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5화
325. 반격 3
삼성동 J 호텔.
이곳은 LT 엔터테인먼트 신종기 대표 개인 소유의 부티크 호텔이다.
연락을 받은 난 박선재 감독 커플이 있는 J 호텔 13층으로 향했다.
13층으로 올라가자 복도 너머에서 조재경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놔! 이거 안 놔? 야! 김 변! 이 새끼 고소해!”
“감독님. 일단 좀 진정하시고······.”
“진정? 무슨 진정?”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조재경 측의 변호사와 경호원들이 호텔 직원과 경호원들 그리고 신종기 대표가 보낸 변호사들과 한데 얽혀 있었다.
그 와중에 조재경은 자신을 말리는 변호사를 밀쳐내고 박선재 감독을 닦달하고 있었다.
“야! 박선재! 내가 분명 돈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걸 기사로 뿌려?”
“준다 준다 말만 벌써 몇 번째입니까! 게다가 영화를 만들어 준다는 약속도 어기셨잖아요!”
“그건 당신 시나리오가 아직 덜 다듬어져서 그런거고!”
“됐습니다. 전 LT와 함께 가기로 이미 약속했습니다. 당신이랑은 더 얽히고 싶지 않습니다.“
조재경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야. 박선재 너 감히 나한테 건방 떨고도 이 판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박선재 감독이 움찔한다.
현재는 LT 엔터가 지켜주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박선재 감독이 말문이 막힌 순간 내가 끼어들었다.
“조 감독님.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나와 눈이 마주친 박선재 커플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와 동시에 조재경이 고함을 내질렀다.
“야! 이거 네가 저지른 일이지? 카지노부터 박선재를 부추긴 일까지!”
누굴 바보로 아나.
난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저었다.
“증거도 없으면서 엄한 사람 잡지 마시죠?”
순간 조재경이 고성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온다.
“증거고 뭐고! 넌 오늘 뒤졌어!”
저걸 그냥 확 패 버릴까?
아니 그건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패스.
맞아줘?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CCTV는 없었지만 증인들은 한가득.
그의 주먹에 맞아 쓰러지면 조재경을 더욱 코너로 몰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주먹을 쥐고 달려오는 조재경과의 거리는 5m.
그 순간 조재경의 어깨너머로 모든 게 끝났다는 듯한 변호사의 표정이 일순간 보인다.
그때 잠시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잠깐 얼굴을 맞는 건 좀 아니지?’
그 순간 난 거리를 재며 슬쩍 백스텝을 밟았다.
내 얼굴을 노리던 조재경의 주먹이 빗나가며 가슴에 닿았다.
맞은 듯 안 맞은 듯한 물주먹이 내 가슴께에 닿는 순간.
난 있는 힘을 다해 뒤로 뛰었다.
“으아아악!”
마치 칼이라도 찔린 듯한 고통의 비명과 함께 양손을 파닥거리며 공중으로 날았다.
그리고 등에 힘을 빡 주고 후방 낙법을 준비했다.
쿠웅~
땅에 떨어지며 전력으로 낙법을 펼쳤기에 꽤 큰 소리가 난다.
“끄으으으······.”
바닥에 쓰러진 난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좀 오버인가 싶었지만 얼이 나간 조재경을 보자 딱 적당하다 싶었다.
조재경이 주먹을 뻗은 채로 억울하다고 말한다.
“나 나 아냐······ 아냐. 때린 게 아니라 살짝 스쳤다고!”
신종기 대표가 보낸 변호사들이 나선다.
“조 감독! 저 사람 왜 멀쩡한 사람을 패? 당신 깡패요? 어?”
“괜찮습니까? 정 팀장님!!”
이내 박선재 감독을 비롯한 호텔 직원들이 우르르 내게로 달려왔다.
“괜찮아요? 윤호 씨?”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싸자 조재경이 다급히 외친다.
“김 변! 진짜 아냐! 저 저 새X가 지금 연기하는 거라고!”
하지만 조재경의 변호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다들 놀란 표정을 보니 내 연기도 제법 쓸 만한 편인 모양이다.
그때 조재경의 변호사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경호원을 향해 지시를 내린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조 감독님은 빨리 아래로 모셔!”
“예!”
경호원들이 조재경을 달랑 들어 옮기자 조재경이 외친다.
“야 이! 등X들아! 너흰 눈도 없어? 저놈 저거 지금 연기하는 거라니까?”
조재경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진 않았다.
조재경이 엘리베이터로 끌려간 후 그의 변호사가 내게 다가왔다.
“저기······ 정 팀장님··· 이라고 하셨죠? 저희가 충분한 보상을 할 테니까 소송만큼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소송만 하지 않아 주신다면 별도의 위로금을 넉넉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CK 엔터테인먼트 박상춘 법무팀장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이런 합의라면 돈을 꽤 받을 거다.
하지만 난 돈을 선택하지 않았다.
조재경의 평판을 떨어뜨릴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은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합의할 생각 없습니다.”
난 사정하는 변호사를 내버려 둔 채 바닥에 누운 채로 힘들게 폰을 들어 올렸다.
“장 기자님.”
-어. 왜~ 기사 잘 빠진 거 봤지?
“저. 폭행당했습니다.”
-뭐?
“지금 여기 삼성동 J 호텔인데요. 조재경 감독님한테 일. 방. 적으로 구타당했습니다. 아마 뭔가 오해가 있는가 본데······ 전 왜 맞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래? 진짜지?
기뻐하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 웃으시는 거 아니죠?”
-크흠흠. 아 아냐. 사진이라도 보내줘! 바로 기사 써 줄게.
“알겠습니다.”
조재경의 변호사는 모든 걸 포기한 기색이다.
난 이쯤에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장문기 기자와 통화를 끝낸 뒤 곧바로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검사님. 전화하실 시간 되십니까?”
-안 그래도 카지노 관련 기사 봐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특별팀 배정될 겁니다. 덕분에 일이 시원시원하게 풀리는군요.
서재일 검사와의 통화에 조재경의 변호사는 이제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저 지금 호텔에서 조재경 감독님한테 일방적으로 폭행당했습니다.”
-고소하실 거죠?
난 그렇게 검사에게 친절한 고소 가이드(?)를 받은 뒤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일단 병원에 가서 진단서는 끊어야 했으니까.
난 하얗게 넋이 나간 조재경의 변호사를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디오스다. 조재경.
* * *
검찰에 고소 접수를 하고 나오자 기사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재경 감독. J 매니저 폭행 사건 연루]
[조재경 감독. 호텔에서 난동!]
[CK 엔터테인먼트. 조재경 감독의 개인적인 일탈이지만 책임에는 통감. <천년 여우>의 개봉 무기한 연기!]
[검찰. 조재경 감독의 LCM 불법 카지노 도박 사건 수사 착수!]
함께 온 곽무혁 법무팀장이 기사를 보며 웃는다.
“아주 끝장을 냈구나.”
“뒤처리는 해주실 거죠?”
“그래. 그러니까 마음 놓고 태풍이나 신경 써. 어차피 ‘천년 여우’ 개봉도 물 건너갔잖아.”
CK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다음 주로 잡혔던 <천년 여우>의 개봉을 취소해 버렸다.
쏟아지는 악플에 관람 거부 운동까지 벌어진 까닭이었다.
그때 곽무혁 법무팀장이 슬그머니 말한다.
“대표님에게 들었다. 회사 내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로 했다면서?”
난 어젯밤 서재일 검사에게 전화한 뒤 즉각 강감찬 대표를 만났었다.
그리고 강명길 팀장이 박상곤 보좌관에게 돈을 건넬 거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다만 굴렁쇠가 곤란을 겪을 수도 있으니 검사에게 자료를 넘길 땐 강명길 팀장의 얼굴을 빼고 넘기겠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강감찬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검찰 조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썩은 부위를 이참에 도려내자고.
그리고 강지영 본부장과 곽무혁 법무팀장에게만은 말하겠다고 했었다.
난 죄송한 표정으로 곽무혁 법무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미리 알고 처리하면 남는 장사지. 대신 확실히 처리해! 알지?”
“예. 팀장님.”
곽무혁 팀장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힘내고! 언제나 그랬듯 파이팅이다.”
“그러면 전 이만 회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난 조재경 쪽 변호사들이랑 만나보마. 근데 이 정도로 구속은 힘든 거 알지?”
“압니다. 전치 2주짜리 진단서로 구속은 좀 오버죠.”
“대신 합의금은 톡톡히 받아오마.”
어차피 나 역시 이걸로 구속까지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한 건 언론을 이용해 조재경을 묻어버리는 거였고 그건 완벽히 성공으로 돌아갔으니까.
곽무혁 법무팀장과 인사를 한 난 이제는 편안하게 이태풍의 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주말이 지나 9월 30일 수요일이 되었다.
[<경계 너머로> 토 일요일 일일 관람객 연속 100만 돌파! (113만 2123명 111만 5615명)]
[<경계 너머로>. 개봉 5일 만에 400만 명 돌파!]
주말 이틀간에만 관객 수가 매일 100만 명씩 들어왔다.
거기다 월요일 화요일도 80만 명 가까이 들어왔기에 지난 금요일의 55만 명을 합해 400만 명을 넘어 버렸다.
덕분에 LT 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에선 신종기 대표의 웃음이 어느 때보다 크게 울리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이대로만 쭈욱 가자고!”
최성문 감독도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종기 대표는 어찌나 기뻤는지 내게 한 가지를 더 제안한다.
“이번 일. 우리 정 팀장 덕분에 쉽~게 해결되었으니 내가 한 가지 부탁 정도는 들어주지!”
잠깐 고민하던 난 현재로서 받기 가장 좋은 선물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박선재 감독님의 작품에 들어가는 제작비를 조금만 늘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신종기 대표는 히죽 웃는다.
“오케이. 대신 조건이 하나 있네.”
“조건이요?”
“그래. 내 조건만 들어주면 아예 50억까지 예산을 늘려주지.”
조건 하나에 20억을 더 태워?
그 정도라면 아무리 어려운 조건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야지.
“뭡니까?”
“캐스팅을 자네가 할 것. 그게 내 조건일세.”
당황스러웠다.
배역을 정하는 일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감독이 배우와의 인적 네트워크가 약하거나 업계 사정에 어두운 경우 배역에 맞는 배우를 찾는 자리를 따로 두는데 그게 바로 캐스팅 디렉터라는 직책.
신종기 대표는 바로 그 캐스팅 디렉터를 내게 맡기려 하고 있었다.
“박 감독님이 계신데 제가 어떻게 감히 배역을······.”
고개를 저었지만 곁에 있던 박선재 감독이 황급히 나섰다.
“정 팀장님. 사실 이 제안은 제가 먼저 신 대표님께 부탁드린 일입니다. 지난 이틀간 정 팀장님에 대해 알아볼 만큼 알아봤습니다만 배우를 보는 안목이 보통이 아니시라고 하더군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은요. 최 감독님도 부탁하셨다면서요.”
최성문 감독 역시도 <신의 분노>에 들어갈 주연을 내게 부탁한 상황.
그에게 들었는지 박선재 감독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대본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리산의 경우 주연 못지않게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글을 쓸 때는 해외의 배우를 떠올리면서 써서 그런지 국내 배우 중에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더군요. 정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고재수.
다만 현재는 굴렁쇠 소속이 아닌 TK 엔터의 배우였다.
캐스팅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20억이 걸렸으니 무조건 성사시켜야 했다.
“알겠습니다. 최고의 배우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신종기 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며 한껏 웃음을 터트렸다.
“자자! 이제 머리 아픈 이야기는 그만! 오늘 400만 돌파 기념 축하 파티나 하려는데 다들 올 거지?”
다들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난 죄송하다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9월 30일.
여당 당 대표의 선거가 있는 날이자 강명길 팀장이 박상곤 의원의 보좌관에게 돈을 건네는 날이었으니까.
* * *
현재 시각 밤 10시 20분.
난 낙산공원 아래의 주차장에다 차를 대었다.
“휴우. 걸어서 올라가야겠네······”
산 중턱에 있는 낙산공원 주차장은 차를 몇 대 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섣불리 내 차를 가지고 올라갔다가는 들킬 염려가 있었다.
“일부러 11시 30분으로 잡았나 보네.”
낙산공원 주차장은 밤 11시가 되면 차단 봉을 내리기에 미리 차를 빼야 한다.
아마도 다른 차들을 내보낸 뒤 거래를 하려는 모양이다.
“일단 올라가서 확인해 보면 되지 뭐.”
난 주차장으로 향하며 다시 한번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9월 30일]
-PM 11:30 서울 낙산공원 주차장. (보고 사항 : 강명길 팀장에게 지시 전달.)
역시나 일정은 그대로.
다만 요정이나 호텔 같은 곳이 아니라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어서 난 서재일 검사에게 현장에 도착했다고 까톡을 보냈다.
서재일 검사는 현재 대학로 쪽에서 현장을 급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그는 내게 이제는 빠져달라고 이야기했지만 난 그럴 수 없다고 맞섰다.
시간이 되기도 전 갑작스레 일정이 사라지기라도 할 수도 있었으니까.
결국 난 멀리서 산책하러 온 사람처럼 굴겠다고 이야기한 뒤 까톡 대화를 끝냈다.
그때였다.
오늘 있었던 당 대표 선거 결과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여당 당 대표로 6선 박상곤 의원 당선!]
포털에는 한껏 기뻐하는 박상곤 의원과 그의 딸 박상아의 사진이 걸렸다.
“오늘 주는 돈이 당선 축하금이었나 보군.”
회귀 전 김동수가 돈을 보냈던 이유가 어렴풋하게 예상이 되었다.
김동수는 이 기회에 정치권에 로비를 하려는 거였다.
잠시 후.
중앙 광장과 매점이 멀리 보이는 낙산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눈앞에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공사 중]
[9월 30일 오후 10시부터 ~ 10월 1일까지 출입 금지.]
오르막길인 낙산공원 입구 쪽에는 붉은색 LED로 공사 중이란 글자와 출입 금지 명패가 있었다.
게다가 평소엔 야간에도 불빛이 가득하던 낙산공원 전체가 불이 꺼져 어둑어둑했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누구야?”
“당신 출입 금지란 말 안 보여?”
쪼그려 앉아 있던 덩치 큰 두 명이 형광 반사 조끼를 입고 붉은 경광등을 든 채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이거?’
주차장은커녕 낙산공원 안으로도 못 들어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