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3화
후배가 갖고 돌아온 마법진을 본 유크벨티레는 경악했다·
현재 유크벨티레가 융합시키려는 마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바콴탈라나의 차원 막대·
평범해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매우 난이도가 높은 마법이었다· 유크벨티레도 직접 시전하는 대신 여러 마법진의 힘을 빌려 우회적으로 구현할 정도로·
차원이 변화하고 중첩되는 과정에서는 견고한 현실도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고 뒤흔들리기 마련·
이 때 어떠한 변화도 침범하지 못하는 불변성(不變性)을 일시적으로 막대기 형태로 빚어내는 게 이 차원 막대 마법이었다·
다중 차원을 빠르게 불러오고 변경하려면 이런 고정 마법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히만의 굴절·
이것도 차원 막대만큼이나 난이도가 높았다· 이건 강력한 굴절 형성으로 원래라면 연결될 일 없는 다른 차원들도 연결시키는 마법이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어려운 마법들을 굳이 강제로 합치지는 않았다·
유크벨티레가 천재긴 했지만 쓸데없이 비효율적인 짓을 하는 마법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두 마법을 합쳐서 효율을 올리고 남는 마력으로는 추가 차원을 확보해야 했기에 어떻게든 시도하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이럴 수가?!’
마법진을 모두 확인한 유크벨티레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후배가 학년에 맞지 않을 만큼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너무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유크벨티레 본인도 하지 못한 개선을 즉석에서 제출할 줄이야·
“어떻게··· 어떻게 한 거지? 아 그렇군· 가르시아 교수님이야· 그렇지?”
유크벨티레는 평소 냉정하던 태도는 어디 갔는지 당황해하며 어떻게든 납득하려고 노력했다·
“아닌데요· 교수님 아까 가셨잖습니까·”
“그러면 교장 선생님이군·”
“교장 선생님은 더 먼저 가셨죠·”
“그럴··· 그럴 수가?”
이한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선배를 위한 배려기도 했다· 공간 미궁 깊숙한 지하실에 젊은 해골 교장의 초상화가 있다는 건 꽤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인 것이다·
‘유크벨티레 선배가 목격했다가는 쓰러지실지도 모른다·’
“내··· 내가··· 후배보다··· 형편없는 마법을 구상해오다니···”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이한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만큼 눈앞의 선배가 충격이 커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크벨티레는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연신 중얼거리면서 ‘나는 자격이 없나’같은 소리만 해댔다·
“선배님· 일단 그럼 위의 도면부터 작성 시작하겠습니다!”
안되겠다 싶자 이한은 도면을 챙긴 뒤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서둘러 젊은 해골 교장을 만나 조언을 구할 생각이었다·
* * *
-자· 따라해 보세요· 미련을 버리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고· 물론 마법사 님이 원통한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마법사 님의 마법· 제자님에게까지 그걸 떠넘길 순 없어요·
-꺼내··· 줘···
‘음· 볼 때마다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지하실에 방문한 이한은 낡은 궤짝 안에서 울부짖는 유령과 그 앞에서 훈계하고 있는 젊은 왕자의 초상화를 보고 전율했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한이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거였지 평범한 에인로가드 학생이었다면 진작 쓰러졌으리라·
-앗· 제자님! 또 오셨군요!
젊은 왕자는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보다 더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자 이한은 갑자기 친구들이 환상 마법이나 흑마법에 당하고 발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친구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마력 많다고 무사태평하게 굴던 업보를 치르는 걸지도 몰랐다·
“스승님· 그··· 험하게 대해달라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시겠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요 제자님?
“저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잊어주십시오·”
이한은 재빨리 말을 돌리며 도면을 꺼냈다·
“아까 새로 융합해주신 압축 마법진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요·”
-흐음· 글쎄요··· 제자님에게는 어떤 시작이 어울릴까···
그림 속 젊은 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그러자 빛 계열 마법을 쓰지 않았는데도 지하실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 때 낡은 궤짝 안에서 다시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 내줘···
이한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심정이 이해가 갔던 것이다·
누군가 나도 꺼내줬으면!
-아무래도 이 마법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다보니···
“앗· 그러면 하지 말라고 전할까요?”
-제자님이 도전하시는데 도움은 못 될 망정 방해가 될 수는 없지요· 몇 가지 방법이 있답니다·
‘쳇·’
-지금 차원 왜곡에서 발생하는 압력을 견디는 건 이 석경(石鏡)인가요?
현재 도면에는 마법을 융합하고 시전하면서 발생하는 왜곡과 압력을 감당하기 위해 아티팩트 <유크벨티레의 석경>을 배치해놓은 상태였다·
“예· 아무래도 마음 같아서는 마탑 같은 구조물을 세워서 분산시키는 게 좋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보니···”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는 버릇을 들이는 건 실력 없는 마법사들의 습관이죠· 괜찮아요· 제자님· 이 아티팩트로도 그럭저럭 될 것 같네요· 대신 조금 개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주의점을 전달해주겠어요?
젊은 왕자는 작업의 시발점으로 배치해놓은 아티팩트를 개선하려고 했다·
이 아티팩트가 감당하는 왜곡량이 증가한다면 영특한 제자가 도면의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마법이 몇 개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 그런데 말입니다·”
이한은 머뭇거렸다·
사실 이렇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알려주는 사람 앞에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아까 선배가 받은 충격을 생각해보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주의점을 들으면 상대 마법사가 어느 정도로 충격을 받을까요?”
-네?
초상화 속 젊은 왕자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고민해줬다·
이윽고 왕자가 답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제자님· 이렇게 뛰어난 마법을 연구하는 후배가 주의점에 대해 조금 듣는다고 충격을 받을 리 없으니까요·
뛰어난 마법사는 다른 뛰어난 마법사를 알아보는 법·
젊은 왕자는 유크벨티레를 믿었다·
이런 마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개선 방향에 대해 듣는다고 충격을 받을 리 없었다· 오히려 신선한 자극을 받아 작업에 몰두하리라·
“과연· 알겠습니다!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 * *
쿵!
개선점을 들은 유크벨티레는 옆으로 쓰러졌다· 이한은 기겁해서 외쳤다·
“선배님!!”
“···소란피우지 말도록· 오랜 여정 때문에 피로가 남아있는 것 뿐이니까·”
“그런 것치고는 다리가 풀리셨는데요···”
이한은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핫초콜릿을 챙겨왔다· 원래는 가이난도가 먹을 몫이었지만 긴급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자기 가족이니까 가이난도도 괜찮아하겠지·’
“자· 드세요· 뜨거운 걸 마시면 좀 힘이 돌아올 겁니다·”
“초콜릿···”
“초콜릿?”
상대가 중얼거리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이게 핫초콜릿인데?
“···크림 웨이퍼 과자를 먹고 싶은데···”
“···”
이한은 순간 상대가 가이난도가 변신했나 싶었다· 그러나 마력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저번에 만들어준 거···”
“아니··· 그게 언제 때인데··· 그리고 그거 만드는 거 은근히 귀찮은데요·”
생각해보니 예전에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개소ㄹ··· 아니 고집을 부리던 선배를 위해 수제 과자를 대접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정작 몇 개 먹지도 않고 깨작대더니 이제 와서?
유크벨티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백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그걸 먹어야 일어날 기운을 되찾을 것 같다는 무언의 시위 같았다·
이한은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주방으로 다시 달려갔다·
‘젠장· 핫초콜릿 그냥 가이난도 줄 걸·’
“어? 이한 뭐해?”
마침 주방에 나온 가이난도가 이한을 보며 신기해했다·
이한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과자 만든다·”
“흥· 또 조우린 전하 때문에 만드는 거군·”
가이난도는 의외의 예리함을 발휘했다·
자신이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굳이 과자를 만들어 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드래곤이라고 과자를 대접받는다니·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무슨 동화도 아니고· 그리고 동화에서 그런 드래곤들은 다 혼이··· 어 이한· 여기 있던 핫초콜릿 어디갔어?”
“너희 누님이 마셨어·”
“···아덴아르트?!?!”
“아니· 그 위·”
이한은 대답을 마치고 돌아갔다· 가이난도는 혼란과 충격으로 황당해했다·
-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2학년 거라고 뺏어먹는다고?!
뒤의 고함을 두고서 서둘러 돌아온 이한은 선배의 주둥아리에 과자를 던져 넣었다·
“빨리 드시고 일어나십쇼· 이거 원래 과제 먼저 끝낸 놈한테 주는 건데·”
“으으읍·”
“그나저나 개선점은 좀 납득이 가십니까?”
“···”
적어온 개선점을 다시 읽자 유크벨티레의 눈빛에서 초점이 흐려졌다·
이한은 포기하고 말했다·
“사실 제 지하실에 젊은 교장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분께서 조언해주고 계신 거니까 그만 충격 받고 일어나세요·”
쿵!
유크벨티레는 다시 옆으로 쓰러졌다· 이한은 울적한 표정으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어째서인지 디레트 선배가 보고 싶었다·
* * *
-어서 오세요· 마법사 님·
“···”
유크벨티레의 눈동자가 오늘 보였던 움직임 중 가장 격렬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한이 옆에서 속삭였다·
“진정하시죠·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난 아주 침착해· 너야말로 진정하지 그래·”
“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한은 왼쪽을 보고 대답하는 유크벨티레의 모습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충격이 컸나?
그림 속 젊은 왕자는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제안한 마법은 확실히 탁월했답니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는데··· 굳이 두 마법을 지금 꼭 융합해야 하나요?
젊은 왕자는 유크벨티레가 무슨 마법을 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 두 마법의 융합은 거대한 목표의 과정 중 하나였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다·
물론 완성한다면 과정이 대폭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도전해야 할까?
-이 두 마법을 융합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길게 쓴다면 가능한 방법들이 다양할 텐데요·
“그렇습니까?”
이한이 의아해하며 선배를 쳐다보았다·
두 마법을 합쳐서 효율을 올리고 추가 차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꼭 있는 줄 알았지 다른 방법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이 사람 내가 돕는다고 해서 일부러 어려운 방법을 고른 건 아니겠지·’
“이유가 있긴 합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유크벨티레는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소속된 학파에는 버 모 교수가 있었는데 이 교수와의 말다툼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네 수준으로는 힘들다니까? 더 쉬운 방법으로 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
-어휴! 너는 마법 못해서 무리라니까! 만약 해내면 내가 다음 학기 동안 벤도졸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닌다!
-···
물론 유크벨티레는 학파 교수를 네 발로 기어 다니게 만드는 데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그건 딱히 남는 게 없는 아주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효율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판단했···”
-누가 봐도 네 발로 기어 다니게 하고 싶은 거잖아요!
젊은 왕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지적했다·
그런 하찮은 이유 때문에 제자까지 끌어들여서 이렇게 어려운 마법에 도전할 줄이야·
-마법사 님· 물론 지금은 분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겠지만 너그럽게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그런 사소한 말다툼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마법사 님의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렇죠 제자님?
“사실 저도 이 마법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