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0화
470. 서희주 2
스타 특종의 최소혜 기자는 내 제보를 듣는 순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어이가 없네. 요즘도 그런 애들이 아이돌로 데뷔할 생각을 해?
“예. 자기들은 그저 놀이였다고 생각하니까요.”
-다들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왔네. 오케이. 내가 그 X들 바닥까지 탈탈 털어줄게.
최소혜 기자는 그녀들에게 왕따와 학교 폭력을 당한 이후 호스트가 되었다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특히나 가슴 아파했다.
학교 폭력을 당당하지 않았다면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았겠냐면서.
-하여간 학교 폭력을 저질렀던 놈들은 다 아작을 내야 해. 자기들이 뭔데 남의 인생을 바꿔 놔?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근데 정 팀장. 이야기 들어보니까 걔들은 아직 데뷔를 포기 안 한 거 같은데 맞지?
“예.”
-그러면 기사 터트리는 시기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도 되지?
배은정과 나머지 두 사람이 데뷔한 이후에 터트리겠단 소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대중들이 존재를 알아야지 오히려 타격이 더 클 거라면서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최소혜 기자다운 방식이다.
“그건 기자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아 참. 그리고 앙상블 엔터도 뒤 한번 캐 보십시오. 착복한 돈이 장난 아닐 겁니다.”
난 백재호 대표의 앙상블 엔터 또한 그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가만히 놓아둔다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도 남을 테니까.
-오케이~ 나만 믿어!
최소혜 기자는 내게 약속한 걸 어긴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부탁한 것보다 더 크게 터트렸으면 터트렸지.
하여간 이제 더는 배은정과 VIKIZ 멤버들 그리고 앙상블 엔터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난 최소혜 기자와 전화를 끊고서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수석에 앉은 서희주가 나와 시선이 마주 닿았다.
서희주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고 고마워요 정 팀장님. 언니들이 그런 사람인 줄 진짜 몰랐어요.”
“앞으로도 조심해. 연예계 생활하다 보면 겉과 속이 다른 어른들이 가득하니까.”
“근데 진짜 저 아이돌 시켜주실 거예요.”
“그렇긴 한데 그 전에 궁금한 게 있어.”
연화선 선생님은 서희주가 후계를 잇는다는 걸 전제로 조건부 아이돌을 하는 걸 찬성했다.
난 그 전에 먼저 서희주가 아이돌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뭐든 물어보세요.”
“넌 왜 아이돌이 되고 싶어? 솔직히 엄마가 닦아준 길을 따라가면 편하게 살 수 있잖아.”
서희주가 역시 그 질문이냐며 입술을 살짝 부풀린다.
“숨이 막혀서요.”
“뭐?”
“엄마가 인간문화재로 선정되고 나서부터는 전부 다 저한테 엄마 뒤를 잇기 바라더라고요.”
서희주는 어릴 땐 춤을 추는 게 너무도 행복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춤을 따라 했고 재능도 있어 16살 무렵에 어지간한 건 다 따라 출 수 있게 되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만들어놓은 감옥에서 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어딜 가든 다들 연화선 선생님의 딸이니까 뒤를 이으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게 싫었던 거야?”
“네······ 거기다가 얼마 전부터는 안 그러던 엄마까지 자기 뒤를 이어야 한다며 강요하더라고요. 그래서 홧김에 뛰쳐나왔어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연화선 선생님이 후대를 염두에 두기 시작한 걸 보면 본인도 자신의 몸이 어딘가 안 좋아진 걸 알아챈 모양이다.
“그러면 넌 춤을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전혀요. 춤을 싫어했으면 아이돌 되려고도 안 했겠죠.”
“그러면 혹시 엄마 뒤를 이을 생각은 있어? 나중에?”
“나중에요?”
“그래. 당장 말고 한 7년 정도 지난 후 네 말대로 스스로 증명하고 난 이후에. 어차피 아이돌은 그 이상 나이가 되면 다들 다른 일을 하잖아. 그땐 어때?”
서희주가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 답한다.
“아직 그것까지는 생각 안 해봤지만 뭐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역시나 생각한 대로 가벼운 일탈이다.
현재는 사방에서 그녀에게 압박을 가하다 보니 지금은 그저 잠시 도망친 거고.
그렇다면 서희주의 미래는 내가 쉽게 열어줄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우리 회사에서 한 중 일 삼국의 연습생들을 모아서 아이돌 팀을 준비 중이거든. 혹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생각이 있니?”
“오디션을 보라고요?”
“아니. 네가 승낙만 하면 바로 스카우트할 거야. 앙상블에서 데뷔하려던 인재를 빼 와 다시 오디션 보라면 그건 실례지.”
순간 서희주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친다.
“저 뽑아만 주시면 죽을힘을 다해서 연습할게요!”
서희주가 조수석에 앉아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이요? 뭐든 말만 하세요.”
“아이돌 데뷔할 때 캐릭터 하나 잡고 가는 거 알지?”
“예. 캐릭터가 있어야 빨리 뜨잖아요.”
“그래. 그래서 난 널 ‘무용 소녀’로 캐릭터 잡고 갈 거야. 그리고 넌 아이돌 생활이 끝나면 엄마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될 거라는 것도 말할 거고.”
서희주가 조금 주춤거린다.
“그게······ 조건이에요?”
“어. 그게 조건이야. ”
딱 잘라 말하자 서희주의 생각이 깊어진다.
본인이 한국 무용이 싫다고 했다면 방법을 바꿨을 거다.
하지만 본인이 싫어하지 않는 이상 돌아갈 이유가 없다.
잠깐 고민하던 서희주가 되묻는다.
“근데 그런 컨셉 잡고 가는 거라면······ 결국 제가 혼자서 이뤄낸 게 아니잖아요.”
혼자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는 서희주의 바람을 듣는 순간 딱 잘라 말했다.
“미안한데 너희 엄마 이름은 한국 무용에서나 먹히지 이 판에서는 아냐. 그냥 처음 데뷔할 때 공기 같은 인지도를 살짝 올려주는 정도만 도움받을 거야.”
결국 아이돌로서의 성공은 본인의 매력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그 점을 주지시키자 서희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연예인 2세라고 하는 애들도 살아남기 힘들긴 했어요.”
“그래. 그러니까 내 조건을 받아들이면 바로 데뷔시켜줄게.”
서희주가 다시 고민에 잠겼다가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약속하세요.”
덩치만 성인이지 아이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면 너 엄마한테 후계자 될 거라고 약속하는 거 맞지?”
“아이돌 생활하는 동안에는 제 뜻대로 할 수 있게 해주시면요.”
“그건 나한테 맡겨. 소중한 내 멤버가 되었는데 내가 너희 엄마한테 바로 보낼 것 같아?”
서희주가 웃음을 짓는다.
“아뇨!”
“그리고 가출해서 죄송하다고도 말씀드려.”
“안 그래도 앙상블에서 데뷔하고 나면 그러려고 했어요.”
서희주 역시 고작 2주간 가출했지만 벌써 집이 그리웠단다.
“오케이.”
그제야 난 서희주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헤헤. 무르기 없어요.”
서희주를 설득했으니 마지막 일을 할 차례.
그건 바로 연화선 선생님의 건강검진을 받게 하는 일이다.
이제부턴 지금까지와 달리 떠돌이 약장수가 되어야 했다.
“희주야. 우리 회사는 계약하기 전에 건강검진 받거든? 내일이랑 모레 1박 2일 동안 숙박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계약하자.”
“계약 전에 건강검진도 해요?”
“어. 수년 동안 관리할 애들 몸 상태를 알아야 더 잘 관리해주지.”
서희주가 눈치를 힐끔힐끔 본다.
“근데요······ 저 혼자 병원 가요?”
역시나 건강검진이라고 말하자마자 겁을 먹는다.
난 미리 준비한 대로 태연하게 서희주를 꾀기 시작했다.
“미성년자가 어떻게 병원 가. 계약도 해야 하니까 엄마도 올라오셔야지. 그리고 혼자 검진받기 불안하면 뭐 엄마한테 같이 검진받자고 졸라봐.”
불안해하던 서희주가 얼굴을 밝힌다.
“그래야겠어요. 엄마도 나이가 들수록 몸이 둔하다고 짜증이 많아졌거든요.”
19살의 서희주는 역시나 불안해지니 엄마를 찾는다.
딱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그래. 엄마랑 같이 받자. 우리 회사에서는 연예인 가족도 병원비 지원해주거든.”
서희주의 얼굴이 환해진다.
“넹~! 엄마한테 꼭 같이 받자고 말할게요.”
난 이후 영상통화로 연화선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기도 전 연화선 선생님이 먼저 말한다.
-우리 희주는? 희주는 괜찮아? 응?
후계를 잇는 문제로 의절을 하고 싸웠다지만 딸이 사기꾼이 운영하는 소속사에 들어갔다고 하자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엄마가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자 조수석에 앉은 서희주가 울컥한다.
“엄마!”
난 폰을 살짝 틀어 서희주를 비췄다.
화면에 서희주가 나타나자 연화선 선생님이 다급히 묻는다.
-희주야. 괜찮아? 그 소속사에서 너한테 이상한 거 안 시켰어?
“응. 일진 언니들인지도 모르고 팀 될 뻔했었는데 정 팀장님이 와서 구해줬어.”
-다행이다······ 다행이야······
걱정하는 엄마의 말이 들리자 서희주가 어렵게 입을 연다.
“엄마. 나 있잖아······”
그때였다.
딸보다 먼저 연화선 선생님이 먼저 사과를 한다.
-희주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도 네 나이 때 외할머니한테 춤을 배웠거든. 그래서 우리 딸에게 너무 내 뜻만 강요했나 봐. 미안해. 엄마가 너무 부담을 줬었지?
처음 사과하기가 어려웠을 뿐 첫 마디를 떼자 너무도 자연스럽게 뒷 말이 이어진다.
“아냐······ 엄마.”
-우리 딸은 우리 딸 인생이 있는데 엄마가 너무했어. 그러니까 우리 딸. 엄마가 의절하자고 말한 거······ 용서해 줄래?
연화선 선생님이 먼저 용서를 빌자 서희주가 급기야 펑펑 울기 시작한다.
“아냐. 엄마. 어흐흑. 내 내가 미안해. 나 엄마 뒤잇기 싫다는 말 거짓말이야. 그냥······. 그냥······ 다른 것도 해 보고 싶어서······ 그랬어.”
서희주가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리고 아이돌을 한 뒤에는 엄마의 뒤를 잇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울다가 눈물을 그쳤다.
-우리 희주. 이쁜 얼굴 다 망가지네. 미안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실수하고 그래. 그니까 우리 딸. 앞으론 이야기 많이 하고 그러자?
“응. 알았어. 그리고 미안해 엄마. 나 엄마한테 못된 말 한 거 진짜로 그런 거 아냐.”
회귀 전 죽기 전까지 화해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내 앞에서 화해하고 있었다.
덕분에 가슴 속에 얹혀 있었던 돌 하나가 쑥하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서희주가 눈물을 닦고 말한다.
“근데 있잖아 엄마. 내일 계약하려면 엄마가 직접 올라와야 한 대.”
-알았어. 여기 스케줄 비우고 바로 올라갈게.
“근데······ 건강검진도 받아야 한다는 데?”
-웬 건강검진?
“굴렁쇠는 계약하기 전에 검진을 받는대! 근데 엄마. 나 혼자 받으면 무서우니까 엄마도 같이 받자. 엄마도 검진 안 받은 지 오래됐잖아!”
서희주가 혀를 살짝 내밀며 애교를 떤다.
-우리 희주 건강검진이 무섭구나?
“어. 솔직히 조금?”
연화선 선생님이 웃으며 딸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래? 그렇게 하지 뭐. 내일 엄마 아침 일찍 올라갈게.
“응. 그러면 내일 봐~”
난 영상통화에 대고 천호동에 있는 유진이의 집에서 서희주를 재우겠다고 말했다.
-우리 딸.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 안 해. 그리고······ 진짜 고마워. 우리 정 팀장한테 내가 큰 빚을 졌어.
연화선 선생님은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며 전화를 내려놓았다.
* * *
다음날.
서희주는 경주에서 올라온 연화선 선생님과 함께 건강검진을 시작했다.
1박 2일짜리 건강검진 코스였는데 검사 도중 의사가 연화선 선생님과 매니저를 급히 진료실로 불러 들였다.
그 순간 폰에서 다이어리의 일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2년 12월 12일]
-PM 11: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부고) 인간문화재 연화선 선생님. 경주 화진 병원 제 1 장례식장.)
‘됐다.’
뇌종양을 발견한 게 틀림없었다.
드르륵.
진료실에서 서윤지 매니저가 굳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정 팀장님. 희주야. 다 같이 들어올래?”
서희주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요?”
“들어와 보면 알아.”
난 불안해하는 서희주를 안심시키며 진료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연화선 선생님의 상태를 들을 수가 있었다.
정밀 검사를 다시 해봐야겠지만 초기 뇌종양이 의심된다고.
순간 서희주가 펑펑 울며 엄마에게 안긴다.
“엄마······ 미안해······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연화선 선생님이 덤덤한 표정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 서희주의 어깨를 쓸어내린다.
“그게 왜 우리 딸 때문이야? 오히려 우리 딸 덕분에 빨리 발견했잖아. 초기니까 수술만 받으면 금방 낫는다잖아.”
“그치만······ 그치만······”
연화선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딸이 엄마 뒤를 잇는데 뭐가 걱정이야? 괜찮아. 그리고 엄마 재활 열심히 해서 한 20년은 거뜬히 해 먹을 거야. 우리 딸이 내 후계자 수업받을 때까지 엄마 안 쓰러져!”
순간 서희주가 주춤거리다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 나 있잖아······. 지금이라도 엄마 뒤를······”
연화선 선생님이 엄한 얼굴을 짓는다.
“서희주. 엄마가 널 그렇게 나약하게 키웠니? 설마 엄마 때문에 네 꿈을 버리겠다는 건 아니지?”
“아니 그래도······”
“희주야. 엄마랑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
“최고의 아이돌이 되고 난 이후에 엄마의 뒤를 잇겠다고.”
서희주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엄마. 꼭 그 약속 지킬게.”
서희주가 다시금 엄마에게 안기자 연화선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덩치만 컸지 우리 딸. 완전 애기네 애기야.”
서희주는 연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려대고 있었다.
자신의 병보다 딸이 우는 게 더 고통스러운지 연화선 선생님의 눈마저 붉게 달아오른다.
그때 연화선 선생님이 날 보며 부탁한다.
“정 팀장. 우리 딸······ 잘 부탁해. 믿어도 되지?”
“초기라서 수술이 위험하지는 않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래. 고마워 정 팀장.”
잠시 후.
의사가 수술 날짜는 이달 안에 잡겠다고 말한다.
연화선 선생님은 그때까지 <화란전>에 필요한 안무는 모두 녹화해서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난 두 무희(舞姬)의 꿈을 이뤄줄 수 있게 되었다.
* * *
서희주를 스카우트한 다음 날.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안예음 이사와 이동민 실장에게 서희주의 실력 체크를 부탁했다.
그리고 난 정 커피의 레시피를 넘기기 위해 시제품 30개를 보온병에 타서 진성식품 연구소로 향했다.
진성식품 연구소는 삼성동에 있는 진성그룹 본사의 바로 곁에 붙어 있다.
그리고 식품 연구소 자체만으로는 업계 1위인 CK 식품의 연구소보다 낫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곳이었다.
30층짜리 대형 빌딩 전체를 사용하는 진성식품 연구소의 거대한 로비로 들어가자 넓은 인포메인션 센터가 보인다.
난 그곳으로 가서 진성준 전무를 만나러 왔다고 알렸다.
안내 직원이 환히 웃으며 말한다.
“전무님은 지금 회의 중이신데 잠깐만 로비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난 보온병이 든 두 개의 묵직한 더플백을 양손에 나눠 들고 로비의 소파로 향했다.
소파에 앉은 다음 커피 레시피를 잘 가져왔는지 확인했다.
더플백의 안쪽 지퍼 안에 잘 봉인한 레시피가 보인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로비를 지나가던 수십 명의 직원들이 발걸음을 멈추며 큰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갔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진성그룹 회장의 막내딸 진아람 이사가 나타났다.
올해 26살의 나이인 진아람 이사는 엄마를 닮아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될 정도의 외모에다 하버드 MBA 출신의 재원이다.
그녀는 현재 진성 호텔&리조트의 이사를 맡고 있는데 앞으로 이복 언니와 진성 호텔&리조트의 경영권을 놓고 피 터지게 싸우게 된다.
그리고 빼어난 외모에 비해 거의 웃지를 않다 보니 ‘진성의 얼음공주’ 혹은 ‘진성의 냉미녀’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표정하게 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진아람 이사가 누굴 찾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싱긋 눈웃음을 짓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외친다.
“정 팀장님~”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놀랄 틈도 없이 진아람 이사가 내게로 똑바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