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6화
316. 강하나 vs 이브원 3
두 사람이 무대로 올라가자 방청석에서 기다리던 강하나의 팬클럽 ‘ONE & only’가 앉아서 굿즈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팬클럽에 인사한 강하나는 무대 위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기대진 통기타를 매었다.
그리고 김종훈은 미리 세팅된 그랜드 피아노에 자리했다.
그때였다.
<새로운 시작>의 피아노 세션 E.O.D가 김종훈이란 걸 몰랐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김종훈이 피아노 반주라고?”
“대~~박!”
“꺄아아아악! 오빠! 컴백 축하해요오~~!!”
김종훈의 팬들이 외치는 소리가 커진다.
그러자 강하나의 팬클럽 ‘ONE & only’도 떼창으로 그 소리에 맞섰다.
“사랑해요! 강하나!”
“보컬 여신! 강하나!”
공개홀에 가득한 두 팬들의 목소리가 한데 얽힌 순간 감격한 강하나와 김종훈이 손을 흔들며 다시 한번 화답했다.
잠시 후.
곡의 시작을 위해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관객들이 일제히 입을 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핀 조명이 강하나와 김종훈에게 내리꽂혔다.
그 순간 피아노 앞에 앉은 김종훈이 짧게 숨을 몰아쉬고 <새로운 시작>의 반주를 시작했다.
유리가 깨지는 듯 맑은 피아노 소리가 공개홀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강하나가 직접 연주하는 통기타 소리가 피아노 반주 위에 살포시 얹혔다.
두 사람의 연주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한 순간 강하나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사람들은 말해요~♬』
그렇게 <새로운 시작>은 음악방송에 첫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잔잔한 전율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토록 힘들게 가수 데뷔를 원했던 강하나와 죽음을 각오했었던 김종훈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가수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으니까.
회귀한 이후.
또 한 번 가슴 뿌듯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곁에 선 도란희와 은지유 대리가 두 손을 꼭 모은 채 작은 목소리로 파이팅을 연호했다.
“하나야. 파이팅!”
“하나야. 힘내!”
두 사람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듯 강하나는 자신의 실력을 한껏 뽐을 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두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이제부터 정상급 가수의 반열에 올라갈 강하나의 미래를 위해서.
‘하나야. 수고했어.’
* * *
<새로운 시작>이 끝난 순간 방청객 석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팬클럽인 ‘ONE & only’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플래카드를 흔들어댔고.
“휘익~ 강하나 최고다!”
“종훈 오빠! 피아노 반주 끝내줬어요!”
“하나 누나! 나랑 결혼해줘요!”
뭔가 이상한 소리가 하나 섞여 있긴 했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빨리 내려와. 빨리!”
강하나와 김종훈이 서둘러 무대 아래로 내려온다.
이어서 공연을 해야 하는 건 <혼불>.
국악단이 악기를 옮기는 동안 우린 옷을 갈아입기 위해 급히 대기실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다음 무대까지 남은 시간은 7분.
무대를 잘 펼쳤다고 제대로 축하할 겨를도 없었다.
“비켜! 앞에 싹 다 비켜~!! 인사도 하지 마!”
최인석 AD가 우리 앞을 뛰어가며 길을 터주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이돌들이 인사도 멈춘 채 양쪽 벽으로 달라붙자 사람으로 미어터지던 복도가 모세의 바다처럼 갈라졌다.
우린 일렬로 그 뒤를 따랐고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예!”
“알았어요.”
옷을 갈아입는 연습을 몇 번이나 한 덕에 4분도 되지 않아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이미리 대리는 탈의실을 나온 두 사람의 복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체크한 뒤 오케이를 외쳤다.
“됐어요!”
“그럼 나와요 빨리!”
우린 다시금 일렬로 최인석 AD의 뒤를 따라 무대로 향했다.
“헉헉헉!”
무대 아래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하자 아직 1분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난 최인석 AD에게 2분의 여유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짧은 시간 동안 달음박질을 한 터라 두 사람의 미간에 땀방울이 맺혔기 때문이다.
“AD님. 2분만 더요!”
난 AD의 대답도 듣기 전 양소리 대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메이크업 체크하세요 양 대리님.”
“아 예. 팀장님!”
“나머지는 달라붙어서 선풍기 돌려요.”
이미리 대리부터 은지유 대리 도란희와 나까지.
미리 준비한 손 선풍기로 두 사람의 땀을 날리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능한 최고의 상태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최인석 AD가 인터콤으로 PD에게 연락을 넣고는 시간을 벌기 위해 애원하기 시작했다.
“PD님. 2분만 더 주십시오. 바로 무대 올리면 라이브 못 할 것 같답니다!”
불안한 표정을 짓던 최인석 AD의 얼굴이 이내 밝아진다.
“예. PD님! 예! 3분 뒤에 시작한다고요? 알겠습니다.”
겨우 한시름을 돌린 우린 왼손으로 손바람까지 날려대며 땀을 말렸다.
메이크업하는 양소리 대리는 입김까지 불어대며 땀을 말리고 있었다.
잠시 후.
매니저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에 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준비됐습니다. AD님!”
약속한 시각에서 10초가 남은 시각.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던 최인석 AD가 다급히 무선 인터콤으로 말한다.
“예. PD님. 됐습니다! 예. 바로 올리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인 최인석 AD가 손짓한다.
그 순간 현장 스태프들이 드라이아이스 기계의 스위치에 ON을 넣었다.
위이이이잉.
모터 소리가 들린 후 안개가 끼듯 잔잔한 연무가 무대에 깔린다.
그와 동시에 MC가 외쳤다.
“자~ 이번에는 또 다른 1위 후보곡! ‘혼불’입니다. 갑자기 활동 중단을 한 김종훈 씨를 강제 소환해버린 바로 그 곡! 지금부터 들어볼까요?”
MC의 우렁찬 외침이 울린 순간 강하나와 김종훈이 서로 주먹을 마주쳤다.
“하나야 잘해 보자.”
“윤호 오빠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당연하죠.”
두 사람이 주먹을 맞댄 상태로 뒤를 돌아본다.
“윤호야 이 곡도 1위 가지고 올게!”
“오빠. 1위 상 받으면 오빠 드릴게요!”
두 사람은 <혼불>마저 1위를 만들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댄다.
난 피식 웃으며 멀리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잘하고 와!”
그 순간 두 사람이 씨익 웃으며 무대 위로 향했다.
“꺄아아아악~! 김종훈이다~!”
“오빠. 옷 멋져요!”
“하나 언니! 옷 진짜 예뻐요! 선녀 같아요!”
관객들이 열띤 환호로 두 사람을 반긴 순간 화려한 붉은빛의 조명이 무대로 내려꽂혔다.
동시에 천천히 방청객 석의 소란이 줄어들었다.
<혼불>의 무대가 시작 준비를 마친 순간 서울 국악관현악단의 강호연 단장이 신호를 준다.
“허이~!”
강호연 단장의 큰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대고 소리가 공개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두웅~ 두웅~
낮고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강하나와 김종훈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혼불>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동양 판타지 곡이 무대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MBS <쇼! 음악센터> 공동 1위! <새로운 시작> 그리고 <혼불>!]
[백만 유튜버 강하나. <새로운 시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또 한 번 드러내다!]
[<혼불>. 압도적인 현장감! 국악관현악단과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혼불> 마치 콘서트 무대를 방불케 하는 놀라운 무대 연출!]
[이브원의 . 아쉽게도 3위!]
무대를 끝내고 올라오는 연예 기사에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혼불>의 현장 공연이 임팩트가 있었던 탓에 음원 성적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투표에서 앞서 <새로운 시작>과 함께 정말로 공동 1위를 차지해 버렸다.
이브원의 도 꽤 선전했지만 두 곡과는 압도적인 점수 차가 나버렸다.
덕분에 서울 관현악단과의 회식을 끝낸 뒤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연신 환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진짜 대박이야. 하나야!”
“첫 앨범에 들어갈 두 곡이 공동 1위라니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나? 하여간 역대급이야.”
“난 하나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하나야! 내일도 1위 부탁해?”
“에이~ 당연히 1위지. 안 그래?”
난 흥분한 매니저들을 달랜 뒤 강하나에게 받은 1위 트로피를 모두에게 들어보라 말했다.
“자자. 1위 트로피 한 번씩 만져 봐!”
“오오~ 이게 바로 1위 트로피!”
“나 사진! 사진!”
다들 트로피를 들고 인증 사진을 찍어대며 흥겨운 상태로 회사에 도착했다.
도란희에게 주차를 맡긴 뒤 로비로 향한 순간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몇몇 매니저들은 간단한 선물을 내밀기도 했고.
“강하나. 무대 잘 봤다!”
“수고했어! 여기 첫 음방 무사히 마친 축하 선물!”
강하나도 쏟아지는 환대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곁을 지나가는 매니저들이 다들 엄지를 세웠고 강하나는 한동안 로비에서 축하 인사를 받으며 답례로 인사를 해야 했다.
반면 한쪽에서는 매니저들이 부럽다는 듯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여튼 정 팀장 저 인간 보통이 아니라니까?”
“체리블라썸에서 이젠 강하나까지. 손만 댔다 하면 1위네.”
“저 자식. 별명이 박수무당이라더니 진짜 뭐 예지몽이라도 꾸는 거 아냐?”
솔직히 조금은 뜨끔하다.
회귀자인 난 미래를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뜰지 알고 있어도 이제껏 내 연예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그들의 인생에서 행복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렇기에 난 날 향한 질투 어린 말에도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미래를 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 * *
정 팀의 회의실.
팀원들은 오늘 음악방송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짚으며 내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SBC와 KBC 방송국 두 군데에서 총 네 개의 무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은 대리님. 오늘 최 AD님이 앞에서 이끌어줘서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었어요. 내일도 스태프에게 도움받을 수 있도록 미리 부탁해 두세요.”
“예. 팀장님!”
“이 대리님. 내일은 한복 속옷을 미리 입고 있을 수 있게 세팅해주세요. 시간을 좀 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럴게요.”
대기실에서의 동선부터 복장까지.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으며 단 몇 초라도 더 벌 수 있게 머리를 맞댔다.
매니저들이 고생할수록 연예인들이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면 SBC는 내일 란희가 먼저 들르고 KBC는 은 대리님이 먼저 가서 체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들 오늘의 성공이 기뻤는지 지치지도 않는 표정이다.
“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 팀장님?”
은지유 대리의 말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하나도 수고했지만 여러분 덕에 오늘 무사히 무대를 치러냈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따라온 데 대한 진심을 담아서.
내 인사에 팀원들 모두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아니에요. 팀장님!”
“우 우리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팀장님이 하라는 대로만 한 건데······.”
강하나 역시 따라서 인사를 건넨다.
“아니네요. 진짜 고마워요 은 대리님. 란희야. 그리고 이 대리님도 양 대리님도. 모두가 아니었으면······ 저 오늘 1위 못했을 거 같아요.”
강하나의 고백에 팀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작스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 : 오복희 PD]
‘오 PD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화란전>은 한우주 작가가 이지연 작가와 한솔잎 작가의 도움을 받아 한창 대본 작업 중이었다.
그리고 현재 오복희 PD는 MBS에서 스태프들을 꾸리는 중이고.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혹시 문제가 있나 싶어 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오복희 PD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왔다.
-정 팀장님! 그 곡 OST로 줘요!
“예?”
-왜 오늘 공연한 거 있잖아요! ‘혼불’. 그거 우리 화란전 OST에 쓰죠? 곡 비 톡톡히 줄게요!
<혼불>은 영화제 대상을 받는 <광해의 하루>의 OST였다.
웅장한 분위기를 드러내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그의 피나는 노력을 노래하던 곡이었다.
그런데 그게 <화란전>에 써먹기에 딱 이라고 한다.
강하나 작곡 방선우 편곡 그리고 우리 팀 전속 작사가 장예빈까지 참여해 만든 공동 작품이기에 혼자 결정할 수는 없었다.
“곡 비는 넉넉하게 주신다고 하셨죠?”
-당연하죠! 요즘 내가 우리 대표님에게 돈 뜯어내는 재미로 살잖아요. 그리고 2천 밑으로는 부를 생각도 하지 마세요!
일부 드라마 PD들은 OST 곡 비를 안 주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 OST에 실리는 것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가 아니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효과를 노린 가수와 작곡가들이 공짜로 곡을 주기도 한다.
어차피 곡이 흥행하게 되면 저작권으로 현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러나 오복희 PD는 오히려 곡 비를 더 주겠다고 말한다.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주는데 거절할 수는 없지.
“10분 이내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금액 정해서 연락해 주세요!
“예. PD님!”
음방을 끝내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수입이 생겨났다.
오복희 PD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자 회의실이 들썩였다.
“진짜요?”
“대~박!”
기쁜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 도란희와 은지유 대리의 폰이 미친 듯 울리기 시작한다.
광고 제안이다.
“어 예. 최 실장님. 한과 신상품이 나온다고요? 1억이요?”
“예. 박 팀장님. 7천만 원요?”
드디어 강하나에게도 광고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내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광고주나 대행사에서 걸려온 전화라 생각하고 신이 나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생각하던 전화가 아니었다.
-정윤호 씨 되십니까?
“아 예. 말씀하세요.”
-저 중앙 지검의 서재일 검삽니다. 강은기 씨 문제로 좀 뵙고 싶은데 지금 시간 되십니까?
낮은 저음의 목소리는 바로 강은기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의 서재일 검사였다.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강은기를 구한 일 때문에 찾아온 게 확실했으니까.
바쁘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내 이어진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시간 내주시죠.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카페 고인돌에 있습니다.
어차피 한번은 일어날 일.
난 짧게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