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5화
485. 예상치 못했던 일 3
부우웅~
이태연과 윤주연이 뻗은 검무용 칼날이 양쪽에서 유진이의 목을 향하고 있다.
유진이가 어느 한쪽으로 목을 까닥이기만 해도 긁힐 법한 거리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진이가 칼을 위로 들어 올린 채 현란한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순간 이태연과 윤주연이 휘두른 두 개의 칼날은 각각 유진이의 목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두 개의 칼날과 유진이의 목과의 거리는 대역 배우들이나 재연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부우웅~
칼과 함께 한 바퀴를 돈 이태연과 윤주연이 움직임을 멈췄다.
몸의 움직임을 따라 파라락 펼쳐졌던 치마들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이태연과 윤주연이 검무(劍舞)를 마무리 짓자 오복희 PD가 놀라서 고함을 지르려 한다.
하지만 난 급히 오복희 PD를 말리며 속삭였다.
“잠시만요. PD님.”
오복희 PD가 소리를 지르려다 멈춘다.
그때였다.
망부석처럼 굳어 있던 유진이가 들고 있던 칼을 천천히 아래로 내린다.
칼은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천천히 내려왔고 그에 맞춰 유진이는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줬다.
마침내 칼끝이 아래로 내려온 순간.
유진이의 아름다운 검무도 끝이 났다.
이후 유진이는 숨을 몰아쉬더니 검집에 칼을 넣었다.
그리곤 숨을 헐떡이는 두 왕후를 쳐다보며 고고한 표정으로 말없이 내려다봤다.
때마침 세트장에 일순간 바람이 몰아친다.
휘이잉~
유진이의 옷이 바람에 펄럭하고 날린다.
그림 같은 장면이 의도치 않게 연출되었다.
극 중 유화 공주가 얼마나 당찬 캐릭터인지를 보여주는 씬이 두 사람 덕에 한층 더 선명하게 완성되어 버렸다.
그때였다.
흥분한 음갈문왕 역의 송지환이 우렁찬 목소리로 유진이를 칭찬하는 애드립을 한다.
『칼날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가장 힘든 것은 평정을 유지하는 법! 허나 우리 공주를 보시오. 칼날 앞에서도 태연하기 그지없는 유화의 모습을!』
대신 배역 중 경력 있는 조연들이 반사적으로 그 애드립에 대꾸한다.
『유화 공주의 기상이 남다르다고 하더니. 과연~』
『허어! 일국을 이끌고도 남을 그릇이 아닌가!』
『역시 성골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계림 성골은 천신의 가호를 받는다는 말이 허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봅니다. 』
그러자 유진이가 단상 위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대사에 아무도 애드립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다.
『감사하옵니다 대왕!』
그렇게 8화의 씬 5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그제야 오복희 PD가 있는 힘을 다해 힘차게 외친다.
“커어엇~~!”
사고가 날 뻔한 터라 놀라있던 스태프들은 참았던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와~ 대박!”
“미쳤다! 정유진. 진짜.”
“칼이 날아드는데 눈도 깜짝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텨?”
“와~ 무슨 여배우가 저리 배짱이 두둑해?”
스태프들의 입에서 입으로 유진이에 대한 칭찬이 이어진다.
내가 생각한 대로.
유진이는 이태연과 윤주연이 만든 극적인 상황도 자신만의 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유진이의 몸값만 높아지고 있었다.
난 그 즉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0년 12월 10일]
-PM 6:00 [NEW. 정유진] 경주 S 병원 응급실 도착. (회사 보고 : 골절. 전치 6주.)
‘역시 이게 아니었어.’
안도하는 것도 잠시 또 다시 걱정이 밀려온다.
일정이 남아있다는 건 유진이에게 중상을 입힐 사고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설마 다시 이 장면을 찍게 되는 건 아니겠지?’
만약 오복희 PD가 그렇게 한다면 내가 나서서 말릴 생각이다.
그때였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스태프들에게 오복희 PD가 고함을 내질렀다.
“다들 조용!”
스태프들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문다.
오복희 PD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대며 이태연과 윤주연을 노려본다.
“태연 씨. 주연 씨. 왜 그러셨어요?”
의도한 것과 달리 유진이가 겁을 먹기는커녕 스태프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자 이태연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왜 그러다뇨?”
“몰라서 물어요?”
이태연이 ‘아~ 그거?’라는 표정으로 퉁명스레 대답한다.
“설마 조금 전 액션 때문에 그래요? 그거라면 죄송해요.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까 거리 조절에 실패했어요.”
이어서 윤주연도 뻔뻔하게 대답한다.
“저도요. 제가 극 중에서 유독 유화 공주를 미워하는 삼 왕후이잖아요. 저도 모르게 감정에 몰입했나 봐요. 그래도 안 다쳤으니까 됐잖아요? 어차피 보호대도 하고 있었고.”
오복희 PD가 빽 하고 소리를 친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제가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리허설대로 하라고요.”
하지만 이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안 맞았잖아요! 그리고 오 PD. 내가 당신 PD라고 참아주고 있는 거니까 적당히 해요. 에이~ 진짜. 누가 보면 혼자 드라마 만드는 줄 알겠네!”
윤주연도 얼른 그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요. 우린 들러리 취급이야 그냥! 뭘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추라야? 그리고 오 PD님. 내가 쟬 찔렀어요? 연기를 실감나게 해줬으면 고맙다고나 할 것이지 왜 욕을 해요?”
두 배우는 배역 몰입이라는 말로 오복희 PD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복희 PD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두 사람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배역 몰입에도 정도가 있지! 몰입으로 퉁 칠 거면 리허설을 왜 해요? 프로면 프로답게 적당한 선을 지켜야죠 어디서 초짜처럼 주연 목에다 칼을 날리냐고요!”
카랑카랑한 오복희 PD의 말에 두 S급 여배우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어디서 함부로 이런 대접을 받을 급이 아니다 보니 두 사람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하지만 오복희 PD는 눈도 끔뻑하지 않고 두 사람에게 외친다.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이딴 짓거리를 하면 저 절대 안 참아요! 알겠어요? 두 분 모두?”
오복희 PD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우렁찬 목소리로 말한다.
순간 현장 스태프들 모두 이태연과 윤주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쳐다본다.
하마터면 주연이 다칠 뻔했기 때문이다.
만약 두 여배우의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성격 급한 PD는 당장이라도 잘라 버렸을 수도 있었다.
스태프들이 수군거리자 흥분한 이태연과 윤주연은 그제야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상황이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이태연이 먼저 사과한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윤주연 역시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말한다.
“저도 감정 조절을 못 했네요. 죄송해요. PD님.”
오복희 PD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유진이를 가리켰다.
“유진 씨한테 직접 사과하세요.”
이태연과 윤주연은 어쩔 수 없이 유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진이가 다가오자 두 사람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유진 씨. 고의는 아니었어.”
“나도 흥분해서······ 좀 실수했어. 미안해.”
이태연과 윤주연에게 사과를 받은 유진이가 빙그레 웃는다.
“아니에요 선배님들. 배역 몰입하면 그럴 수도 있죠. 전 다 이해해요.”
경력이 부족한 유진이가 배역 몰입이란 상황을 이해한다며 여유롭게 말하자 두 여배우의 얼굴은 더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보다 훨씬 후배에게 ‘이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태연과 윤주연은 더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몸을 홱 하고 돌렸다.
그와 동시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유진이를 향해 잠시 멈췄던 축하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진 씨. 최고였어.”
“아까 카리스마 짱 이었어.”
“이야~ 역시 우리 주연인데?”
유진이는 연신 웃으며 <화란전>의 주인공다운 태도로 그 말에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치 이태연과 윤주연에게 들으라는 듯 유진이의 목소리는 세트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유진이는 어느새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두 여배우를 상대할 정도로 훌륭히 성장해 있었다.
* * *
오복희 PD가 영상을 확인하고 오케이를 외쳤다.
두 여배우가 칼을 아슬아슬하게 날린 덕에 유진이와 두 왕후 사이의 감정 대립이 오히려 또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타이밍 좋게 이어진 송지환의 애드립이 씬의 완성도를 올려 버렸다.
내 생각대로 이태연과 윤주연의 행동이 오히려 유진이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렇게 소동이 일단락되고 유진이를 데리고 대기 천막으로 향했다.
대기 천막 안.
유진이가 어깨를 으쓱인다.
“저 어땠어요?”
난 유진이의 목 보호대를 풀어주며 말했다.
“어떻냐고? 최고였어.”
유진이가 날 쳐다보며 비실비실 웃는다.
“오빠가 절 믿어준 덕에 가능했어요.”
“아슬아슬했어.”
조금 전 유진이도 칼날이 다가오자 피할까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화 공주’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니 생각이 단순해지더란다.
죽을 위기에 몰려도 ‘유화 공주’는 피하지 않았을 거라고.
게다가 두 여배우가 자신의 기를 죽이려고 애를 쓴다는 걸 알고선 일부러 더 당차게 나갔단다.
“수고했어 진짜로.”
난 목 보호대를 푼 뒤 양소리 대리에게 건넸다.
하지만 나머지 보호대는 벗기지 않았다.
여전히 다이어리에 유진이가 다친다는 일정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오빠. 왜 복부 보호대는 안 빼요?”
“그건 그대로 차고 있어. 조금 이따가 사냥하는 장면을 찍잖아.”
검무(劍舞)씬은 이미 오케이가 되었으니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씬은 바로 다음 사냥 대회 씬이다.
사냥 대회 씬은 야산에서 말을 타고 연기를 펼쳐야 하니까.
‘낙마 사고인 건가?’
유진이는 승마를 이제 막 배운 터라 다른 두 공주역의 배우들과는 달리 말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말고삐를 잡아주는 사람이 늘 따라다니고 주요 연기 씬에선 대역을 쓰기로 되어 있다.
“전 말 위에 앉아만 있는데도 보호대를 차요?”
“방심하지 마. 말 높이가 얼만데? 떨어지기만 해도 크게 다쳐.”
그냥 오늘 촬영을 미룰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곤 했다.
‘아냐. 그냥 이참에 해결하자.’
혹시라도 내가 서울에 올라가고 난 이후 사고가 터지면 그땐 손을 쓸 수도 없다.
그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진아. 말고삐는 누가 잡아주기로 했어?”
“그거 비밀 호위무사 역의 배우가 잡아준다던데요?”
공주의 비밀 호위무사들은 도깨비 형상이 새겨진 마스크 형태의 가면을 쓰고 다닌다.
그 가면을 쓰면 내 얼굴이 다 드러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그래. 단역으로 곁에서 지켜주자.’
그렇게 결심한 사이 대기 천막 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들어가도 될까요?
익숙한 목소리다.
“들어오세요. 명희 씨.”
대기 천막이 펄럭이며 남미 스타일의 미녀 윤명희가 들어온다.
엔젤 기획의 윤명희는 굴렁쇠 엔터에서 쫓겨나 구속된 한현호의 전 여자 친구다.
당시 한현호에게 맞아서 온몸에 상처를 입었던 그녀가 이제는 완전히 회복해 나타났다.
“팀장님. 잘 지내셨어요?”
윤명희가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럼요. 명희 씨는요? 벌써 움직이셔도 돼요?”
“예. 굴렁쇠랑 정 팀장님이 신경 써주셔서 빨리 나았어요.”
이어서 엔젤 기획의 임하연 대표가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정 팀장님. 잘 지냈어요?”
“예. 임 대표님. 그나저나 두 분.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 ”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두 사람을 보자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난 두 사람과 인사한 뒤 유진이에게 가리켰다.
“유진아. 내가 전에 이야기했지? 15화까지 네 호위무사 역을 맡아주실 엔젤 기획의 윤명희 씨야.”
유진이가 손을 내밀며 두 사람과 악수한다.
“언니.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넉살 좋은 유진이의 행동에 윤명희가 안도의 웃음을 짓는다.
“그나저나 명희 씨. 진짜 다 나은 거 맞아요?”
“예. 보실래요?”
윤명희가 잠시 뒤로 물러난 뒤 하늘로 발차기를 차올린다.
태권도 유단자인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명희 씨. 유진이가 말을 잘 못 타니까 신경 좀 써주세요.”
“알겠어요. 그리고 위험하다 싶으면 제가 대역을 할게요.”
윤명희는 말을 잘 탄다.
필요하다면 대역을 맡아도 되니 나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감사합니다.”
나도 단역으로 낄 테지만 윤명희까지 오자 조금 더 안심이 되었다.
그때 밖에서 금은동 AD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진 씨. 곧 이동해야 합니다. 준비되면 바로 나와 주세요.”
야산 세트장은 현재 세트장에서 카트를 타고 2분 거리.
주요 스태프들은 벌써 이동했다면서 빨리 가야 한다고 한다.
난 유진이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한 뒤 텐트를 나와 곧장 오복희 PD를 찾았다.
유진이의 말고삐를 잡게 되는 비밀 호위무사 배역을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 * *
월성 세트장 바로 뒤에 붙어 있는 야산 세트장.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야산의 중턱에는 넓은 길이 닦여 있다.
길의 왼쪽부터 산 정상까지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길 오른쪽부터 야산 아래까지는 경사가 완만하게 늘어져 있다.
잠시 후.
세 공주는 이 길을 따라가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서로에 대한 악감정만 확인한 세 사람은 사냥도 하기 전 서로에게 활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한다.
말들도 등장하고 꽤 많은 조연 배우들이 촬영에 참여하는 터라 꽤 넓은 공간이 필요한 씬이다.
그래서 오복희 PD와 스태프들이 있는 모니터링 장소는 현장에서 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대신 금은동 AD와 카메라 팀 2개만이 남아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맨 앞에 있는 내 눈앞엔 새하얀 촬영용 드론이 시험 비행 중이었고.
그리고 지금 난 검은 무복에 도깨비 형상의 반가면을 쓴 채 유진이가 탄 ‘돌쇠’란 말의 고삐를 꼭 쥐고 있다.
그때였다.
금은동 AD가 무선 인터콤으로 지시를 받고선 외친다.
“여배우들! 말에 오르세요.”
지시를 받은 난 유진이에게 말했다.
“유진아. 말 타자.”
“네. 오빠.”
유진이가 안장에 발을 얹고 힘겹게 올라간다.
돌쇠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등에 올려진 안장의 높이가 내 어깨보다 높았다.
말 위에 올라간 유진이는 내가 시키는 대로 말고삐를 꼭 붙들었다.
푸르르륵.
나는 갈색의 털을 가진 돌쇠의 목을 쓰다듬으며 긴장을 달랬다.
“괜찮아. 괜찮아. 돌쇠야~ 오늘 잘 부탁한다.”
그때 말 위에 앉은 유진이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오빠. 지금 옷 진짜 잘 어울리는데 배우하는 게 어때요?”
“유화 공주님. 이제 곧 촬영이옵니다. 집중하시옵소서.”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15분.
잠시 후에는 사고가 일어날지도 몰랐기에 목소리에 긴장이 어려있다.
유진이가 자세를 바로 하며 답한다.
“넵! 호위무사님.”
유진이가 고삐를 꼭 쥐고 몸을 바로 한다.
고개를 돌려보자 유진이의 바로 뒤에는 윤명희가 말을 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한상희와 민규리가 말에 오르는 게 보인다.
그 뒤로는 50명 정도의 화랑 역 배우들이 활을 걸터 매고 있다.
금은동 AD가 다시 한번 외친다.
“자~ 그러면 촬영 들어갑니다. 끊어서 갈 거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이야기하세요!”
스태프와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저 멀리서 오복희 PD가 확성기를 잡고 외친다.
“자~ 그러면 8화 씬 15. 레디~ 액션~”
난 신호에 맞춰 말고삐를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떠 있는 드론 카메라의 REC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위이이잉~
드론이 작은 소음을 내며 멀어진다.
말들이 조금 긴장하는듯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 순간 여배우들이 대사를 시작한다.
날 선 말들이 오가지만 내 시선은 말과 유진이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데 채 몇 발자국을 걷기도 전.
말들이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선다.
푸르르륵.
그 순간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뭐지?’
소리를 들은 말들이 더욱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10m 정도 앞.
빛이 바랜 풀숲을 가르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저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