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6화
486. 예상치 못했던 일 4
“꾸이이이익~~”
빛바랜 풀숲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검은 물체는 바로 집채만 한 멧돼지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XX. 겁나 커!’
“꾸익~ 쉭쉭.”
200kg은 훌쩍 넘을 것같이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났다.
놈은 대형 오토바이만 한 덩치에 20cm가 넘는 날카로운 엄니에 칠흑같이 어두운 긴 털을 갖고 있었다.
얼핏 멧돼지라고 생각하면 맹수가 아니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체 멧돼지가 들이받는 충격량은 소형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과 같다.
즉 잘못 부딪히게 되면 내장 파열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날카로운 어금니에 허벅지가 찔리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고.
그때였다.
“꾸이이익!”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경고하듯 놈은 길을 막고 서서 울부짖는다.
그 순간 예민한 말들이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말들이 도망치고 싶은지 목을 위아래로 흔들어댄다.
난 그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돌쇠의 고삐를 쥐며 외쳤다.
“다들 말고삐 꽉 붙잡아!”
모두가 놀라서 말고삐를 꽉 붙잡았다.
그때 뒤편에 있던 윤명희가 말을 능숙하게 진정시킨 뒤 앞으로 나와 유진이가 탄 말고삐를 붙들어 준다.
“워워~ 괜찮아. 괜찮아.”
윤명희가 달래주자 유진이가 탄 돌쇠는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했다.
그러나 멧돼지가 문제였다.
놈은 우리에게 당장 꺼지라는 듯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꾸이이익~~~!”
멧돼지의 포효가 온 야산을 울린다.
공포에 질린 돌쇠는 이번에는 진정하지 못하고 앞발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있는 힘껏 돌쇠의 고삐를 눌렀지만 동물의 힘을 이겨낼 순 없었다.
결국 돌쇠가 앞발을 들어 올려 버렸다.
함께 고삐를 잡고 있던 윤명희도 돌쇠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고삐를 놓쳤다.
그 순간 유진이의 몸이 안장에서 떨어져 튕겨 나갔다.
“꺅!”
난 즉각 고삐에서 손을 떼고 머리부터 떨어지는 유진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덥석.
허공에 뜬 유진이를 껴안았다.
그러고선 유진이를 보호하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돌려 내 등을 바닥으로 향했다.
쿵.
딱딱한 바닥에는 모래가 제법 쌓여 있었지만 두 사람의 체중이 더해진 터라 꽤 충격이 있었다.
등 쪽이 아팠지만 그보단 유진이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
“유진아. 괜찮아?”
내 품에 안긴 유진이가 꼭 감았던 눈을 커다랗게 뜬다.
“오 오빠?”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저 전 괜찮아요. 오 오빠는요? 오빠는 괜찮아요?”
유진이가 걱정스레 쳐다본다.
살짝 몸을 움직여 보자 다행히 부러지거나 한 부위는 없었다.
“괜찮아.”
다이어리를 보고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놀란 유진이가 걱정되었지만 이러고 누워 있을 시간은 없다.
여전히 일행들의 앞에는 멧돼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진이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등 쪽이 저릿해 왔지만 뼈가 부서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유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오빠 어쩌려고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사이 일행들이 달라붙어 돌쇠를 진정시켜 놓았다.
하지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다른 배우들이 다칠 수도 있다.
난 그 즉시 외쳤다.
“배우들 전부 말에서 내리게 하세요. 그리고 다들 도망치지 말고 한데 모이세요!”
멧돼지가 쉽사리 덤비지 않는 건 뭉쳐 있는 우리가 큰 동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때 조연으로 출연 중인 무술감독 안석칠이 외친다.
“다들 정 팀장이 시키는 대로 해!”
스태프들이 급히 여배우들을 안장에서 내린 뒤 다들 한데 뭉치기 시작한다.
그때 몇몇 배우들이 몽둥이를 들어 올린다.
“다 같이 덤비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총으로도 한 방에 죽이지 못하면 오히려 엽사를 죽일 수도 있는 맹수가 멧돼지였다.
저런 맹수를 몽둥이나 촬영용 검으로는 절대 못 잡는다.
사이즈라도 작으면 모를까 대형 오토바이 급 사이즈를 어떻게 이겨.
“멧돼지한테 부딪히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피하시고 도망치면 쫓아올 수 있으니 이대로 뭉쳐 있는 게 좋습니다. 경찰이 올 때까지만······ 근데 경찰은 불렀어요?”
“아 안 그래도 신고했어요.”
그때 내 오른쪽에 있는 무술감독 안석칠이 용기를 북돋운다.
“다들 흥분하지 말고 뭉쳐 있어!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렇게 우린.
경찰이 올 때까지 거대한 체구의 멧돼지를 노려보며 눈싸움을 시작했다.
* * *
몇 분이 지나는 동안.
멧돼지는 우릴 노려보며 움직이질 않았다.
대체 왜 그러나 싶었는데 잠시 후 이유를 알았다.
“꾸이이익?”
풀숲이 갈라지며 조금 전보다 조금 작은 멧돼지 한 마리가 더 튀어나온다.
엄니가 없는 것을 보니 암컷인가 본데 이제껏 이놈을 기다린 모양이다.
그런데 둘이 되자 놈들은 이길 자신이 생겼는지 더욱 흥분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그때 금은동 AD가 외친다.
“산 아래에 동네 엽사가 왔답니다. 카트 타고 오니까 조금만 견디면 돼요.”
잠시 후.
컹컹컹.
먼저 사냥개들이 짖으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됐다.’
엽사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들은 멧돼지를 전문적으로 쫓는 훈련을 받은 놈들.
그제야 우릴 노려보던 멧돼지들이 몸을 돌리더니 미친 듯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멧돼지들의 미친 듯한 달리기 속도를 보니 부딪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이어서 멧돼지 사냥개들은 빠른 속도로 우리 곁을 지나쳐 멧돼지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과 엽사들도 권총과 산탄총을 들고 뛰어왔다.
“많이 놀라셨죠?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잘 견디셨습니다.”
다들 우릴 지나가며 엄지를 치켜든다.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고 잘 버텼다면서 말이다.
그제야 우리 일행들은 긴장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
“와~ 대박. 멧돼지 대가리가 무슨 내 몸통만 하지?”
“수놈은 제 차보다 크던데요?”
“차는 무슨. 미니버스만 하더만?”
눈앞에 나타났던 멧돼지의 크기는 입에서 입을 거치며 점점 부풀려지고 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대형 트럭만 한 멧돼지 두 마리와 눈싸움을 했다고 자랑할 기세다.
난 그 정도는 오버인 것 같으니 황소만 한 놈이랑 대치했다고 말할 생각이다.
어쨌건 나 역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이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0년 12월 10일]
-PM 6: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정유진] 경주 S 병원 응급실 도착. (회사 보고 : 골절. 전치 6주.))
‘됐다.’
다이어리가 아니었다면 결코 막아내지 못했을 것 같다.
설마 이런 걸로 다칠 뻔했다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으니까.
그때 뒤쪽에서 유진이가 다가오더니 내 몸을 이리저리 살핀다.
“오빠. 잠깐만요?”
유진이가 갑자기 내 검은 무복을 들어 올렸다.
후드둑.
등 뒤에 묻었던 모래와 미세한 돌들이 떨어진다.
유진이는 무복 안에 입은 면티마저 훌러덩 들어 올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오빠. 멍 엄청~ 들 것 같아요. 곳곳이 울긋불긋해요. 어떻게 해요?”
여전히 주변엔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조금은 얼굴이 붉어진다.
난 다급히 옷을 내렸다.
“괜찮아. 하룻밤 지나면 금방 나아져.”
“말도 안 돼. 당장 병원부터 가요. 예?”
“괜찮다니까? 그보다 넌 어때? 넌 다친 데 없어?”
“오빠가 받아준 덕분에요.”
“그래? 다행이다. 너만 안 다쳤으면 됐어.”
유진이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며 말한다.
“오빠도 다치면 안 되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알았어. 안 다칠게. 진짜야.”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간 병원부터 가요. 알았죠?”
유진이의 성화에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금은동 AD가 인터콤으로 지시를 듣고 말한다.
“저기 다들. 내려가시죠. 오늘 촬영은 여기서 접습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으나 멧돼지가 잡히기 전까지는 촬영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야산 세트장을 터벅터벅 내려가는 동안 함께 걷던 스태프들이 날 보며 저마다 엄지를 치켜세운다.
“이야~ 정 팀장. 아까 멋지더라.”
촬영 스태프 한 명이 내가 말한 걸 따라 한다.
“거기다가 몸을 날려서 유진 씨를 구할 땐 진짜 대박이었지 않습니까?”
“그러게. 난 반응도 못 했는데 말이지.”
“맞아요. 정 팀장님 덕에 다들 안 다친 것 같아요.”
“인정. 섣불리 도망갔으면 아마도 우리 중 몇 명은 크게 다쳤을걸?”
출연 배우들도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내 덕에 유진이도 여배우들도 그리고 자기들도 다치지 않았다면서.
조금은 낯부끄러웠기에 별것 아닌 듯 답했다.
“제가 맨 앞에서 있어서 그런 거지 다른 분들도 하고 남으셨을 겁니다.”
“그럴 리가! 난 아예 정신이 나갔었다니까? 정 팀장?”
그때 오복희 PD가 달려오며 일행들을 쳐다본다.
“다친 사람 없는 거 맞죠?”
“예!”
다들 내 덕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다들 놀라셨을 텐데 어서 내려가서 쉬세요.”
이후 오복희 PD가 유진이와 날 따로 부른다.
“정 팀장님. 유진 씨는 같이 제 천막에서 봬요.”
“알겠습니다.”
우린 곧장 오복희 PD를 따라 산 아래 대기 천막으로 향했다.
* * *
오복희 PD의 대기 천막 안.
연화선 선생님은 가셨는지 보이질 않는다.
대신 이지연 작가와 한우주 작가가 와 있었다.
그때 이지연 작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유노~ 또 한 건 했다면서?”
반면 한우주 작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도착한 두 사람은 사정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 한우주 작가가 말한다.
“아 그런데 아까 드론으로 찍은 영상이 진짜 잘 나왔더라고요. 음성만 다시 입히면 그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사냥씬에서는 정화 공주와 도화 공주의 세력들이 화살로 유진이를 위협한다.
그런데 그 씬 대신 멧돼지를 몰던 몰이꾼이 암살자로 등장해 활을 쏘는 걸로 대본을 일부 수정했단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그런데 혹 그것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오복희 PD가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젓는다.
“아뇨. 실은 아까 전 검무 출 때 이태연 씨랑 윤주연 씨가 위험하게 행동한 것 때문에 뵙자고 했어요.”
한우주 작가도 영상을 봤다며 흥분해서 말한다.
“두 여배우한테 경고도 할 겸 두 배우들의 분량 조절을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싶어서요.”
그러나 흥분한 두 사람과 달리 이지연 작가는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다.
“유노. 유노 생각은 어때? 두 사람 생각에 동의해?”
잠깐 고민했지만 난 미리 생각한 내 뜻을 전했다.
“두 사람이 한 짓이 괘씸하긴 해도 분량을 줄이는 것엔 반대입니다.”
오복희 PD와 한우주 작가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다.
“진짜요?”
“정 팀장님. 진짜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예.”
그 순간 이지연 작가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유진~ 유진의 생각은 어때?”
“저도 오빠 말에 동감이에요. 솔직히 겁이 나긴 했지만 저 정도 되는 배우들이 진심으로 상대해 주시니까 제 실력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힘들긴 해도······ 이 길로 갈래요.”
이지연 작가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제대로 된 매니저가 있어서 그런지 배우도 제대로인데?”
흐뭇하게 웃던 이지연 작가가 한우주 작가를 쳐다본다.
“한 작가. 이 화란전 그쪽이 메인이고 난 보조작가지만······ 선배로서 한마디만 해도 될까?”
“예. 작가님.”
“화란전을 기획한 의도가 뭐야?”
“왕실 내에 일어나는 비정한 암투와 그걸 이겨내는 강인한 주인공을 보여주려는 거요?”
“그래. 그래서 부제도 꽃들의 전쟁이잖아. 그런데 주연만 밀어주면 그런 전쟁이 되겠어?”
“아~”
“배우에 대한 애정과 감정 때문에 대본이 흔들려선 안 돼. 원래 기획대로 가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
한우주 작가가 생각에 잠기자 이지연 작가는 다음으로 오복희 PD를 쳐다본다.
“오 PD.”
“예.”
“유진이를 아끼는 마음은 좋아. 하지만 작가가 흔들리면 자네라도 중심 잡아야지. 안 그래?”
“그래도 또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 하죠?”
이지연 작가가 빙긋이 웃는다.
“걱정하지 마. 우리 유진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러니까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오 PD도 마음 단단히 먹어. 그리고 그게 궁극적으로 유진이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지연 작가는 내게도 당부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노. 유노는 지금처럼만 중심 단단히 잡고 유진의 곁을 지켜줘. 그러면 유진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큰 배우는 결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라 할지라도 사소한 실수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이지연 작가는 매니저인 내게 유진이를 지켜내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그래. 하여간 잔소리는 여기서 끝! 그러면 오늘 저녁은······.”
그때였다.
탕- 탕-.
멀리서 권총과 산탄총 소리가 연거푸 울려온다.
멧돼지를 잡는 소리였다.
이지연 작가가 웃는다.
“동네 엽사라던데 멧돼지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만 잡아서 구워 먹을까?”
“예.”
오복희 PD가 급히 금은동 AD에게 무선 인터콤으로 지시를 내린다.
“은동아. 멧돼지 사 와!!”
-예~~?
당황한 금은동 AD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렸다.
오복희 PD는 촬영이 중지된 까닭인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먹어 치워주겠어······ 그 자식.”
유진이와 한우주 작가 또한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난 환호할 수가 없다.
멧돼지 고기는 개체 차이가 워낙 많이 나 자칫 누린내가 나고 맛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난 다급히 외쳤다.
“고기는 내일! 내일 제가 직접 구워드릴게요!”
“내일?”
“예. 제가 기가 막힌 요리법을 압니다.”
이지연 작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유노 음식 실력이야 내가 알지. 오케이. 오늘은 그냥 밥차 불러 먹고 내일 점심때 먹으면 되겠어?”
“예!”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해.”
이어서 난 최소혜 기자와 장문기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촬영 현장에 멧돼지가 나타난 이슈는 충분히 기삿감이었기 때문이다.
* * *
다음 날 점심.
<화란전>의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내가 구운 멧돼지 고기를 먹는 중이다.
“와~ 끝내주네?”
“멧돼지 고기가 이렇게 맛있었어?”
“지방이 적긴 하지만 진짜 고소하네. 꼭 이베리코 돼지 같은 맛이라고 할까?”
“그래도 통구이가 아닌 건 조금 아쉽다.”
‘죽는 줄 알았네.’
예상한 대로 어제 잡은 멧돼지에서는 꽤 누린내가 났다.
그래서 난 엽사에게 웃돈을 주고 껍질을 벗기고 해체를 부탁했다.
통돼지 바비큐로 굽는다면 누린내를 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후 난 부위별로 나눈 고기를 받은 뒤 밤새 양파와 각종 양념을 써서 누린내를 제거하고 고기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담은 멧돼지 고기를 앞에 두고도 유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폰만 보고 있다.
“유진아 왜? 너 이거 먹고 싶다면서 아침도 굶었잖아.”
유진이가 툴툴거리며 폰을 내민다.
“이거요!”
폰에는 유진이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다.
그런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적힌 내용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풋······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