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화
9레벨(18)
공허한 우주를 등지고 목이 잘린 채 보존된 카이세 바쥬르의 시체·
흉험한 이두룡(二頭龍)의 모습을 드러낸 채 절규하는 말레온 그노시스·
그리고 말레온의 몸에 달라붙어 말을 걸어오는 ‘죽은 머리·’
구겁의 끝· 최심부 십관에 도달한 여정의 마지막·
하지만 레녹은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순간을 넘어 더 깊고 어두운 비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이세의 결말· 말레온이 숨기고 있던 비밀· 구겁 내부에 남아 있던 사념의 집합체·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 듯하다·
“생명이 맞이할 수 있던 세 가지 결말이 소실된 뒤로 우리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하나나 다름없지·”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이야기· 외해 바깥에 존재하는 구겁에서 내 안배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직하면서도 무감정하게 느껴지는 기묘한 육성·
죽은 머리의 성대가 본래 지니고 있던 울림일까 아니면 저 존재의 본래 목소리일까·
그런 고민조차 무색하게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나타난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인과가 뒤틀릴 정도의 아주 강력한 변곡점· 그게 아니라면 나의 사념이 깨어나는 일은 없었겠지만····”
죽은 머리가 흐릿한 초점을 들어 레녹을 응시했다·
“모든 것이 종막을 맞이하기 전에 카이세 바쥬르의 시체를 두고 언젠가 한 번쯤은 크게 사단이 날 거라 생각했지·”
“····”
“예전에는 한 번 실패했지만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은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군·”
레녹을 바라보는 머리의 목소리가 한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결정을 고했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운명의 손을 잡을 생각이다·”
“···쓸데없는 설명은 거기까지만 하지·”
찰칵!!
품 안에서 앰플을 꺼낸 각성제를 투여하면서 레녹이 선종을 바라보았다·
“파우드 올더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그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는 사실도 그렇지·”
“····”
승천자 선종(善終)· 다른 이름으로는 찬탈자 파우드 올더·
쿤다라의 흉성· 반역군주· 주법의 수호자· 온갖 흉악한 이명을 보유한 대륙 바깥에서 온 진혈종·
프로젝트에 개입해 카이세의 시신을 탈취하려 했던 반역자이자 9레벨에 도달한 승천자·
하지만 레녹은 선종이 어떤 식으로 9레벨에 도달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선종(善終)이란 말 그대로 올바른 죽음· 혹은 거룩한 죽음을 나타내는 단어·
죽음이라는 격변을 거쳐 승천자가 된 파우드 올더의 기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죽어서 9레벨에 도달한 승천자가 스스로 쌓은 경지를 포기하고 다시 생명을 얻을 리는 없지·”
말레온의 몸에 달라붙은 머리를 바라보는 레녹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
“승천자가 아니면서도 승천자의 본질에 가까운 존재· 넌 선종이 남긴 사념 같은 존재인 건가?”
“그렇게 표현해도 틀리지는 않겠군·”
머리가 순순히 수긍했다·
“나는 파우드 올더 본인이자 또한 그가 남긴 사념이며 그가 살아온 ‘삶’ 그 자체이니·”
“삶이라고?”
“삶과 죽음은 하나이자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니 나는 승천자가 되기 위해 한쪽을 버려야 했지·”
머리가 웃었다·
“내가 죽음을 가지고 승천자가 되어 떠나고 그 자리에 남겨진 ‘삶’· 그것이 나다·”
“····”
“그렇기에 나는 말레온 그노시스의 몸에 존재하는 ‘죽음’과 결합하여 비로소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거지·”
죽어서 승천자가 된 선종 파우드 올더·
그가 승천자가 되며 남긴 삶이 말레온의 죽은 머리와 결합해 비로소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건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갖고 다시 태어난다는 레녹으로서는 원리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기괴한 존재방식·
파우드 올더이자 파우드 올더가 아닌 존재의 설명에 레녹이 차갑게 웃었다·
“다른 승천자의 몸에 기생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말을 고상하게도 하는군·”
“너도 알고 있겠지만 말레온 그노시스는 굉장히 우수한 초월자야·”
레녹의 냉소에도 선종의 사념을 자칭한 ‘머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 도발 따위로는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석룡으로 태어난 축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하며 구도를 추구했던 대답자였지·”
“····”
“너와의 격차에 거역할 수 없는 열패감을 느끼고도 그는 마지막까지 엇나가지 않았어· 지금도 그렇지· 그가 구겁을 지나오며 받아들인 사념을 봐·”
선종이 속삭였다·
“수백 년 넘게 농축된 장생종들의 사념을 이렇게나 먹고도 버틴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
“넌 말레온 그노시스를 보며 승천자답지 않게 사념에 약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이미 충분히 자신에게 주어진 이상을 해냈어·”
[오오오오오!!!]
절규하는 말레온의 머리 아래서 축 늘어진 또 다른 머리를 흔들면서 그가 웃었다·
“그래서 바로 내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거지·”
“····”
레녹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그의 말을 증명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실패해야 했던 의식을 억지로 성공시킨 순간부터 이미 늦어 있던 걸까·
어쩌면 말레온을 만나 계획을 전해 들은 그때부터 이런 결말이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
“원래라면 내 의지가 이 보석룡의 몸 안에 깃드는 일 따위는 벌어질 수 없었겠지·”
선종이 축 늘어진 머리를 움직여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승천자조차 버티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에서 열패감에 잠식된 말레온 그노시스가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붙잡으려 노력했기에··· 정작 이 죽은 머리에 대한 통제력을 놓치고 만 거다·”
“····”
말레온이 보여준 보답과 희생이 워낙에 상당했기에 그가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구겁의 끝까지 믿음직한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고 실제로 말레온은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말레온이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도달한 파국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실패를 곱씹을 필요는 없다 마법사· 이것은 네 실수도 말레온의 잘못도 계획의 패착도 아니었으니·”
머리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속삭였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하겠나?”
“···너·”
레녹이 싸늘한 시선으로 선종을 노려보았다·
방금 그 말로 눈앞의 존재가 근본까지 뒤틀려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했기 때문·
딸깍!!
떨리는 손으로 주사한 앰플을 버리고 품 안에서 영약을 꺼내 든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효능을 끌어올린 회복제· 통증을 누르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진통제·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안배했던 약물을 하나둘씩 손에 그러모은다·
구겁에서 술식을 사용할 때마다 마력소모는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상황·
레녹의 마력조작과 마나감응을 위시하고도 효율이 이렇게 떨어질 정도니 정상적인 전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영약과 마력회복제를 물처럼 마셔가면서 싸워야 겨우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테고
그때마다 몸이 축나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
전부 각오했던 일이다· 전부 필요하다면 꺼내 쓸 준비가 되어 있던 물건들이다·
하지만-
레녹은 배신한 말레온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은 말레온을 상대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반·]
“····”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서 선종의 사념에게 몸을 넘겨준 말레온의 흐릿한 전성·
멍이 든 팔뚝에 꽂아 넣던 앰플이 우뚝 멈추고 투약 속도가 순간적으로 느려진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평정을 잃지 않던 레녹의 표정이 아주 잠시 희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직후 모든 감상을 지운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전투준비를 마치고 돌아섰다·
펄럭!!
코트를 흩날리며 품 안에서 묵직한 머스킷 총을 꺼내 잡는다·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손에 넣은 마총사의 장비· [테레메르의 종언]·
여섯 가지 형태로 변하는 구세계의 유물이자 ‘단장’이 사용하던 물건·
마총사가 아닌 레녹이 완벽하게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마력효율이 떨어지는 전장에서 이만한 장비는 없다·
철컥!!
마총 안에서 마력과 의념을 조합하면서 들어 올린다·
선종의 머리를 겨눈 마총은 어느새 날카로운 교룡의 형태로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
선종 역시 레녹이 꺼낸 마총의 존재가 의외였는지 희미한 감탄을 흘렸다·
“호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총구를 들어 올린 레녹이 조용히 말했다·
“시작하지· 단 한 발로 끝내주마·”
구세계의 마총· 테레메르의 종언이 지닌 마지막이자 여섯 번째 형태인 [용의 노래]·
사용자의 심상을 마총에 담아 쏘아내는 용명권능을 모방한 힘을 진짜 용에게 겨눈다·
말레온이 타락한 이유가 정말로 자신보다 레녹의 답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
레녹의 대답을 쏘아내는 이 마총의 힘이 말레온에게 안식을 선물해 줄 수 있을 터·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하지만 선종은 자신을 향해 겨눈 총구를 보고도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와 싸우려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게 아니야·”
“말레온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이 자리에서 널 죽이려고 했다면 왜 네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겠나?”
선종이 반문했다·
“네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지·”
“승천자의 몸에 깃든 사념체를 죽이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나?”
“물론이지· 내가 말레온 그노시스의 몸에 깃들어 통제권을 빼앗아올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이유는 바로 너 때문이었으니까·”
선종이 말했다·
“네가 보여준 재능과 대답이 자신의 것보다도 옳았다 느꼈기에 말레온 그노시스는 승천자로서 온전히 완성될 수 없었다·”
“····”
“수백 년을 산 장생종· 그 희귀하고 위대한 보석룡이 한낱 인간의 대답에 홀려 버린 거야· 내가 그 사실을 눈여겨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흐릿한 눈으로 레녹을 바라보며 선종이 물었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너는 보석룡이나 승천자라는 범주를 넘어선 존재야· 그렇기에 지금까지 나의 강림에 대해 설명하고 너를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내고 있는 거다·”
한낱 사념을 자칭하면서도 상대는 믿기 어려울 만큼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고 있다·
구겁에서 깨어나 말레온의 몸을 빼앗아 레녹의 앞에 섰음에도 변수를 제거하는 대신 상황을 통제하려 한다·
그건 눈앞의 이 사념체가 이미 죽어서 승천자가 된 선종의 사념이기 때문이겠지·
‘죽음’을 넘어 9레벨에 도달한 초월자의 사념이기에 한낱 사념조차 승천자 본인과 대등한 의식과 판단을 갖추었다면·
“설득이라·”
레녹이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말레온의 몸을 빼앗고 나와 협상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인가?”
“그래· 굳이 정의하자면 거래라는 말이 정확하겠군·”
머리가 웃음을 지었다·
“거래다 마법사· 나를 도와 이 자리에서 카이세 바쥬르의 육체를 되살려보지 않겠나?”
“···뭐?”
“너와 나 모두 이대로는 카이세 바쥬르의 시체를 구겁 바깥으로 운반할 수 없을 테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레녹이 멈칫거린 찰나 선종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대로 시체를 영원토록 외해 바깥에 방치할 바에는 카이세 바쥬르를 ‘살려서’ 구겁 밖으로 데려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
“계획대로 된다면 말레온 그노시스는 폭주를 벗어날 테고 너 역시 구겁에 온 목적을 이룰 수 있겠지· 네 입장에서도 나쁜 거래는 아닐 거다·”
“카이세 바쥬르의 육체를 되살린다는게 그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야·”
머리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쿤다라의 구겁은 외해 바깥에 죽음을 ‘보존’하는 마경··· 여기 놓인 모든 시체는 썩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겨져 있지·”
“····”
“수분이 부족해 미라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충분한 수분을 보충하면 시신을 생전의 상태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옥좌 위에 안치된 카이세 바쥬르의 주검을 향해 선종이 눈짓했다·
“그 사실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카이세 바쥬르의 시체 역시 마찬가지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십관에 안치된 카이세 바쥬르의 시체는 피의 계약을 통해 진혈을 공급해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선종이 설명했다·
“목이 잘린 채로도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
“그건 다시 말하자면 이 시체 위에 붙일 ‘머리’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 몸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말이야·”
“시체 위에 붙일 머리라고···?”
듣기만 해도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제안의 연속·
카이세 바쥬르의 육신을 되살린다는 화두조차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그 소생의 방법은 우악스럽기까지 하다·
“생물학적으로 그 방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표정을 숨긴 레녹이 말했다·
“혈액과 세포 단계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날 거다· 애초에 카이세 본인이 아닌 타인의 머리를 붙인다는 발상 자체가-”
“아니 문제없다· 카이세의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열 명의 진혈종이 모여서 그 몸에 ‘진혈’을 공급해 주었으니까·”
선종이 느릿하게 답했다·
“지금 저 몸에 흐르고 있는 건 카이세 바쥬르 본인의 피가 아니야· 축복받은 장생종에게만 허락되는 풍부한 진혈 그 자체지·”
“····”
“그렇다면 같은 진혈을 지닌 존재의 머리라면 능히 저 육신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나?”
“···진혈종의 머리라·”
레녹이 싸늘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카이세의 몸에 흐르는 진혈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육체·
목이 잘린 그 육신에 접합할 수 있는 ‘머리’의 존재·
그 대상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레녹 역시 설명을 듣는 순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
“그렇다면 카이세의 육체에 접합할 ‘머리’는 누가 되는 거지?”
“왜 그런 걸 굳이 물어보는 건지 잘 모르겠군·”
선종이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제외하고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믿나?”
“····”
그래 사실은 그 제안을 듣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선종은 카이세 바쥬르의 육체를 되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카이세 바쥬르의 육체와 재능을 통째로 빼앗아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말레온에게 달린 ‘죽은 머리’를 카이세의 몸에 이식한다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저열한 방식을 통해서·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카이세의 육체는 되살아나고 말레온 그노시스는 어떻게든 정신을 되찾겠지·”
“····”
“너 역시 말레온과 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구겁을 탈출할 수 있을 거다· 서로에게 충분히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나?”
어처구니없지만 그 말은 선종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일어날 일을 암시하고 있었다·
말레온은 이대로 선종의 사념에게 몸을 빼앗긴 채 폭주할테고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겠지·
그 폭주에 휘말리면 레녹 역시 카이세의 시체를 회수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선종은 그 사실을 읽고 카이세의 육체를 조건으로 삼아 협력을 제안하고 있었던 것·
조금만 타협한다면 이 자리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다·
조금만 눈감는다면 계획을 시작하기 전으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뭐?”
철컥!!
마총을 장전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린다·
남아있는 마력을 모조리 털어넣듯이 마총 안에 불어넣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격준비를 마치고 장전을 마친 레녹이 중얼거렸다·
“카이세가 마지막 순간 변해버리면서 도달한 실패가 있었지·”
“····”
“말레온이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아서 도달한 파국이 있었어·”
매끄러운 총신을 바라보며 침묵하던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어느 쪽이든 실패뿐이라면 늘 그렇듯이 내가 직접 방법을 찾을 수밖에·”
“잠깐-”
“카이세의 소생도 말레온의 회복도 그런 식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까·”
끼릭·
느릿하게 방아쇠를 당기며 레녹이 말했다·
“제안은 거절하지·”
대답은 없었다·
선종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레녹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고·
구세계의 마총이 번뜩이며 황금빛의 탄환이 선종의 머리를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