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0화
360. 선물 2
현재 선전시의 부서기인 왕민도 고심해야 할 만큼 장웨이 회장이란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은인인 내 편에 서주겠노라 다짐했다.
심지어 리커준 사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힘든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친구지.”
순간 나도 모르게 짧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장웨이 회장 쪽은 북경 파벌 우리는 상하이 파벌에 속한 처지라 어차피 정적이나 마찬가지일세. 전면전은 불가능하지만 견제하는 것 정도는 해줘야지.”
두 사람은 적어도 장웨이 회장이 날 직접 노리는 것만큼은 막아주겠노라고 말한다.
중국 내에서 정신없이 흔들어 대면 당분간 한국 쪽에는 신경도 쓰지 못할 거라면서.
다만 김동수에 대한 자금 지원까지는 모두 차단할 수 없었다.
돈이라는 건 주인도 없고 눈도 없는 것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전해질 수 있다며.
리커준 사장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도 당에서 나서면 장 회장이 한국으로 보내는 돈도 십 분의 일로 줄어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완벽하진 않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머지는 다이어리가 알려줄 테니까 말이다.
난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견제만으로 충분합니다. 부서기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래도? 한국에서는 친구 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부른다면서?”
난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요구대로 대답했다.
“예. 아버님.”
“그래. 훨씬 듣기 좋군. 그나저나 장웨이 회장과 자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난 한국에서 장웨이 회장과의 만남 이후 그가 날 노리고 있는 사실에 관해 말했다.
백지 수표를 내밀어서 거절했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들은 왕민 부서기와 리커준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 천하의 장웨이 회장이 나서도 안 풀리는 일이 있구먼!”
“사돈어른. 우리 일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만.”
“그렇군요. 장웨이. 그 인간이 욕심을 낼 정도니 쉽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장 회장이 화연 한국 지사를 만드는 건 저희 쪽에서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한국 지사가 뚫린다면 우리 견제가 쉽지 않아질 테니까요.”
“하하하. 당 고위 간부들이랑 술 마시느라 간이 좀 고달파지겠습니다?”
“하하하. 그깟 간 정도야! 제가 좋은 약 지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어렵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람의 재능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장웨이 회장이 직접 찍었을 정도라면 내가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졌는지 알겠다면서 말이다.
왕민 부서기가 웃으며 왕룽에게 말한다.
“룽아. 장웨이 회장이라면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거다.”
왕룽이 씨익 웃는다.
“윤호 이 친구와 함께라면 상대가 누구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왕민 부서기가 껄껄대며 웃는다.
“어쩐지 네가 윤호를 꼭 짚어 친구로 삼고 싶다더니······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오늘의 만남을 축하하는 잔을 들었다.
쨍!
샴페인이 담긴 크리스털 잔이 경쾌히 울리며 동맹의 출발을 축하했다.
* * *
부탁을 마친 난 다음으로는 링링의 한국 진출 건에 대해 보고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목에 스카프를 두른 링링은 엄마를 쳐다보며 연신 눈을 끔뻑였다.
아빠가 반대하지 않게 도와달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링링의 엄마가 오히려 더 날 선 질문을 쏟아내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아이돌을 관리하는지 어떻게 데뷔를 시킬 건지 등등에 관해 말이다.
난 곧바로 서연우가 준비한 육성 스케줄 표를 내밀었다.
동시에 굴렁쇠 엔터의 스태프들이 평가한 링링의 성장 가능성에 관해서도 알려주기 시작했다.
“저희 스태프들 모두가 링링이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어에 능통한 것과 밝은 성격 탓에 A급 이상으로 커갈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링링의 부모님들은 서연우가 작성한 스케줄 표와 내가 준비한 보고를 듣는 순간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로 꼼꼼한 계획표는 우리 레드페이 직원들도 못 하겠는데?”
“그러게요. 직원들한테 샘플로 보여줘야겠어요.”
‘레드페이? 그러면 리커준 사장이 그 레드페이의 리커준이었어?’
순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써야 했다.
레드페이는 앞으로 2년 뒤 상하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주가 총액 수 조짜리가 되는 전자결재 시스템 회사였다.
그런데 그 공동 대표가 링링의 부모였다.
어쩐지 수십 수백억의 비용을 대면서 회사를 차려준다는 걸 서슴지 않더라니.
그게 다 그 이유가 있었다.
서연우가 만든 계획표에 만족한 링링의 부모가 내게 최종적으로 부탁을 해온다.
“우리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스타로 만들겠습니다.”
순간 링링이 벌떡 일어나 엄마 아빠를 껴안았다.
“엄마 아빠. 고마워요!”
링링의 부모는 링링을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
“네!”
그렇게 링링은 앞으로 한 달 뒤.
국제학교의 편입 과정을 끝내고서 한국으로 넘어와 트레이닝하기로 결정 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리커준 사장이 모든 추가 제작비를 지원할 테니 이런 건 어떠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왕이면 일본 쪽 친구들도 엮어서 한-중-일 삼국 프로젝트로 하면 어떻겠나? 필요에 따라서는 한국 중국 일본 팀 세 개의 유닛으로 나눠서 활동도 하고.”
사업가라 그런지 의견 개진에 적극적이었다.
나 역시 생각했던 아이디어였는데 제작비 지원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 가칭 ‘KCJ’가 첫 신호탄을 울렸다.
* * *
상하이 공항.
왕룽과 릴리 그리고 링링이 내 출국을 배웅하러 찾아왔다.
왕민 부서기와 리커준 사장에게 받은 선물뿐 아니라 릴리와 링링에게 받은 선물을 카트에 싣자 왕룽이 귀띔을 해 준다.
“아버지가 너한테 따로 이야기하라더라. 네 앞으로 주어진 매년 1장의 쿼터는 유효하다고.”
왕민 부서기는 아들을 구한 대가가 아닌 아들 친구의 아버지가 된 기념 선물로 준다고 한다.
“어차피 네가 안 받으면 사라지는 거야. 받아 둬.”
잠깐 고민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거절하는 것도 무례였다.
“이건 거절할 수 없겠네.”
중국 출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난 왕민 부서기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종종 안부 전화하게. 직접 오면 더 좋고.
“자주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
-하하 그래 그래.
친구의 아버님이지만 내게도 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한 명 생겼다.
어쩌면 이게 그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인천공항.
중국에서 일정을 끝내고 같이 돌아왔지만 주영인은 수많은 팬과 함께 먼저 공항을 빠져나갔다.
나 역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 2박 3일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자들까지 따라 나가고 공항이 한가해진 후에야 서연우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대략 2시간이 걸려 천호동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연우는 할머니가 걱정된다며 부리나케 차에서 내렸다.
“형 저 먼저 가볼게요.”
“그래. 할머님께 안부 전하고. 나도 내일쯤 인사드리러 갈게.”
“네!”
맞은편 집으로 이사했기에 대문을 열고 곧장 달려가는 서연우였다.
난 주차를 마치고 나오며 경호원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확인했다.
중국에서 주영인과의 스캔들을 막느라 고생한 덕에 지켜진 평화였다.
경호원들에게 인사를 한 뒤 중국에서 가지고 온 선물과 캐리어를 이끌고 1층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1층에선 정인지 주인아주머니와 하루의 엄마 나탈리아 그리고 유진이와 미소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이다!”
미소가 벌떡 일어나 빠르게 현관문으로 달려왔다.
고작 이틀을 못 봤을 뿐인데 한두 달은 못 본 듯 반기고 있었다.
“으차~”
달려온 미소를 품에 안은 난 중국에서 가지고 온 캐리어를 가리켰다.
“미소야. 이건 중국 팬들 선물이야. 과자랑 팬레터.”
유진이와 미소의 중국 팬클럽 ‘유앤미’의 회장인 링링은 유진이와 미소 앞으로 팬레터와 선물을 잔뜩 전해줬다.
선물이 잔뜩 든 캐리어를 내밀었지만 미소는 슬쩍 고개를 젓고는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왜? 어서 포장 뜯어 봐.”
“으응. 선물보다 삼촌이 온 게 더 좋아요.”
미소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틀간의 피로가 씻은 듯 날아갔다.
“오빠. 수고 많으셨어요.”
“수고는 무슨. 별일 없었지?”
“네. 미소랑 다음 주 오디션 준비한 것 말고는 별일 없어요.”
현재 <화란전>의 대본은 14화까지 나온 상태로 다음 주 목요일부터 아역들의 오디션이 시작된다.
유진이도 이달 말로 잡힌 <화란전> 크랭크인에 대비하느라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 유진이는 처음 도전하는 사극 연기를 조금은 어려워하고 있다.
“왜 그래?”
“발성이 조금 어려워서요.”
“사극 대사랑 발성은 ‘이사랑’ 배우님이 전문이니까 배우님한테 레슨 좀 해달라고 연락해 볼게.”
유진이가 씨익 웃는다.
“역시 나한테는 오빠가 있어야 해요.”
고작 2박 3일의 일정이다.
하지만 유진이는 내가 없으니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며 장난스레 대꾸한다.
그런데 주영인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는데도 유진이는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있었다.
“삼촌 이거 풀어봐도 돼요?”
미소가 캐리어를 가리킨다.
“어. 풀어봐.”
“네~”
미소가 캐리어를 풀고 선물을 확인하는 사이 유진이가 음료수를 가지고 오겠다며 주방으로 향했다.
난 그 틈을 타 슬그머니 유진이를 따라갔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물어봐?”
주영인이 한 고백 때문에 괜스레 유진이가 신경이 쓰였다.
유진이와 사귀냐고 한 질문은 메아리가 되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기 때문이다.
주영인에겐 아니라고 했지만 유진이를 본 순간 괜스레 심장이 뛰었다.
마치 큰 잘못을 한 사람처럼 말이다.
유진이가 음료수를 꺼내며 환하게 웃는다.
“무슨 일이 있었으면 오빠가 먼저 이야기했겠죠.”
양심에 걸려 주영인이 고백을 했었다는 걸 밝히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유진이의 말이 빨랐다.
“그리고······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전 오빠 믿어요.”
유진이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내 대답도 듣기 전 유리컵에 주스를 담아 거실로 향하며 외친다.
“우와~ 미소야. 이게 뭐야?”
미소가 캐리어에 담긴 자신의 선물을 들어 올렸다.
보라색 중국풍 의상을 입은 커다란 인형이다.
“강시 파워터프걸 인형! 한국에는 안 파는 거야!”
“어머나! 우리 미소 좋겠네~”
환하게 웃는 유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매니저인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매니저로 있는 한.
연애가 아닌 배우 정유진과 정미소를 성장시키는 게 내 첫 번째 일이었다.
그때 미소가 해맑은 표정으로 날 향해 손짓한다.
“삼촌! 같이 과자 먹어요.”
난 환히 웃으며 미소에게 대답했다.
아무리 모진 운명이 내 앞을 가로막아도 미소의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지켜주겠노라 다짐하면서.
“그럴까?”
유진이 역시도 내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 * *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정 팀의 회의부터 소집했다.
중국에서 운명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마음을 먹었다.
김동수가 앞을 가로막든 방상영 이사가 내 발목을 잡든 최만식 대표가 날 노리든 간에 모든 걸 뚫어낼 생각으로.
그러기 위해선 첫 번째로 굴렁쇠 엔터의 장악이 우선이다.
아침부터 회의를 소집했지만 ‘정 팀’의 매니저들은 오히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 내가 이룬 성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작품. 한한령에 걸리지 않도록 중국에 팔 권리를 따 왔어.”
이영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다.
“지 진짜 한한령을 뚫으셨다고요?”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렇게 됐어.”
한국 1위 엔터인 에이스 엔터도 하지 못한 성과를 낸 게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단 이건 우리 정 팀만 알고 있어야 해. 쿼터가 굴렁쇠 엔터가 아니라 내 앞으로 되어 있어.”
“역쉬~ 우리 정 팀장님!”
강감찬 대표에게는 말을 하겠지만 나머지에게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권한을 탐낼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다음 안건. 팀원 확충과 인원 구성에 관해서 이야기하죠.”
강감찬 대표는 박인기 팀장 말고도 배우와 가수 팀을 맡을 팀장을 늘이라고 지시했다.
난 그 첫 번째 승진 대상을 은지유 대리로 삼았다.
“일단 가수 담당 팀장은 은지유 대리님이 맡을 겁니다.”
남 일인 듯 메모하고 있던 은지유 대리가 눈을 끔뻑인다.
“제 제가요?”
“예. 골든로드를 사실상 혼자서 케어하셨던 경력도 있고 체리블라썸의 컴백도 은지유 대리님이 혼자 하고 계시니까요.”
“일은 가수 2실의 한 팀장님이 다 하셨는데요?”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너무 겸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그 한 팀장님도 은 대리님을 추천하셨으니까요.”
은지유 대리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은 대리님! 축하해요!”
은지유 대리만 빼고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이어서 난 이영진을 쳐다봤다.
“영진아. 배우 팀장은······.”
“고맙긴 한데 전 아직 아닙니다. 진짜.”
“그래. 아쉽게도 사람들 눈이 있어서 넌 이번에는 승진이 힘들 거 같아.”
이영진도 납득한다는 듯 말한다.
“당연하죠. 벌써 대리 단 것만 해도······.”
“하지만 내년 2분기에는 우리 실에 팀 하나를 더 런칭할 거야. 넌 거길 맡을 준비나 해.”
“예?”
내 밑에 한 개의 팀은 박인기 팀장의 몫이다.
다른 한 개 팀은 배우 1실에서 영입을 할 거고.
하지만 세 번째 팀은 이영진이 맡아줘야 했다.
이영진이 눈을 끔뻑거린다.
“대체 배우들을 얼마나 데려오시려고요?”
현재 정 팀에는 S급의 정유진과 이태풍 그리고 성호준이 있고 A급으로는 하루와 미소가 있다.
차기 S급 배우나 다름없는 유은아까지 하면 총 6명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추가로 영입할 리스트를 간추려 보자 정실모 2명을 제외하고도 대략 15명 정도는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모조리 A급으로.
그 순간 이영진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하지만 난 이영진의 얼굴이 풀릴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근데 그중 3명은 배우 3실에서 데리고 올 거야. S급 1명 A급 2명으로. 그리고 그게 누구냐면······”
본격적인 배우 3실 공략에 나선 순간 모두가 입을 쩌억 벌린다.
내가 말한 배우들은 김동수가 직접 스카우트한 배우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