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0화
480. 먹방 유람단 2
‘한 시장이 여길 왜 오지?’
차에서 무소속인 통영시장 한성규가 내린다.
올해 60살인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50대 초반인 이한종 부시장이 내린다.
뒤를 이어 차에서 비서들이 우르르 내린다.
통영시를 대표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나타난 이상 대놓고 생굴을 안 먹겠다고 하기가 어려워졌다.
‘굴을 억지로 먹이려고 하겠군.’
정치인들은 신문에 실릴 사진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식 밖의 일도 서슴없이 시킬 인간들이었다.
‘어떻게 하지?’
그때 한성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이 조만간 구속된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난 그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다이어리를 뒤졌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1년 3월 3일]
-PM 11:00 가수 1실 회의. (회의 내용 : 남해사랑 굴축제 취소. 통영시 시장 부시장. 축제 참여 업체에 불법 자금 받아서 구속.)
‘맞네. 그때 그 인간들.’
회귀 전 두 사람은 축제를 빌미로 지역 사업자들에게 돈을 뜯어내다가 구속된 바 있다.
그래서 당시 골든로드의 축제 일정이 저 인간들로 인해 취소되었다.
그제야 PPL 업체를 찾을 때 통영시에서 콕 짚어서 이곳을 소개해줬다는 까닭이 이해가 갔다.
‘이 업체에서 돈 받은 거구만.’
정치인들은 표나 돈이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으로 직접 왔다는 건 돈밖에 이유가 없다.
그사이 한성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이야~ 새로 공사했다더니 시설이 참 좋군요.”
“예. 시장님.”
그때 스태프들 사이를 헤치고 ‘이만리 굴 양식장’의 백희태 대표가 손을 비비며 달려간다.
“아이고! 우리 시장님. 부시장님. 오셨습니까?”
이한종 부시장이 반갑게 인사한다.
“허허허. 백 대표도 잘 지내셨습니까?”
백희태 대표가 기쁜 표정으로 답한다.
“저야 뭐. 늘 살펴주신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허허.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반갑게 인사를 마친 뒤 한성규 시장은 곧장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름난 배우들이 있다 보니 스태프가 아닌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온다.
우리 쪽으로 다가온 한성규 시장이 반가운 척 이태풍의 손을 잡는다.
“이태풍 씨가 그렇게 잘생겼다더니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잘생기신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때 카메라가 찰칵하고 터진다.
시장이 데리고 다니는 전속 카메라맨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한상규 시장이 카메라로 시선을 돌린 뒤 다시 한번 인사하고 사진을 찍는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이다.
연이어 하루와 미소에게도 인사를 한 한상규 시장은 다음으로는 배연진과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배연진을 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야~ 이분은 또 누굽니까? 아주 미인이시네요?”
한성규 시장은 이제껏 한 명 한 명 한 손으로 잡고 인사를 했는데 배연진의 경우에는 두 손으로 꼭 잡고 묻는다.
‘저 인간이?’
두 손을 잡힌 배연진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아 저는······ 미소 엄마 역할인 배연진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근데 먹방의 대가에서는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배연진이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아 그게 저······ ‘먹방의 대가’에서는 단역으로 잠깐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조연으로 배역을 따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요? 내가 주의 깊게 못 봤네요. 미안해요?”
한상규 시장이 배연진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악수를 하는 게 아니라 손을 마사지하듯 주물럭거리면서.
보다 못한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시장님. 죄송한데 저희가 촬영 준비로 바빠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둘만의 시간을 방해했다 싶은지 한상규 시장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진다.
순간 이한종 부시장이 언성을 높이며 말한다.
“어허! 우리 시장님이 통영을 알리러 온 배우들이 고마워서 칭찬하고 격려하는데 잠시 시간도 못 내나? 젊은 친구가 왜 이리 융통성이 없어 그래?”
언성이 높아지자 주변 스태프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한상규 시장은 웃는 낯으로 손을 놓았다.
“됐습니다. 부시장님. 내가 바쁜 배우들 붙잡고 시간을 빼앗았나 보네요.”
말과는 달리 노려보는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적의가 엿보인다.
명색이 정치인이라는 인간이 딸보다도 어린 여배우를 붙잡고 수작을 부리는 꼴이라니.
당장이라도 엎어버릴까 생각했지만 애매한 상황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유현지 PD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시장님. 현장을 맡은 유현지라고 합니다. 저번에 인사드렸는데 기억나시죠?”
시장과 부시장의 시선이 유현지 PD에게 돌아간다.
“예. 기억나지요 유 PD. 그나저나 오늘 나 촬영 좀 보고 가려는 데 괜찮습니까?”
유현지 PD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예. 시장님.”
이한종 부시장이 끼어들며 말한다.
“유 PD. 우리 시장님이 여기까지 힘든 걸음 하셨는데 혹시 까메오 출연 같은 건 안 되나? 왜 요즘은 정치인들이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도 흔하잖아?”
유현지 PD가 곤란해한다.
이곳에서 허락해주는 순간 다른 지방의 정치인들에게도 허락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급 되는 인물에게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유현지 PD는 현실과 타협했다.
“짧게 나오는 것도 괜찮으세요?”
한상규 시장이 헛기침을 내뱉는다.
“허허허. 까메오가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그러면 이따가 한 컷 정도 찍어보겠습니다.”
유현지 PD의 성격상 찍은 영상은 아마도 스쳐 지나가듯 보여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이한종 부시장이 기쁜 표정으로 대꾸한다.
“이야~ 웬만한 남자 PD들보다 화통한데? 역시 요즘은 여자들이 더 화통해!”
말끝마다 여자가 어떻다는 식으로 말하자 유현지 PD가 화를 삭이느라 애를 쓴다.
“······.”
“그러면 지금 바로 촬영 가능할까?”
“예? 지금이요?”
“그래. 우리 시장님이 가야 할 데가 많아서 바빠. 그러니까 그 한 씬. 지금 바로 찍자고.”
애당초 이럴 생각으로 온 모양이다.
카메라로 시장님이 식사하는 사진도 찍고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진을 인스타에도 올리고.
유현지 PD가 곤란한 표정으로 답한다.
“죄송합니다. 잠시 후에 바지선 위에서 촬영하고 난 뒤에야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 PD. 우리 시장님이 얼마나 바쁘신데 그런 소리를 하나? 그냥 저기 공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굴 시식하는 거나 몇 컷 찍자고.”
“아니 그래도 멋대로 촬영을 바꾸게 되면······.”
“거 갑갑하기는. 화통한 줄 알았는데······ 또 이런 데서는 여자처럼 쪼잔하게 굴어?”
“알겠······습니다.”
이를 빠드득 간 유현지 PD가 스태프들을 향해 외친다.
“다들 하던 거 멈추세요. 바로 2화 씬 20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2화 씬 20은 굴을 깐 다음 휴게실에서 굴을 맛보는 장면이다.
이한종 부시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러면 우린 여기 배우분들과 함께 가면 되나?”
유현지 PD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시죠.”
촬영 스케줄이 엉망이 되고 있어 스태프들 역시도 표정이 나빠진다.
그때 한상규 시장이 백희태 대표에게 말한다.
“백 대표. 신세 좀 지겠네.”
‘이만리 굴’의 백희태 대표가 고개를 젓는다.
“에이~ 신세라뇨.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그리고 시장님이 좋아하는 생굴에다 석회로 한 상 거하게 준비해 놨습니다. 자자 빨리 이쪽으로 오시죠.”
“허허허. 이거. 이거. 그러실 필요 없는데. 뭐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이들은 김영란법이고 뭐고 신경도 쓰지도 않고 있었다.
“자자. 그럼 저쪽으로 가시죠.”
“예.”
백희태 대표를 따라 한상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 그리고 비서진들이 우르르 따라가고 있었다.
난 그들을 보며 폰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0년 12월 10일]
-PM 03:00 [NEW. 이태풍] 통영 A 병원 응급실 방문. <먹방 유람단> 촬영 취소.
-PM 05:00 [NEW. 정유진] 경주 현장 촬영 취소. 미소의 상태를 확인차 통영 A 병원 응급실로 이동.
역시나 일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을 처리해야지 사라지는 건가?’
정치인하고 얽히고 싶지는 않지만 도리가 없다.
굳게 마음을 먹은 난 곧장 서재일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사님. 혹시 통영지검에 아는 분 계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실은······.”
사정을 들은 그는 급한 대로 아는 후배를 보내겠다고 한다.
남해사랑 굴축제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김영란법은 당장 현장 체포가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김영란법 위반으로 조사하면서 엮으면 되겠네요. 통영에 애향심이 많은 친구니까 제대로 털어줄 겁니다.
“그러면 식사하는 영상은 제가 찍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증거 자료가 있으면 더 좋다는 말을 들은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난 급히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1년 3월 3일]
-PM 11: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가수 1실 회의. (회의 내용 : 남해사랑 굴축제 취소. 통영시 시장 부시장. 축제 참여 업체에 정치 자금 받아서 구속.))
일정이 삭제되는 걸 보니 저 인간들이 구속되는 게 빨라지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응급실 방문과 관련된 일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두 정치인이 현장에서 떠나야 두 일정이 사라질 모양이다.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를 해야겠다.
* * *
한상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 그리고 백희태 사장이 들어간 조립식 건물로 스태프들이 장비를 들고 들어가고 있다.
촬영 순서가 바뀐 탓에 유현지 PD는 씩씩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XX. 내가 더러워서······ 진짜. 아오······.”
난 씩씩거리는 유현지 PD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 팀장님?”
“PD님. 놀라지 마십시오. 실은 저 두 사람의 뒤를 검찰이 캐고 있답니다.”
절반의 진실만을 말하자 유현지 PD의 얼굴이 밝아진다.
“정말요?”
“예. 거기다가 저거 김영란법 위반이잖습니까? 그리고 이미 통영지검 쪽에서 검사들이 출발했답니다.”
유현지 PD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설마 정 팀장님이?”
“쉿!”
유현지 PD가 기쁜 기색을 하며 입을 다문다.
그때 때마침 CK 식품 검사관의 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날 발견하고선 빠르게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박민상 과장입니다. 이사님 지시로 검사 키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괜한 수고를 끼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노로바이러스가 있다면 얼른 확인해야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랑 같이 가시죠.”
“예.”
유현지 PD와 난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식품 검사관을 데리고 이만리 굴 공장으로 들어갔다.
* * *
굴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굴이 넓은 테이블에 소복하게 쌓여있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는 앞치마를 두른 수많은 직원이 굴 껍데기를 까고 있다.
딸각딸각.
굴 껍데기를 벗기는 걸 박신(剝身)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장소를 굴 박신장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내부가 왜 이래?’
밖에서 본 최고급 시설과는 달리 실내는 엉망이다.
보통 굴 박신장에서 굴 껍데기를 까는 박신공들은 꽤 경력이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 외국인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게다가 다들 경험이 미숙한지 손도 느리고.
‘시설에만 큰돈만 들이고 정작 인건비를 아끼고 있네.’
바닥도 지저분하고 벽에는 더러운 얼룩이 보인다.
겉은 번지르르해도 내부가 영 엉망이다 보니 노로바이러스가 퍼져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온 CK 식품 박민상 과장이 인상을 찌푸린다.
“여기 위험한데요? 이 정도면 검사 안 돌려도 뻔합니다.”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하니까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결과 나오는 데 15분 정도 걸릴 겁니다.”
박민상 과장이 주변을 힐끗힐끗 쳐다보다 테이블 위에 있는 굴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준비해 온 기계에 넣었다.
유현지 PD가 입술을 꾹 깨물고 날 쳐다본다.
“저흰 저쪽으로 가보죠.”
유현지 PD와 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굴 한 상을 준비해 놓았다는 휴게실로 향했다.
그리고 난 동영상 녹화 기능을 켠 채 문을 열었다.
한상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을 이곳에서 치워버리기 위해서.
달칵.
문을 열자 휴게실 테이블에는 생굴에 고기와 술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다.
그런데 휴게실 안은 터무니없는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 * *
굴 한 상이 거나하게 차려진 휴게실 안.
이한종 부시장이 배연진의 팔목을 잡은 채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다.
“거 분위기 삭막하게 왜 이래? 연진 씨. 분위기 좋게 우리 시장님한테 한 잔만 따라 보래도?”
그리고 한상규 시장은 뻔뻔하게도 의자에 기대 소주잔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태풍과 하루가 이를 갈고 있다.
그리고 나이 어린 미소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깜빡이고 있었고.
검찰들이 오기를 기다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쩌렁쩌렁한 내 목소리에 이한종 부시장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여전히 배연진의 팔을 잡은 채로.
“이 이······ 새파란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들어?”
주변에 보는 사람이 몇 없다 보니 대번에 험한 말부터 나온다.
난 그 즉시 이한종 부시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 다음 그의 얇은 손목을 덥석 붙잡아 버렸다.
“연진 씨한테서 손 안 떼?”
강하게 힘을 줬더니 이한종 부시장이 비명을 지른다.
“아아악······ 내 팔. 내 팔. 놔······ 이거 놔······.”
그제야 이한종 부시장이 배연진의 손목을 놓는다.
배연진은 잡혔던 손목이 풀리자 재빨리 의자를 밀치고 벗어났다.
난 즉시 내 배우들에게 외쳤다.
“다들 나가 있어!”
오래간만에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