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화· 꿈틀거리는 것들의 군주 ‘카알루트’ (1)
전 지역에 걸쳐 일어난 반격의 시작·
최적의 타이밍에 최강의 원군들이 가세했다·
“마무리만 잘하면 되겠네·”
진혁이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천세의 본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본진이 쑥대밭이 된 걸 알게 된다면 그 이상 무리하진 않을 것이다·
승산이 없는 드래곤들에게 충성할 정도로 그들의 유대관계가 돈독하진 않았으니까·
적당히 빠져서 세력을 온존하려 하리라·
그래야만 적어도 자신들이 가진 층계는 지킬 수 있을 테니·
“크아아악!”
“아 안 돼·”
고대룡들 역시 에테리온과의 격차에 절망하며 물러섰다·
마법의 위력도· 연산의 속도도·
마법들을 조합하고 배치하는 센스도·
아예 차원이 달랐다·
유일한 이점인 숫자를 통해 복잡한 난전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그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이제는 갖고 있는 것을 축내며 패배가 확정되기까지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여라·”
“힘내요!”
각 멤버들이 마지막 남은 마력을 쥐어짜냈다·
승리가 목전이다·
발목을 잡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며 더 이상 가로막는 게 없어 보였다·
그래· 그게 맞는 일인데·
쿠웅!
기묘한 굉음이 모든 것을 뒤틀어버렸다·
“···!?”
“무슨?”
“이건····”
드래곤들의 마력도 심장을 옭아맬 정도로 무거웠다·
상위 종인 고대룡들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고·
하지만·
저릿저릿!
지금 현현하고 있는 존재는 그와는 궤를 달리했다·
흐르던 마그마가 멈추고 하늘 위에 별이 그 빛을 잃었다·
“취르르릭····”
수많은 다리가 달린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설마·
진혁이 즉각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곳엔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현현해 있었다·
‘꿈틀거리는 것들의 군주’
‘태고의 카알루트’·
순백의 격류에서도 잠깐 마주한 적 있던 놈이 직접 나섰다·
‘에덴 쪽에서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여기를 눈치챈 건가·’
진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용맹의 왕관’마저 빼앗긴 시점에서 ‘신성의 왕관’을 지킬 거라고 계산한 게 틀렸다· 신성의 왕관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이쪽을 사냥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한 것이다·
일종의 양날의 검·
실패하면 뒤가 없는 승부가 시작되었다·
“취웨에에에에!”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포효가 일어났다·
시야에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지는 마력이 서막을 알렸다·
[‘벌레들의 연회장’이 발동됩니다!]
[이 일대가 ‘만찬의 영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벌레들이 쏟아졌다·
성서에 나오는 메뚜기의 저주처럼· 헤아릴 수 없는 벌레들이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젠장!”
“싸 싸워야 하는 건가요?”
“무리야· 저걸 무슨 수로····”
정신없이 싸우던 멤버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99%의 승리를 점치던 상황이 삽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니까· 전투냐 후퇴냐를 두고 서로의 의견이 엇갈렸다·
‘지금 당장 싸우면 승산이 없어·’
다들 한계에 이른 상태에서 저 괴물에 맞서는 건 자살행위다·
진혁이 나섰다·
촤르륵!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깊숙이 보관되어 있는 ‘네크로노미콘’이 꺼내졌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며 벌레들에 관한 부분에 책갈피가 뽑혔다·
‘태고의 언어’로 적혀진 내용들·
욱씬!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과부하가 온다·
진혁이 한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안구에 있는 수분이 모조리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앓는 소리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이 있더라도 대비책을 내놔야만 한다·
[거점의 고유권한이 발동됩니다!]
[특수 스킬 ‘철혈의 배수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일대는 1시간 동안 절대판정 ‘보호’의 권능이 깃듭니다!]
아예 차원을 도려내어 제3의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힘·
콰콰콰콰쾅!
콰콰쾅!
“키에에에!”
“케에에!”
벌레들이 미친 듯이 반투명한 장막에 부딪쳤다·
발톱을 휘두르고 이빨로 갉아대곤 있으나 차원 자체가 다른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거라면 1시간 동안은 버틸 수 있겠지·
⁕⁕⁕
“취라이브사 드 아드마무스···”
카알루트가 이질적인 방벽을 내려다봤다·
침투에 특화된 자신의 아이들이 들어가지 못하다니· 특이한 방법을 쓴 게 틀림없었다·
아마도·
그 책에 있는 힘을 사용한 거겠지·
역시나 저 인간은 위험하다·
내버려둔다면 반드시 자신의 일족에게 큰 해를 가할 게 분명했다·
“지 직접 오신 겁니까?”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고대룡들이 카알루트에게 날아와 고개를 조아렸다·
가뜩이나 어떤 식으로 튈지 모르는 태고의 존재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지금 당장 죽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덜덜덜·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긍지 높던 고대룡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취이우아! 카 타으라마!”
카알루트의 눈알들이 꿈틀거렸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고대룡들의 동공에 파고들었다·
‘용언’을 통한 정신방벽도 소용없다·
구조 자체를 바꿔버리는 절대적인 권능은 실낱 같이 버티던 의지마저 불살라버렸다·
그걸로 끝이다·
동공이 가늘어진 고대룡들의 몸이 축 늘어졌다·
환몽에 빠져들어버린 것이다·
사사사삭·
벌레들이 고대룡의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서서히 비늘을 파먹으며 심장이 있는 곳까지 파고들었다·
우우우웅!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뽑아먹고 기생하며 그 신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좀비· 위대한 존재들이 저런 비참한 꼴로 전락해버렸다·
“흐끅·”
지켜보던 사왕 백희가 딸꾹질을 했다·
같이 있던 고대룡들이 모조리 시체인형이 되어버렸으니 당연히 공포에 질릴 수밖에·
카알루트의 손짓 한 번이면 자신 역시 같은 처지가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카알루트는 백희를 건드리지 않았다·
“드· 우트라마 카 드락사호·”
“아 알겠습니다· 바로 돌아가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무엇을 지시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허리를 90도로 숙인 백희의 모습이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십이지는 아직 쓸모가 있다는 건가·’
진혁이 도망치는 백희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놈의 꿍꿍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 아니다·
저 거대한 군집체를 상대하는 게 급선무지·
“모기이이····”
고구마가 혀를 내민 채 숨을 할딱였다·
본신으로 돌아가 꽤나 무리를 한 탓이다·
하기야 혼자서 수많은 놈들을 찍어눌렀으니까·
“고생했어 정말로·”
진혁이 고구마의 입에 눈부시게 빛나는 마정석을 물려줬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
“아무리 짐이라도 지금 상황에선 저런 놈을 상대할 여력이 없구나·”
“쳇 크기만 하지· 별것 아니다· 단칼에 베어주지·”
곁에 있는 동료들의 표정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계속된 전투·
그것도 전력을 쏟아부으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상태였다· 애써 강한 척하고 있지만 당장 쓰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발세테르가 ‘미궁 개조’를 발동합니다!]
“저쪽을 좀 더 보강해! 식물들을 최대한 빼곡하게 배치해야 한다!”
발세테르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필리아를 비롯해 땅의 정령수들 역시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거점 방어에 전력을 다했다·
곧 있을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생존 가능성을 올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소용없어·’
아무리 방어를 강화한다고 해도 카알루트의 군세를 막을 순 없다·
1시간 안에 오긴 와야 할 텐데····
진혁이 힐끔 거점의 반대편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무언가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건가·’
‘신성의 왕관’을 가지고 와야 할 별동대 쪽도 잠잠하긴 마찬가지였다·
토르나 헤라클레스는 물론 오딘과 이집트의 주신들도 있는데 빈집인 에덴을 공략하지 못하다니·
이 또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테레사 씨·”
“네!”
“아무래도 주신들이 있는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쪽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모두들 에덴으로 가서 왕관을 확보해 주세요·”
“호 혼자서 상대하겠다고요?”
“무리다! 혼자서는 절대 안 되느니라!”
“아무리 네놈이라도 죽을 거다!”
“제자야! 이 스승보다 먼저 가려고 하는 게냐?”
“본좌 역시 반대다·”
뾰족한 목소리가 귀를 찔러댔다·
“완전히 혼자 싸우겠다는 건 아닙니다·”
마력공급을 좀 받아야겠다·
그게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만상공유’ – ‘블루 링크’가 발동됩니다!]
엘리스와 테레사 그리고 천유성과 천마에게 푸른 끈이 이어졌다·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가 쓸 겁니다· 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모두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조절할 거니까·”
애초에 무리를 해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모든 것을 전부 다 성공시켜야만 하는 싸움이기도 했고·
태고의 존재들에게 맞선다는 건 그런 불가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제자야· 무탈히 다시 보자꾸나·”
따뜻한 스승님의 격려와·
“다치지 마라· 네놈은 나와 승부를 내야 하니까·”
건방지지만 왠지 싫지 않은 놈의 툴툴댐과·
“무사해야 해요·”
피로가 사르르 녹는 웃음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감옥에서의 일 잊진 않았겠지? 계약자의 몸은 계약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네? 엘리스 씨·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엣헴! 바보 성녀는 몰라도 된다· 어른들의 대화이니 어린 애는 빠져 있어라·”
“진혁 씨! 이게 무슨 말인지 당장 해명부터 해주세요· 제가 분명 이번 일만 끝나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계약자는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만?”
“그거야 엘리스 씨 생각이고요!”
두 개의 목소리에 서서히 살기가 덧씌워졌다·
자칫하다간 타락한 인격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역시 훈훈한 이별은 우리 회사랑은 어울리지 않지·
내분으로 폭발해버리기 전에 당장 해산시켜야 한다·
[미궁 창조 ‘강제 추방’이 발동됩니다!]
진혁이 재빨리 미궁주의 고유성창을 발동했다·
파파팟!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만들어준 뒷구멍을 통해 모두가 거점에서 사라졌다·
시끌시끌하던 동료들이 사라지자 진혁이 정면으로 카알루트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진태청화랑심법’을 통해 흩어져 있는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최강의 폭발력을 발동하기 위한 준비에 몰두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쩌저적!
쩌적!
결국 단절되었던 차원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키에에에!”
“케에엑!”
심연의 벌레들이 득달같이 장막에 달라붙었다·
표면에 금이 가며 서서히 틈이 벌어졌다·
[‘주인 없는 그림자 식물’들이 깨어납니다!]
거점에 심어진 식물들로부터 보라색 화염구가 뿜어졌다·
퍼퍼퍼펑!
콰아앙!
하늘을 따라 눈부신 폭발이 일어났다·
전신이 타들어간 벌레들이 그대로 떨어졌다·
쩌저적!
이번에는 오른쪽에 균열이 일어났다·
수백 개의 식물들이 뿜어내는 화염구가 뚫린 구멍을 향해 미친 듯이 난사되었다·
확실히· 같은 50층의 공격이라면 어느 정도 통용은 된다·
어느 정도는 말이지·
문제는·
구멍이 뚫리는 지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지 진입했습니다!”
발세테르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제 시작이다·
진혁이 비장의 카드를 사용했다·
[고유성창····]
하스팅에게서 얻은 단 3번뿐인 기회·
[‘회귀자의 시간’이 발동됩니다!]
과거 사용했던 직업의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는 권능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