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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졸업⑵
하늘 위로 떠오른 검은색 구체가 회색빛 눈동자를 뜬 직후 이튿날·
역사적으로 전례 없던 대마법사들 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강력 한 이들의 모임 ‘라스트 데이 회의 가 개최되었다·
회의 장소는 마법의 본고장이라고
도 불리는 도시 카멜른·
이곳은 마법계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법원로회’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장소였으며 마법사들 의 고향이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 문에 대마법사들이 모이기에는 구색 이 딱 알맞았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따 위 구색이나 갖추다니· 대충 근처의 찻집에서 모일 것이지·”
무려 50인의 거물이 자리에 모였 다· 하나같이 대마법사거나 혹은 정 계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으 로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스텔라를 비롯한 아르카니움 5대 명문학교의 교장과 마법원로회 마 법사 협회와 마탑 연합·
동해 함대의 사령관 할리스베일과 북극의 수호자 설파람 대공 남부 평야의 지배자 상인 멜리안 만월탑 주 해성월을 비롯하여 알테리샤 학 파의 연금술사까지·
아돌레비트와 스칼벤 제국의 왕족 들도 대거 참석했으며 평소에는 얼 굴도 비추지 않던 은거 현자들까지 나타났으니 가히 역사적인 모임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들 모였는가?”
마법원로장 사엘 리의 물음에 마 법협회장 아류문 블르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더 있다·”
더 있다고? 어지간한 거물들은 다 모인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는 그때 문이 열리며·
끼익-!
17세쯤 되어 보이는 백색 머리칼 의 소녀와 금색 머리칼의 사내가 걸 어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이 워낙 낯선 탓에 대부분은 알아보지 못했 으나 몇몇 대마법사들은 기운을 느 끼는 것으로 충분히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녀왕 스칼렛···
“그리고 옆의 저 사내는 이야기로 만 전해 내려오던 삭월탑의 마탑주 루드릭 할로우겠군·”
루드릭은 그 잘생긴 치아를 드러내 며 환히 웃으며 신사답게 정중히 인사했다·
“반가워요 여러분· 대부분은 초면 이겠죠? 비공식 마탑 삭월의 거탑 주 루드릭 할로우입니다· 엘트먼 엘 트윈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그의 발언에 대부분 입을 쩌억 벌 리고서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
었다· 엘트먼 엘트윈에게 스승이 있 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으니까·
“삭월탑이 간간이 존재감을 드러낸 다고는 소식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우리들의 눈까지 속이 고서 조용히 활동할 줄은 몰랐군·”
루드릭을 보고 놀란 이들은 그 옆 으로 따라온 소녀를 바라보았다·
백발에 새빨간 눈동자를 가진 혼 을 빼앗길 듯 빼어난 외모를 가진 그녀는 눈가가 새빨갛게 팅팅 부어 있었다· 마치 어젯밤까지 눈물을 홀 렸다는 것처럼·
“···1년 전부터 마녀왕이 매일같
이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평소 마녀를 싫 어하던 어느 마법사가 비아냥거렸다·
“마녀왕의 기세도 다 죽었군· 고작 소년 하나 사라졌다고···읍 커헉?!”
그 마법사는 말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입을 부여잡았다·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어느 사 이엔가 자신의 코앞까지 붉은 루비 같은 눈동자가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사색이 되었다·
‘히 히이익?!’
그녀가 다가온 게 아니라 자신이
끌려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 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기분 정말로 안 좋으니까 주 둥이를 나불거릴 땐 생각을 세 번 이상 하고 내뱉는 게 좋을 거야·”
“읍 으읍
알겠다고 격렬하게 마법사가 고개 를 끄덕이자 스칼렛은 그제야 그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선 가장 구 석진 자리에 가서 조용히 착석하니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녀왕 당신이야말로 언행에 주 의를 두는 게 좋을 거요·”
결국 참다 못한 사엘 리가 경고했
으나 스칼렛은 듣는 체도 안 하고 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 태도에 몇몇 마법사들은 분노했 으나 표출할 수는 없었다· 방금 보 았던 스칼렛의 말도 안 되는 염력 운용은 이 자리의 그 어떤 마법사에 게도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
‘마녀왕이 9클래스의 한계를 조금 이나마 뛰어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 었군·’
대체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 까· 백유설이 사라진 이후 마녀왕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마법
을 위협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스텔라 아카데미는 당연히 그만두 었으며 지금은 풍제국 인근에 위치 한 드넓은 숲에서 마수와 동물을 지 배하여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때문에 풍제국 황제가 어지간히 불안에 떨고 있던 모양이다·
지금만 해도 풍제국 황제가 스칼렛 을 상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자자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슬슬 우리가 모인 이유에 대해 말해 야 할 것 같군요·”
아류문 블르슌이 최대한 웃는 얼굴
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법사들은 불 편한 기색을 살짝 감추고서 그를 바 라보았다· 그나마 이 마법계에 문어 발처럼 여기저기 발을 걸치고 있는 아류문은 영향력이 상당한 편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저 하늘 위에 검은 색 달이 떠오른 지도 벌써 1년이 되 었습니다· 지금껏 저것에 대해 세계 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두뇌가 모두 모여서 연구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 지요 하지만 더 이상은 연구고 나발 이고 기다릴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검은 달의 개안····”
사엘 리의 중얼거림에 아류문은 고 개를 끄덕였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저희는 저 달 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 다·”
손가락을 딱! 튕기자 허공에 거대 한 흘로그램이 나타났다· 색상마저 자유로이 표현되는 저 홀로그램은 반투명하지만 않았으면 정말 진짜라 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자리의 대부분이 뛰어난 마법사였기에 그런 환영에 속아 넘 어가지는 않겠지만·
“천년 전 시조 마법사가 세상에 나 타났습니다· 그는 인간과 이종족을 비롯하여 모든 종족에게 어울리는
마법을 가르친 뒤 ‘십이신월을 만들 고서는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지요·”
홀로그램이 서서히 변화하더니 로 브를 입은 마법사의 실루엣이 되었 다· 실루엣은 마치 그림자를 새하얗 게 칠해놓은 것처럼 눈이 부셨는데 아류문은 그것을 두고 말했다·
“오래된 전승에 따르면··· 십이신 월은 시조 마법사 자신의 분신을 열 두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상 곳곳에 퍼뜨려놓은 파편이라고 합니다· 다 시 말해서 십이신월이 한데 모이면 다시금 시조 마법사의 ‘분신이 완 성된다는 뜻이기도 하죠·”
“시조 마법사의 분신이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겠소?”
아류문은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워낙에 다양 한 전승이 존재하기도 하고 실제로 사례도 없는지라 더 알아내는 건 불 가능했습니다· 다만 시조 마법사를 마지막까지 숭배하던 이들은 십이신 월이 모두 모일 경우 ‘용’이 나타나 세상에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하더군요·”
“···무턱대고 전승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 낸 이유는 뭡니까?”
“뭐긴요· 1년 전 백유설 군의 실
종과 동시에 모든 십이신월이 종적 을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
마법사들이 불안에 떨었다·
원래부터도 십이신월은 전설 속 존 재에 가까웠으나 한 세기에 한 번 씩은 목격담이 들려오고는 했다·
또한 백유설이 십이신월과 함께 활 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마··· 십이신월도 모두 백유설 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겁니까?”
“글쎄요· 저 하늘의 저걸 보고 있 자면 그런 건 꼭 아닌 것 같군요·
제 생각엔··· 백유설 군이 사라진 직후 십이신월들이 스스로를 보호 하기 위하여 만든 게 바로 저 구체 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십이신월을 모았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그러지 않 았을까요? 저는 ‘누군가’가 의도적 으로 십이신월을 모으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1년이 지났 다·
십이신월이 한데 모였음에도 백유 설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누
군가’가 저 하늘의 검은색 구체에 간섭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누군가’는 검 은색 구체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 고 있었지요· 아마도··· 모든 십이 신월을 모으지 못했다거나 그런 이 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흐음 그렇다는 건 저 현상 자체 가 의도된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겠 군·”
“그게 저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검 은색 구체에 어느 정도 간섭이 가능 해진 것으로 보이니 저희는 그에 대비해야만 합니다·”
“어떤 식으로 대비를 한다는 거죠? 저희는 저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뻔하죠 뭐·”
아류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전쟁입니다· 저희는 저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전쟁 그 무거운 발언에 마법사들 이 입을 다물었다· 바로 1년 전 흑 마인과의 전쟁으로 인해 새겨진 상 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다 시 전쟁이라니····
게다가 이번에는 시조 마법사가 남 긴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전쟁을 치 러야 한다니·
“두렵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어나야 합니다·”
이 자리에는 엘프왕 꽃서린과 마녀 왕은 물론 서리구릉의 위대한 수인 족 전사들의 왕을 비롯하여 인외 전 력으로 치부했던 이들까지 모두 참 전 의사를 밝히며 찾아왔다·
불과 3년 전이었다면 저들의 협조 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을 터·
‘모두 그 소년 덕분이겠지···
그뿐이랴·
백유설이 별구름 상회와 알테리샤 학회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을 돌아 다니며 무수히 많은 세력을 일으켜 세우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은 이들도 있 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쟁 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백유설은 꼭 이날을 대비하 기라도 한 것처럼··· 전 세계 곳곳 에 은혜를 입히고 자신의 발자취를 남겨두었다· 그들이 인간을 위해 세 계를 위해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설마 이 상황까지 예측한 건··· 아니 그럴 리는 없나· 내가 무슨
억측을·’
아류문은 쓰게 웃으며 본래는 백 유설이 앉아 있어야만 했을 빈자리 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어렸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가장 든 든한 조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 スト리의 모두에게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서로에게 진 원 한과 빚은 잠시 내려놓고 아주 잠 시라도 좋으니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싸워주시길 바랍니다·”
회의는 그 뒤로도 장장 12시간이 계속되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은 기
정사실이 되었으나 어떤 존재가 나 타날지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에 대 해 끊임없이 토론해야만 했다·
거기에 더해 어느 국가의 어느 병 력을 어디에 배치할지조차도 기싸움 이 오고 갔으니 그 수많은 국가를 통합하여 전쟁을 대비하기란 정말이 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세상의 멸망이란 크게 와닿 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만한 거물이 모였는데 설마 진짜 로 멸망할까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 수였고 그들은 자신들이 더 손해 보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전쟁이 무사히 끝난 뒤 우리의 병 력이 남들보다 더욱 크게 손해를 입 는 바람에 세력이 약해지거나 영향 력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군·’
과연 저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일까·
아류문이 쓰게 웃으며 그리 생각하 는 와중 아돌레비트의 홍비연 여왕 이 가장 먼저 파격적인 이야기를 전 해왔다·
“우리의 핵심 전력 ‘불의 꽃 기사 단’을 최전방에 내세우겠어요· 당연 히 저도 함께입니다·”
“···뭐? 그게 정말입니까?”
젤리엘은 기분 나쁘다는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전쟁도 전쟁이지만 저 여자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 기 분 나빴다!
“별구름의 ‘멸살호’ 20기가 함께 가겠습니다· 당연히 최전방입니다· 옆자리는 비워 두셨겠지요?”
홍비연을 노려보며 젤리엘이 그리 말하자 멸살호의 가치를 아는 마법 사들이 경악하여 벌떡 일어섰다·
“며 멸살호?! 한 대에 수조를 투 자했다는 그 비행정을···!”
한 대라도 부서졌다가는 어지간한
국가조차 휘청일 정도의 어마어마한 큰 손실일 것이다· 그런데 20기를 한꺼번에 투여하겠다니?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단순히 ‘전쟁’이 아니라 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면 수조의 가 치에 해당하는 아니 그 이상의 노 획물을 얻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전 세계의 모든 금전을 좌지우지하 는 별구름과 아이템 기술을 누구보 다도 빠르게 받아들여 최첨단 시대 를 열어버린 선진국가 아돌레비트가 앞다투어 저리 나서니 다른 이들도 더 이상 물러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도 ‘암영사단’을 투입하겠 소·”
“이건 우리 마탑의 모든 것이 걸려 있으니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 오!”
“우리도···
계산이 빠른 몇몇 이들은 아돌레비 트와 별구름을 따라서 자신들의 모 든 것을 걸고 전쟁을 치르고자 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십이신월과 관련된 무엇이든 아무거나 얻을 수 만 있다면 뭐라도 좋다고 생각이 들 게 된 것이다!
아마 그들은 모르겠지·
젤리엘과 홍비연은 이제 더 이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 는 것만을 오랜 세월 동안이나 기다 려왔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