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0화
330. 먹방의 테이블 2
조재경 감독의 사무실.
조재경의 모든 업무를 대행해주는 CK 엔터테인먼트 쪽 변호사들은 골머리를 앓으며 머리를 맞대는 중이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 다들 답답한 속을 감추지 못했다.
조재경은 어떤 잘못도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보상도 하지 않겠다며 버텼기 때문이다.
결국 CK 엔터테인먼트의 법무팀장인 박상춘이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조 감독님! 이런 식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연출료 밀린 건 무조건 지급하셔야 하고 매니저 폭행 건도 합의하셔야 합니다. 그게 제일 간단합니다!”
조재경이 귀를 파며 코웃음을 친다.
“연출료 그거 얼마 된다고! 대충 서류 하나 꾸며서 덮어! 저번처럼 미국 LA 지사 이용하면 되잖아.”
“그러다 일이 더 커집니다.”
“그때 카지노에 들어간 회삿돈도 쉽게 처리했잖아! 당신들 그런 거 하라고 월급 받는 거 아냐?”
박상춘 법무팀장은 당시 CK 엔터 LA 지사가 멋대로 돈을 메꿔준 일을 덮으려 진땀을 뺐다.
오너가가 엄연한 불법을 저지른 셈이었으니까.
물론 오너가의 사건 사고를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도 CK 그룹 변호사들의 업무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때 LA 지사 애들 다 해고했습니다! 거기다 입막음 조로 퇴직금까지 따로 쥐여줘야 했고 말입니다!”
조재경이 짜증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서. 못 하겠다고?”
박상춘 법무팀장이 이를 빠드득 갈며 참을 인을 그렸다.
빌어먹을 놈이라도 오너가의 사람이었으니까.
박상춘은 일단 하나라도 해결하자며 중재안을 내었다.
“그러면 작은 거라도 합의를 하시죠. 그 매니저가 2주짜리 진단서 가지고 온 거로는 소송 거리도 아닙니다. 대충 천만 원 정도만 합의금 내시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쪽 변호사도 그 정도면 만족할 겁니다.”
조재경이 코웃음을 친다.
“천만 원? 당신들은 내가 돈이 썩어빠진 줄 알아? 못 줘! 절대 못 줘! 특히나 그 새X한테는 땡전 한 푼 못 주니까 그렇게 알아!”
조재경이 이를 빠드득 갈며 악다구니를 쓴다.
그때였다.
박상춘 법무팀장의 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한 박상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전화는 CK 엔터테인먼트 손형태 대표한테서 온 거였다.
“예. 대표님. 예. 알겠습니다.”
박상춘 법무팀장이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함께 온 변호사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본사로 복귀하라신다.”
함께 온 변호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조 감독님 변호 건은 어떻게 하시고요?”
“정지하고 무조건 들어오래. 대표님 지시니까 일어들 서지.”
대표님 지시라는 말에 깜짝 놀란 조재경이 황급히 물었다.
“그 그럼 난?”
박상춘 법무팀장이 웃음을 감추고 대답했다.
“오늘 안에 합의하고 내일 회사로 들어오시랍니다. 안 그러면 의절이라도 하실 기세였습니다. 만약 의심이 가면 직접 전화해보십시오.”
손형태 대표의 말을 전한 박상춘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곁에 있던 변호사들도 노트북을 덮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제야 조재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뭐야? 진짜······ 가?”
변호사들이 인사를 꾸벅하고 사라지자 그제야 조재경은 문제가 보통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아니 정윤호 그놈이 대체 뭐길래?”
* * *
[발신자 : 곽무혁 법무팀장]
기다렸던 전화가 도착했다.
“예. 팀장님.”
-다행히 CK 손형태 대표가 네 말대로 움직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난 곽무혁 팀장을 통해 조재경 감독의 폭행 건을 조건 없이 합의해 주겠다는 뜻을 CK 손형태 대표에게 전했다.
손형태 대표의 체면을 생각지 못했다는 뒤늦은 사과를 포함해서 말이다.
-근데 정 팀장. 큰돈을 벌 기회를 놓쳤군.
“2주짜리 진단서로 합의금을 받아봤자 얼마나 받겠습니까? 그것보다는 하루가 경연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 하여간 내일 손 대표 만나러 가야 하니까 이따가 경연 끝나는 대로 연락해.
“예. 팀장님.”
전화를 끊고 난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곁에 있던 정상봉이 묻는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연락이 올 거야. 기다려 보자.”
잠시 후.
세트를 살피던 이유영 메인 작가의 전화가 울렸다.
“예. 예. 전무님. 아 알겠습니다. 조한일 PD에게도 전하겠습니다.”
이유영 작가가 당황한 표정으로 조한일 PD에게 다가간다.
귓속말로 속닥이는 소리를 들은 조한일 PD가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AD는 다들 하던 일 중지하고 모여 봐! 작가들도 모두!”
조한일 PD의 곁으로 스태프들이 우르르 몰린다.
“봤지?”
정상봉이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대박인데요?”
이내 PD를 중심으로 큐시트를 수정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수정 버전은 취소고 원래대로 돌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빨리 세트장부터 정리하세요. 게임판 빨리 빼!”
스태프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정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사이 메이크업을 마친 하루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형. 언제 오셨어요?”
하루가 언제나처럼 눈웃음을 지으며 기쁜 티를 낸다.
“지금 막. 그나저나 오늘 자신 있지?”
“잘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올라오니 남은 분들은 다들 전문 쉐프 수준이라서요······.”
오늘 하루가 할 요리는 안동 사과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를 사용한 연탄불고기와 묵은지 백김치찜이다.
“그런데 시간 안에는 만들 수 있어? 밑반찬까지 준비해야 한다며?”
“메인을 두 개 하는 대신 반찬은 겉절이랑 절인 양파 그리고 깻잎과 상추만 낼 거예요.”
“시간은 절약되겠네. 그러면 찍어 먹는 장은 뭐로 할 건데?”
“젓갈 양념장이랑 콩가루 소스 그리고 특제 쌈장이요. 그냥 먹어도 맛있긴 한데 심사위원들 취향을 생각해서 세 가지로 준비했어요.”
하루의 입에서는 거침없는 답변이 나온다.
“좋아. 너무 긴장하지 말고 고향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린다는 마음으로. 알지?”
“예 형!”
“평소대로 한다고 생각해. 하루 파이팅~?”
하루는 주먹을 불끈 쥔 뒤 자기가 요리를 할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연자들이 하나둘 자리에 서자 조한일 PD가 지시 사항을 전달한다.
“재료 바꾸기 게임을 하겠다고 미리 고지를 했는데 준비가 미흡해서 취소하겠습니다. 출연진과 진행자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고 하루는 경연을 기다리며 자기 테이블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요리를 시작할 준비를 해주세요.”
하루를 비롯해 TK 엔터의 이진택 그리고 TNT 엔터의 박준서 마지막으로 에이스 엔터의 정진수까지.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자기가 가지고 온 재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심사위원석으로 프랜차이즈 대표 백종석과 요리연구가 이순자 그리고 종가음식 보존회장 여원희 씨가 들어왔다.
심사위원들이 단상에 앉고 난 후 진행자인 MC 김진태가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진태 MC가 마이크를 착용한 뒤 큐카드를 받아 확인한다.
빠르게 큐카드를 넘겨 본 김진태 MC가 오케이 사인을 한다.
조한일 PD가 촬영 시작을 외쳤다.
“자~ 스탠바이하고 5초 뒤에 시작합니다. 레디~~ 액션!”
순간 김진태 MC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드디어 오늘은 ‘먹방의 테이블’ 4강전입니다······”
김진태의 진행에 이어 백종석 대표가 오늘 요리 경연 주제를 알린다.
“오늘의 주제는 돼지고기로 만드는 한 상 요리입니다.”
백종석 대표는 한참 돼지고기의 이로운 점을 말한 뒤 경연의 시작을 알렸다.
“최종 국면까지 올라오신 4인의 도전자에게 허락된 조리 시간은 60분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그 순간 네 명의 배우들이 제한 시간 내 최선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 *
하루와 경쟁자들의 조리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긴장으로 바짝바짝 입 안이 말라 갔다.
4강전까지 올라온 배우들은 다들 요리사 뺨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요리 영재학교를 나온 이진택의 실력은 만만치가 않았다.
미리 요리 주제가 전해진 까닭에 경쟁자들이 준비한 메뉴도 보통이 아니었고.
이영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팀장님. 다들 전문적인 요리사에게 레시피를 받아온 거 같은데 하루 혼자만 너무 평범한 거 아닌가요?”
“기다려 봐.”
하루가 만들려는 연탄불고기와 묵은지 백김치찜은 러시아인이던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
다만 겉으로 보기엔 백반집에서나 나올 법한 음식들이라 이영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떨치지 못했다.
“아~ 미치겠네. 김치찜은 빨갛게 잘 익은 김치로 해야 제맛인데. 저 돼지고기 안 비릴까요?”
“너 지금 하루 떨어지라고 고사 지내?”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이영진뿐 아니라 곁에서 요리하는 경쟁자들도 하루의 요리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너무 평범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 시선들에도 하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요리를 이어나갔다.
남은 시각 1분.
하루는 연탄불고기를 직사각형의 접시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각 30초.
하루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푹 익힌 백김치찜을 동그란 접시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땡~
“시간 다 됐습니다! 이제 그만 손을 떼십시오.”
아슬아슬한 시각에 맞춰 하루가 음식에서 손을 떼며 경연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한 시간 동안 두 가지 메인 요리를 만든 하루의 온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잘했어. 하루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하루에게는 축하를 해줄 생각이었다.
백종석 대표가 네 사람이 만든 요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장 먼저 이진택의 요리 앞으로 향했다.
이진택의 돼지고기 요리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스테이크.
이영진이 그 모습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비난했다.
“틀림없이 보기 좋기만 할 겁니다 저거.”
하지만 백종석 대표의 평가는 이영진의 기대를 배신했다.
백종석 대표는 잘라낸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 물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진택 씨에게는 먹방의 대가 오디션이 큰 발전의 계기가 된 거 같습니다. 음식이 완전히 달라졌네요.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먹을 가치가 있는 멋진 음식입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심사평을 맡은 이순자 요리연구가와 여원희 종가음식 보존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평을 늘어놓았다.
이어서 정진수와 박준서의 차례.
두 사람은 이진택보다는 조금 못한 평가를 받았지만 그래도 각자의 개성이 분명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하루의 요리 평가 차례.
백종석이 군침을 다시며 하루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연탄불고기는 오래간만이네요. 어디 한번 먹어 볼까요?”
테이블에 놓인 백반 한 상은 새하얀 흰 밥에 연탄불고기 묵은지 백김치찜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이 놓여 있었다.
직사각형 접시에 담긴 연탄불고기 위로는 파채와 절인 양파가 소복하게 올라가 있었고 원형 접시에는 묵은지로 고기를 돌돌 말은 백김치찜이 자작한 국물과 함께 담겨 있었다.
하루는 자기 음식을 먹으러 온 백종석 대표에게 소스를 가리켰다.
“불고기는 소스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겉절이와 상추에 싸서 드셔도 되고요.”
백종석 대표가 웃는다.
“우리 하루 씨가 추천하는 소스는 뭡니까?”
하루가 머뭇대다 콩가루가 담긴 소스를 가리킨다.
“콩 소스에 찍어서 드셔보세요.”
“그러면 추천하는 대로 먹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꼭 파채랑 양파랑 같이 드세요. 그래야 맛있어요.”
백종석 대표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종석 대표는 특제 간장양념에 절인 갈색의 연탄불고기 위에 파채와 슬라이스 양파를 올린 뒤 노란 콩가루 소스를 푸욱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흐음~”
백종석 대표는 연탄불고기 한 점을 입 안에 넣고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 이거 신기하네?”
곁에 있던 심사위원들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순자 요리연구가도 곧장 동의를 표한다.
“그러게요. 이게 생긴 건 완전 연탄불고기인데······ 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원희 종가음식 보존회장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보기에는 그냥 돼지불고기지만 밑간이 완전 다른데요?”
그때 백종석 대표가 씨익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이건 밥이랑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잠시만요.”
백종석 대표가 밥을 한가득 떠서 입에 넣은 뒤 다시 한번 고기를 장에 찍어 먹는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다들 밥과 같이 드셔보세요.”
이순자와 여원희 두 사람은 다르게 먹어 보겠다며 쌈을 싸 먹는다.
“이야~ 이거 완전 밥도둑인데요?”
백종석 대표는 다음으로 묵은지 백김치찜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자 그럼 이번엔 백김치찜을 먹어 볼까요? 이거 먹어 보기 힘든 건데······.”
백종석 대표가 정갈하게 돌돌 말린 묵은지 백김치찜을 통째로 한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그 순간 백종석 대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참.”
그와 동시에 막 음식을 씹어 삼킨 이순자와 여원희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어머? 어머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