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1화
쿤다라(14)
쿠구구구!!!!
“네놈을 보았을때부터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
“가만히 있었다면 얌전히 해독제를 받고 떠났을 것을 기어코 지나간 인연에 집착해 일을 그르쳤구나·”
니백스가 숨길 수 없는 섬찟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것이 네놈이나 말레온 같은 미련한 구도자들의 한계인 게야· 하잘것없는 일에 집착하다 대업을 망치는 것이 너희들의 운명이다·”
“조언 고맙군·”
레녹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래서 비약과 교환할 해독제는 준비됐나?”
“아니· 네놈에 줄 해독제 따위는 없다·”
뱀이 답했다·
“대신 허락도 없이 내 비처를 침범한 도둑놈에게 선사할 형벌만이 있을 뿐·”
고오오오···!!!
니백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호수의 독액이 중력을 거스르고 붕 떠올랐다·
독액의 호수 한복판에서 방울진 독액을 띄워 올린 채 그녀 자신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섬뜩한 풍경·
“애초에 내 것이었던 승천의 비약을 돌려받겠다고 네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던 것이 우스운 일이었지·”
“····”
“이제 네놈이 나의 거처를 무단으로 침입한 무뢰한임이 분명해졌으니 내가 직접 술식을 휘둘러도 원로성에서 나를 지탄하지는 않을 터·”
아주 맛있는 먹잇감을 바라보듯 혓바닥을 날름거린 니백스가 속삭였다·
“죽여주마·”
[독극화신(毒極化身)]
[착혈(搾血)]
쫘아아악!!!
허공에 떠오른 독 방울이 제자리에서 급격하게 압축되더니 엄청난 속도로 레녹을 향해 분사된다·
남색의 독물이 레이저처럼 가속하며 레녹이 서 있던 자리에 폭격처럼 쏟아지고 늪지대의 표면을 관통하고 증발시켰다·
두두두두!!!
치이이익!!!
지면이 비틀리는 굉음과 젖은 흙이 증발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숨쉬기 힘들 만큼 매캐한 독 연기가 피어올라 자욱하게 주변을 적시고 호숫가의 풍경마저 잠시 가린 찰나·
[천동파(天動波)]
파앙!!
가볍게 박수를 친 레녹의 손을 중심으로 마력의 충격파가 터져 나와 독 안개를 쭉 밀어내기 시작했다·
니백스가 쏘아낸 독성술식을 받아내고도 상처하나 입지 않은 듯한 멀쩡한 모습·
“무기물을 녹이는 독을 태웠는데 이제는 유기물의 호흡기를 녹이는 독이 되는군·”
양손을 털듯이 몇 번 부딪힌 레녹이 물었다·
“그런 화학반응조차 독성술식에서 의도한 결과물인 건가?”
“···쯧 올리비에라!!”
혀를 찬 니백스가 호숫가 저편에 등을 돌리고 선 올리비에라를 불렀다·
주변의 소란에 일절 관심이 없는 듯 목욕재계를 끝내고 흑색의 도포를 정돈하는 모습·
니백스가 그런 올리비에라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쿤다라로 데려온 인간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협력해라·”
“····”
“지금 이 자리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새하얀 동공에 힘을 주어 올리비에라를 압박한 니백스가 말했다·
“칠채보의 마안을 사용하거라· 저 간악한 단명종을 이 자리에서 처단해야겠다·”
“····”
니백스의 말에 레녹 역시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레녹이 원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고 생각해 나간다·
그녀에게 기대하는 만큼이나 한편으로는 기대하지 않는 자신이 있음을 알기에 감정을 배제한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의념을 단단히 굳힌 그 순간·
[네놈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겠구나·]
처음으로 올리비에라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아직까지 최악의 사태를 고려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
[허나 그것도 나쁘지 않구나·]
천천히 이쪽을 향해 돌아선 올리비에라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눈꺼풀 안쪽에서 흘러나온 짙은 독액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렇게 의심하고 미련을 두는 것 자체가 네가 여전히 인간적인 감상을 품었다는 증거일 테니·]
“···올리비에라·”
[끝이 보이지 않는 여행에서 네놈 같은 동승자 하나쯤은 마지막까지 남겨두어도 괜찮겠지·]
오른손을 들어 올린 올리비에라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꺼풀을 젖힌 그 순간·
찬연한 무지갯빛의 광채가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니백스의 거체를 휘감고 찍어 눌렀다·
콰아아앙!!!
“뭣···!!!”
[나는 진작에 결정을 내렸고 남아 있는 여생에서 이 판단을 바꿀 생각은 없다·]
당황한 니백스를 뒤로하고 오른쪽 눈을 뜬 올리비에라가 레녹을 바라보며 웃었다·
[앞장서거라· 카이세 바쥬르를 만나러 가자꾸나·]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
격노한 니백스가 늪지대 아래 몸을 눕힌 채 미친 듯이 발작했다·
“이 은혜를 모르는 벌레가 감히!!!!! 내 호의를 배신하고 단명종의 손을 잡은 게냐!!!!!”
[착각하고 있구나 니백스 오로시아·]
품이 넓은 도포를 추스르며 맨발로 늪지대를 걸어 나온 올리비에라가 나른하게 대꾸했다·
[내 오늘까지 너의 둥지를 빌린 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갚은 결과일지니· 네가 탈태의 저주에 잠식되지 않도록 나의 마안으로 도와준 대가였지·]
“닥쳐라!!!”
[어설프게 승천자를 흉내 내려 탈태를 반복하다 우물을 지키는 뱀에게 동화될 뻔하고도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군·]
탁!!
독액이 낭자한 늪지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온 올리비에라가 레녹의 곁에 서면서 대꾸했다·
[견뢰에게 구겁에 대해 이르고 도움을 주겠다 하여 허락했거늘· 비약이라는 괴상망측한 물건 따위에 놈을 얽매이려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구나·]
“어리석구나···· 참으로 어리석다···!!! 답이 정해져 있는데도 굳이 미답을 찾아 나서다니 고작 그것이 네놈들의 한계인 게야!!!!”
으지지직!!!
거대한 뱀이 늪지대에 잠겨 몸부림치며 꼬리 끝으로 새하얀 허물을 잡아챈다·
그것이 니백스 오로시아 본인이 [탈태]를 마치고 벗어둔 허물임을 레녹이 깨달은 그 순간·
자신의 허물을 물고 떠오른 니백스가 무채색의 파문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너희 연놈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겠다!!!!!!”
“···!!!”
파아아아아앗!!!!
섬뜩한 포효와 함께 주변을 잠식하는 무채색의 파동·
레녹 역시 니백스가 영역을 전개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니백스의 사혈궁이 위치한 독함림은 그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구축한 독성권역·
권역 안에서 자성영역을 전개한다는 것은 즉-
자성영역 전개
연원위계 심상구현
[무궁사악질(霧穹蛇惡疾)]
쿠과과과과과과!!!!!!
거대한 밀림의 숲에 니백스의 근원심상이 고스란히 덧씌워진다·
온갖 병마를 품은 뱀독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며 광대한 밀림 전체가 녹아내리고·
홀로 새하얗게 발광하는 뱀 한 마리가 하늘에 떠올라 미친듯이 마력을 뿜어냈다·
치이이익!!!
밀림 전체가 독물이 되어 녹아내리며 밟고 있던 지면까지 오염시킨다·
범람하는 독의 파도를 피해 점멸을 사용한 레녹이 가속하며 혀를 찼다·
“설마 했는데 권역과 영역을 동시에 다루는 건가? 까다롭게 됐군·”
원리는 알 수 없지만 니백스는 본인의 독성권역과 자성영역의 능력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권역과 영역 양쪽에서 술식 증강 효과를 받으면서 권역에 쌓인 독과 영역의 고유술식을 난사한다면 니백스의 전투 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겠지·
아주 오랫동안 살면서 위계를 쌓아 올린 최고위 장생종이자 팔겁의 원로성다운 술식 응용 능력·
‘영역 대결로 가면 이쪽도 독에 노출되는 걸 피할 수 없을 텐데· 제대로 힘을 쓰기 전에 죽였어야 했나·’
“···음?”
순간 표정을 찌푸린 채 허공에 떠오른 뱀을 올려다보던 레녹이 눈을 크게 떴다·
니백스의 등 뒤에서 헤일로처럼 격렬하게 발광하며 회전하는 뱀의 허물·
스스로의 몸을 둥글게 말아 거대한 고리를 그린 채 안쪽의 공간을 어둠으로 채워 나간다·
허물 자체가 니백스의 의지와는 별개로 새까맣게 변질되어 가는 기괴한 모습·
저 모습을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라피스가 발칸에 찾아온 당시 천견의 기억과 만나 알게 되었던 승천자의 최후·
편람의 의식체가 죽고 타락하여 스스로 외해 바깥과 연결되는 [문]이 되어버린 그 모습·
“설마····”
레녹이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자신의 허물을 제물로 삼아 영역과 권역을 연결하는 [문]을 만든 건가?”
“하찮은 단명종 주제에 이 절예를 알아보는 것이냐·”
고오오오···!!!
하늘 위에 떠오른 니백스가 레녹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본래 영역과 권역을 한 시공에 중첩시키는 것은 나와 같은 존재에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지·”
“····”
“허나 나의 허물을 촉매 삼아 두 시공을 이어붙였으니· 이는 네놈 같은 벌레들에게 과분한 기적일진저·”
니백스가 싸늘하게 선언했다·
“비약을 바치지 않은 스스로의 멍청한 선택을 원망하며 죽어라·”
“아니 그게 아니야·”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시체를 사용해 [문]을 만들었다면 그건 사실상 우물이나 마찬가지다· 넌 지금 네 영역에 외해 바깥과 연결될지도 모르는 통로를 만든 거지·”
“···뭐라?”
“그리고 그 사실을 이 세계에서 무엇보다 예민하게 여기는 승천자가 있다·”
우물을 지키는 승천자는 자신이 지키는 곳을 제외한 다른 시공에 우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행성 전역에 자신의 감각을 드리우는 초월자라면 지금 니백스가 한 일을 인지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그럴 리가 없다·”
레녹의 말을 이해한 니백스가 순간 멈칫거리더니 곧바로 부정했다·
“그것이 지금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어· 제 기억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열등종이 어찌 여기에 있단 말이냐?”
“····”
“허튼소리 하지 마라· 단명종의 거짓말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당장에라도 네놈을 죽여서-!!!!”
흔들리고 있다·
잔뜩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는 니백스의 반응 자체가 그녀가 품고 있는 역린 그 자체·
그 감정을 제대로 자극한 블러핑이 먹혔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이 곧바로 틈을 찌르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맞다· 그럴 리는 없지·”
레녹의 등 뒤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독으로 잠식되어가는 영역의 끝에 무표정한 백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갈색의 피부 위로 알 수 없는 복잡한 주술문자를 새긴 날카로운 외견·
인간의 몸이 어색한 것처럼 손끝을 만지작거린 그녀가 말했다·
“난 이미 여기 와 있으니까·”
[···!!!]
섬뜩한 침묵·
급격한 감각의 확장과 함께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비현실적인 이변·
즉시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올리비에라가 경악하고 레녹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잠깐 설마···!!!”
니백스가 한 일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고 예의 승천자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음에도·
그 추측을 블러핑으로 삼은 레녹조차도 이 자리에 그녀가 이미 도착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
레녹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장막을 넘고 안개의 우주를 주파해 도달한 이 외겁도시에·
그녀는 [우물]의 존재를 인지한 것만으로 이리 가볍게 자신의 의지를 내려보내고 있는 것인가·
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초월성에 레녹이 전율하고 경도당한 그 순간·
편람(偏濫) 파드메 키에사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
“탈태의 저주에 잠식되어 내게 동화될 장생종인가·”
“····”
편람의 눈짓 한 번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니백스의 모습·
하지만 승천자는 그런 니백스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가볍게 지나쳤다·
“제 풀에 꺾여 스러질 존재이니 신경을 쓸 일은 아니로군·”
천천히 레녹을 향해 다가온 승천자가 무심한 눈길을 들어 올렸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지·”
“···당신·”
숨이 멎을 듯한 정적·
방금까지 격렬했던 소란과 전투가 거짓말처럼 이 자리에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영역의 모든 힘과 의지가 단 한 사람의 초월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듯했다·
현실에서는 실로 간만에 느껴보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체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경이·
직접 마주하고도 믿기 어려운 섬뜩한 위화감을 억누르고 레녹이 겨우 입을 뗀 그 순간·
“오랜만이군 마법사·”
파드메 키에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을 향해 물었다·
“너 이 도시에서 승천자가 될 생각인가?”
“····”
나타나자마자 쿤다라에서 벌어지는 일의 본질을 찌르는 승천자의 질문·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편람의 말은 레녹이 그녀를 보자마자 생각했던 모든 화두를 뛰어넘고 있었다·
“천견의 마지막에 대해 네게 빚을 졌었지·”
어색한 움직임으로 손끝을 매만지던 편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원한다면 승천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시도해 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