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3화
513. 콘서트 사고 2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남자가 ‘공연 브라더스’의 후드티를 입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범인으로 의심이 되지만 확인이 필요했다.
난 즉시 컨트롤 룸에 있는 ‘공연 브라더스’의 대표 공상민에게 물었다.
“대표님 혹시 이 사람 아십니까?”
“아니요. 저희 회사 직원은 아니고 외부 용역 직원입니다.”
무대를 빨리 설치하기 위해 ‘공연 브라더스’는 회사 직원들 말고도 추가로 외부 작업자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두 후드 티셔츠를 제공했다고 한다.
“외부 작업자 명부는 1층에 있는 도훈이가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공연 브라더스’의 공상민 대표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겠다며 무전기를 잡는다.
그 순간 난 급히 공상민 대표를 말렸다.
“잠시만요.”
“왜 그러십니까?”
“리프트에 손을 대려는 것 같습니다.”
무대 바닥 아래는 사방이 막혀있어 바깥보다 어둡다곤 해도 조명이 달려있어 길을 헤맬 정도는 아니었다.
공상민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 자식이······”
이어서 난 박본수 천리안 CCTV 대표에게 물었다.
“박 대표님. 이 CCTV 바로 녹화됩니까?”
“지금 바로 세팅하겠습니다.”
박본수 대표가 CCTV 녹화 기능을 세팅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대 바닥 아래를 비추는 모니터의 화면에선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리프트의 곁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난 혹시 몰라 폰을 꺼내 CCTV 화면을 녹화했다.
그 순간 이동민 실장도 자신의 폰으로 CCTV 영상을 촬영한다.
잠시 후.
박본수 대표가 설정이 끝났다며 고개를 돌린다.
“녹화 시작됐습니다. 아직 임시 하드만 연결된 터라 10분 분량밖에는 녹화가 안 될 겁니다.”
“일단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때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검은 모자의 사내가 드디어 리프트에 장난질을 치기 시작했다.
놈이 손을 대는 곳은 리프트를 위로 밀어 올리는 구동부.
연결 고리를 조금씩 미세하게 푸는 걸 보니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의 짓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상민 대표가 이를 빠드득 갈며 말한다.
“와~ 저 새X 진짜 악질인데요? 저러면 리허설 땐 괜찮은데 계속 움직이다가 헐거워져서 공연 때엔 사고가 터질 겁니다. 저놈 틀림없이 업계 사람입니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장비를 만질 줄 아는!”
나 역시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심호흡을 하면서 냉정함을 유지했다.
“증거가 확보됐으니까 이제 움직이죠. 이 실장님. 경찰 불러주세요. 제가 가서 저놈부터 잡겠습니다.”
“알았어!”
난 이어서 공상민 대표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놈도 무전기를 들고 있으니까무전기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무전을 듣고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작업하는 스태프들은 대부분 무전기를 들고 있다.
넓은 공간에서 작업하며 소통을 하기 위해서였다.
공상민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새X. 같이 잡으시죠.”
공상민 대표 역시도 나처럼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만약 내가 CCTV를 미리 설치하지 않았더라면 리프트 사고는 온전히 ‘공연 브라더스’의 책임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용히 무대 아래 3번 통로로 들어가죠.”
“예. 전 나가서 직원들에게 무대 아래 출구인 1번과 5번 통로를 막으라고 지시하겠습니다.”
혹시나 놈이 도망갈 걸 대비해 무대 바닥 아래에서 나오는 출구를 막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난 공상민 대표와 함께 무대가 세팅되고 있는 DX홀로 향했다.
* * *
공연이 펼쳐질 무대 바닥은 홀 바닥에서 2m 정도의 높이에 떠 있다.
그리고 그 무대 바닥은 수많은 철제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들이 흔들리지 않게 기둥 사이마다 X자 빔을 설치한 뒤 그 위에 덧마루라는 직사각형 나무들을 겹쳐서 만든다.
그래서 무대 바닥을 받치고 있는 철 기둥 사이로는 사람들이 이동할 수가 있었다.
“들어가시죠.”
“예.”
공상민 대표와 난 빛이 들어오지 않게 이중 천을 늘어뜨린 입구를 젖히고 무대 아래로 들어갔다.
본래라면 사방이 천으로 막혀있어 암실과도 같이 어두워야 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조명 지시등을 달아놓았더니 CCTV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은은한 밝기가 유지되고 있다.
이미 CCTV로 놈의 범행을 찍은 터라 공상민 대표와 난 들어가자마자 놈을 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검은 모자를 쓴 놈은 두 번째 리프트를 건들다가 우리가 들어온 걸 알아차렸다.
“젠장!”
검은 모자를 쓴 놈이 1번 통로로 나가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거기서!”
놈이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그 순간 내 뒤에 있는 공상민 대표가 무전기를 사용한다.
“1번 통로! 쥐새끼가 그쪽으로 도망간다. 들어와서 막아!”
무대 아래를 드나드는 1번 통로 쪽 천이 펄럭이며 두 사람이 들어온다.
“대표님. 들어왔습니다.”
원래 가려던 곳이 막히자 도망가던 놈이 발걸음을 멈추고 반대편으로 몸을 돌린다.
반대편 5번 출구로 도망가기 위해서였지만 그보다는 내가 더 빨랐다.
덥석.
난 도망치던 놈의 목덜미를 가까스로 잡았다.
“XX!”
그 순간 욕설을 내뱉은 놈이 상체를 돌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난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고개를 살짝 숙여 놈의 주먹을 피했다.
순간 놈의 주먹이 날 비껴나가 무대 아래를 받치고 있는 철제 기둥을 가격했다.
터엉.
둔탁한 울림과 함께 놈이 비명을 지른다.
“아악! XX 내 손!”
맨주먹으로 무대를 받치는 단단한 철제 기둥을 친 놈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놈은 목덜미를 내게 잡힌 채 왼손으로 자기 오른손을 붙잡고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난 그 틈을 타 놈을 제압하고 모자와 마스크를 벗겼다.
20대 후반 남자인데 긴 머리카락에 콧수염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두툼한 뿔테 안경까지 쓰고 있는데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혹시······변장?’
그 순간 난 놈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역시나 손끝에 걸리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이상했다.
‘가발이군.’
놈이 급히 자기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했지만 가발이 벗겨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안 돼!”
가발을 벗긴 난 폰의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췄다.
아는 놈이다.
에이스 엔터 소속의 매니저 유상면.
그렇다면 이 콧수염도 가짜다.
난 즉시 유상면의 콧수염을 잡아뗐다.
짝!
“아악!”
유상면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놈은 이찬동 실장의 직속 후배.
원래 연극 무대 연출 일을 하다가 매니저가 된 놈이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을 이용해 연습생들을 건드리다가 에이스 엔터에서 쫓겨나게 될 미래를 가진 놈이었다.
“유상면 씨?”
자기 정체를 들키자 유상면은 쌍욕을 한다.
“씨X······”
난 즉시 놈의 팔을 꺾어 먼지 가득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아 버렸다.
유상면이 바둥대며 말한다.
“씨X.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건데! 정윤호 너 씨X. 내가 고소할 거야!”
난 턱으로 무대 아래에 설치된 검은색 CCTV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거 안보입니까?”
유상면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뭐가?”
그때 공상민 대표가 손전등을 켜 CCTV 쪽으로 비춘다.
“저기 CCTV 보이시죠?”
그제야 유상면이 진짜로 X 됐다는 표정으로 저항을 포기한다.
“젠장. 이런 데 CCTV는 왜 설치해? 돈이 썩어나는 것도 아니고······”
보통은 어떤 공연 팀도 무대 아래에 CCTV를 설치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현장에 CCTV를 거의 설치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게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뒤에 선 공상민 대표가 묻는다.
“정 팀장님. 이 친구 이름 유상면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신분증은 최태진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제야 놈이 과감하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프트를 건드려 경찰들이 조사를 나온다고 해도 위조 신분증에 변장까지 한 유상면을 찾아내진 못했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놈은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가죽장갑마저 끼고 있었다.
이 업계를 너무 잘 알기에 가능했던 짓이지만 미래의 일정을 보는 내 앞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마터면 죄를 뒤집어 쓸뻔한 공상민 대표가 유상면을 죽일 듯 노려보며 무전기를 잡는다.
“동현아. 성식아! 도훈이도 무대 아래로 좀 내려와!”
난 그 틈을 타 말했다.
“케이블 타이랑 투명 지퍼백이나 비닐백 좀 가지고 오라 하십시오.”
공상민 대표가 즉각 말한다.
“케이블 타이랑 투명 비닐 팩도!”
잠시 후.
공상민 대표가 부른 세 사람이 케이블 타이와 투명 지퍼백을 가지고 온다.
난 케이블 타이로 유상면을 결박한 뒤 조심스레 놈의 가죽장갑을 벗겨 투명 지퍼백에 넣었다.
지문은 남지 않아도 장갑에 묻은 먼지나 성분이 리프트의 결합부에서 나온 것과 대조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난 공상민 대표에게 말했다.
“리프트는 손대지 마세요. 이 자식이 손댔다는 증거도 확실히 남겨야죠.”
“예.”
공상민 대표는 리프트를 확인하러 가다가 발걸음을 멈춘다.
“알겠습니다.”
난 유상면의 몸 위에서 일어난 뒤 즉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1]
[날짜 : 2020년 12월 26일]
-PM 07:3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유은아] 응급실. 전치 6주 진단. (‘시공의 발레리나’ 촬영 중단. 다른 배우로 교체.)) -PM 07:3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김세리] 응급실. 전치 4주 진단. (1월 솔로 데뷔 계획 취소.))
다행히 은아와 세리에 관한 일정이 사라졌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린 뒤 유상면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상면은 모든 게 끝났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부터 시작이다.
경찰이 오기 전.
자세한 사정을 알아봐야 했으니까.
* * *
쿵쿵.
내일까지 행사 준비를 해야 했기에 아직도 무대 위에는 계속해서 작업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난 케이블 타이로 두 손이 묶인 유상면을 철제 기둥에 기대게 한 채로 물었다.
“이찬동이 시켜서 온 겁니까?”
“그 그래. 이 실장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내가 친 사고를 경찰에 알린다고 협박했어. 그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진짜야.”
유상면은 CCTV에 자신의 범행이 찍힌 걸 알자 모든 죄를 이찬동 실장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협박을 당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면서.
“그러면 그 이 실장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현재 이찬동 실장은 에이스 엔터의 조사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의 조사를 받고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였다.
그러자 유상면이 역으로 제안을 꺼낸다.
“말해 주면······ 탄원서나 뭐 그런 거 써줄 거야?”
난 이번 일을 저지른 유상면은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우선은 이번 일을 시킨 원흉을 잡는 게 더 중요했다.
“이찬동이 어디 있는지만 불면요.”
이번 일은 막았으나 경찰이 그를 잡기 전까지 이찬동 실장은 이번처럼 회사가 망한 앙갚음으로 나와 내 연예인들을 노릴 게 분명했다.
유상면이 내 눈치를 보며 말한다.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몰라.”
“지금 장난합니까?”
주먹을 살짝 말아쥐자 유상면이 다급히 말한다.
“자 잠깐만. 잠깐!”
“왜요?”
“이 일이 끝나면 보기로 했어. 놈이 성공만 하면 돈을 준다고 했거든!”
그럼 그렇지.
유상면은 단지 협박만 당한 게 아니라 돈을 약속받았기에 이번 일을 한 거다.
“두 번 안 묻습니다. 이찬동 실장과는 어디서 보기로 했습니까?”
“그건 진짜 몰라. 놈이 전화해 오기로 했거든. 12시 정도에 전화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전화 올 거야. 진짜야.”
이찬동 실장은 대포폰을 쓰고 있다며 이쪽에서 전화를 걸 방법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2분 정도 지났을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지이잉.
유상면의 왼쪽 주머니가 파르르 떨린다.
“저 전화 왔어. 이거 받아야 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찬동 실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난 유상면의 옆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진동으로 떨리고 있는 폰을 꺼냈다.
“전화 받으면 만나서 보자고 그러세요. 일 잘 끝났다고.”
유상면이 액정의 잠금을 풀기 전에 다시 한번 묻는다.
“진짜로 나 도와주는 거 맞지?”
“알겠습니다. 이것만 협조를 잘하면 탄원서를 써 드리죠.”
약속대로 이번 일은 탄원서를 써줄 생각이다.
하지만 유상면이 저지른 다른 짓들은 낱낱이 경찰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난 감히 은아와 세리를 다치게 하려고 했던 일을 절대로 용서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 속내도 모른 채 유상면이 알았다며 액정의 잠금을 풀었다.
통화를 누르자 이찬동 실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성공했어?
유상면이 날 쳐다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예.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천만 원은 지금 주십쇼.”
-야! 일이 끝나면 준다니까?
“XX. 그러다 실장님이 튀면요? 어차피 실장님은 내 약점도 갖고 있잖아요! 일이 안 터진다 싶으면 그땐 내 약점들을 고소하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XX. 진짜로 확실히 일 처리한 거 맞아?
“아 맞다니까요?”
-알았어. 그러면 강남 탄천주차장으로 와. 지금 바로 올 수 있지?
유상면이 날 쳐다본다.
고개를 끄덕이자 유상면이 대답한다.
“지금 바로 갈게요.”
-그래. 딱 20분 기다린다. 바로 튀어 와.
“어디로 가면 돼요?”
-4번 출구 쪽에 있다. 구형 에쿠스 타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와. 알았어?
“알았어요.”
달칵.
전화가 끊겼다.
난 유상면을 보며 말했다.
“차 끌고 왔습니까?”
“그래.”
“차 키 주십쇼.”
“왼쪽······ 주머니에 있어.”
난 유상면의 차 키를 받아들었다.
“쓰고 돌려드리죠.”
난 이동민 실장에게 뒤를 맡긴 뒤 급히 주차장으로 달렸다.
‘이찬동 실장. 당신······ 절대로 가만 안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