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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시조 마법사의 유물(3)
수인족들이 백유설을 신뢰하지 않 는 만큼 백유설 역시도 매한가지였 다· 애당초 그들의 속마음에 [의심 질투 투쟁심] 등의 감정이 떠오르고 있는데 믿으려야 믿을 수가 없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수인족들이 무언가 작당 모의를 하고 있지 않다
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길 안내 능력은 상 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저게 바로 ‘레인보우 아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하월평원의 극히 일부 지형에는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섬에서 365일 사시사철 쉬지 않고 폭포수가 떨어 져 내리고는 했는데 그로 인해 만 들어진 특별한 무지개를 레인보우 아치라고 부른다·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탑승 해서 이동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라
는 것·
다만 수시 수 초마다 그 위치가 바뀌는 탓에 찾아서 이용하기가 쉽 지 않았고 이동되는 장소도 랜덤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것을 사업화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젤리엘의 이견이었다·
다만 아주 극히 일부의 레인보우 아치는 현지에 오랜 시간 살아온 수 인족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궤도가 파악되어 있었다·
저 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선 명한 무지개를 바라보던 백유설은 그 것들에 내장된 마나의 흐름을 본능적 으로 느끼고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앞으로 10분 정도면 걷 히 겠는데요·”
그러자 아가씨에게 레인보우 아치 에 대해 신나게 설명하던 수인족들 이 도리어 당황해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뇨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마 나가 서서히 옅어지고 있거든요·”
“···그게 느껴지십니까?”
수인족들은 풀레임과 젤리엘을 덩달 아 바라보았다· 젤리엘은 전혀 모르겠 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으나 풀 레임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맞아· 자꾸 어디론가 떠 나갈 것처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 어 이쪽··· 아니 저쪽인가···
풀레임이 서쪽의 평야 너머를 손가 락으로 가리키자 아예 수인족들은 기절해 버릴 기세였다·
“이럴 수가····”
“레인보우 아치는 한 장소에 머물 지 않고 계속 이동하고 시간과 장 소가 워낙 불규칙적이라서 저희도 특정 포인트를 제외하고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한 번에 알아차리신 겁니까?”
어떻게냐고 물어도 그냥 그렇게 느 껴져서라고밖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풀레임은 애당초 빛과 자연을 모두 다루는 마법사였고 백유설은 자연 천기지체의 경지에 도달하여 자연만 물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에 음··· 팍! 하고 솨락! 하면 서 느낌 같은 게 오지 않나요?”
풀레임이 자그마한 팔을 휘적거리 면서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고 했지 만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었다·
그녀의 감각은 애당초 ‘마력’이라 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자연스럽 게 알게 된 것이었으니까·
이를테면 사람에게 팔을 움직이는 법이라든지 숨 쉬는 법을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으나 원리를 설명하자니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반명에 백유설은 마력누설지체에서 자연천기지체를 깨달았기어1 어느 정도 느낌을 알 수는 있었다·
“뭔가 번쩍! 하고 팍! 하는 느낌 알죠? 딱 그겁니다·”
물론 아는 것을 가르치는 일은 아 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 *
레인보우 아치는 발을 딛는 순간 중력에 상관없이 마치 썰매를 타는 것처럼 쭉 미끄러져서 순식간에 고 도로 진입하게 된다·
이때 살아 있는 탈것에 탑승해 있 을 경우 날뛸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 으나 세계 3대 명마 중 하나라 불 리며 페가수스의 핏줄을 이어받았다 고도 전해지는 백마 호른에게는 통 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무지개를 건너면서도 백마는 전혀
날뛰지 않았고 덕분에 ‘세계의 벽’ 이라고도 불리는 서리구릉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타닥!
서리구릉에 발을 디딘 백유설은 가 장 먼저 풀레임을 확인하였다·
이곳은 구름보다도 높은 고산지대 였기에 훈련받지 않은 인간은 현기 증을 느끼거나 쓰러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응? 왜?”
당연히 풀레임은 멀쩡했다·
백유설은 깜빡했지만 그녀는 엄연 히 마법전사로서 체력을 탄탄히 단
련하였고 또한 천사의 핏줄을 이어 받아 날개까지 달려 있는데 고작 이 정도로 현기증을 느낄 리는 없었다·
—ロ ・
반대로 현기증을 느끼는 이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젤리엘이었다·
엘프는 태생적으로 세계수에서 나 고 자라기 때문에 고산병에 걸릴 일 이 거의 없었으나 젤리엘은 달랐다·
하이 엘프이면서도 세계수에서 거 의 살지 않았기 때문·
연꽃 객잔이 초고층 건물이기는 했 으나 기껏 해봐야 해발 1km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고산병에
걸릴 일이 없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수인족들이 당황하여 젤리엘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녀는 그들을 제지하 고서 백유설에게 다가왔다·
“잠깐만 어깨 좀 빌릴게·”
“어? 어 응· 그래·”
“여러분은 주변을 탐사해 주세요· 지형이라든지 여러분들의 기억과 많은 게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간단한 체크가 끝난 뒤에 다시 출발 할게요·”
거기까지 말한 뒤 젤리엘은 순식간 에 잠들어버렸다· 어디에서든 쪽잠 을 잘 수 있다고는 들었으나 정말 이렇게 정신을 잃듯이 잠들 줄이야·
얼떨결에 젤리엘과 착 붙어서 자리 에 주저앉게 된 백유설은 멀뚱멀뚱 수인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젤리엘과 백유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 싶었으나 아가씨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다녀오지요·”
수인족들이 호른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지자 풀레임이 백유설의 맡은
편에 주저앉았다·
“저 요망한 년이 진짜··· 별짓을 다 하는구만 아주?”
“뭐가?”
됐어· 나도 좀 기대자·”
풀레임은 대뜸 백유설의 반대쪽 팔 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체구가 젤리엘보다 더 작았기에 훨씬 안정 적이고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무엇보다 한쪽으로 치우진 자세에 중심이 잡히기도 했고·
’···이게 뭐 하는 거지·’
분명히 시조 마법사의 유물을 찾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는데 위기감은 커녕 복에 겨운 일을 겪고 있었다·
사아아아···
서리구릉의 바람은 시원하다는 단 어보다는 쌀쌀맞다는 말이 훨씬 더 어울렸다·
봄 날씨에 맞지 않게도 온몸이 으 슬으슬 떨릴 정도의 추위였지만 젤 리엘이 준비해 준 보온 코트 덕분에 추위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네게는 불리한 장소로군·
풀레임까지 새근새근 잠들자 청동 십이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오음절맥 (五陰絶脈)’의 체질을 받아들인 뒤 이런 추위는 처음 겪 는 게 아니던가?
“아직 별로 춥지도 않은 걸요· 코 트도 있고···
-그래· 아직은 그렇ス]· 하지만 점 멸을 사용하면 어떨까· 이 추위를 견디며 그런 스피드를 계속해서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네요·”
-여태까지는 네가 추위를 탈 일도 없었고 겨울에도 무난히 활동했기 때문에 별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장소는 다르지· 서리구릉이 왜 서리
구릉인 줄 아느냐? 만년 이상의 세 월 동안 눈이 쌓이고 또 쌓여 완전한 추위로 뒤덮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냥 추운 게 끝 아니에요?”
-쯧 그럴 리가· 이곳의 마나를 느 끼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이곳 은 자연의 기운부터가 ‘한랭 (寒冷)’ 의 성질을 띠고 있다· 너를 점점 더 약화시키겠ス]·
“이런····”
뒤늦게 청동십이월의 말을 이해한 백유설은 표정을 찡그렸다· 단순 추 위라면 코트를 껴입는 것으로 얼마 든지 극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연
의 마나 그 자체가 냉기의 성질을 띠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백유설은 자연의 마나를 체내로 빨 아들여 순환시킨 뒤 힘을 얻는 방식 으로 점멸을 사용했으니까·
-경고하건대 전투를 10분 이상 끌지 말거라·
“10분 이상 싸우면··· 어떻게 되죠?”
-손끝부터 얼어붙기 시작하겠지·
“끄응·”
백유설이 한숨을 내쉬자 청동십이 월이 혀를 찼다·
-평상시에는 네가 이런 장소에 올
일이 없기에 나의 기운을 단련하지 않는 데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 만 너는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모든 기운을 골고루 단련했어야만 했다·
“···알고는 있죠·”
청동십이월의 일침에 백유설은 살 짝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는 점멸 마법에 득이 되는 은세십일월의 가호를 위주로 하여 담갈토이월과 금강칠월 등 방어력 에 도움이 되는 기운을 단련하였다·
그 외에 정신력이나 얼음 및 번개 등의 속성은 거의 단련하지 않았다·
나중에 극의를 깨우치게 된다면 자
연천기지체의 육신으로도 벼락을 날 리거나 대지를 얼리는 등의 행위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거기까지 도 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 까마득했기 때문·
당장 성장에 도움되는 가호를 위주 로 단련하였고 십이신월들은 그런 백유설의 선택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청동십이월의 가호를 과하 게 받아들여서 그 페널티를 받은 주 제에 제대로 된 수행도 하지 않아 서 스스로 덫에 걸려 버리다니·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 너는 그런 위인이니까·
애당초 ‘오음절맥’을 받아들인 이 유는 홍비연의 ‘구양절맥’을 상쇄시 키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때 그 상 황이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백유설 은 오음절맥을 받아들이리라·
30분쯤 지나자 사방으로 흩어져서 주변을 탐사하던 수인족들이 돌아왔 다· 동시에 풀레임과 젤리엘은 잠에 서 깨어났다·
“빠르네·”
“예 아가씨· 보고드리겠습니다·”
언제 잠에 들었냐는 듯 순식간에 기운 넘치고 팔팔해진 젤리엘을 보고
있자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인족들의 보고를 짧게 받아들인 젤리엘은 백유설을 바라보았다·
“지형은 바뀐 게 거의 없고 부락 의 위치도 여전히 그대로라고 흐]네· 어떡할 거야?”
“그럼··· 이 지도에 있는 장소를 모두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도를 건네며 말하자 수인족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지 었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지도를 건네받은 그들이었으나 역시나 위 험하고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경고하건대 이곳에서 어 떤 수인족을 만나더라도 당신들을 지켜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의 소 명은 어디까지나 아가씨의 보호니까 요·”
“음 알고 있습니다·”
꼭 말하는 꼬라지가 수인족을 반드 시 만나게 될 것만 같다는 듯했다·
‘하기야 안 만나는 게 더 어렵겠네·’
백유설이 그린 지도를 건네받은 수 인족들은 저들의 기억을 토대로 다 시 수정해서 돌려주었다·
그것으로 알 수 있던 점은 수인족 부락이 모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데다가 경비 체계가 굉장히 삼엄하 여 생각 이상으로 빈틈이 거의 없 다는 것이었다·
수인족들이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 션을 하며 경계를 서는 것도 신기했 으나 의문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수인족들은 대체 뭘 두려워하 는 거지?’
저들에게 물어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저 ‘어른들이 시 켜서 경비를 섰다· 이유는 모른다·’ 라는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서리구릉은 올라오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혹여나 외침을 받더라도 지
금 백유설 일행이 서 있는 장소 즉 구릉의 외각을 감시하는 게 옳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런 감시 체계도 없고 내부에 시야를 철저하게 풀어 놓은 저 상황이 기형적이기만 했다·
‘뭐··· 보면 알겠지·’
백유설은 그리 생각하며 직박구리 안경을 들었다· 언제든 이곳에는 정 답이 담겨있게 마련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