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9화
519. 드레스
믿을 수 없게도 포털 연예면이 어제의 콘서트 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체리블라썸 콘서트 대성공!]
[체리블라썸 2연속 음악방송 10주 연속 1위의 대기록! 에 이어 까지!]
[체리블라썸의 . 다음 주에는 전무후무한 음방 연속 11주 1위 가능?]
[굴렁쇠 엔터 대형 신인 등장.]
[천상의 목소리 서연우!]
[힙합 걸그룹 트레비앙 “등장도 트레비앙! 댄스도 트레비앙! 가창력도 트레비앙!”]
[8천 석을 가득 채운 팬심!]
[마치 한 편의 버라이어티 쇼 같았던 3시간의 무대]
[체리블라썸 4인의 팔색조 매력.]
······
관심도 순으로 정렬해 놓은 연예 기사면의 TOP 10기사 섹션 뿐 아니라 아예 연예면 한 페이지 전체가 어제의 콘서트에 관한 기사였다.
이제껏 아무리 이슈가 있다고 해도 연예면 한 페이지 전체가 같은 주제로 채워지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회귀 전에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꿈인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머지 눈을 비볐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심지어 실시간 검색어 또한 1위부터 10위까지가 어제의 콘서트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어서 난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른 채 까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까톡 메시지는 내가 본 것들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려주듯 연예부 기자들과 광고주들이 보낸 것들이었다.
[최소혜 기자 : 정 팀장. 문자 보면 바로 연락줘. 인터뷰 급해!]
[장문기 기자 : 정 팀장. 나 단독 인터뷰 잡아주면 이 신세 안 잊을게. 이 장문기 빚은 확실히 갚는 사람인 거 알지?]
[칠성전자 홍보팀 : 정 팀장님. 홍보 이사님이 좀 뵙자고 하십니다.]
[LZ 패션 최영숙 대리 : 광고 미팅을 하고 싶은데 언제쯤 시간 괜찮으실까요? 전화를 안 받으셔서······]
어제의 콘서트가 대성공으로 끝난 덕분에 후폭풍은 장난이 아니었다.
체리블라썸과 강하나의 팬카페에는 콘서트 후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블로그에도 역시 후기가 가득했다.
다들 돈값을 했다는 뿌듯함이 가득한 후기들이었다.
사실 어제 오후 5시부터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조짐이 있긴 했지만 막상 이 정도까지 반응이 있을 진 나조차도 몰랐다.
이대로 더는 있을 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어제 뒤풀이 때 만취해서 집으로 가지 못한 도란희가 거실 바닥에 누워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물······ 물 좀······ 주세요······.”
도란희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손을 뻗고 있다.
그리고 곁에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 이영진이 똑같이 손을 뻗고 있다.
“윤호야······ 나도······ 물······”
어제 술자리에서 커플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발표한 두 사람은 주는 대로 술을 받아 마시곤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난 갈라진 목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알았어. 물 줄 테니까 두 사람도 폰부터 확인해봐.”
두 사람이 힘겹게 폰을 찾은 뒤 눈을 끔뻑이며 기사를 확인한다.
“어? 어? 어?”
“뭐 뭐야 이거?”
누가 매니저 아니랄까 봐 바닥을 뒹굴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내게 들어온 부재중 전화만큼 두 사람에게도 연락이 들어왔을 게 틀림없다.
“윤호야. 이거 뭐야?”
이영진이 눈곱도 떼지 않고 다급히 폰을 내민다.
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말했다.
“뭐긴 뭐야. 지금부터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문자지.”
“아······ 그렇······구나.”
어제 콘서트가 대박이 나기까지 우리 가수들이 피땀을 흘렸으니 이제 우리 매니저들 차례다.
난 차가운 냉수에 얼음까지 동동 띄워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마시고 정신 차려. 나부터 씻을게.”
“어.”
먼저 화장실로 들어간 난 세수부터 하려고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세면대에 비친 내 얼굴에는 웃음이 잔뜩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생했다. 정윤호.’
* * *
굴렁쇠 엔터 회의실.
새벽 6시인데도 팀장급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 있다.
다들 몇 시간도 자지 못한 채 자발적으로 회사에 나온 상태였다.
엔터 회사에는 늘 숙취해소제와 초코에몬이라는 초코우유가 비치되어 있기에 술을 깨라고 모두에게 돌렸다.
팀장들은 숙취해소제를 먼저 마신 뒤 초코우유인 초코에몬을 들이켜고 속을 달랬다.
“일단 광고 제안부터 확인해 봅시다.”
그때 어제 회사에 남아서 일 처리를 하던 연소희 팀장이 브리핑을 시작한다.
“어제 콘서트가 끝나고서 30분이 지난 10시 30분을 기준으로 광고가 쏟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나 가수가 이름을 알리면 업계 1위의 전자 회사부터 바퀴벌레 박멸 치료제까지 온갖 광고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중에서 회사가 정한 몸값을 만족시키는 광고는 채 10%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광고주 절반이 우리 굴렁쇠가 정한 몸값을 맞춰주겠다고 한단다.
그만큼 우리 체리블라썸과 강하나가 돈을 내고서라도 광고를 하고 싶은 급이 됐다는 소리였다.
도란희가 술이 확 깬 표정으로 외친다.
“팀좡님~~ 우리~ 애들~ 완주언~ 돼봑~”
“란희야. 다 좋은데 초코에몬은 다 삼키고 말해.”
도란희가 입가에 번진 초코에몬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꿀꺽.
“팀장님 우리 애들 완전 대박 아니에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우선 광고주 리스트부터 정리해보자.”
난 팀장들을 보며 자신들이 받은 광고 문의를 한데 모으라고 지시했다.
“각자 광고주들에게 까톡으로 받은 걸 모아서 정리부터 해보죠.”
그때 연소희 팀장이 말한다.
“이미 정리 다 끝냈습니다. 총 383건에 대해 개별 광고주들의 문의 사항 광고 금액 광고주 성향까지 파일 작성해 뒀습니다. 까톡으로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잠깐만요. 383건이요?”
“예. 어제부터 남 팀장님이랑 둘이서 연락 전화 받아 가면서 정리했습니다.”
광고주들은 우리가 연락을 받지 않자 회사로 전화를 걸어 광고 문의를 했다고 한다.
어쩐지 연소희 팀장과 남판규 팀장의 옷이 어제와 같더라니.
일부러 야근을 시킨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은 이젠 정 실의 소속이라는 듯 자기 일처럼 일하고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뭘.”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고맙고요. 이따가 일찍 퇴근시켜드릴 테니까 우선 브리핑부터 계속 듣죠.”
“예.”
연소희 팀장이 리모컨을 누른다.
회의실 LCD 화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자료가 떠올랐다.
단 너무 리스트가 길었기에 제한을 걸었다.
“일단 체리블라썸은 광고비 6억 언더는 다 커팅하세요. 그리고 하나도 4억 언더로 다 커팅하고요.”
“예.”
연소희 팀장이 조건에 맞은 광고 리스트만 추려서 보여준다.
그런데도 광고 문의의 30%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동민 실장을 비롯해 다른 팀장들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란희 말대로 진짜 대박이네.”
“커트라인을 올려도 이렇게까지 많이 남는다고?”
막연한 상상과 달리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난 팀장들에게 체리블라썸과 강하나가 탑이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 일부러 LCD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예상한 대로 그제야 다들 체리블라썸과 강하나는 이젠 탑 스타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깐 팀장들이 감격할 시간을 준 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광고를 쓸어 담아 볼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빼놓지 않고 걸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광고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체리블라썸과 강하나는 1인당 수십억 규모의 광고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 * *
광고 회의를 끝낸 뒤.
기자들과도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자 하루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렸다.
오후 1시.
현재도 광고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1차로 들어온 일만 마무리를 하자 말했다.
“자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좀 쉬죠. 다들 퇴근하세요.”
어제 콘서트를 위해서 움직인 팀원들이나 밤을 새운 팀장들이나 모두 휴식이 필요했다.
연소희 팀장이 기지개를 켜며 묻는다.
“팀장님은요?”
“저는 남은 일이 있어서요.”
“예? 또 일하신다고요?”
연소희 팀장의 말에 다른 팀장들이 헛웃음을 짓는다.
“우리 정 팀장님 체력 따라가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해요. 연 팀장님.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괜찮습니다. 이 대리님이 도와주실 거고 저도 오늘은 쉬어가면서 일할 겁니다. 그러니 이제 다들 들어가 보세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들 내 체력에 혀를 내둘렀지만 MBS <연기 대상>의 시상식에서 유진이와 미소가 입고 갈 드레스를 확인하기 위해선 버거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난 따라오겠다는 팀장들을 둔 채 이제 막 출근한 이미리 대리와 함께 천호동 집으로 향했다.
* * *
천호동에서 유진이와 미소를 태운 뒤 LM 의류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댄 우린 LM 의류에서 독립한 명품 전문 회사 L.M.L의 건물로 향했다.
LM 의류의 내부에서 명품 사업을 진행하던 L.M.L은 현재 LM 의류의 자회사로 독립해 본사 옆에 있는 작은 건물을 사옥으로 삼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표이사실로 가자 이영아 L.M.L 대표와 LM 의류 문영미 대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콘서트 공연 잘 봤어요 정 팀장님. 유진이랑 미소도 노래 잘하던데요?”
이영아 대표는 어제 콘서트에 왔던 소감을 말한다.
문영미 대표 역시도 유진이를 보고 말한다.
“유진 씨. 이젠 노래까지 섭렵하려고 그래? 혼자만 연예인 하려고?”
“에이~ 아니에요. 실수 여러 번 했는데요 뭘.”
성공적인 콘서트에 관해 이야기로 입을 연 후 이영아 대표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 일단 옷부터 입어 볼까요?”
“예.”
“피팅룸으로 옮기죠.”
1층 대표이사실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피팅룸으로 향했다.
회사 내 피팅룸 입구에는 인증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지문 인식 잠금장치가 따로 되어 있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공개할 드레스의 디자인이 유출되지 않게 하려고 극도로 보안을 강화해 놓은 상태였다.
원래 피팅룸에는 사진 유출을 방지하느라 폰도 반입할 수 없지만 난 외부와 업무 논의를 핑계로 카메라 렌즈만 가리고서 폰을 들고 들어갔다.
이영아 대표가 지문을 대고 비밀번호까지 누른 뒤에야 피팅룸의 입구가 열린다.
[인증되었습니다.]
지이잉~
L.M.L 건물 한 층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피팅룸의 중앙에는 원형 무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전신 거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무대 바로 뒤로는 커튼으로 구분되는 탈의실이 붙어 있었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피팅룸의 한쪽에는 촬영 카메라와 반사판 조명에 흰색 배경까지 있었는데 준비된 장비들을 보니 전문 스튜디오나 다를 바 없을 정도였다.
이런 장소라면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돈 많이 쓰셨겠는데요?”
이영아 대표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다.
“예. 우리 L.M.L 블랙라벨 드레스를 입을 사람들은 주로 카메라 앞에 많이 서잖아요. 그래서 테스트 장비를 좀 갖췄어요.”
유진이가 이번 MBS <연기대상>에서 입을 옷들은 명품 브랜드 L.M.L에서 최상위급으로 새롭게 런칭하는 블랙라벨의 제품들이다.
유진이가 광고 모델이 되고 나서 워낙 판매량이 좋다 보니 회귀 전보다 3년이나 일찍 최상급의 라인업을 런칭할 수 있게 되었다.
“블랙라벨 런칭만 제대로 되면 그땐 해외로 더 팍팍 나갈 예정이예요. 그래서 이번 연기 대상 무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잘 좀 부탁드릴게요.”
“저희야 언제나 최선을 다하죠.”
이영아 대표가 웃으며 탈의실을 가리킨다.
“그러면 유진 씨. 먼저 MBS에서 입을 드레스부터 입어 볼게요.”
“예. 대표님.”
유진이가 미소에게 손을 흔들고 탈의실로 들어간다.
미소와 나 그리고 이미리 대리는 문영미 대표의 안내로 무대 앞에 놓인 긴 소파형 의자에 앉았다.
잠시 문영미 대표와 광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유진이가 탈의실에서 나온다.
유진이가 입고 나온 건 순백의 드레스인데 사선으로 장식된 진주 비즈가 달려있고 그 곁에 작은 반월 장식이 달린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작품명 ‘영광’.
영어로 ‘글로리아’라고 부르는 드레스는 피팅룸을 밝힐 정도로 반짝이며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유진이는 드레스가 만족스러운지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묻는다.
“어때요?”
난 너무도 아름다운 유진이의 모습에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온 모두가 똑같은 심정이었다.
다들 넋이 나가 멍하니 있자 유진이가 부끄럽다며 볼을 붉힌다.
“왜 다들 말이 없어요~오~”
유진이의 채근에 멍하니 엄마를 쳐다보던 미소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작은 손바닥이 터질 듯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우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짱이야!”
함께 온 이미리 대리도 이 정도라면 뉴욕 패션쇼에서도 화제가 될 거라며 놀란 표정이다.
나 역시 극찬을 보내려고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지이잉~
[알림 : 2020년 12월 30일 ‘정유진’의 새로운 일정이 등록되었습니다.]
12월 30일 하필이면 MBS 연기 대상 당일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12월 30일 자 일정을 확인했다.
그런데.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정이 적혀 있는 걸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드레스가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