고른 게 오히려 가오 없지 않냐· 축구나 야구도 아니고 다 템빨이라니까 저 새끼?
그리고 류청우는 그 의견들에 큰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다·
나도 고민과 힘듦이 있는데 왜 그러냐는 반항심도 나는 참 타고나길 잘난 사람이라는 들뜸이나 기고만장함도 들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뭐하러 그러겠는가?
그냥 하루하루 할 일을 하면서 좋은 건 좋아하고 싫은 건 빨리 흘려 버리거나 극복하면서 사는 삶·
그런 무던한 성향이 류청우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주변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디서든 매력적이니까·
그렇게 그는 여러 참견과 선입견에 별 감흥을 느끼지 않고 영향도 받지 않으며 착실히 살았다·
역경을 뚫고 나갈 정신력 의지 재능 그리고 성실함을 다 갖추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삶 내내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서 주저 없이 달려갈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청우야! 우리 청우 팔··· 아 제발 제발····
“····”
류청우는 눈을 감았다 떴다·
순간 잠이 들었던 것인지 자신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했다·
샤워를 해야겠다·
그는 좀 멍한 정신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옆에 뒀던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것을 반사적으로 잡아챘다·
“····”
방이 고요했다·
룸메이트인 차유진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옆자리 침대에 아무렇게나 올라가 있던 미식축구공도 사라진 채였다·
‘또 저걸 들고 나갔구나·’
어디 갈 때마다 저걸 손에서 놓는 법이 없다· 차유진은·
논란으로 스케줄이 잡히지 않아 무작정 쉬던 날에 자기 혼자 말없이 자리를 불쑥 비울 때도····
“아니·”
그건 지금이 아니다·
류청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직 샤워실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찬물이 정수리에 쏟아진 것 같은 기분이다·
자꾸 섞이는 것 같았다·
이미 없는 과거가·
“····”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생각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잠시 서 있다가 무겁게 다시 발을 옮겼다·
할 일을 하자·
할 일을 하다 보면··· 또 어느 순간 빠져나와 있다·
그렇게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서 찬물로 씻고 나오니 거실에는 사람이 있었다·
“···! 류청우·”
보지도 않는 TV를 틀어놓고 이북 리더기를 읽고 있던 배세진이 반색했다·
오늘 새벽 급하게 방청객 없이 음악방송 사전 녹화를 끝내고 짧게 쉬는 오전 시간이었다·
“좀 쉬었어?”
류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은?”
“아
그리고 배세진이 몇 번 주저하다가 연습한 듯이 물었다·
“그 점심 먹을 때잖아· 뭐··· 시켜 먹을까? 너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러다가 분위기가 풀리면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내 보려는 걸까·
거기까지 예상하자 벌써부터 그 일을 겪은 듯이 앞선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
이런 게 익숙하지가 않았다·
남의 선의와 도움을 미리 추측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
필요 없으면 없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필요하면 반갑게 받으면 그만인데· 최근에 그게 안 됐다· 이상하게·
류청우는 그냥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대화도 하지 않는 부정·
“아 그래····”
배세진은 조용히 수긍했다· 그 모습에 희미한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표출해도 의미는 없었다·
배세진은 곧 조용히 누군가와 통화를 했고····
“형·”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에 없던 멤버들이 우르르 집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비닐봉지가 달랑달랑 들려 있었다·
“두 분 다 점심 아직 안 드셨다고 해서 사 왔어요·”
사 온 건 감자탕이었다· 특별히 형이 좋아하는 걸 사 왔다는 둥 소리 없이 멤버들은 그냥 뜨거운 게 먹고 싶었다며 들어왔다·
대놓고 챙겨준다는 느낌을 내는 것도 내가 부담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건가·
어쩌면 거기까지 추측하려고 하는 머리가 생소해서 더 지긋지긋했다·
류청우는 말없이 밥을 차리는 것을 거들며 식탁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본래라면 차 안에서 급하게 이동식으로 때웠어야 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멤버들이 숙소를 나갔다 온 것도 다른 예능이나 처리할 일이 있었던 건지 확인해야 맞는 것 같은데····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오후에 무대 스케줄 있잖아·”
“····”
류청우의 말에 순간 식탁의 소리가 끊겼다·
한번 생각한 후에 반응하려는 태도·
“예· 근데 어차피 생방은 없고 스튜디오 촬영들이니까요· 위튜브가 이래서 좋죠·”
“맞아 맞아·”
사실 생방송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걸 중점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일 터다·
방청객이 없다는 것·
자신이 혹시 또 무대를 해내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신호였다·
오늘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
그래도 자신이 한두 번만 더 무대에서 멈춰 섰다가는 반드시 말이 새어나갈 것이다·
논란이란 그런 법이니까·
이미··· 이야기는 나오고 있으니까·
“····”
그래도 이럴 때면 고맙다고 말하고 열심히 연습했던가?
잘 모르겠다고 류청우는 되뇌었다·
모르겠다·
* * *
“뭘 해야 하지? 위로하기도 그렇고 다짜고짜 어디 아프냐고 묻기도 그렇고·”
“····”
“모르겠어· 아니····”
배세진이 거의 혼이 빠졌다·
역시 류청우랑 둘이 숙소에 있는 김에 동갑끼리 터놓고 이야기 좀 해보려는 시도는 침몰한 것 같았다·
‘이 녀석도 생각이 많아서 고뇌하는 타입인 걸 잊었군····’
옳고 나쁜 문제엔 대가리 들이박는 놈이지만 남의 멘탈 문제가 되니 지뢰밭 걷는 것처럼 시뮬레이션에 시뮬레이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자기도 멘탈 문제로 힘들어 봐서 더 조심스러운 거지·’
하필 류청우가 살짝 수습된 것처럼 보여서 더 그럴 것이다·
나는 미간을 누르며 회상했다·
‘오늘 녹화 땐 또 괜찮았지·’
다음 주 음악방송은 뺀다고 쳐도 이번 주부터 다짜고짜 빼는 건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많아서 불가능했다·
이미 다 잡힌 스케줄을 하루 이틀 전에 취소하려면 제대로 된 사유가 필요한데 우리는 진단서고 뭐고 없진 않은가· 공식 발표도 불가능한 상태니 말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새벽에 ‘안전 문제’라는 변명을 대며 방청객을 제외하고 진행했다·
-촬영 들어갈게요!
그리고 류청우는 무대 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자기 파트를 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쉴 때마다 이 녀석이 가라앉아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식은땀· 침묵·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카메라로는 티 안 났을 거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마 이젠 팬들도 적당히 이 건을 묻어버리려고 노력 중일 것이다·
일단 무대 촬영을 진행했다는 것은 신체적 문제는 없다는 신호처럼 보이니까·
-아무래도 방송국이랑 마찰 같다 왜냐하면 티원이니까··ㅋㅋㅠㅠ ㅅㅂ
-우리 애들 멀쩡하게 무대 잘하는데 제발 루머나 개소리 그만
-안전 문제라잖아 뭐 방청 온 사람 민감한 개인정보나 이런 거랑 관련 있어서 굳이 언급 안 하는 것 같은데 제발 눈치챙겨ㅠ
물론 이미 목격담이 퍼진 이상 류청우가 공황장애가 생긴 것 같다는 루머 자체까지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만····
‘···이번 주 내로 빨리 수습하면 돼·’
그러면 미리 촬영해 놓은 컨텐츠로 화제성 돌리면서 그때 그건 방송국이나 회사 사정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수습이 된다면 말이지만·
‘X발·’
나는 아직 차마 다른 멤버들에게 말하지 못한 류청우의 현 상태에 대한 추리를 떠올리며 침음을 참았다·
그게··· 단기간에 해소될 수가 있나·
배세진도 비슷한 타이밍에 침음했다·
“나라면 일이 잘 안 풀리는데 대놓고 날 신경 써주고 있다고 하면 압박감을 느낄 것 같기도 하거든····”
“아~ 그건 이제 개인차가 좀 있죠·”
자기라면 신경 써주는 게 미안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거란 녀석 감동할 거란 녀석 힘이 날 거란 녀석까지 골고루 나왔다·
하지만 누구 하나 확신은 못 한다·
“···이유를 모르니까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
결론은 류청우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는 것·
모두가 암묵적으로 긍정했다·
“····”
결국··· 정확한 이유 파악이 먼저인가·
‘까딱하면 선 넘을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제 어쩔 수 없다·
시간도 없고 이제 상담을 보내기엔 류청우가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도 알았으니까·
‘그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놈을 붙여줘야지·’
나는 결국 플랜 B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베란다에 나가 있던 녀석을 불렀다·
“청우야·”
“···!”
“차유진이 너 부른다·”
* * *
류청우는 박문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OK· 형 들어와요·”
방 안에서 룸메이트가 손을 까닥였다· 미식축구공은 제자리에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차유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닥에 김래빈이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쿵·
박문대가 문을 닫자마자 차유진이 즉각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저 빨리 말해요·”
류청우가 시선을 주자 차유진이 한 손으로 턱을 괬다·
그 눈이 반질거렸다·
“저 이제부터 Bad 차유진이에요·”
“···?”
순간 류청우는 차유진이 장난을 치는 건가 의심했다·
“유진아·”
“Nope· 저 말해요· 먼저 들어요·”
차유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음 말에서 류청우는 ‘Bad 차유진’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류청우 형은 나와 마지막 활동했을 때 기억해요?”
“····”
그 어투가 바뀌었다·
약간 시니컬하고 툭 자르는 것 같은 투· 능숙해진 한국어·
전에는 몇 번이고 들었던 그 말투·
-류청우가 정말 스티어 때 문제가 있었다면 그때 당시를 아는 관계자랑 대화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은데·
차유진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오늘의 역할을 맡았다·
-OK· 저 해요·
그는 지금 스티어 그 당시와 똑같이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그때 그 차유진을 앞에 둔 것처럼·
차유진이 들고 있던 공을 뒤로 던졌다·
“우리는 그룹 재계약 안 하고 각자 자기가 알아서 할 일 찾았어요· 저는 미국으로 김래빈은 군대로·”
“····”
“그때 형은 뭐 했어요?”
침묵·
그러나 차유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답 안 하는 선택지 없어요· 형 맨날 우리를 대답하게 만들고 형은 안 할 생각하지 마요·”
김래빈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으나 이미 합의가 된 상황인지 만류는 없었다·
류청우는 실소하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내가 널 대답하게 만들었다?”
“Sure· 그러니까 형도 바로 대답해야 해요· 저는 언제나 잘 대답했으니까·”
“네가?”
“···!”
“없던 이야기를 지어내면 안 되지 차유진·”
“Oh· [그것 참 공격적이네·]”
순간 방 안에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
김래빈이 숨 쉬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박문대는 조용히 없는 것처럼 뒤에 걸쳐 섰다·
그리고 차유진은 거침없이 다시 입을 연다·
“제 질문 대답 안 할 거예요?”
“····”
“좋아요· 그럼 팬에게 대답해요·”
팬?
“문대 형!”
“···!”
차유진이 부르자 뒤에 기대 있던 박문대가 놀라는 대신 자신을 바라보았다·
류청우는 침착한 그 눈과 마주쳤다·
가슴 언저리가 무겁게 눌렸다·
“문대 형은 스티어 활동 끝나고 나랑 김래빈 소식 없는데 류청우 형도 없어서 아쉬워했어요·”
“····”
“왜 활동 안 했어요? 형 KPOP 계속하고 싶어 했잖아요· 그건····”
“신체적 문제일 것 같다고·”
“···!”
“맞아·”
어쩌면 류청우는 사실 방에 들어올 때부터 이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문대가 자신의 왼팔을 지적했을 때부터·
그리고 이 구성원을 볼 때부터·
류청우는 자신의 왼쪽 상반신을 힐끗 본 후 중얼거렸다·
“어깨에 과도한 피로가 쌓여서 이제 기존 안무 수준의 춤은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
“····”
“계약 끝나기 반년쯤 전부터 통증이 있었고·”
김래빈이 간신히 물었다·
“지 지금은 괜찮으신····”
“응· 지금은 괜찮지· 너희도 봤잖아·”
자신의 신체검사 결과지를 말이다·
“····”
“그게 다야·”
“예···?”
류청우는 계속 설명했다·
“지금 내 몸은 멀쩡한데 그때 버릇이 남았는지 자꾸 몸을 쓰는 걸 반사적으로 주저하게 되거든· 아마 몸이 무의식중에 또 부상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해·”
“그건····”
“활동을 그만뒀던 시기라고 자각하니까 그때부터 증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심해지더라·”
유수처럼 설명은 흘렀고 막히거나 혼란스러운 부분도 없었다· 모두 이치에 맞게 들렸다·
그래서 박문대는 깨달았다·
‘···단순한 회피가 아니었군·’
류청우는 이 상황을 회피하거나 문제를 모른 척하려고 한 게 아니다·
“의료적 도움을 받기엔 원인을 말할 수가 없더라· 없던 일이니까·”
이미 스스로 고민과 고뇌를 거듭해 완성된 진단을 내려뒀던 것이다·
그저··· 차마 이렇게 대놓고 선언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게 다야·”
‘내 활동은 끝장이다’라는 선고를·
“····”
“그래서····”
류청우가 중얼거렸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보였다·
대답을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겠지·
‘····’
해결책은 없고·
활동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X발·’
그걸 이 녀석이 잘 알아서 더 최악이다고 박문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