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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과 리사라의 전투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탓!
파밧!
두 사람의 몸이 빠르게 쏘아져 나가고 튕겨 나가길 반복하며 숲 전체가 뒤흔들린다· 천장에 있는 호수 물이 출렁이는 게 보일 정도의 격전·
파지지지직!
시몬이 혼돈의 자줏빛 스파크를 튀기며 돌파한다· 그의 몸이 한 줄기 섬격이 되어 쏘아지고, 주위의 나무들이 깡그리 허리가 베어진 채 날아오른다·
그 앞으로 리사라가 손톱을 세운 채 두 팔을 교차한다·
까가가가가가강!
대검과 손톱이 부딪힌다· 리사라가 힘을 분산시키듯 몸을 공처럼 굴려서 물러나고, 이내 지면을 박차고 역동작이 걸린 시몬에게 돌진한다·
우웅!
열 갈래의 손톱이 검처럼 길어져 신성으로 반짝인다· 그녀가 힘주어 팔을 휘둘렀고 시몬도 뒤로 물러나며 적절하게 대검을 움직여 공세를 차단한다·
마치 열 자루의 작은 검들과, 한 자루의 큰 검이 맞붙는 듯한 광경·
퍼억!
손톱을 휘두르던 리사라가 변칙적인 발차기로 시몬을 걷어차 밀어낸다·
뒤로 날아가던 시몬이 칠흑을 역분사하며 속도를 늦추더니, 근처의 나무에 사뿐하게 두 발을 디디고 다시금 도약한다·
<카오스 스피어>
쿠릉!
쿠르르르릉!
날아오르는 동시에 시몬이 팔을 휘두른다· 그의 몸에서 쏘아져 나간 자줏빛 벼락들이 하늘로 치솟더니, 난해한 궤적을 그리며 리사라에게 들이닥친다·
리사라는 시몬을 향해 돌진하면서도 몸을 비틀어 혼돈을 피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리더니, 커다란 바위나 나무 따위를 붙잡고 하늘로 날려서 혼돈의 벼락에 부딪히게 하여 막아내기도 했다·
‘제법인데!’
두려움을 이겨내고 완전히 자유가 된 모습·
리사라가 두 팔을 뒤쪽으로 쭉 뻗었다· 8개의 손톱 크기가 줄어들더니 촤릉! 소리와 함께 두 검지의 손톱만 장검처럼 길고 굵어진 채로 뻗어 나왔다·
그녀가 몸을 회전하며 그것을 휘둘렀고, 시몬도 지지 않고 대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정!
대자연이 군단장과 성녀의 전투를 감당하지 못한다·
바위가 솟구치고 광풍이 몰아닥치는 가운데, 리사라가 고개를 내밀어 시몬을 응시했다·
“당신은 대체 뭐죠? 나는 당신을 없애려고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런 걸 알려주는 거냐구요!”
시몬이 웃었다·
[아까는 내 힘에 두려움을 느껴서 나를 제거한다고 말했었던가·]
까가각!
그녀가 진흙을 딛고 있는 걸 안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밀어붙였다· 두 다리가 미끄러지던 리사라가 바둥대며 힘으로 버텨냈다·
[나는 반대다· 힘이 있다면 적절히 활용하는 주의지·]
“···네?”
[결사는 언젠가 대륙을 집어삼키려 온다· 연합에는 내가 있지만 연방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시몬의 눈빛이 내려앉았다·
[내가 결사를 부수는 동안 먼저 연방이 무너지면 곤란하다·]
리사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두 팔에 힘을 꽉 주었다·
“그거! 소름 끼치게 오만한 발언입니다!”
까앙!
그녀가 완력으로 두 팔을 세워 시몬의 대검을 쳐냈다·
그러나 상대가 가한 힘의 흐름을 역이용하듯, 시몬의 몸이 천천히 회전하며 뒷발을 축으로 지면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그대로 균형을 잃지 않고 돌아와 다시 한번 파멸의 대검을 휘두른다·
리사라가 다급히 두 팔을 교차하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쩌정!
검격에 부딪히자 자줏빛 파장 같은 게 원형으로 번뜩였다· 커다란 충격을 받아 밀려나는 리사라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오, 오만이 아닌가?’
군단장은 군단만 없으면 별거 아니라는 이야기를 선배 프리스트들에게 들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단신으로 무려 이 정도의 힘·
군단이 없어도 이미 시몬은 일인 군단 수준이었다·
[덤벼라 성녀·]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시몬이 파멸의 대검에 힘을 가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나를 꺾고 싶다면 기개를 보여라·]
큭·
그녀가 힘겨운 웃음을 한 차례 흘린 뒤 자세를 고쳤다·
왼팔을 허리에 딱 붙이고, 오른손으로 왼팔을 척 붙잡았다·
‘좋다 이거야·’
쭈우우우욱!
그녀가 왼팔을 ‘발도’하듯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톱만이 반짝이며 반응했지만, 이내 손가락이 빛에 휘감기고, 손목, 팔순으로 점점 빛으로 휘감겼다·
그녀의 왼팔이 사라지는 대신, 오른손에 무기가 생성된다·
‘놀랍네· 리사라·’
지켜보던 시몬의 눈이 커졌다·
성체는 온몸이 무기·
그것을 구체화하고 실현화한 기술·
[리사라 오리지널 – 성창(聖槍) 헬레니아]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느새 그녀의 왼팔이 사라지고, 오른손에 창의 형태로 들렸다·
신수의 사물화를 연상케 하는 특별한 비기·
휘날리는 망토가 텅 빈 왼팔을 숨기듯 내려앉고, 그녀가 돌진 대기 자세를 취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창이 섬뜩한 신성을 뿜어내며 상대를 꿰뚫을 준비를 마쳤다·
“이 일격으로 끝내겠어요·”
시몬은 만족하며 파멸의 대검을 옆으로 눕혔다·
[인상적이군·]
이러면 응해줘야지·
시몬이 손끝을 파멸의 대검에 대고는 옆으로 쭈우욱 강하게 쓸었다· 새하얀 대검에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일어나며 혼돈으로 휘감겼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시몬의 혼돈기 중, 카오스 리퍼를 참고해 만든 기술·
대검의 겉면에 혼돈으로 마법진을 그린 시몬이 하늘을 향해 대검을 세워 올렸다·
콰르르르릉!
리사라와의 격전으로 주위 곳곳에 뿌려져 있던 혼돈의 창들이 일제히 지면에서 뽑혀 공중으로 치솟더니 모조리 시몬의 대검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혼돈의 벼락을 모으는 피뢰침과도 같은 광경·
<시몬 오리지널 – 혼돈 운합>
그사이에 리사라는 자신의 모든 신성을 창에 쏟아부으며 집중하고 있었다· 변신이 금방이라도 풀릴 듯 몸이 희미해졌다· 그야말로 이번 공격에 모든 걸 건 것이다·
사실 시몬이 보기엔 저런 행동도 경험 부족이다· 이대로 도망치면 그녀는 자멸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피가 끓었다·
룬 리그도 결사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와의 결착에 집중하고 싶었다·
터엉!
신호 같은 건 없었다·
서로를 향해 동시에 돌진한 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를 교차해 지나갔고·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거대한 힘의 충돌로 지면이 뒤엎어지고 세상이 뒤흔들린다·
산사태가 일어나 지면이 갈아엎어지고, 혼돈의 벼락이 주위를 마구 때린다·
압도적인 혼란의 장 속에서·
시몬은 파멸의 대검을 가뿐히 허공에 털듯이 휘두른 뒤 어깨에 짊어지고 뒤를 돌아보았다·
“····”
여전히 창을 세운 채 멍하니 있는 리사라가 보인다·
[후련한가?]
시몬의 물음에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웃었다·
“네·”
파앙!
여천사의 변신이 풀리며 평범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리사라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우우웅!
그녀의 몸이 푸른색 물감을 칠한 것처럼 파랗게 변했다· 아래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래도 조금은, 분하네····’
가히 완벽한 힘의 분배·
저 군단장이 딱 자신이 아웃당할 정도의 힘만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일격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손속에 자비를 둔 것이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하기 시작하며 그녀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는 그때·
척·
시몬이 리사라의 앞에서 나타나 쪼그려 앉았다·
주위는 여전히 혼돈의 벼락이 가득한 상황· 룬 리그의 옵저버들도 이 상황은 지켜보지 못할 것이다·
스으·
시몬은 천천히 피어의 투구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낸 뒤 빙그레 웃어 보였다·
“리사라·”
제7군단장의 맨얼굴·
사진으로만 봤던 낯선 얼굴이지만, 뭔가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라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만나서 반가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심장에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혹시···!”
화아아악!
텔레포트 마법진이 완전히 발동하며, 리사라가 호수숲에서 사라졌다·
<신성연방 대표 10번, 리사라가 탈락했습니다·>
이내 혼돈이 사라지고, 솟구쳤던 주위의 자연이 내려앉으며 소음이 사라져 갔다· 시몬은 여운에 젖은 듯 웃어 보인 뒤 다시 피어의 투구를 쓰고 일어났다·
“다음 가시죠, 피어·”
[크하하하하! 아주 좋다! 다음 상대는 누가 될지 궁금하군!]
* * *
시작의 동굴·
와아아아아아아!
드디어 4일 차, 군단장과 성녀의 승부가 갈렸다·
마나 스크린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암흑연합 측 관중들이 벌떡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두 팔을 번쩍 치켜들거나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거의 룬 리그 우승이 확정되기라도 한 듯한 격렬한 반응이었다·
반면 신성연방 측 주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머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거나, 기도를 중얼거리며 믿음을 되새기곤 했다·
“정말 놀랍고 수준 높은 전투였습니다! 군단장 시몬 폴렌티아 대표와 성녀 리사라 대표의 대결! 역시 미래의 별들은 다르군요!”
확성 수정구를 든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는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의 승리였습니다!”
그 옆에 서 있는 룬 리그 협회장 벤트레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1번과 10번의 승부, 저는 조금은 결과가 예상되는 전투라고 봤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전투의 굉음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만 뭔가····”
사회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시몬 폴렌티아 대표가 리사라 대표를 가르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관중들도 몇몇이 웅성거렸으나, 벤트레스는 무슨 헛소리냐는 듯 찬물을 끼얹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그렇겠죠? 하하!”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의 싸움은 의지와 믿음의 싸움· 치열한 심리전이 오갈 수밖에요· 가르치는 투로 이야기한 건 상대의 믿음을 흔들기 위한 기만일 겁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리사라 성녀에게 빈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겠죠· 실제로 도발에 걸리기도 했구요·”
“오! 오오! 드,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관중들도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신성연방 관중들 중에서는 ‘비열하다!’ 하고 외치는 자들도 있었고, 암흑연합 측에서 ‘전략이지!’ 하고 외치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자,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양측 관중 간의 말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사회자가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군단장과 성녀 간의 싸움도 대단했지만, 지금 또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벤트레스 경·”
“예·”
벤트레스가 이번엔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주아주 중요하죠·”
화면이 바뀌는 순간 양측 관중들의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양 진영의 4번이라는 점, 그리고 거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샤텔과 르바임의 전투가 스크린에 비치고 있었다·
“벤트레스 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각 4번 간의 승부입니다! 승패는 어떻게 추측하십니까! 벤트레스 경!”
“아무래도····”
벤트레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혼혈이 순혈을 이기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 * *
시작의 동굴과 대륙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격전·
바로 샤텔과 르바임 간의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쿨럭! 큽!”
처음 겪는 상황·
샤텔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게 처음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한 차례 피를 흘린 그가 전면을 응시했다· 치유의 거인, 4번 르바임 메델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훕!”
샤텔이 강하게 오른손으로 지면을 내려쳤다·
<영역 장악 – 조정>
쿠구구구구!
지면이 모여들며 거대한 거인의 팔처럼 되어 르바임 메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압도적인 질량과 무게·
이를 상대하는 메델은 이번에도 싱긋 웃으며 자신의 손에 치유마법을 걸었다·
“힐(Heal)·”
그 결과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지의 주먹을 정면에서 때려 부숴 버릴 정도로 더 거대하고 강력한 거인의 팔·
샤텔의 흑마법을 파괴한 르바임이 그대로 팔을 내뻗어 샤텔까지 후려쳤다·
쩌어어어어어엉!
샤텔이 코에서 피를 뿜어내며 멀찍이 날아가 바위에 쿵! 소리가 나게 부딪히며 쓰러졌다·
‘대체·’
어떤 원리지?
치유마법을 쓰면 몸이 커지고 강해진다니, 저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푸확!
그때 강렬한 바람과 함께 르바임이 샤텔이 쓰러진 후면으로 나타났다·
초고속 이동·
바닥에 거대한 발자국이 하나 찍혀 있고, 르바임의 몸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샤텔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샤텔이 즉시 팔에 암벽을 둘러싸서 반격하려고 했으나·
쩌저저저정!
이번에도 거대해진 르바임의 손끝이 샤텔을 후려치는 게 빨랐다·
간신히 두 팔을 세워 받아낸 샤텔이 밀려나면서 르바임을 응시했다· 그녀는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차기를 허공에 날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그녀가 오른쪽 다리에 ‘힐’을 거는 모습을 본 샤텔이 식겁하며 몸을 던졌고·
쿠콰콰콰쾅!
거대한 거인의 발이 내려오며, 다시 한번 발자국이 지면에 찍혔다·
가까스로 피해낸 샤텔이 흙바닥에 엎어지며 숨을 헐떡였다·
“힘의 차이를 느꼈다면 이만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 까요?”
하늘에서 내려온 르바임이 웃었다·
“같은 거인의 피가 흐른다고 해도 하프? 아니, 쿼터 정도인가?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어요· 샤텔 마에르·”
“····”
샤텔은 가만히 르바임을 응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네크로맨서로서의 차가운 이성이 그녀를 분석하고 있었다·
신체 일부를 급속도로 키우는 백마법?
조금 커지는 정도는 가능할지라도, 저렇게 거대해지는 백마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순혈 거인이다· 처음 출정식에 대면했을 때도 샤텔은 그녀를 ‘크다’고 생각했다·
원래 순혈 거인인 만큼 거대하지만, 몸을 줄이는 봉인을 스스로 걸어두었고 늘렸다가 줄이는 걸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크다면 전투 중에는 큰 상태로 유지하는 게 더 좋을 테니까· 그리고 왜 커지는 데 힐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뭔가 알아낸 게 있나요?”
르바임이 저벅 저벅 걸어오며 말했다·
샤텔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너· 설마·”
“?”
“크기 학대· 당했나·”
르바임의 걸음이 흠칫하며 멈췄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르바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실례네요·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커질 때·”
샤텔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너· 괴로운 표정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