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1화
391. <화란전> 대본 리딩 2
MBS의 911호 <화란전> 대본 리딩 현장.
인사를 마친 민규리가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온다.
싹싹하고 예의 바른 모습과는 달리 민규리의 실제 모습은 정반대였다.
차후에도 팬들에게는 ‘밍규리’ ‘밍귤’ 등의 귀여운 애칭으로 불리지만 그녀의 본성을 아는 관계자들은 입에 담지 못할 호칭으로 불러대곤 했었다.
하여간 귀여운 외모와 실제 성격이 가장 다른 연예인 중 하나.
바로 그 민규리가 우리 앞에서 인사를 꾸벅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이렇게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송지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 너 오디션 때 그렇게 연기를 잘했다면서?”
“과찬이세요. 선배님.”
“과찬은 무슨. 오복희 PD랑 한 작가님이 똑같이 말하던데. 거물 신인 하나 나왔다고.”
“어머?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세요? 호호.”
민규리가 송지환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린다.
그러나 아내 바라기인 송지환은 민규리를 여자로 보기보단 그저 기특한 꼬맹이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면 둘이서도 인사해. 난 지영이랑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송지환이 지금 막 들어온 최지영과 인사하러 자리를 뜬다.
그러자 민규리가 유진이를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유진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민규리가 유진이를 향해 손을 내밀자 유진이가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물론이죠. 그리고 한 작가님이 캐릭터를 잘 살린다며 규리 씨 칭찬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기대 많이 하고 있어요.”
순간 민규리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진짜요? 그냥 하던 대로 한 것뿐인데~ 작가님도 참.”
민규리가 뻔뻔하게 답하자 유진이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신인의 당돌한 태도가 귀엽다는 듯.
하지만 다음 말에는 유진이도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선배님. 조심하세요. 저 진짜 제대로 마음먹고 연기하면 선배님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유진이가 조연일 때 늘 하던 일을 이번엔 자신이 하겠다며 포부를 밝힌다.
유진이가 성격이 좋아 그렇지.
주영인 같았으면 대번에 한소리를 했을 거다.
오냐오냐해주니까 보이는 게 없냐면서.
하지만 유진이는 민규리의 도발을 가볍게 흘려 버렸다.
“당찬 후배님이시네. 좋아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민규리가 살짝 당황한다.
“아 네. 네······ 그러면 나중에 또 봬요 선배님.”
도발에 실패한 민규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유진이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쟤 생긴 건 귀엽게 생겼는데 성격은 만만치 않겠는데요?”
“그래서 내가 늘 말하잖아. 연예계에서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유진이는 새삼 연예계가 놀라운 듯 혀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어쨌건 신인 배우가 주연 배우에게 다가와 첫인사로 한다는 말이 저딴 수준이라니.
순간 난 미뤄뒀던 민규리에 대한 평가를 확정 지을 수가 있었다.
사람은 어지간해서 변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속속들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 거였다.
더 큰 다행은 내가 그녀의 매니저가 아니라는 거고.
* * *
배우들이 다 자리에 앉자 오복희 PD와 류한준 CP 그리고 한우주 작가가 들어왔다.
오복희 PD가 연출석에 앉은 뒤 모두를 쳐다보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예. PD님.”
“좋은 아침이에요.”
배우와 스태프들의 인사를 받은 뒤 오복희 PD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출을 맡은 오복희입니다. 크랭크인이 일주일 뒤라 대본 리딩을 좀 앞당겼어요. 다들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으셨을 테니 오늘은 분위기만 잡는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이어서 류한준 CP가 일어나 인사한 뒤 한우주 작가가 일어났다.
“현재 대본의 중반부 집필 중인데 최대한 빨리 완성되는 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한우주 작가를 다음으로 배우들의 인사가 한 바퀴 돌았다.
오복희 PD가 대본책을 펼치며 말한다.
“그러면 1화 3 씬부터 보겠습니다.”
팔락팔락.
대본 책이 일제히 넘어가는 소리가 울린다.
“일단 미소부터 시작해 볼까?”
“네!”
대답을 마친 미소가 짧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와 동시에 미소의 얼굴이 눈 깜짝할 사이 변해버렸다.
이제껏 천진난만한 일곱 살 아이의 얼굴에서 신라의 어린 둘째 공주 얼굴로 말이다.
빠르게 배역에 몰입한 미소는 오디션 때 보여준 것보다 한층 더 놀라운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 * *
“오케이! 아역들 대본 리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미소 이지 공주. 세 사람 모두~ 너무 훌륭했어요.”
미소와 아역들이 열띤 대본 리딩을 마쳤다.
감정이 선명히 살아 있는 대본 리딩에 오복희 PD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감사합니다! PD님!”
오복희 PD가 뿌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요즘은 아역들 수준도 장난 아니죠?”
이 왕후 역의 최지영 배우가 대답한다.
“이거 아차 하다가 미소보다 연기 못한다고 혼나겠는데요?”
연이어 배우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역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면 우린 뭘 해 먹고 사나?”
“미소야. 살살해 살살.”
아역들의 열연에 대본 리딩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이어서 오복희 PD가 1화 씬 15를 가리켰다.
“그러면 이젠 1화 씬 15. 송지환 배우님.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 주세요.”
1화의 씬 15는 공주들이 궁 밖에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엄히 꾸중해야 하는 씬.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송지환이 대본을 들고 긴 한숨을 내쉰다.
“후우.”
오랜만에 사극을 하게 된 터라 조금은 긴장한 모양이다.
몇 번의 심호흡을 끝낸 송지환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왕후들은 대체 공주를 어찌 가르치길래 서라벌을 이리 소란스럽게 하는가! 내 일국의 왕이기 이전에 아비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도다!』
중후한 탁음이 쩌렁쩌렁하게 대기실을 울린다.
마치 호랑이가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에 배우들이 깜짝하고 놀랄 정도였다.
위엄 있고 절도 있는 표정으로 송지환이 대사를 마치자 이젠 이태연의 차례가 되었다.
이태연은 마치 진짜 왕후가 된 듯 도도해 보이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세 공주역의 배우들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은 이태연은 송지환을 돌아보며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신첩의 잘못이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정화 유화 도화 공주 세 사람은 모두 신첩이 직접 나서서 엄히 가르치겠나이다.』
이태연이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고개 숙인다.
그러나 그 순간 이태연이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생각에 의도가 있다는 걸 간단한 표정만으로 선명히 드러내었다.
과연 S급 배우라고 불릴 정도의 연기다.
그때 3 왕후역의 윤주연이 지지 않겠다는 듯 거칠게 대사를 이어받았다.
『대왕! 그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셋 중 둘이 죽고 남은 하나가 신국의 대들보가 된다는 무무의 예언을 기억하시옵소서!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지 어찌 우리 공주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일 왕후에게 도화 공주를 맡기려 하시옵니까?』
윤주연은 이태연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몸을 부들부들 떤다.
격정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드러낸 덕에 현장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태연이 윤주연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외쳤다.
『내가 도화 공주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 무슨 망발인가?』
『흥! 서라벌 천지에 그걸 모르는 이도 있단 말입니까? 일 왕후가 어린 꽃들을 다 꺾어놓을 거라는 이야기를 정녕 들어보지 못하셨단 말씀입니까?』
그저 대본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진심으로 원수라도 된 듯 오가는 말에 살기를 더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두 사람의 수준 높은 연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순간 대본 리딩에 참석한 배우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본의 페이지를 넘기기 바빴다.
그러나 단 한 명.
유진이만큼은 태연한 얼굴로 선배들의 템포를 곱씹으며 대본 리딩을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당장 두 사람의 연기에 끼어들어도 자신 있다는 듯 말이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10분이 흘러갔다.
조연들의 연기만 봤을 뿐인데도 스태프들은 마른침을 꼴딱 삼키며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어 마치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톡 하고 찌르면 터질 것 같았다.
잔뜩 들뜬 오복희 PD는 연이어 4화로 대본을 넘겼다.
“후아~ 다들 내공이 장난 아니시네요. 그러면 다음은 세 공주가 국선에게 처음 인사를 받는 장면으로 넘어가죠. 오태혁 씨부터 바로 이어서 들어가시죠.”
극 중 화랑들의 수장인 국선 역은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 ‘레이븐’의 리더인 22살의 오태혁이 맡았다.
내 기억에 오태혁은 처음 연기를 할 때 많이 서툴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실전을 치르며 빠르게 연기가 늘어 조만간 연기돌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잘생긴 얼굴에 수많은 팬덤 그리고 쓸 만한 연기력까지.
게다가 성격마저 좋아 내가 회귀 전 죽기 전까지 승승장구하는 인물이었다.
오태혁이 몇 번의 심호흡을 한 뒤 대본 리딩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전 워낙 수준 높은 연기를 본 까닭일까.
오태혁은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고 공주마마······를 뵈 뵈옵니다.』
현장의 모든 배우들이 얼굴에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대부분 아이돌은 연기력을 기대하고 뽑는 게 아니라 드라마의 화제성을 위해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복희 PD는 오디션만으로 오태혁을 뽑았지만 선입견이라는 건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오복희 PD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끊고 가려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진이가 눈웃음을 지으며 애드립으로 오태혁의 대사를 받아 버렸다.
『국선. 왜 이리 떠시는 겁니까? 혹 저희 중 마음에 품은 이라도 있으신 겝니까?』
다들 대체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유진이를 쳐다봤고 오복희 PD 역시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유진이는 모두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태혁을 지긋이 쳐다보며 기다려줬다.
시간을 벌어준 덕일까.
오태혁이 정신을 붙들고 대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서라벌 전역에 소문난 세 공주마마를 뵈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어서 그만······.』
이 업계에서는 한 번의 NG 때문에 연기를 그만둘 수도 있다.
없던 카메라 울렁증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나 유진이는 주연 배우로서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오태혁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쟁쟁한 배우들이 한데 모인 터라 다들 자기 연기를 신경 쓰기도 바빴는데 말이다.
상황을 이해한 오복희 PD와 주변 스태프들이 작은 감탄사를 토로한다.
첫 주연작이라 자기 자신 하나 추스르기도 벅찰 텐데 넓은 시야로 동료를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진이 덕에 오태혁이 NG를 넘기자 연기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한상희와 민규리도 끼어들어 연기를 이어갔다.
두 사람 역시도 오디션에 그냥 통과한 게 아니라는 듯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상희는 날 선 말투로 예민한 정화 공주를 연기했고 민규리는 통통 튀는 듯한 말투로 도화 공주를 연기했다.
그렇게 네 사람은 물꼬가 트인 연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긴장감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유진이의 차례가 되었다.
유진이가 따뜻한 눈빛으로 오태혁에게 묻는다.
『그러면 국선은 저희 셋 중 누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때였다.
홀린 듯 연기를 하던 오태혁이 대본과는 다른 대답을 해버렸다.
『전······ 유화 공주님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옵니다······.』
원래 오태혁이 이어야 할 대사는 ‘도화 공주’.
그러나 오태혁은 유진이에게 홀려 엉뚱한 대답을 해버렸다.
순간 오복희 PD가 웃으며 대본 리딩을 중지시켰다.
“풉. 태혁 씨. 거기서 유화라고 하면 어떻게 해? 도화 공주와 썸이 시작되는 장면인데~”
연기를 멈춘 오태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제 제가요?”
“뭐야?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어?”
당황한 오태혁이 안절부절못한다.
그의 귓불이 점점 발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복희 PD가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기 시작했다.
“우리 유진 씨가 국선을 낚아 버렸네요. 이걸 어째? 한 작가님. 대본 다시 쓰셔야겠는데요?”
한우주 작가가 활짝 웃는다.
“PD님. 지금 대본 바로 다시 쓸까요? 국선이 유화한테 반하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요?”
“에이~ 그러면 내용이 다 달라지잖아요.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안 돼요 안 돼.”
PD와 작가 두 사람의 대화에 배우들도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오태혁은 목이 타는지 떨리는 손으로 500ml 생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한상희와 민규리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인다.
마치 유진이가 짜 놓은 판에서 말이 된 것처럼 철저히 유진이의 연기에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소란이 잦아들자 오복희 PD가 대본책을 잡으며 외친다.
“유진 씨 덕분에 좋은 연기 봤네요. 그러면 긴장 좀 풀고 다시 한번 해봅시다. 태혁 씨. 괜찮겠어요?”
“예! PD님.”
“그러면 상희 씨랑 규리는 어때요?”
“전 괜찮아요.”
“저도요.”
두 사람이 각오에 찬 표정으로 대답하자 오복희 PD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그러면 바로 가보죠.”
그 이후.
안정을 찾은 오태혁은 훨씬 좋아진 연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과는 달리 현역 아이돌치고는 제법 싹수가 있다면서.
그렇게 선입견을 털어버린 오태혁은 한결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반면 한상희와 민규리는 조금 전보다 힘이 과도하게 들어갔다.
유진이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연기를 이어가던 도중.
민규리가 과장된 표정으로 오태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순간 오복희 PD가 민규리의 연기를 멈춰 세웠다.
“스탑. 민규리. 왜 거기서 오버해서 화를 내? 캐릭터가 그게 아니잖아.”
민규리가 아차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민규리. 잘하고 싶다는 열정은 좋은데 오버하지 말고 선배들 연기에 맞춰! 알았어?”
멋대로 연기한 민규리의 기를 조금 억누르기 위해 오복희 PD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고개를 숙인 민규리가 혼잣말로 조용히 투덜거린다.
“아 씨······ 맞게 한 거 같은데······.”
민규리는 TNT 엔터에 스카우트 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방송국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운 이들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잔소리를 듣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그런데 하필이면 오복희 PD가 그 소리를 들어 버렸다.
오복희 PD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친다.
“아~ 씨~? 야! 너 지금 뭐랬어?”
오복희 PD의 질책을 받자 민규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고 치겠네.’
아니나 다를까.
민규리가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쌩하고 문 쪽을 향해 달려간다.
벌컥.
민규리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역시 민규리네.’
회귀 전에도 민규리는 뜻대로 안 되거나 압박을 많이 받으면 가끔 이렇게 현장에서 이탈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던 나와는 달리 대본 리딩장에 모인 모두는 민규리가 보인 돌발 행동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저거?”
오복희 PD 역시도 잠깐 벙찐 표정을 짓다 이내 문밖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민규리 매니저! 당장 들어와요! 배역 잘라버리기 전에!”
오복희 PD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