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화
9레벨(27)
불이 붙은 채로 타오르며 추락하는 구겁(九劫)의 시공·
투명한 우주정거장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아득하게 가속한다·
상공 수천키로미터 바깥에서 대륙 내지를 향해 떨어져내리는 구겁의 끝·
십관으로 향하는 거대한 공동 안에서 두 술사가 엄청난 속도로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말레온과 레녹의 신형이 부서진 격벽을 사이에 두고 회전하면서 충돌한다·
두 술사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각자 다른 색을 품고 격렬하게 요동친 순간·
공간을 갈아버리는 듯한 파열음과 동시에 수십 번이 넘는 충격파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드르르르르륵!!!!
“견뢰!!!!!!”
별빛을 움켜쥔 선종이 한 발을 내리찍은 순간 원형의 파문이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왔다·
원시마법(原始魔法) : 성련팔극식(星聯捌極式)
칠종(七種) – 외법(外法)
[성락유해(星落留海)]
동시에 말레온의 머리 위에 떠오른 거대한 천구가 별을 품고 회전하면서 가속·
레녹을 향해 엄청난 열량의 폭격을 쏟아부었다·
쿠과과과과!!!!!!
은빛의 파도가 쉴새없이 넘실대면서 구겁의 내벽 사이로 미친 듯이 번뜩였다·
한계를 넘어선 열량이 거대한 정거장의 내벽과 외벽을 동시에 녹이고 불길에 휩싸인 하늘을 드러냈다·
별빛이 떨어지는 폭심지의 중심에서 검은 헤일로를 회전시키면서 자세를 낮춘 레녹의 모습·
찌유우우우웅···!!!!
찌그러진 헤일로가 거칠게 회전한 찰나 레녹의 몸이 그 자리에서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레녹의 몸을 제자리에서 억지로 밀어올리는 듯한 일말의 전조조차 없는 기묘한 가속·
터터터터텅!!!
떨어지는 별빛의 폭발을 피해 레녹의 신형이 수십 미터를 넘어 깜박이듯 점멸한다·
하지만 선종은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는 레녹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을 번뜩였다·
“잡았다···!!”
검은 헤일로를 두른 레녹이 공간을 넘어 나타나는 찰나조차 되지 못하는 간극·
그 일순을 승천자의 초월적인 인지능력으로 잡아 한없이 길게 늘려내고·
레녹의 멱살을 잡아채듯이 쥐어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앙!!!!
용종의 단단한 육신도 풍선처럼 터져나갈 정도로 엄청난 압력에 레녹의 몸이 꿰여 짓눌린다·
하지만 말레온은 멈추지 않고 레녹의 멱줄을 쥔 채 전력으로 원시마법을 영창했다·
팔종(八種) – 외법(外法)
멸성순환(滅星巡環)
오오오오오오!!!!
말레온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별빛이 한점에서 모여들어 엄청난 빛을 내뿜었다·
용종의 고유마력을 열원으로 변환하여 손안에서 응집해 폭발시키는 영거리 포화·
[천해집성(闡害輯星)]
뻐어어어어엉!!!!!
은빛의 불기둥이 말레온의 손안에서 폭발하며 구겁의 외벽을 꿰뚫고 솟구쳤다·
온갖 전투와 충격에도 멀쩡하던 구겁을 박살 내고 뚫어내는 승천자의 화력·
하지만 선종은 자신이 터트린 파괴의 참상을 보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섬뜩하게 굳은 표정으로 일어선 선종이 거칠게 몸을 홱 돌려세운 그 순간·
그 얼굴 위로 칠흑처럼 일렁이는 흑선(黑線)이 참격처럼 때려 박혔다·
창조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천저(天低)
[흑해(黑解) : 직극(直極)]
촤아악!!
날카로운 용의 머리를 가로지르듯 비늘을 뚫고 사선으로 새겨지는 검은 선·
반응조차 불가능할 만큼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찢고 들어오는 직극(直極)을 선종이 인지한 찰나·
은룡의 얼굴에 박힌 흑선의 압축이 풀리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수십발의 흑뢰가 일시에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
검게 물든 뇌전이 솟구치며 말레온의 거체가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난다·
피격지점을 사선으로 베어내 폭발시키는 흑뢰의 난사에 승천자의 육체마저 휘청인 순간·
말레온의 전신에 수십 개의 흑선이 참격처럼 번뜩이며 내리꽂혔다·
[난무(亂舞) : 흑율(黑律)]
카가가가가각!!!!
검은 뇌전을 압축해 만들어낸 흑선이 용종의 육체에 날카롭게 틀어박히고·
찰나에 가까운 시간차를 두고 연달아 폭발하며 흑뢰를 터트린다·
그때마다 용종의 비늘과 살점이 버티지 못하고 벌어지고 분쇄되어 소멸하지만·
계속해서 휘청이며 밀려나면서도 선종은 그 모든 참격을 맨몸으로 버텨내며 걸음을 옮겼다·
퍼버버버버벙!!!
흑선으로 이루어진 참격의 난무· 그 직후 압축이 풀리면서 방사되는 흑뢰의 폭발·
베어내고 터트리며 분쇄하는 술식의 극에 달한 연사를 버티고 앞으로 걸어 나온 그 순간·
말레온의 손안에서 별빛이 격렬하게 회전하며 열량의 포화가 되어 전방을 휩쓸었다·
[융성포(融星砲)]
콰아아아아아!!!!
검은 벼락과 은색 별빛이 사방에서 어지러이 뒤섞이며 넘실거린다·
열량의 파도와 마력의 폭풍이 번갈아 날뛰면서 시공간을 불사르고 융해시켰다·
태고의 신비를 품은 원시마법과 천저의 끝에 선 창조마법의 충돌·
각 계통술식의 정점과 저점에 선 두 마법이 서로의 묘리를 집어삼키며 회전하던 그 순간·
“숱한 초월자와 괴물들을 상대해 봤지만····”
사방을 가득 채운 별빛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정도로 순수하게 체급이 높은 초월자를 상대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화악!!
지옥의 열기처럼 뜨거운 별빛을 헤치고 레녹이 검은 안광을 흩뿌리며 걸어 나왔다·
등 뒤에서 찌그러진 검은 빛의 고리가 쉴 새 없이 회전하며 쏟아지는 열기를 모조리 소멸시켰다·
자신을 바라보는 말레온을 앞두고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털면서 말했다·
“육체와 술식 양쪽으로 한계가 보이지 않아· 능력의 상한선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가?”
말레온 그노시스는 육체능력자가 아니라 태고의 원시마법을 다루는 대술사·
하지만 용종의 경이로운 신체능력과 재생능력은 그 자체로 동급의 전사에 버금가는 무력을 선사한다·
말레온 본인이 전투에 특화된 술사인 것과 동시에 선종의 전투경험이 더해지니 공방 양면으로 한계를 초월한 괴물이 탄생한 것·
“다른 술사도 아닌 네가 할 말은 아니로군·”
하지만 선종은 그런 레녹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 듯 공허한 미소를 흘렸다·
“이 몸의 주인이 누구를 보고 심마에 빠졌는지 벌써 잊어버린 건가·”
“····”
“하지만 확실히 네 뒤에서 회전하는 예의 ‘마법’은 특별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군· 파멸을 전제하는 기적이니 술식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용의 눈동자가 일그러진 헤일로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깊게 가라앉았다·
“물질과 술식 법칙을 가리지 않고 해체하여 부숴버리는 개념을 마법으로 창조해 낸 건가· 재능 과다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레녹과 아주 잠깐 술식을 맞댄 것만으로 선종은 우로보로스의 원리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 없이 해체해 갈아버리는 파멸의 공능·
그를 통해 레녹이 자신과의 전투를 대등하게 이어나가고 있음을 이해했던 것·
말레온의 술식을 해체하고 말레온이 내뿜는 마력과 변환되는 열량을 지워 없앤다·
용종의 육체와 충돌하며 발생하는 물리적인 충격과 반동도 우로보로스를 돌려 ‘해체’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피해를 사실상 예의 마법 하나로 지워 없애고 있나· 하지만-”
선종이 공허한 시선을 돌려 레녹을 응시했다·
“그렇게 경이로운 공능을 품고도 마치 참격을 다루듯이 술식을 사용하는군·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통제하고 있는건가?”
“····”
흑뢰를 압축해 만든 흑선을 참격처럼 쏘아 대상을 향해 적중시킨다·
영창과 동시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가속하기에 사실상 필중에 가까운 술식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선종은 그런 사용방식 자체가 우로보로스의 복잡한 원리에 비해 단조롭다는 것을·
레녹이 아직까지 변질된 흑뢰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증거임을 간파해낸 것이다·
“초월성을 손에 쥐었지만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군· 이 전장에서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쿠구구구구!!!!!
지금 이 순간에도 바깥의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지며 엄청난 속도로 늘어진다·
외벽에 붙은 불길이 레녹과 말레온이 서 있는 전장까지 열기를 뻗치면서 호흡조차 불가능한 무산소지대를 형성·
생명이 단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레녹과 말레온은 술식을 운용하며 서로를 잡아두고 있다·
“너 자신이 만들어낸 전장이자 너 자신이 초래한 재액이다·”
말레온이 보란듯이 양 팔을 펼치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네 시체가 지상에 도달하기도 전에 불타 증발하는 결말밖에 남지 않겠지· 스스로 자충수를 골랐군·”
“처음부터 외해 바깥에 구겁을 멀쩡하게 남겨둘 생각은 없었어·”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췄다·
양 손목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는 것과 동시에 손목 아래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이번 일에서 최악의 사태는 쿤다라가 외해 밖으로 끌려나오는 것· 그걸 막기 위해 구겁의 위치를 미리 바꿔두어야 했지·”
손을 타고 떨어지는 검은 피를 응시하며 레녹이 말했다·
“구겁을 조작해 떨어뜨린 시점에서 쿤다라가 외해 바깥으로 이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를 한 손으로 움켜쥔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허한 말레온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춘 채로 말했다·
“이 싸움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이미 내 결말은 정해져 있지·”
“····”
편람의 힘을 빌려 잠시 억눌러두었을 뿐 비약의 독성을 완전히 멈춰 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약에 담겨 있던 극독이 레녹의 몸을 좀먹고 있다·
손끝의 감각이 사라지고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은 채로 순환한다·
살아 있는 인간보다 시체에 가까워진 온몸이 공허하게 식어가는 섬뜩한 감촉·
다른 술사였다면 진작 골수까지 그 독기가 뻗쳐 미친 채로 죽어가고 있었겠지·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레녹의 의식만이 남아 이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
남은 시간을 담보로 삼아 파멸의 공능을 손에 넣은 만큼 레녹에게 허락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녹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 전에 결착을 피할 수 없는 전장으로 두 사람을 인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쿤다라를 구하면서도 말레온의 계획을 잇고 나아가 이 순간에 결착을 지으려 하는가·”
자신이 내뱉은 그 말을 음미하듯 선종이 나직하게 말했다·
“너는 무언가를 선택해 가지려 하지 않는군· 대신 그 모든 순간을 자신의 인과 아래 품으려 할 뿐이다·”
“····”
“분명 그것이 바로 말레온 그노시스를 흔들리게 한 초월적인 재능의 결실이겠지·”
말레온의 동공이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네가 추구하는 대답이 바로 그곳에 담겨 있군·”
파멸을 앞에 두고도 레녹은 미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온몸을 잠식하는 죽음을 품고도 초연하게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을 앞두고도 변치 않는 마법사의 행보에 그가 추구하는 구도가 온전히 담겨 있음을·
레녹이 결정하여 행한 이 모든 일들이 그가 그리는 대답의 일부라는 사실을 선종은 깨달았던 것이다·
“자격을 얻은 초월자는 스스로의 대답을 대변하는 존재와 같으니·”
타오르는 구겁의 시공 속에서 선종이 천천히 양손을 합장했다·
“지금 네 결정과 의지가 네 대답과도 연결되는 정진정명한 순간일 터·”
“····”
그 말과 동시에 말레온의 기척이 서서히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내면에서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치며 시공간을 헤아릴 수 없을만큼 가득 채웠다·
거세게 흩날리는 마력의 폭풍 속에서 선종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네 근원심상이 어떠한 풍경을 그리는지 확인해 보아야겠다·”
쿠과과과과과과!!!!!!
말레온을 중심으로 퍼져나온 마력이 사방에서 응집되며 거대한 별빛으로 화했다·
수백 체에 달하는 별빛이 말레온의 주변을 넘어 구겁 바깥의 대기권 너머까지 펼쳐졌다·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는 구겁을 중심으로 무수한 별빛이 넘실대는 아름다운 유성우·
9레벨의 승천자가 정신을 집중하여 수인을 맺고 시전하는 영창이다·
이 다음으로 이어질 술식은 분명 틀림없이 세계를 바꾸는 일격이 되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보고도 말레온을 견제하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눈앞에 떠오른 검은 헤일로를 움켜쥔 채 강하게 마력을 끌어올렸을 뿐·
“시간이 필요한 술식을 갖고 있는 건 너 뿐만이 아니지·”
찌그러진 헤일로를 쥐고 마력을 전력으로 운용한다·
칠흑처럼 검게 물든 뇌전이 레녹의 발 아래로 뻗어나가며 주변의 시공간을 잠식해 나갔다·
쩌저저저저적!!!!
검게 물은 선이 구겁의 전장 위로 퍼져 나가면서 사방을 어둡게 물들였다·
의념을 펼쳐 시공을 뒤덮는 무채색의 파문이 아니라 마력으로 주변을 갈아버리는 파멸의 공진·
파멸을 전제로 타락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만화경은 온전하게 사용할 수 없다·
레녹의 만화경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비추는 힘·
그렇기에 미래 자체를 없애버리는 타락의 분기점을 다른 만화경과 동시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까지 뒤틀렸기에 레녹의 내면에서 꺼내 들 수 있는 분기점이 있다·
무한한 가능성과 분기점을 비추는 만화경에서도 레녹이 가지 않은 길을 상징하는 이단의 심상·
죽지 않는 것을 죽이는 광인의 힘이자 어떤 신도 섬기지 않는 무해의 사도로서-
파아아아아아앗!!!!!
세계를 투영하고 개변하는 두 술사의 심상이 구겁의 심연에서 회오리친다·
말레온의 거체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별빛과 선율이 세계를 조정하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기권에서 떨어지는 수천발의 유성우가 추락하는 구겁을 감싸안고 눈부신 은빛의 천구를 그린다·
“사상전역 현현·”
양손을 합장한 말레온이 눈을 떴다·
“은하용성군(銀河龍星群)·”
끼기기기긱!!!!
거의 동시에 레녹의 영창이 끝나면서 찌그러진 만화경이 떠올랐다·
검은 빛으로 회전하는 만화경을 레녹이 망설임 없이 움켜쥔 순간·
“자성영역 전개·”
레녹이 어둠 속에서 시선을 들어올렸다·
“해방 : 광라무해궁(狂裸無海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