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7화
347. 이형문 1
강북 칠성 병원 주차장.
하루에게 후드티를 입힌 뒤 야구 모자까지 씌우고 마스크를 씌웠다.
<먹방의 테이블> 결승전 현장에 잃어버린 엄마가 나타난 사건으로 현재 하루는 한국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렇게 변장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기억이 돌아오긴 했어도 아직 완전치는 않아. 그러니까 직접 뵈었을 때 너무 놀라지는 마.”
“예. 알겠어요.”
병원에 오는 동안 나탈리아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해준 덕에 하루는 꽤 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 잠깐만 전화 좀 할게.”
김철수 원장에게 전화를 걸자 현재 응급실에서 VIP 병실로 옮겼다는 대답이 나온다.
-VIP 병실 1101호입니다. 하루 군을 생각하니까 일반 병실로 옮길 수는 없더라고요.
“아 그러면 병원비는 저희가······.”
그때였다.
하루가 내 곁에서 외친다.
“형. 제가 낼게요. 제가 내게 해주세요.”
자신을 위해선 과자 하나도 사지 않던 하루는 엄마를 위해 하룻밤에 백만 원도 넘는 VIP 병실비를 내겠다며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김철수 원장이 먼저 대답했다.
-이미 제가 지불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바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김철수 원장은 괘념치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하루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형······ 대체 김 원장님은 누구세요?”
대충 짐작은 가는 사이지만 하루에게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내가 아는 것만 대답했다.
“지난 5년간. 엄마를 지켜준 분이셔.”
하루가 잠깐 멈칫거린다.
“고마운 분이네요······.”
하루의 말에는 복잡한 감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자자. 지금은 엄마만 생각하고 어서 올라가 보자.”
난 차에서 먼저 내린 다음 하루의 몸을 가리며 VIP 전용 통로로 이동했다.
* * *
50평이 넘는 VIP 병실 1101호.
침대에는 진정제를 맞고 쉬고 있는 하루의 엄마가 있었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이 기기를 보며 나탈리아를 확인하고 있었고 김철수 원장은 곁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핏기가 사라진 엄마의 얼굴을 보자 이제껏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하루가 다시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다.
“엄마······.”
순간 신경정신과 과장 최일준이 하루를 다독였다.
“하루 군. 어머님은 수액을 다 맞으시면 금방 깨어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야. 여기 앉으렴.”
김철수 원장이 옆을 비워주자 하루가 감사를 표하며 보조 의자에 앉았다.
하루는 엄마의 손을 꼭 쥔 뒤 눈을 감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수액이 바닥을 드러낼 때 즈음 나탈리아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곁을 지키고 있던 하루가 반사적으로 외친다.
“엄마. 괜찮아?”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탈리아가 눈꺼풀을 힘겹게 든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마치 수도꼭지를 튼 듯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다렸다는 VIP 병실 간호사가 달려와 눈물을 닦아주며 전동 침대를 작동시켰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전동 침대 등받이가 수직으로 일어섰다.
“아으······ 아으······.”
나탈리아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간호사가 외친다.
“억지로 말씀하려 들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하루가 나탈리아의 손을 꼭 쥐며 말한다.
“엄마. 나 괜찮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말해.”
나탈리아는 자기 아들의 볼을 어루만지며 힘겹게 말을 떼었다.
“하 하루야······ 엄마가······ 진짜 진짜······ 미안해······.”
“아냐 엄마. 나야말로 미안해. 엄마를 조금 더 빨리 찾았어야 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힘든 것도 모르고 나만······.”
“아냐 엄마가 집을 그렇게 나가지만 않았어도······.”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한 하루가 엄마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이제껏 꾹꾹 눌러줬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보고 싶었어! 진짜 진짜 보고 싶었어! 엄마!”
하루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탈리아가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으며 대답했다.
“그래······ 엄마도 그랬어······.”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나와 김철수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들이 잠시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다.
* * *
잠시 후.
간신히 진정한 하루가 나탈리아의 손을 꼭 잡은 채 묻는다.
“엄마. 이제 전부 기억나?”
“아직 몇 가지는 흐릿흐릿한데 그래도 우리 아들에 관한 건 생생해.”
“내 생일도?”
“그럼. 11월 1일이잖아. 그리고 엄마가 오랫동안 하루 홀로 내버려 둬서 미안해. 빨리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
눈물을 닦은 하루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되었는지 서울에 와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말이다.
하루가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였나 싶을 정도로 하루는 나와 함께 한 시간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나탈리아가 하루의 손을 토닥인다.
“하루야. 엄마가 매니저님이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조금만 이따가 더 이야기하면 안 될까?”
하루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으응······.”
하루가 김철수 원장과 밖으로 나가자 병실에는 나와 나탈리아 두 사람만 남았다.
나탈리아가 두 손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억이 돌아왔어요.”
“아닙니다. 하루를 직접 보겠다고 용기를 내신 건 나탈리아 씨죠.”
“아녜요. 팀장님이 절 찾아오지 않으셨으면 그런 용기도 못 냈을 거예요.”
내게 연신 감사하다던 나탈리아가 표정을 굳힌 채 묻는다.
“하루 아빠가 찾아왔다고 하셨죠?”
“예. 조금 전 고소까지 해 왔습니다. 하루가 번 돈을 기어이 차지할 거라며 욕심을 부리더군요.”
나탈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각오를 다진다.
“제 인생에서 하루 아빠한테 도망가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해요. 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하루가 상처받지 않게만 해주세요.”
나탈리아는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오로지 하루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루 엄마가 의지를 굳힌 이상 이제는 내 차례다.
난 곧바로 장문기 기자와 최소혜 기자를 불러들였다.
KY 로펌이 관여한 이상 총력을 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김용석 대표님. 어디 한번 잘 막아 보시죠.’
이참에 은아를 흔들어댔던 김용석 대표도 혼쭐을 내줄 생각이다.
다음으로 난 홍보팀과 법무팀에게 전화를 돌리고 강감찬 대표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며 일을 처리하자 나탈리아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하루가 왜 정 팀장님을 믿고 의지했는지 알 것 같네요. 이렇게 유능하시니······.”
“과찬이십니다.”
헛기침을 한 나는 나탈라아에게도 한 가지를 부탁했다.
“아 그런데 한 가지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뭐든 말씀하세요.”
“나탈리아 씨만 허락하시면 이형문 씨를 여기로 부를 생각입니다.”
나탈리아가 이불을 꽉 쥐더니 몸을 부르르 떤다.
“그것도 하루를 위한 일인가요?”
“하루뿐 아니라 나탈리아 씨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난 나탈리아에게 내가 생각한 작전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팀장님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나탈리아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덫을 깔 시간.
난 곧장 전화를 들고 서재일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 검사님. 부탁이 좀······ 있습니다.”
서재일 검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 *
하루가 지났다.
<먹방의 테이블> 결승전 현장에서 일어났던 하루와 나탈리아의 만남이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거기다 최소혜 기자와 장문기 기자의 기사를 굴렁쇠 엔터의 홍보팀이 밀어주자 여론은 곧장 우리 편을 들기 시작했다.
[<먹방의 테이블> 우승자 하루 군의 기구한 가정사.]
[하루 아빠의 부당한 요구. “내 아들은 나의 것. 그러니 아들이 번 돈도 나의 것!”]
[하루. “이젠 엄마를 지키고 싶어요!”]
(댓글)
-아우~ 저 썩을 인간. 저런 건 당장 감옥 넣어야 하는 거 아냐?
-와 X. 이제껏 번 돈을 다 돌려달라고? 아빠니까 아들 돈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저게 사람인가?
-여기가 법치국가 맞아? 마누라 패고 애 패고 애가 돈 벌면 삥 뜯고. 그래도 감옥은 안 가네?
-저딴 XXX도 부모라고. 쯧쯧.
내 생각대로 하루에게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는 하루와 하루 엄마에게 폰을 보여주며 걱정하지 말라 말했다.
“빠르면 이틀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저쪽에서 협상안을 들고 올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뿌린 미끼를 이형문 씨가 물었으니 어쩌면 상황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습니다.”
난 어제 서재일 검사를 만나 그의 후배인 양형식 검사를 소개받았다.
양형식 검사는 가정 폭력을 주로 다루는 검사로서 하루를 처음 영입할 당시 찍어둔 폭행의 증거를 받자 즉시 접근 금지 신청을 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난 그의 말대로 하루와 나탈리아의 이름으로 접근금지를 신청했고 오늘 아침 접근금지 명령서가 이형문의 앞으로 전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자 조금 전.
이형문은 내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소리를 질러댔고 난 있는 그대로 내가 있는 위치를 알렸다.
이형문이라면 변호사에게 상담하고 움직이기보다는 감정이 앞서 날 찾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형문이 곧 병실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하루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탈리아는 본인도 떨고 있으면서도 자기 아들인 하루의 손을 꼭 붙잡았다.
“걱정하지 마. 하루야. 우린 정 팀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아 알아요. 그래도 아빠 얼굴을 보려니까 심장이 막 터질 것 같아서······.”
난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걱정하지 말라 말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병실 내부에 경호원 2명을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녹화를 위해 폰을 들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절대 하루 너랑 엄마한테는 손도 못 대게 할 거니까.”
“네 형.”
그때 병실 문 밖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놔! 이거 안 놔? 내가 내 마누라 내 새끼를 보겠다는데 당신들이 뭔데 날 막아?
양반은 못 되겠군.
“문 열어 드리세요.”
VIP 병실에 배치된 경호원에게 신호를 보내자 경호원들이 문을 열었다.
“통과시키라고 하십니다.”
병실 외부의 경호원들이 양옆으로 비켜서자 이형문이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들이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려?”
이형문이 서류 한 장을 손에 쥐고 고함을 쳐댔다.
“이형문 씨는 접근 금지 명령서가 뭔지 모르십니까?”
이형문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코앞에 섰다.
그의 입에서는 오늘도 술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이딴 종이 한 장 보내서 날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야. 너 사람 잘못 봤어!”
잔뜩 화를 내던 이형문은 이어서 내 어깨 너머에 있는 나탈리아와 하루를 보며 외친다.
“아~ 도망간 마누라가 여기 있네! 배은망덕한 자식 놈도 여기 있고!”
천박한 말투로 이형문이 협박하고 있지만 녹화가 되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나탈리아가 하루의 손을 꼭 잡고 대꾸한다.
“돌아가요. 당신이랑은 할 말 없으니까!”
“허! 이 여자 하늘 같은 서방님에게 말하는 본새 좀 보게? 야 너 죽고 싶어?”
이형문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두 사람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한발 먼저 움직인 내게 막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안 비켜? 니가 뭔데 날 막아?”
“그냥 가라고 할 때 가시죠?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이형문이 콧방귀를 낀다.
“험한 꼴? 험한 꼴은 네가 보겠지!”
이형문은 이어서 하루를 향해 외쳤다.
“야! 이하루! 너 당장 아빠한테 안 와? 엉? 그딴 회사랑은 계약 파기해! 아빠가 더 좋은 회사를 알아봐 뒀으니까!”
하루가 완강히 버틴다.
“싫어요! 아빠가 뭔데 내 계약을 파기하라 말라 해요!”
“야! 내가 니 보호자야 인마! 저게 한동안 안 맞았다고 겁대가리를 상실해 가지고! 너 또 맞고 싶어?”
이형문이 습관적으로 손을 위로 올리는 순간 난 반사적으로 그의 팔목을 붙들었다.
“손버릇이 여전하시네요. 이형문 씨. 그리고 지금 보호자는 이형문 씨가 아니라 접니다. 계약한 내용을 잊으셨습니까?”
“그 계약 무효야! 그리고 이 이거 놔. 안 놔?”
이형문은 내게서 손을 빼기 위해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 손을 놓지 않고서 곧장 양형식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 검사님. 지금 이형문 씨가 직접 병실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졌는데 병실에 갔다고요?
“예. 본인이 그 명령서를 직접 들고 왔네요.”
양형식 검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죠. 병원 앞 경찰서에서 갈 거니까 3분만 기다리십시오.
“예. 검사님.”
전화를 끊자 이형문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경찰이 오기엔 너무 빠른 시간이다 싶었는데 다름 아닌 이형문의 변호사인 KY 로펌 김용석이 나타났다.
난 이형문의 손을 놓으며 문을 열어주라 말했다.
문이 열리자 김용석 대표가 다급한 표정으로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형문 씨!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긴! 도망간 마누라 잡으러 왔지!”
“이 일단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어서요!”
길길이 날뛰는 이형문이 김용석 대표에게 붙들려서 밖으로 끌려 나간다.
김용석 대표는 일단 이 상황만 모면하고 나면 접근 금지 명령을 어긴 근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사람.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형문 씨. 혹시 이혼 소송 진행할 거라는 소식은 들었습니까?”
순간 이형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다.
“뭐라고?”
이형문이 나탈리아를 노려본다.
“야! 나탈리아! 사실이야?”
하루의 엄마가 하루를 꼭 껴안은 채 외쳤다.
“예. 전 당신이랑은 이미 끝난 사이예요!”
“저 저 X이! 한 몇 년 안 맞았다고 감히 남편을 무시해?”
흥분한 이형문이 김용석 대표의 팔을 강하게 뿌리쳤다.
“형문 씨! 안 됩니다!”
이형문이 미친 사람처럼 내게 덤벼들었다.
“새X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드르륵.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기다렸던 경찰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나이스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