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화
9레벨(14)
화아아아악!!!
운기린의 마력이 얼어붙으며 말레온을 향해 쇄도한다·
침식영역 위로 무수한 얼음기둥이 떠오르고 눈보라를 폭격처럼 퍼부었다·
[그오오오···!!!]
쇄룡의 미라가 사납게 포효하자 날카로운 요철이 쏟아지며 복도 내벽을 잠식해나갔다·
카가가각!!!
섹터 전역을 휩쓸고 몰아치는 눈보라의 폭격· 벽면을 갈아버리면서 속도를 높이는 요철의 파도·
하지만 말레온은 동시에 쇄도하는 두 침식영역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벽면을 타고 다가오는 요철의 파도에 거침없이 자신의 손을 찔러넣었을 뿐·
드르르르륵!!!
발작하듯 반응한 요철이 말레온의 손을 갈아버리기 위해 미친 듯이 회전한다·
철저하게 가공된 합금조차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버릴 만큼 격렬한 파공음·
하지만 말레온은 잠깐 눈썹을 꿈틀거릴 뿐 팔뚝에 힘을 주고 회전하는 요철을 움켜쥐었다·
“후웁···!!”
끼이이익!!
말레온의 손이 접촉한 요철을 멈춰 세우자 그와 맞물린 다른 요철까지 덩달아 멈춰 선다·
침식영역을 가득 채운 톱니바퀴가 단 한 사람의 악력에 멈춰 서는 비현실적인 풍경·
[끼익?]
그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쇄룡의 미라가 고개를 든 순간 요철의 파도 속에서 은빛이 일렁였다·
원시마법(原始魔法) : 성련팔극식(星聯捌極式)
육종(六種) – 외법(外法)
[왜성순환(歪星巡環)]
파아아아아앗!!!
별빛이 일그러지고 왜곡되면서 요철의 파도 사이를 거침없이 들쑤신다·
막대한 열량 속에서 침식영역을 뒤덮은 요철이 녹아내리며 쇳물로 화한 순간·
[성운(星雲)]
콰아아아아!!!
별빛이 구름처럼 사방으로 번져나가면서 쇄룡족의 침식영역을 전부 녹여 버렸다·
[끼게게게겍!!!]
죽은 미라도 침식영역의 훼손은 참을 수 없던 것일까·
쇄룡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사이 머리 위로 얼음기둥이 떨어져 내린다·
날카로운 창대처럼 깎여나간 고드름이 아음속의 속도로 사출된 그 순간·
말레온의 별구름이 그 열기만으로 고드름을 증발시키고 수증기를 내뿜었다·
퍼버버벙!!
수증기의 폭발이 어찌나 강렬한지 뒤에 서 있던 레녹에게까지 여파를 미친다·
‘성련팔극식의 외법은 공격용· 내법은 보호와 증강의 용도인가?’
말레온은 적을 상대로는 외법을 아군을 상대로는 내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련팔극식에서 내외의 기준이 피아를 가르는 기준과 동일하다고 보아야 할 터·
[부오오?]
운기린의 미라가 놀란 듯이 목을 들어 올리지만 빠르게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말레온은 더 이상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술식을 영창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눈보라를 맞으면서 옆구리를 갈아 뭉개는 요철도 무시한다·
쿵!!
발을 크게 굴러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달려드는 쇄룡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
쇄룡의 머리가 말레온의 손에 잡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꽈아아앙!!!
[···!!!]
쇄룡족의 비늘은 사슬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금속성의 요철이 맞물린 형태·
당연하지만 그 무게 역시 여타 짐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둔중하다·
말레온은 그러한 용종의 돌진을 한 팔의 근력만으로 찍어눌러 멈춰 세운 것·
위이이잉···!!
쇄룡족의 머리를 짓누른 말레온의 손안에서 별빛이 회전한다·
두개골 너머로 끓어오르는 막대한 열원에 쇄룡 역시 미친듯이 발작했지만·
말레온은 그런 저항을 무시하고 별빛을 쥔 채로 쇄룡의 등허리를 쭉 긁어내렸다·
부아아악!!
쇄룡의 단단한 비늘이 녹아내리며 그 안쪽의 살점까지 두부처럼 뭉개진다·
거대한 용종의 몸이 좌우로 쩍 벌어지면서 썩지 않은 장기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꺽!]
외마디 절규와 함께 그 자리에서 혀를 쭉 빼물고 쓰러지는 쇄룡의 모습·
머리가 박살난 채 척추째로 녹아내리고 내장을 드러낼 정도의 중상이다·
미라가 된 장생종이라 해도 이 정도 부상을 입고도 움직이는 건 불가능한 일일 터·
동시에 쇄룡의 몸에서 뽑혀 나온 흐릿한 영체가 말레온에게 흡수되듯이 스며들고·
“···음·”
순간적으로 말레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움직임이 잠시 멈춰 섰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운기린이 즉시 움직였다·
[부오오오···!!]
쐐애액!!
기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침식영역을 이끌고 저공으로 비행·
지느러미를 가볍게 흔드는 것만으로 음속을 넘어 얼어붙은 복도를 주파한다·
운기린의 신형이 날카로운 얼음의 섬광으로 화하고 제 자리에 멈춰선 말레온을 정면에서 들이받았다·
쩌어어어엉!!!
얼음이 깨지면서 들려오는 귀가 멀어버릴 듯한 강렬한 공명음·
싸늘한 눈보라가 뒤섞인 충격파가 터져 나와 주변의 모든 것을 밀어내고 얼려 붙인다·
“···!!”
침식영역의 힘이 미친 듯이 날뛰면서 터트리는 냉기에 레녹조차 순간적으로 개입을 고민했을 정도·
하지만 말레온은 초음속에 도달한 운기린의 돌진을 정면에서 허용하고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왼쪽 가슴을 얼려 붙인 냉기의 파동을 무시하고 입을 쩍 벌린 채 마력을 끌어올렸을 뿐·
키이이잉···!!
은빛의 비늘을 두른 용의 입이 쩍 벌어지고 그 안에서 막대한 마력이 숨 쉬듯이 차오른다·
그것이 자신의 호흡에 의념과 심상을 섞어 발동하는 ‘용종’의 심의임을 레녹이 깨달은 찰나·
용명권능(龍命權能) : 엘드리치 브레스
[성해포(聖解砲)]
콰아아아아아!!!!
찬연한 은빛의 마력광이 말레온의 입 안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와 운기린의 거체를 휩쓸었다·
장대한 광선이 구겁의 시공을 수직으로 절단하듯 솟구치면서 번뜩인 순간·
치이이익!!
반으로 갈라진 운기린의 유해가 그 자리에서 양분되어 쓰러졌다·
쿠우웅!!
“후우우우우····”
느릿하게 숨을 들이쉬면서 호흡을 정돈한 말레온이 천천히 돌아섰다·
자신의 입가를 쓱 닦은 말레온이 천천히 자신의 목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길을 열었네· 바로 이동하지·”
“····”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말레온이 남긴 전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식성능의 우위뿐만 아니라 육체능력의 우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압도적인 힘싸움·
용종의 강력하면서도 터프한 신체능력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적을 짓밟아버리는 교전능력·
하지만 말레온은 자신이 행한 이 압도적인 파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소란을 눈치챈 다른 창립자들이 있을 걸세· 지체하지 말고 움직여야····”
담담한 얼굴로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느릿하게 말을 늘어뜨렸을 뿐·
브레스를 사용한 부작용이라기에는 생각보다 숨이 더 차는 것처럼 보인다·
말레온이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아니 벌써 조금 늦었군·”
“····”
[쿠오오오····]
머리 위에 고리를 드리운 거대한 물소· 식물같은 날개를 지닌 공룡· 전신에 피처럼 붉은 문자를 새긴 새하얀 코끼리·
외해를 비추는 유리공동을 침식할만큼 강력한 영역을 보유한 장생종의 미라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운기린과 쇄룡의 미라가 소멸하고 남아 있던 잔존 사념을 말레온이 흡수한 순간·
그 공백을 눈치챈 다른 미라들이 말레온의 존재를 하나둘씩 눈치채기 시작한 것·
우우우우웅!!!
말레온의 손안에 격렬하게 회전하는 별빛이 태어나 발광한다·
그 공명음이 격벽 저편까지 울려 퍼지면서 가감 없이 어둠을 비추었다·
말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계속해서 가지· 먼저 길을 열겠네·”
* * *
철퍽 철퍽···!!
찢어진 공룡의 사체가 널브러지고 머리가 뽑혀나간 물소의 몸통이 눌러붙었다·
부패하지 않은 채 말라버린 내장 조각이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뚝 뚝···!!
끈적이는 체액· 매캐하다 못해 머리가 지끈거리는 냄새·
폐가 조여오듯 오그라들면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만든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섬뜩한 기분·
방사능에 절어진 거대한 시설 안에서 천천히 죽어간다면 이러한 기분일까·
“후우···!!”
콰지지직!!!
나직한 기합과 함께 살점을 찢어발기는 파열음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머리 위로 쏟아지던 장생종의 핏물이 회전하는 별빛의 열기에 증발해 사라졌다·
[침식률 76%]
구겁의 시공 내곽 지역·
헤아릴 수 없는 복도와 격벽을 돌파하고 창립자의 미라를 대체 얼마나 죽였을까·
별빛을 두른 채 가속하며 다가오는 미라를 찢어발기는 말레온의 신형·
[뿌오오오!!]
콰아앙!!
선혈문자를 새긴 코끼리의 발길질을 움직이지도 않고 받아낸다·
거대한 발굽을 한 팔로 버티면서 지탱한 채 옆에서 달려드는 순록을 보지도 않고 후려쳤다·
쩌어어엉!!
말레온의 손에 쥐여진 별빛이 폭발하며 은빛의 충격파를 흩뿌리고 순록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머리를 잃은 순록을 무시하고 코끼리의 다리를 뽑아 내던졌다·
상아를 미사일처럼 쏘아내던 코끼리의 배가 북 찢어지며 내장을 쏟아냈다·
삼종(三種) – 외법(外法)
[천성(穿星)]
뻐어어어엉!!!
코끼리의 뒤에 날갯짓하던 거대한 말벌이 침을 쏘아내지도 못하고 몸이 꿰뚫렸다·
배가 터진 말벌이 발작하면서 날개를 진동하자 엔진소리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부이이익!! 부이익-]
쾅!!
하늘에서 별빛을 떨어뜨려 말벌을 조용하게 만든 말레온이 몸을 돌렸다·
“···반· 몸은 괜찮나?”
격렬하게 회전하는 별빛의 광채 위로 아직 흡수되지 못한 사념이 회오리쳤다·
힘겨운 전투를 모조리 도맡아 처리하는 와중에도 말레온은 타인의 안위를 먼저 신경 쓰고 있었다·
말레온이 무릎을 꿇고 레녹과 시선을 맞추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가라앉히게·”
“····”
“아주 깊은 바닷속에 들어온 거야· 흥분할수록 죽음에 가까워 지는거지·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네·”
“나보다는··· 올리비에라 쪽을 살피는 것이 먼저일 것 같군·”
창백한 얼굴로 고갯짓한 레녹이 말했다·
구겁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길을 가로막은 격벽을 몇번이나 통과했을까·
갈수록 침식률이 높아지는 여정에서 먼저 멈춰 선 것은 올리비에라였다·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않고 복도 끝에 조용히 멈춰 레녹을 바라보기만 할 뿐·
“마안을 과도하게 사용했으니 부담을 느끼는 정도가 심할 거다· 처치를 할 거라면-”
[아니·]
올리비에라가 조용히 답했다·
[먼저 가거라· 나는 조금 쉬었다 갈터이니·]
“···올리비에라?”
[앞서 길을 터 놓는다면 뒤를 따라 방향을 잡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베일 너머로 올리비에라의 마안이 흐릿하게 빛났다·
[이제와서 여정을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으니 금방 따라가겠다·]
“혼자 떨어진다면 이 공간에서 홀로 버티는 것도 어려워질 걸세·”
말레온이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더욱 힘들어지겠지· 차라리-”
[그래?]
올리비에라가 물었다·
[정작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나보다는 오히려 네가 아니었더냐?]
“···”
쿠오오오!!!
올리비에라의 마안이 말레온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사념의 폭풍으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레온을 향해 흡수되는 막대한 양의 사념 덩어리·
창립자들을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상대했기에 아직도 한참 남은 사념이 허공을 배회한다·
[고통에 절여진 의념만이 강하게 느껴지는구나·]
올리비에라가 말레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승천자가 이리 의념을 드러낼 정도라면 지금 느끼는 고통이 결코 평범한 수준은 아닐 터·]
“····”
[너 역시 언제까지 이곳에서 그렇게 버틸 수 있다 생각하지?]
창립자들의 미라를 처리할 때마다 흘러나와 말레온에게 흡수되는 사념·
사념을 흡수할 때마다 말레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올리비에라는 마안을 통해 말레온이 사념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던 것·
“쿤다라의 창립자들은 죽음으로서 구겁을 완성했지만 그들 본인이 자격을 지닌 존재는 아니었네·”
침묵하던 말레온이 조용히 답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은 이곳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구겁을 배회하고 있던 것이지·”
“····”
“자격을 얻은 내가 구겁에 남겨진 의미를 거둬들이는 것은 필연· 그들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야·”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길 일이 아닐 텐데·”
표정을 굳힌 레녹이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구겁을 넘어설 때마다 네 정신에 막대한 대미지가 강제로 누적되는 것 아닌가?”
말이야 간단하지만 남겨진 죽음을 일일이 맛본다는 것이 그리 가벼울 리 없다·
죽은 뒤에도 침식영역을 구사할 정도로 고위계 장생종들이 남긴 죽음의 사념이다·
그들이 죽어가며 남긴 고통 기억 감정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의념을 흡수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말레온 본인의 정신에 가해질 부담은 실로 막대한 수준일 터·
“구겁에 들어온 시점에서 어떻게 막거나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그리하리라 각오했던 일이지·”
말레온이 담담하게 몸을 추스르며 답했다·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상정하고 있던 일이야· 이것으로 인해 자네와 나의 여정이 멈출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게·”
“말레온·”
“걱정하지 말게· 나는 변하지 않아·”
레녹을 바라보며 웃은 말레온이 말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마지막까지 자네와의 약속을 지킬 걸세·”
“····”
침묵하던 레녹이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올리비에라에게 향했다·
“올리비에라·”
오른 손을 펼쳐 술법진을 띄워올린 레녹이 말했다·
“구겁의 영압(永壓)을 반감시키는 결계를 제작하고 있다· 조금만 더 변수를 확보하면 완성할 수 있어·”
[···기가 차는군· 그 사이에 구겁의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고 있었단 말이더냐?]
“영혼을 다루는 방법 자체는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찰칵 찰칵!!
손안에서 술법진의 배치와 기호를 천천히 바꾸면서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걸 조금만 체계화시켜서 영혼에게 가해지는 압력에 필터를 걸 수만 있다면····”
군령도시 요르타에 남겨진 군령들에게 영혼을 다루는 감각이나 요령을 군령술의 대가들에게 직접 전해들었던 바·
그 경험을 결계술에 녹여서 심신에 가해지는 영압을 반감시킬 방법을 찾는다·
마력소모나 술식출력과는 별개로 몸을 움직이는 부담 정도는 크게 줄일 수 있을 터·
“이 결계술식의 프로토타입을 여기 놓고 가겠다·”
오른손으로 그려낸 술법진을 올리비에라의 발밑에 새겨넣은 레녹이 말했다·
“몸이 안정되면 천천히 따라오도록· 그때까지는 말레온과 함께 길을 뚫고 있을 테니·”
[혼자 이 마경에 남겨질 생각 따위는 없으니 안심하거라·]
올리비에라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놈이야말로 끝까지 가고 싶다면 분명 유념해야 할 것이 있을 텐데·]
“····”
레녹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돌려 세웠다·
올리비에라가 잠시 일행에서 이탈한 이상 지금부터는 말레온과 단 둘이서 격벽을 열고 길을 뚫어야 할 터·
그런 레녹의 얼굴을 말레온이 눈부시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경이롭군·”
“···말레온?”
“자네의 재능은 단순히 이 세계에 국한되는 범주의 힘이 아니지·”
말레온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건 세계를 넘어 이 암흑의 바다 바깥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야·”
“···”
“어쩌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네였을지도 모르겠어·”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말레온이 말없이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레온을 향해 흡수되는 끝을 모를 사념·
그들의 고통과 기억을 흡수하는 말레온의 눈동자가 순간 흐릿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한다·
조용히 레녹을 내려다보던 말레온이 물었다·
“나에게 자네와 같은 재능이 있었다면 무언가 조금은 더 달랐을까?”
“····”
말레온은 승천자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 만족하거나 충만감을 느끼지 못했다·
승급 의식을 진행하는 도중 레녹을 보면서 그가 느꼈던 부족함과 결핍·
그 사실에 대해 말레온 그노시스는 내심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렇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어려운 길임이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말레온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여기까지 하지· 다른 창립자들이 다가오고 있네·”
천천히 눈을 뜬 말레온이 고요한 시선으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끌고 다니는 침식영역의 악취가 여기까지 느껴지는군·”
“···”
“바로 이동하겠네·”
더 이상 말레온은 웃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