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화· 서로의 심장을 향해서 (1)
“적들이 저희 쪽에 총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라파엘과 우리엘이 이끄는 대군이 바로 베리엘의 영토를 침공했으며 그 규모는 에덴 전군에 육박한다고 했다·
천세 역시 부대를 3군데로 나눠 이집트와 올림포스 그리고 북유럽의 본진을 공격했다·
“그럴 리가····”
듣고 있던 진혁이 당혹감이 가득 실린 표정을 자아냈다·
분명 적들이 아군의 본진을 칠 수 있다는 건 염두에 둔 일·
그렇기에 각 길목마다 수많은 안전장치와 정찰조를 편성해 두었다·
만에 하나라도 적들이 그쪽을 노린다면 즉시 소식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
이태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기계군주’의 능력에 걸린 건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적들에게 내부 정보를 넘겨줬다는 뜻이네요·”
그것 외엔 없었다·
“그게····”
이집트의 전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
“생존자의 말로는 적들 사이에 백발의 소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검을 다루는 솜씨가 엄청나서 특히 눈에 띄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건가·
이제야 누가 뒤통수를 쳤는지 모두가 눈치 챘다·
페인 폰 아델·
몇 번의 전투에서 건성건성으로 모습만 보이던 귀환자가 적들 편에 붙었다·
더욱더 큰 자극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균형을 맞춰 자신이 원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심장을 노리게 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여기를 버리겠다는 건가?”
크로노스가 에덴의 수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주력이 모두 빠져나갔다는 건 곧 에덴의 수도 역시 지킬 병력이 부족하다는 뜻·
알맹이가 빠진 쭉정이가 되었다면 공략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 생각한 순간·
쿠쿠쿠쿠쿠!
저 멀리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에 막 왔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흉흉한 기운·
태고의 존재·
카알루트가 이곳에 있다·
워낙에 종잡을 수 없는 데다 자기 멋대로인 성격·
그렇기에 카알루트가 수도에 틀어박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네크로노미콘과 왕관들을 집어삼킬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거라 판단했지·
“크으으····”
“적응이 안 되는군·”
“저런 괴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된다는 건가·”
덜덜덜·
모두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심지어 그토록 호전적이던 헤라클레스와 토르마저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격이 다른 존재다·
멀리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송두리째 날려버리게 만들었으니까·
최강의 문지기를 데려다 놨으니 병력이 빠져도 상관없다는 계산이 섰겠지·
무엇보다 이쪽의 수가 읽힌 게 뼈아팠다·
“뚫는 수밖에 없어요·”
가브리엘이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다·
무엇이 저곳을 지키고 있던 간에 수도를 함락시켜야 천사들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선악과’라도 손에 넣는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천사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 텐데·
저 철옹성에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만 한다·
카알루트에 들키지 않으면서 선악과에 갈 수 있는 길을·
···빠르게 찾아야 한다·
아군의 거점이 쑥대밭으로 변하기 전에·
***
베리엘의 영지에는 에덴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유능력 ‘순례자의 길’이 발동됩니다!]
“길을 열겠습니다!”
아즈카엘의 호령에 황금빛 도로가 펼쳐졌다·
승리를 알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끝없는 에덴의 병력들이 몰려들었다·
콰콰콰콰쾅!
퍼어엉!
신성력이 중첩되며 온갖 종류의 성유물들이 개방되었다·
“막아라!”
“지긋지긋한 바퀴벌레들····”
“젠장· 아주 죄다 몰려왔어·”
베리엘을 따르는 고위 마족들이 치를 떨었다·
전초전도 없이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는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퍼붓고 대형급 마수들을 풀어놓으며 응전했으나 아무리 죽고 죽어도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콰아아앙!
성문이 박살났다·
수천이 넘는 희생 끝에 마침내 천사들이 방어선을 돌파한 것이다·
“베리엘은 어디 있느냐!”
“약해빠진 것들을 방패막이로 세우지 말고 당장 나와라!”
우리엘과 라파엘이 가장 먼저 성체 내에 진입했다·
눈부신 백색 날개가 완전히 펴졌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성화가 뿜어지자 하위 마수들이 두 눈을 감싸며 괴로워했다·
“크아아아·”
“키엑··· 컥!”
쿠쿠쿠쿠쿠쿠!
점점 더 넓게 퍼져나가는 빛·
어둠을 몰아내는 천상의 수호자들에겐 그 누구도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그때·
쿠웅!
누군가 성채 위에서 뛰어내렸다·
“이거 참····”
머리카락을 헝크러뜨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
동시에·
눈부신 빛이 어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오라는 루시퍼는 안 오고 웬 거지 같은 것들이 엮였구나·”
흑창 ‘키샨’을 든 베리엘이 전용 무장을 갖춘 채 성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쏴아아아····
불길한 마기가 지면을 따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빛과 어둠이 한 장소에서 격돌했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밀어내기 위해 거칠게 날뛰었다·
“드디어 마왕의 머리 하나를 더 수급할 수 있게 되겠군· 오거라· 일격에 끝내줄 테니·”
우리엘이 묵직한 철퇴를 들어올렸다·
“그런 말을 하던 천사 놈치고 살아남은 놈이 없는데 말이야·”
파치칙!
폭발하는 거대한 마력·
곧바로 서로의 숨통을 끊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다·
*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건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주신과 정예 병력을 급파한 터라 본진을 방어할 병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그 결과 파죽지세로 영토가 유린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비슈누와 브라흐마 무루간과 칼리를 포함한 천세의 대군이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특히나 가장 피해가 큰 곳이 이집트였다·
‘하얀 오아시스’에는 만다라의 효율을 극대화시켜 주는 ‘태양의 정수’가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
그것만 확보할 수 있다면 천세의 격이 갑절은 늘어날 수 있었다·
쿠쿠쿠쿵!
무너지는 고대의 유적들·
반파된 피라미드는 찬란했던 문명의 끝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환수 ‘스핑크스’가 왕가를 수호합니다!]
“크오오오!”
네 발 달린 짐승이 일어났다·
쾅! 콰앙! 콰콰콰쾅!
닥치는 대로 날뛰며 적들을 물어뜯고 짓밟는다·
날개를 펼치자 사막의 모래폭풍이 천세의 군대를 덮쳤다·
스핑크스가 선전하자 이집트 전사들과 거주자들 역시 사기를 되찾아 반격을 시작했다·
“주신들이 오실 때까지 버텨야 한다!”
“천세의 침략자들에게 겁먹지 마라!”
“위대한 태양의 의지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특유의 휘어진 곡도와 방패로 무장한 수비대가 마지막 남은 투지를 불살랐다·
하지만·
[칼리가 고유성창 ‘사망유희’를 사용합니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으으으····”
녹아내리는 갑주·
철과 살이 그대로 엉켜붙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뒤섞어버리는 저주받은 빛· 태양을 통해 구현화된 죽음의 가시광선이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무릎꿇렸다·
주신이나 영웅급에 해당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받아내기 힘든 능력이었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툭·
스핑크스 앞에 도착한 아델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휘어진 유검이 부드럽게 스핑크스의 발을 휘감았다·
퍼걱!
그것으로 끝이다·
“크오오오!”
앞발을 잃은 스핑크스의 균형이 무너졌다·
너무나도 깔끔한 일검이었다·
“덕분에 일이 아주 수월하게 풀렸다· 칭찬하마·”
비슈누가 아델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인간이 적들의 방어체제를 낱낱이 까발려준 덕에 들키지 않고 대군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자신들뿐이었다면 얼마 가지도 않아 발각되었을 것이다·
특히 헤임달을 통해 적들이 에덴으로 이동하는 타이밍을 알려준 게 가장 컸다·
가장 골치 아픈 진혁이 없는 틈을 노릴 수 있는 건 천금과 같은 값어치를 했다·
“헌데 어째서 처음 접촉했던 에덴이 아니라 우리 쪽에 붙기로 한 거지?”
“천사들 쪽이 영 비실비실해져 버렸거든· 그쪽을 도와봐야 나중에 남는 것도 없을 것 같아서· 막 말로 뭐가 있어야 약속을 지킬 능력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럴 바엔 아직까지 전력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천세 쪽에 붙는 게 낫겠지·
···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아델이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덧붙였다·
“크하하! 미래를 보는 안목까지 뛰어나군· 그래· 그대가 원하는 대로 최고의 칼부림을 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겠다·”
비슈누의 입가에 더욱더 진한 초승달이 그려졌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승리를 위한 쐐기를 박아넣을 수 있으리라·
***
같은 시각·
에드온과 에블린은 루시퍼에게서 얻은 아이템에 모든 심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툭 투두둑!
화산의 분화구 속· 작은 씨앗들이 쏟아졌다·
그 위로 두 고대룡의 마력이 담긴 농축액이 떨어졌다·
그러자·
[‘지옥 호수의 씨앗’이 발아합니다·]
콸콸콸!
씨앗 속에서 대량의 마그마가 흘러나왔다·
청록의 색을 띤 특이한 액체·
끝없이 흐르는 마그마는 이내 거대한 알들에게까지 이르렀다·
[‘드래곤의 알’이 태동을 시작합니다!]
두근·
두근···!
특별한 불꽃에 의해서만 태동하는 알의 특성·
본래라면 어미 드래곤이 갖은 애를 써가며 케어를 해야만 한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씨앗이 있다면 적절한 온도와 질 높은 마력을 무한대로 제공하는 게 가능하다·
그저 드래곤이 한 마리만 붙어서 마그마의 마력을 관리하기만 하면 될 뿐·
“곧 엄청난 수의 드래곤들이 깨어나겠군·”
“그래· 이거라면 디아문의 몫을 해주고도 남을 수 있어·”
수백 마리의 드래곤 군단·
그들이 뿜어내는 브레스는 적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까앙! 까앙!
한쪽에서는 새로 태어날 헤츨링들을 위한 전용 갑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장인들 중에 장인이라 평가받는 드워프들·
그들 중에서도 ‘펜타 혼’으로 추앙받는 최고의 망치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허억· 허억····”
“쿨럭! 쿨럭!”
오랜 노동으로 인해 다들 쇠약해지고 병든 상태·
망치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몸이 휘청휘청거렸다·
짜아악!
“크아아악!”
“엄살 부리지 말고· 빨리빨리 일해라· 게을러 터진 것들아!”
드래곤의 레어에 있는 트윈 헤드 오우거들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채찍을 휘둘렀다·
몇 마리가 죽든 상관없다·
한놈이 죽음으로써 나머지 놈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다른 곳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알들이 옮겨지고 있었다·
각기 다른 일족에서 낳은 알들이었다·
“조심히 옮겨라· 하나라도 잘못되면 우리 전부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터이니·”
“무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취익·”
근육질의 오크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움찔·
몇몇 알들이 아직 마그마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희미하게 태동했다·
물론 너무나 미미했기에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