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3화
543. 광고 취소 소동 2
대구 K 호텔의 호텔 바 SOUL 12번 테이블.
구진오 부대표와 김천석 전무가 화장실로 사라지자 양규동 이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하여간 꽉 막힌 새X. 안 되겠군.”
오주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양 이사님. 정 실장 오기 전에 김 전무부터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래야겠어.”
그 순간 오주현이 곁에 앉은 이선영에게 거짓 자백을 종용한다.
“선영아. 이따가 김천석 전무가 돌아오면 광고비 10%를 이유 없이 더 받은 걸 돌려준다고 말해. 양 이사님이 횡령이랑 배임으로 거실 수 있게 넌 시나리오 대로만 하면 돼. 알지?”
이선영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그거야 껌이죠. 대신에 가짜로 증언해 주는 대신 다음 A10 광고 모델도 저한테 주셔야 해요?”
최고의 배우나 연예인만 쓰는 갤럭티카 노트나 갤럭티카 S 시리즈와 달리 저가 라인업인 A 시리즈 광고 모델에는 신인 배우나 조연 배우들이 쓰이곤 한다.
이선영은 작년 겨울에 런칭한 저가 모델 갤럭티카 A10의 광고 모델을 맡았는데 그녀가 광고 모델이 된 이후 A10의 판매량이 줄어들어 버렸다.
그 결과 이선영은 광고 모델에서 잘려버렸고 김천석 전무는 현재 새로운 광고 모델을 찾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계약을 파기한 게 미안했던 김천석 전무가 위로비 명목으로 추가로 계약금의 10%를 더 준 모양이다.
평소라면 대기업 광고주가 신인 여배우의 사정을 생각해준 미담이었을 거다.
하지만 양규동 이사는 그 일을 꼬아서 김천석 전무를 횡령과 배임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었다.
횡령과 배임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서 몇 가지 근거만 있으면 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네. 자기가 광고에서 잘렸다고 김 전무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해?’
세 사람의 말대로 만약 이선영이 거짓으로 증언하게 되면 김천석 전무는 꼼짝없이 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유가 없이 위로비를 받았다는’ 것도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가령 김천석 전무가 ‘사적인 만남’을 대가로 돈을 더 지급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거기에 이선영이 자기가 광고에서 잘린 것이 그 만남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하여간 이선영은 자신을 발탁해준 김천석 전무에 대한 은혜도 모른 채 배은망덕하게 굴고 있었다.
이선영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양규동 이사가 만족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A10은 다시 선영이 너한테 넘겨줄게. 그리고 회사 내에 10% 더 준 것에 대한 그거 서류는 내가 싹 다 고쳐났으니까 선영이 넌 시키는 대로만 이야기하면 돼.”
오주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한테는 갤럭티카 S 모델 신상품 광고 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당연하지! 김천석 전무 쳐내고 나면 정유진도 아웃이지. 그러면 그 빈자리에는 네가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신작 드라마 들어갈 때 바로 넣어줄게.”
“감사해요~ 이사님!”
김천석 전무를 횡령죄로 묻어버리고 유진이를 쳐내려는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안 되겠군.’
난 작당 모의하고 있는 이들을 곧바로 검찰에 신고할까 싶었다.
그러나 에브리데이를 본 순간 그럴 수가 없었다.
범죄 모의 현장을 촬영했는데도 여전히 다이어리의 일정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에브리데이 V12.1]
[날짜 : 2021년 1월 8일]
-PM 01:00 [NEW. 정유진] 갤럭티카 광고 본계약 취소.
더군다나 어찌 된 영문인지 여전히 유진이의 광고 계약 취소 일정은 그대로였다.
아마도 아직까진 모의 단계였기 때문에 검찰에 알린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순간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무래도 칠성전자의 성윤재 대표에게 이 영상을 보여줘야겠네.’
확실하게 일정을 없애려면 우선 김천석 전무부터 빼낸 뒤에 성윤재 대표를 만나야겠다.
난 그 즉시 급히 동영상 녹화를 마친 다음 바텐더에게 또 한 번 팁을 넉넉히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팍에 박용오라는 명찰을 단 바텐더가 인사를 한다.
난 시치미를 뚝 떼고 인사를 받은 뒤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입구 쪽으로 간 나는 코트를 맡아주는 여직원에게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서 맡겼다.
조금 전 12번 테이블 근처에서 등을 지고 있었기에 혹시나 세 사람이 내 코트를 기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 좀 보관해주세요.”
“아 예.”
코트와 목도리를 맡기고 나자 정장 차림이 되었다.
그때였다.
때마침 화장실로 간 김천석 전무가 구진오 부대표와 함께 나타난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조금 전보다는 김천석 전무의 격앙된 모습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구진오 부대표와 김천석 전무가 자리에 나란히 앉으며 달래기 시작한다.
“김 전무.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 사정만 한번 들어봐.”
“부대표님 체면 때문에 참는 겁니다.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바로 일어날 겁니다.”
“그래. 알았다니까?”
구진오 부대표가 잔을 손에 들고 건배를 하려 한다.
“자자 다들 일단 한잔하지.”
김천석 전무가 마지못해 위스키 잔으로 손을 뻗는다.
그때 이선영이 테이블에서 일어난다.
맞은편 김천석 전무의 곁으로 가려는 거다.
난 그 즉시 12번 테이블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동시에 큰 소리로 김천석 전무의 이름을 불렀다.
“전무님!”
맞은편으로 가려던 이선영이 멈칫하고 고개를 돌린다.
동시에 술잔을 손에 든 김천석 전무가 멈칫한다.
난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설마 이분들을 소개해주시려고 절 부르셨습니까?”
순간 당황한 김천석 전무가 술잔을 내려놓고 변명을 시작한다.
“어······ 정 실장님. 저기······ 그러니까 이게······.”
하지만 난 김천석 전무의 말을 듣지 않고 끊었다.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는 제가 올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부대표인 구진오가 날 쏘아본다.
“정 실장. 우리 아직 계약서에 사인 안 한 거 알지? 건방지게 굴지 말고 일단 앉아. 앉아서 이야기 좀 하자고.”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은 과장되게 말한 뒤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김천석 전무가 황급히 따라 일어나는 게 보인다.
“정 실장님!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그가 따라온다.
‘됐다.’
난 김천석 전무를 아예 클럽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발걸음을 더욱 빨리하며 입구로 향했다.
그때 입구에 있던 여직원이 코트를 건네주려 한다.
“저기 손님······.”
“아 나가는 거 아닙니다. 잠깐 전화하고 다시 올 거예요.”
“아. 예.”
작게 속삭이자 여직원이 한발 물러난다.
이윽고 난 클럽 밖으로 나갔다.
끼익.
문이 열리고 클럽 밖 복도에 멈춰섰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호원들의 곁에서 김천석 전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곧이어 끼익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김천석 전무가 급히 달려와 날 붙잡았다.
“정 실장님!”
김천석 전무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기에 그는 날 붙잡고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정 실장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그때였다.
난 화난 기색을 지운 채 먼저 말을 꺼냈다.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대표님이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저들을 데려왔다는 거 이미 압니다.”
“예?”
“일부러 화를 낸 거니까 오해하지 마시죠. 그보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예? 그 그게 무슨······”
난 그의 팔목을 덥석 잡고 비상계단으로 이끌었다.
* * *
덜컹.
비상계단의 문이 닫히자마자 폰을 꺼내 들었다.
김천석 전무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폰은 왜 꺼내십니까?”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난 조금 전 상황이 녹화된 영상을 플레이했다.
영상에는 구진오 부대표와 김천석 전무가 없을 때 12번 테이블에서 양규동 이사와 여배우들이 나눈 대화가 선명히 녹음되어 있다.
영상을 본 김천석 전무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 새X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점잖은 김천석 전무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욕설까지 한다.
잠깐 씩씩거리던 김천석 전무가 겨우 화를 멈추고 말한다.
“정 실장님. 일단 이 영상은 좀 묻어둘 수 있겠습니까? 검찰에 알리는 것보다는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칠성전자 모바일 사업부 성윤재 대표는 꽤 엄격한 사람으로 회사 내부 이야기가 매스컴에 언급되는 걸 매우 싫어했다.
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사업부였기에 한 명이 사고를 치게 되면 기자들이 미친 듯이 허위 기사에 달려들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성윤재 대표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다른 곳으로 발령해 버린다고 한다.
조직을 위해서.
어쩐지 녹화까지 했는데도 유진이가 광고 취소되는 일정이 사라지지 않더라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만약 검찰에 알렸었다면 김천석 전무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유진이는 광고 모델이 되지 못했을 거고.
“냉정한 조직이군요.”
“큰 회사라는 게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바로 대표님을 뵙는 게 좋겠네요.”
김천석 전무도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옷만 챙겨서 바로 대표님을 뵈러 가시죠. 가만히 있으면 제가 당하게 생겼네요.”
김천석 전무는 옷만 챙기려고 몸을 돌린다.
하지만 난 김천석 전무의 팔을 붙잡았다.
“그냥 이대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요? 제 옷이랑 가방이 거기 있는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난 곧장 K 호텔 SOUL 바에 전화를 걸었다.
“바텐더 박용오 씨 좀 바꿔주시겠습니까?”
조금 전 팁을 줬던 매니저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조금 전 팁 준 손님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바텐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내부로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 부탁을 좀 드리려고요. 제 코트와 목도리를 좀 챙겨주시고 저와 함께 나온 분의 코트와 가방도 챙겨놓아 주십시오. 사례는 내일 들러 제대로 하겠습니다.”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팁을 넉넉히 줘야겠지만 그 정도야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12번 테이블 상황이 어떻습니까?”
-12번 테이블 손님들은······ 뭔가 다급해 보이는데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진 모르겠고요. 아 막 나갔던 분이 들어오시네요.
“그러면 혹시 그분들이 대화하는 걸 동영상으로 좀 찍어주실 수 있습니까?”
-으흠~ 알겠습니다.
아까 팁을 넉넉히 준 덕인지 상당히 호의적으로 나온다.
“사례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제대로 찍어 드려야겠네요. 믿고 맡겨 주십시오 고객님.
박용오 바텐더가 12번 테이블 사람들을 촬영하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김 전무님. 저흰 빨리 내려가죠.”
“예.”
김천석 전무와 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계단을 뛰어서 호텔 입구로 내려갔다.
발레파킹을 하는 직원에게 팁을 건네자 그는 내 차가 어디 있는 지 알려준다.
차를 빼 오겠다는 파킹맨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김천석 전무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하 1층 F13 기둥 옆에 내 벤X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게 보인다.
난 황급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평창동에 있는 성윤재 대표의 집으로 향했다.
* * *
부우웅~
호텔 지하주차장을 나오자마자 조수석에 앉은 김천석 전무가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건다.
“대표님. 저 김 전무입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다 보니 성윤재 대표의 거친 소리가 튀어나온다.
-지금 이 시각에 무슨 전화야!
“심각한 문제입니다.”
-무슨 심각한 문제?
“이 정보가 새면 검찰 조사까지도 받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뭐? 검찰 조사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구진오 부대표와 양규동 이사가 저에 관해 횡령과 배임을 조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제가 직접 평창동 자택으로 찾아뵙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운전 중이라서요.”
-알았어. 안 자고 있을 테니까 올라와서 보고해.
“예. 대표님. 빨리 가겠습니다.”
-그래.
달칵.
전화를 끊자마자 김천석 전무가 내게 묻는다.
“놈들이 따라오진 않을까요?”
말이 씨가 된 것일까 백미러에 연예인 승합차 한 대와 승용차 2대가 보인다.
“벌써 붙었네요.”
우리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따라 나온 모양이다.
김천석 전무가 뒤를 돌아보고 외친다.
“제X!”
성윤재 대표에게 언질도 했고 놈들이 작당 모의하는 영상도 가지고 있지만 상대는 부대표까지 끼어있었다.
그러니 만에 하나 대표의 집에 늦게 도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먼저 도착해야 했다.
난 불안해하는 김천석 전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전벨트 꽉 매십시오.”
김천석 전무가 안전벨트를 꽉 매며 묻는다.
“어쩌시려고요?”
“따돌려야죠.”
“어떻게요? 구진오 부대표의 운전기사는 운전병 출신이라서 진짜 운전을 잘하는데요?”
운전병도 운전을 잘하겠지만 매니저들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운전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1000km를 운전해야 하는 장거리 운전 실력과 때론 과속 딱지를 수도 없이 받을 만큼 속도를 올리는 스피드 운전 실력을 기본으로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그런 매니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운전을 잘하는 편이었다.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시설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킷에서 레이싱 경주를 취미로 할 정도로 말이다.
또한 스톡카(Stock-car)라 불리는 경주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시합용 차를 몰며 시속 300km에 근접하는 속도로 시합을 벌여 1위를 밥 먹듯이 했었고.
“혹시 포X러1이라고 아십니까?”
“예. 당연히 알죠.”
“살짝 과장해서 말하자면······ 매니저만 아니었다면 전 그 라이센스부터 땄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잡으십시오.”
“예?”
난 핸들을 꽉 잡은 뒤 액셀러레이터에 올린 발을 꾸욱 하고 밟았다.
부우우웅~
장준혁이 내게 선물한 벤X 승용차가 처음으로 모든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힘이 넘치는 엔진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그와 동시에 내 벤X 승용차는 날 따라오는 차량들과 점점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 * *
평창동 최고급 빌라 앞.
담장의 높이가 4m는 될 법한 거대한 저택의 주차장 앞에 차를 세웠다.
미리 차 번호를 연락한 터라 주차장 앞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으로 검은색 전자동 문이 열린다.
지이잉~.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차에서 내린 김천석 전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헉헉헉······ 무 무슨 운전 실력이······ 헉헉······”
속도를 내긴 했지만 과속 딱지를 끊지 않게 감시 카메라가 있는 지역에선 속도 완급을 조절하며 달렸다.
아무리 김천석 전무를 돕는다고 해도 내 면허가 취소되면 안 되니까.
그러나 그 운전만으로도 조수석에 앉은 김천석 전무는 안색이 하얘져 있었다.
과속과 감속이 끊임없이 일어난 터라 내장이 진탕되는 기분인 모양이다.
“일어나시죠. 뒤에 오던 놈들은 과속도 무시하고 따라와서 거의 근처까지 왔을 겁니다.”
김천석 전무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난다.
“헉헉······ 예.”
난 그 틈에 대구의 K 호텔 바텐더 박용오에게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영상은 촬영했습니까?”
-예!
“그러면 일단 영상부터 좀 보내줄 수 있겠습니까?”
그때 박용오가 주저주저하며 말한다.
-저기 그러면 팁은 얼마나······.
그 순간 곁에 있는 김천석 전무가 대신 말한다.
“천만 원 드리죠.”
-저 정말입니까?
“입 다무는 대가까지 포함된 돈이니까 이 시각 이후 입조심 하십시오. 괜히 딴생각 먹으면 저희 법무팀을 만나셔야 할 겁니다.”
박용오는 이미 김천석 전무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대답한다.
-아 알겠습니다. 절대로 두 분 말고는 입도 벙긋 안 하겠습니다. 또 제가 분수 하나는 확실하게 압니다.
“그러면 내일 뵙고 돈을 드릴 테니 영상은 바로 보내주십시오. 당장 쓸 데가 있습니다.”
-예.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김천석 전무의 당근과 채찍 덕에 일이 쉬워졌다.
전화를 끊고 나자 박용오 바텐더에게서 영상 하나가 더 도착했다.
그런데 영상에서 나눈 대화들을 확인한 순간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인간들이 미쳤나?’
그와 동시에 난 새벽 레이싱을 하게 만든 놈들을 모조리 나락으로 떨어뜨리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