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6화
306. 최은태 3
서울 H 병원 별관 7층.
경찰은 온데간데없고 간호사들이 앉아 있어야 하는 데스크 역시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난 큰 소리로 외쳤다.
“강은기!!”
그 순간 7층에 있는 6개의 병실 중 제일 멀리 있는 706호에서 강은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야!!”
난 미친 듯 달려가 706호의 문을 잡아당겼다.
덜컥.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서는 다투는 소리와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XX!! XXXX!”
난 지체하지 않고 닫긴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미닫이문에 뭔가를 괴어 놓은 모양이다.
“형님!”
뒤늦게 따라온 이수찬과 최동혁이 합류했다.
“다 같이 발로 차!”
다시 한번 세 사람이 발로 걷어찼다.
콰아앙!
아직 문이 그대로다.
“다시 한번!”
그 순간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괴고 있던 게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미닫이문이 끼기긱 소릴 내며 열렸다.
방 안에선 강은기가 침대 위에 한 손이 수갑으로 묶인 채 링거대로 칼을 든 상대와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한 손이 묶여 있어 밀어내기에 급급할 뿐이다.
난 한달음에 거리를 좁힌 다음 검은 모자 남자의 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빠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은 모자를 쓴 남자의 턱이 돌아갔다.
그 순간 검은 모자의 남자가 칼을 꼭 붙든 채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헉헉! 은기야. 괜찮아?”
강은기는 정신을 잃은 검은 모자의 남자에게서 칼을 빼앗아 들었다.
“헉헉헉······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대답하기도 전 이수찬과 최동혁이 달려오며 외친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강은기는 여전히 칼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순간은 지나갔지만 난 여전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일단 칼부터 내려놔.”
“뭐?”
“그 칼 놓고 이야기하자고.”
그제야 강은기가 자기 손에 칼이 들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알았어. 누가 이걸로 찌른대?”
강은기는 손에 든 칼을 바닥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짤그랑.
쇠붙이가 병원 바닥의 타일과 부딪히며 잔망스러운 소리를 낸다.
순간 이수찬과 최동혁이 급히 검은 모자의 남자에게 다가가 벨트로 두 손을 뒤로 묶었다.
강은기가 검은 모자의 남자를 쳐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씨X. 그나저나 방금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죽을 거라면 진작 죽었겠지.”
이리저리 훑어봤지만 몇 군데 긁힌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강은기가 쓰러진 남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 봐라. 하여간 윤호 넌 주먹이 흉기야.”
“시답지 않은 소리 말고. 경찰들은 어디 갔어?”
강은기가 고개를 젓는다.
“몰라. 갑자기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저 새X가 들어오더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간호사들도 안 오고.”
경찰들은 물론 간호사들에게도 돈을 푼 모양이다.
“근데 너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대흥 저축은행 쪽으로 간다며?”
“최만식 그 인간이라면 널 포기할 것 같지 같아서······.”
“또 감이야? 아니다. 혹시 무슨 예지몽이라도 또 꿨어?”
“그래. 뭐 비슷한 거야.”
강은기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미치겠네. 진짜 신기가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진짜 나 최 회장 아들이 맞긴 해?”
“하는 짓 보니까 널 의심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진짜 아들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는데 죽을 뻔한 상황.
강은기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는다.
“최만식 그 새X. 의심만으로 사람을 죽이려 들어? 그거 완전 미친 XX 아냐?”
“좀 그런 편이지.”
그 순간 눈치를 보던 최동혁이 묻는다.
“은기 형님.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강은기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거참. 나도 이제 부처 다 됐네. 냅둬. 그리고 김 변호사한테 바로 전화해 나 뒤질 뻔했다고. 그리고 서 검사한테도 전화해. 나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서재일 검사는 강은기의 자수를 받은 서울중앙지검의 에이스 검사를 말한다.
“예. 형님.”
최동혁이 방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건다.
그 틈을 타 강은기가 내게 말했다.
“윤호야. 이제 빨리 가.”
“응?”
“여기 있으면 너도 조사받잖아. 그러니까 빨리 나가. 넌 여기 온 적 없다고 할 거니까.”
강은기가 수갑이 묶이지 않은 오른손으로 날 밀친다.
이수찬도 내게 얼른 자리를 피하라고 말한다.
난 검은 모자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인간은 어쩌려고?”
이수찬이 말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기절시킨 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큰집에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최동혁이 그 대답을 막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넌 윤호 형님이랑 같이 가.”
이수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뭔 소리야?”
“내가 은기 형님 따라 감방에 들어갈 거야.”
“너······ 설마?”
“그래. 또 어떤 놈이 노릴지 모르니까.”
대답을 하는 최동혁의 눈이 번뜩였다.
그 순간 불길함을 느끼고 외쳤다.
“최동혁. 그놈 조져서 죄지을 생각이면 넌 나한테 죽는다?”
최동혁이 움찔거리며 강은기를 쳐다본다.
강은기가 피식하고 한숨을 내쉰다.
“왜 날 봐 인마? 나 윤호한테 못 이겨. 그러니까 윤호 말 들어.”
“혀 형님.”
“그리고 정 나랑 같이 들어가고 싶으면 저놈 족치지 말고 그냥 옛날 일 몇 개 정도 꺼내서 자수해. 넌 어째 머리가 그렇게밖에 안 돌아가냐?”
순간 최동혁이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나 봅니다. 알겠습니다. 형님이 알려주신 대로 하겠습니다.”
강은기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내가 여기 온 일을 덮기 위해 최동혁이 나섰다.
강은기는 이어 이수찬을 보고 말한다.
“수찬이 넌 할 일이 많다. 이제껏 잘해왔으니 내가 나가기 전까지 회사 관리 잘하고.”
“형님!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너까지 들어오면 동생들은 누가 챙겨?”
이수찬이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강은기가 날 향해 손짓한다.
“너 최 회장 만나러 갈 거지?”
“그래.”
“그럼 이거 가지고 가.”
강은기가 머리 위로 손을 올린 뒤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는다.
“이 정도면 DNA 검사 확실하겠지?”
“그래.”
“영감탱이 궁금증은 풀어주겠지만 혹시나 내가 그 인간 아들이라고 해도 영감탱이한테 나 볼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 XX. 하루에 두 번 죽을 뻔하게 해놓고 무슨 염치로 보자고 그래?”
잔뜩 화가 난 강은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데 너 괜찮겠냐? 경찰까지 끼어 있는데?”
“걱정하지 마. 동혁이랑 있으면 당할 일 없어. 그리고 서재일 검사를 닦달하면 걱정 안 해도 돼. 그 인간 꽤 골통이거든.”
검사로서 골통이란 말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단 있게 수사를 한다는 말이다.
즉 확실히 보호해준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난 강은기에게서 받은 머리카락을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쌌다.
“나중에 면회 갈게.”
“그래. 몸조심하고.”
“너나 조심해!”
엘리베이터를 오르며 난 대흥 저축은행장이 아닌 최은태 회장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 * *
병원 1층으로 내려온 난 이수찬에게 고개를 숙이라 말하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기다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엘리베이터가 보이는 의자에 다가가 앉자 이수찬이 자연스레 날 따라온다.
잠시 후 경찰 세 명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게 보였다.
커피잔을 들고는 있지만 셋 다 바싹 얼어붙은 채로 입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이군.’
지금 이 자들이 사주를 받고 습격자가 들어 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운 경찰들이었다.
당장이라도 박살을 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세 사람의 이름을 기억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몰래 동영상도 찍으면서.
양태호 이준영 박현중.
내가 왜 기다리라고 했는지 알아채자 이수찬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기억만 해둬. 괜한 짓 해서 감방 가지 말고 서 검사에게 이 경찰들 이름은 꼭 알려.”
“알겠······습니다.”
이수찬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낸다.
그런데 경찰들은 바로 올라가지 않고 시간을 더 끌었다.
난 의심을 피하려고 곁에 있는 아줌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주머니. 뭘 그렇게 재미있게 보세요?”
“아~ 저거!”
아줌마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병원 로비의 대형 LCD.
그곳에선 어제 방송한 <신의 이름으로> 11화가 재방송이 되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유진이와 ‘만신 월아’의 얼굴이 번갈아 나오는 씬이 말이다.
순간 너무도 달라진 내 상황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왔다.
‘많이 변했네 정윤호.’
회귀 전이라면 난 이렇게까지 주변 일에 위험을 무릅쓰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다시 살아난 이후 스스로 놀랄 만큼 주변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촬영장에 있는 유진이에게서 온 까톡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러블리♡유진 : 오빠. 나 잠깐 촬영 쉬는 중. 근데 괜찮아요?]
[러블리♡유진 : 오빠. 별일 없는 거 맞죠?]
[러블리♡유진 : 대답을 왜 안 하지? 아픈가?]
[러블리♡유진 : 어? 읽씹? 와······ 진짜 바쁜가 보네. 그래도 걱정되니까 까톡은 남기시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지만 이내 짤막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정윤호 : 바빠. 그러니까 나중에 집에 가서 이야기해 줄게!]
[러블리♡유진 : 살아났다! 오빠!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걱정하는 유진이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해야만 했다.
하지만 유진이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경찰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순간 곁에 있는 아줌마들이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TV에 나오는 유진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런데 쟤가 그 요즘 유명하다는 정유진이라는 배우야?”
“맞아요. 언니. 근데 언니가 좋아하던 그 무당 할머니도 쟤가 연기했다잖아요 글쎄.”
“그래? 그 무당 할머니를 저렇게 젊은 애가 연기했다고? 어떻게?”
“뭐 할리우드 특수효과 분장인가? 뭐 그런 거로 했대요.”
“맞아. 나도 지난주에 아침 방송 보다가 까무러칠 뻔했다니까?”
시청률 30%에 근접한 드라마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모두가 유진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에 롤을 말고 있는 40대의 여자 환자가 대뜸 오늘 있을 12화의 시청률을 언급했다.
“오늘은 30% 넘겠지?”
“에이~ 30%는 무리지.”
“뭔 소리야. 30%는 무조건 넘지!”
그 순간 환자들이 서로 30%의 성공과 실패로 나뉘어 돈을 걸기 시작한다.
소란이 일자 경찰들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난 슬그머니 몸을 돌려 그들을 등진 채 내기에 끼어들었다.
5만 원을 내밀면서.
“전 30% 넘는 데 걸겠습니다!”
순간 환자들이 날 쳐다본다.
“그쪽은 몇 호실이야?”
난 웃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잘생긴 총각. 몇 호실인지 알아야! 내기에 끼워주지.”
“전 그냥 면회하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기면 이 돈은 저기 있는 소아암 기부 박스에 넣어주시고요. 제가 지면 이걸로 다들 맛있는 거 사서 드세요.”
제일 큰 언니로 보이는 505호 환자가 씨익 웃는다.
“두말하기 없기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경찰들이 사라진 게 보인다.
난 아주머니들을 향해 유진이를 좋아해 달라 고개를 숙인 뒤 이수찬과 함께 병원을 벗어났다.
* * *
병원 지하 주차장.
“수찬아. 먼저 가봐.”
“형님. 제가 모셔드리겠습니다. 차도 저희 회사에 있잖습니까?”
“차는 나중에 가지러 갈 게. 그리고 넌 서 검사한테 연락도 해야 하고 애들 챙기느라 바쁘잖아.”
“그렇긴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먼저 들어가 봐. 괜찮아.”
그 순간 이수찬이 허리를 깍듯이 반으로 굽힌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은기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에 어깨를 두드렸다.
“너에게도 그렇겠지만 나한테도 은기는 형제야. 고맙다는 인사받을 일 한 거 없어.”
이수찬이 씨익 웃는다.
“형님이 제 형님이라서 참 다행입니다.”
“시답지 않은 소리 말고 어서 가봐.”
“예! 형님!”
이수찬이 꾸벅 인사를 하곤 차에 올랐다.
사라지는 차를 보며 난 곧장 대흥 저축은행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의 벨 소리도 울리기 전 최영호 은행장이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아직 최은태 회장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참 팔자 좋으십니다.”
-뭐?
“은기가 또 죽을 뻔한 건 아십니까?”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난 덤덤히 사정을 늘어놓았다.
-최만식. 그 새X가······.
“됐고. 지금 당장 최 회장님과 만나겠습니다.”
상대가 잠깐 멈칫하다 말한다.
-아 알았네. 명동 고택으로 와. 어르신께는 말씀드려 둘 테니 거기서 보자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난 곧장 강감찬 대표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닦달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그렇게 연락이 안 되면 어떻게 해!
강감찬 대표는 마치 날 아버지처럼 혼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걱정이 담긴 그의 질타가 왠지 기분 좋게 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숨을 몰아쉬던 강감찬 대표가 내게 묻는다.
-후우.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자.
어떻게 할까 했지만 난 덤덤히 최은태 회장과 나 그리고 강은기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아버지가 나타났는데 그것 때문에 목숨이 위험해졌다고.
10분간 강감찬 대표는 묵묵히 내 말을 들어줬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이 나자 강감찬 대표가 나지막이 말한다.
-고생 많았구나.
순간 가슴에서 울컥하는 게 차올랐다.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하는 소리란 건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강감찬 대표는 이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최 회장 댁으로 간다면 같이 가자.
강감찬 대표는 날 위해 함께 가주겠노라 대답하고 있었다.
* * *
명동의 고택.
강감찬 대표와 난 마중을 나온 최영호의 안내를 받았다.
고즈넉한 기와집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 썰렁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앞선 최영호가 대청마루와 연결된 방을 가리켰다.
“여기 들어가면 되네. 어르신도 기다리고 있어.”
“예.”
“그리고 강 대표님은 밖에서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강감찬 대표가 고개를 젓는다.
“난 우리 정 팀장을 혼자 들여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최영호 은행장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안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 모두 함께 들이지.
“예. 어르신.”
최영호가 위를 가리킨 순간 강감찬 대표와 난 디딤돌에 신발을 벗고 대청으로 올랐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최은태 회장이 있는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