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
85· 아돌레비트와 모르프(3)
아돌레비트의 대관식에 대뜸 모르 프의 후손이 등장했음에도 귀족들 은 저지하거나 의문을 표하지 않았 다·
에이젤 모르프· 그녀는 홍비연의 대관식을 장식할 하이라이트였으니 까·
평생의 숙적이었으며 원수였고 아 돌레비트를 병들게 하였으며 국가 를 그림자로 뒤덮었던 홍시화 공주 를 모르프의 후손이 완전히 잘라냄 으로써 오늘 아돌레비트는 새로 태 어나리라·
에이젤의 등장 이후 홍비연이 고 개를 끄덕이자 반대쪽 테라스의 커 튼이 걷히며 창문이 열리더니 몇몇 귀족들이 속박된 채 등장했다·
그들의 등장에 가만히 입을 꾹 다 물고 있던 몇몇 인물들의 안색이 창 백해 졌다·
‘자 잠깐· 저들은···!’
흰색 제복을 입은 그들의 이름은 ‘화선대’로 홍시화 공주의 직속 최 정예 마법기사단이었다·
하나 그것은 세간에 알려진 거짓·
그들은 홍시화의 손과 눈이 되어 온갖 더러운 짓을 도맡아 하는 그림 자 단체였는데 오죽하면 저들의 기 술로 인해 고문 마법이 몇 십 년은 더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겠는 가·
혈액과 눈알을 끓여 버리고 내장 을 뒤틀어 버리거나 고의로 혈관에 덩어리를 집어넣어 틀어막아 사지를 괴사시키는 등·
각종 고문을 통해 전 세계를 통틀 어 홍시화 공주가 알지 못하는 치 부는 없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서·
지금 당장 홍시화 공주가 대뜸 자 신의 정보를 세상에 모조리 풀어버 리면··· 대혼란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
홍비연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홍시화 공주가 세상에 정보 를 풀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홍시화 공주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얼굴은 웃는 게 아니었다·
싸늘한 무표정· 그저 웃음을 가장 한 가면일 뿐 그 내면은 차갑게 식 어 있었다·
불타오르는 그 심장과는 전혀 어울 리지도 않게 말이다····
“아니 저분은 화선대의 마렉 기사 님이잖아?”
“옆에 계신 분은 화선대 국기수호 장군 카나멜 기사님이셔·”
“왜 화선대를 체포하신 건지····”
펄럭!
에이젤이 손가락을 튕기スト 하늘에 서 마법진이 터지며 사방으로 종이 가 흩날렸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을 뻗어서 그 것을 받아 읽고서는 충격에 빠진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그것은 화선대가 그간 얼마나 끔찍 한 일을 자행해 왔는지 홍시화의 명령을 받아서 어떠한 일을 벌였는 지· 아주 짧고 간략하게 줄이면서도 빼곡하게 적어놓은 서류였다·
당연히 당장은 믿는 사람이 없었
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기에 홍비연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화선대의 빈틈 을 추적하였고 자신조차도 알지 못 했던 정보를 에이젤이 구해오는 바 람에 체포하는 게 가능했다·
솔직히 그때만큼은 홍비연조차 간 담이 서늘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에이젤이 아돌 레비트 내부에 정보원을 풀면 얼마 나 풀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거늘 에이젤은 대부분의 귀족을 협박하여 처형하는 게 아닌 오히려 회유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다·
아돌레비트의 그림자 속 뒷세계·
어둠 속에는 언제나 에이젤의 푸른 눈동자가 있었다·
이제 아돌레비트의 뒷세계에 대한 정보는 홍비연 공주조차 따라갈 수 없을 정도·
’···일전에 백유설 씨에게 충고 를 받고 마음을 고쳐먹길 잘했죠·’
에이젤은 한때 자신의 가문과 엮 인 모든 귀족들을 처형하려고 하였 다·
여느 때와 같이 귀족들을 찾아 나 서기 위해 아돌레비트로 출항하려던 그날 비행정 선착장에서 마주친 백
유설에게 충고를 듣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모든 귀족을 살해하고 다니 는 미치광이 살인귀가 되어버렸을지 도 모른다·
그녀가 복수심에 눈이 멀지 않고 피를 뒤집어쓴 복수를 하지 않게 된 이유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백유설조차 몰랐을 것이다·
에이젤이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것이 나비효과처럼 작용하여 아돌레비트 의 모든 정보력을 장악하게 될 줄 O
그녀가 우연히 살려둔 귀족 한 명 이 사실은 홍시화에게 반감을 가지
고 있었으며 자신의 심장을 가져가 도 좋으니 위업을 완수해 달라며 핵 심 정보를 내놓았을 때·
에이젤은 이 국가의 뒷면이 생각보 다도 더 어둡고 끔찍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많은 귀족이 연루되어 있 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끔찍한 죄를 저지른 귀족들을 하나하나 찾 아다녔다·
홍시화를 따른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대부분의 귀족은 에이젤 에게 대항하려고 했으나 지금의 그
녀를 마법으로 이겨낼 자는 거의 남 아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체포되어 지하 감옥에 수 감되었으니 그것은 곧 홍시화의 세 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서서히 조금씩 가랑비에 젖어가 듯
에이젤과 홍비연은 홍시화를 갉아 먹었다· 그녀가 눈치챌 수 없을 정 도로·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흐]·
자신의 사지와 두 눈과 귀가 모조 리 녹아내려서 없어질 때까지도 그 녀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홍시화의 사람 대부분을 감옥에 처
넣고 그중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정보원으로서 부리게 된 에 이젤은··· 이제 아돌레비트의 추악 한 뒷면을 모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들을 모 두 밝힐 생각은 없었다·
단 하나·
아이작 모르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오명을 씻기 위해 사용할 뿐이다·
“모두가 거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 릅니다· 하지만 신성한 아돌레비트 의 대관식에 끔찍한 이야기를 가지 고 나온 이유는····”
홍비연은 공중을 사뿐히 거닐었다· 7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만이 펼칠 수 있는 능숙한 에어워크를 보며 사람 들이 감탄하여 입을 벌렸다· 그녀는 이제 고작 19세에 불과할 텐데····
화선대의 앞으로 다가간 홍비연은 아래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제 여왕으로써의 첫 의무를 시행 하기 위함이니 이 국가에 깊이 뿌 리 내리고 있는 추악하고 역겨운 관 행을 모두 뽑아낼 것입니다·”
그녀는 여왕의 지팡이로 화선대의 턱을 짚어서 들어 올렸다·
“말하라 화선대의 기사들아· 이 서 류는 너희들이 작성한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하겠는가?”
화선대의 기사들은 홍시화 공주를 한 번 응시하였다· 하지만 애원하는 듯 혹은 어떻게든 해보라는 듯한 그 눈빛은 홍시화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결국 기사들은 눈을 질끈 감고서 처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예 모두 사실입니다· 홍시화 공주 는 저희 화선대와 정보기관 설청기
사단을 은밀하게 움직여 국가의 기 반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 말에 홍시화를 여전히 지지하고 사랑하던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힘 없이 주저앉았다·
여태까지 홍시화의 선행이라고 믿 어 의심치 않았으나 사실은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거짓이었으며 그 뒤로는 선인들을 해치고 조용히 묻었다는 그 내용들을 모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시화의 업적이라고 생각했던 대 부분의 행적이 모두 거짓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충격이나
다름없었으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과연 아이작 모르프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 설마··· 이것만큼은 아닐 겁 니다· 홍시화 공주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장 위대한 업 적일 텐데요····”
배신자 모르프를 처단하고 백요호 까지 쓰러뜨린 홍시화 공주는 당시 아돌레비트의 영웅이スト 세계의 영 웅이 었다·
“음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음해에 불과합니다! 화선대의 기사들이 짜 고 치는 게 아니라고 어찌 증명하지
요!”
“맞습니다! 고작 이따위 종이쪼가 리로 뭘 믿으라는 겁니까!”
“어차피 여왕으로 즉위하는 마당 에 우리 공주님을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여기저기에 숨어있던 홍시화 의 지지자들이 속속 들어 나타나며 홍비연을 아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말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증언은 여기저기 터져 나올 수 있 으나 여왕이 되어 권력이 막강해진 홍비연이 거짓 증언을 만들 수도 있
지 않는가!
제아무리 여왕이라도 모든 기관의 핵심 인물을 붙잡아서 억지 증언을 하도록 만들 수는 없으나 신념에 사로잡힌 미친 사람들은 그런 이성 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법·
홍비연과 에이젤은 당연히 이러한 상황까지도 모두 예상하였다·
“그래서··· 어렵게 정말로 어렵 게 준비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손가락을 튕기スト 뒤쪽에서 대기하 고 있던 마법사들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그중 가장 늙은 마법사가 들고 있
는 거대한 나침반을 본 어떤 마법 연구학자가 눈을 크게 뜨고서 경악 하였다·
“저 저건··· ‘기억의 나침반’!”
전 세계에 단 7개밖에 되지 않는 고대시절의 아티팩트로서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기억처럼 되새길 수 있는 기능을 갖춘 물건·
이것에는 명확한 단점이 두 가지 존재했으니 사용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며 접촉한 몇몇 인물만이 기억 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었는 데····
‘이번에 돈 좀 만졌지·’
백유설의 얼굴을 떠올리자니 이 순간에도 기분이 좋아진 홍비연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기억의 나침반· 이곳에 있는 모두 를 그날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기 억을 엿보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단 원치 않는 분들은 눈을 감아주세요· 눈을 감은 자들은 데려가지 않을 테 니····”
기억의 나침반을 수많은 국민에게 보이기 위해 어찌나 많은 돈이 필요 했던가·
하지만 그따위 돈 전혀 아깝지 않 았다·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왔기에 자 신이 가지고 있는 값비싼 성과 별 장 드레스와 보석을 모조리 팔고 거렁뱅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할 지라도 틀림없이 이행하리라·
“나,나는··· 직접 봐야겠어·”
“기억의 나침반 틀림없군요· 세상 에 어찌 저 물건을···
“···현자님들이 진품이라고 인증 하셨으니 진짜겠지요· 저도 직접 봐 야겠습니다· 정말로 우리 공주님에 게 죄가 있는지를·”
몇몇 겁 많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두
눈을 똑바로 뜬 채로 하늘 위로 날 아오른 기억의 나침반을 똑똑히 지 켜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홍비연이 고갯짓을 하자 마법사들 이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잠시 두] 궁전의 하늘이 온통 마법진으로 뒤 덮이더니····
자리에 나와 있던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 모두가 머나먼 과거로 이동 하게 되었다·
12년 전·
모르프 대공가의 멸문 당일·
모르프 대공령 모르프란 숲····
“이제부터 보게 될 광경은 그리 좋지 못할 것입니다·”
홍비연을 선두로 하여 반쯤 영체 화가 된 사람들은 숲을 헤치고 나아 갔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어느 거대한 평야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여 입을 틀어막았다·
‘백요호 화령·’
태초의 불꽃을 다루는 전설 속 그 마수가 평야의 절반을 뒤덮은 채 하늘 높이 포효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시간은 아직 멈춰 있는 채 움직이
지 않았다·
백요호 화령에 대항하기 위한 12 년 전의 마법사들도 멈춰선 채 지팡 이를 겨눈 채 멈춰 있었고 가장 선 두에 있던 아이작 모르프 공작 역시 도··· 아직은 멈춰 버린 채였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12년 전의 홍 시화 공주를 찾으려고 했으나 어디 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공주는 오지 않은 것인가?
모두가 의문을 표하는 와중 홍비 연이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부터 진실을 보여드리겠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