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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흑마전쟁(6)
혹마도왕 아벨라인 슈타베르크의 상태는 예전만 하지 못하다·
권능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였으 며 그의 가장 강력한 무구의 일부는 유실되거나 파괴되었고 가장 강력 한 마스터피스로 알려진 아틀락스의 갑주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오래전 입은 상처로 인 해 흑마력이 녹록치 못하며 흑마인 화를 한 덕분에 그의 자랑이던 빛의 백마법은 아예 사용하지도 못한다·
사아아···!!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회련의 회색빛깔 머리칼이 흔들린다·
근방으로 9리스크의 흑마인 넷이 모여든 기척을 느낀 회련은 슬슬 때 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내가 훨씬 유리하다·’
흑마도왕은 더 이상 과거의 그 최 강이 아니다· 10클래스 혹은 10리 스크의 경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에 정해놓은 인류의 한계가 정 확히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흑마도왕이 9클래스의 마 도사이자 9리스크의 흑마인으로서 정점에 올랐다지만 그러한 경지는 다른 흑마인들이 충분히 따라잡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났다·
당장에 아틀락스의 갑주를 입은 자신의 부하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란 말이다·
그런데·
대처】 왜!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시는
겁니까? 흑마도왕·”
흑마도왕은 회련이 자신의 모든 병 력을 끌어모을 때까지 꿋꿋하게 기 다려 주었다·
“당신은 곧 죽게 됩니다·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는 것 아닙니까? 최강이 라 불리던 시절의 당신이라도 이만 한 병력이 모이면 상대할 수 없습니 다· 하물며 지금의 당신은····”
“말이 많군· 벌써부터 승리에 취하 기라도 한 것인가? 오만하구나·”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회련 은 벌써부터 승리에 취해 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결과가 정해진 싸움·
쿠구구구···!!!
아직 백주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하늘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어간 다· 요새에서 흑마도왕을 바라보며 벌벌 떨고있던 수준 이하의 흑마인 들을 그것을 보고 견디지 못하고서 미쳐 버렸으나 근처에 있던 또다른 강자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닌 흑 마인이라고 할지라도 이 흑마력의 파도를 견뎌내기란 어려운 일·
동서남북 사방향에서 9리스크의 흑마력이 폭풍처럼 몰려오며 이 일 대를 뒤덮기 시작하는데 어찌 허약 한 흑마인이 버틸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도 무거워·’
그것은 회련에게도 해당되는 이야 기· 체내에 흑마력이 거의 없는 회 련이었기에 그저 정신력으로 감내하 는 게 고작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강자들의 사이에서는 두 다리에 힘 을 꽉 주고서 버티는 게 고작·
이런 자신이 한심하고 혐오스러웠 으나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었
다·
번쩍! 보랏빛 벼락이 치더니 흑마 도왕의 후방 300m 거리에 흑마인 한 명이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나타 났다·
흑색 벼락의 ‘썬더로드’·
쿠구구···!! 대지를 가르며 저 멀 리서부터 질주하며 달려오는 키 20 m의 거인의 이름은 ‘자이언트 킬러’·
저 하늘 높이 구름을 가르며 악마 의 날개를 펼치며 등장하는 흑마인 의 이름은 ‘데빌 세인트’·
마지막으로····
요새의 첨탑을 가르며 고요하게 나
타나는 갑옷을 입은 흑마인 하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그의 이 름을 모를 수는 없었다· 흑마인으로 서 태어나며 흑마도왕의 이름이 머 리에 각인되는 것처럼 그 역시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흑갑주의 ‘블랙킹던’·
마치 흑마도왕의 갑옷을 고스란히 따라 한 듯 디자인도 색상도 모든 게 비슷한 블랙킹던이었으나 결정적 으로 눈빛이 달랐다·
흑마도왕은 푸른 안광이었으나 블 랙킹던은 전투에 돌입하면 붉은 안
광을 흉흉하게 흩뿌렸으며 둘의 전 투 스타일 또한 완전히 상극이라고 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나의 아들아·”
흑마도왕의 여유로운 인사에 블랙 킹던의 눈빛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블랙킹던 님께서 왜 흑마신교 측 에 서있는 거야?”
“어째서 배신을····”
“그보다 아들이라고? 지금 저 말 이 사실이야?”
흑마인들이 온통 혼란으로 물든 와
중 블랙킹던은 동굴처럼 웅웅 울리 는 목소리를 그에게 홀려보냈다·
“나를 언제까지고 아들이라고 낮춰 서 부를 생각입니까 흑마도왕·”
“너는 나로부터 만들어졌으니 아 들이 아니면 무어겠는가?”
“아니! 나는 당신의 또다른 분신이 다· 아들 따위가 아니야! 당신이 누 리는 모든 힘과 권력 그리고 흑마 도왕으로서의 자격까지· 나 또한 모 두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회련은 웃기지도 않는단 표정으로 블랙킹던과 흑마도왕의 대치를 바라
보았다·
‘콩가루 그 자체로군·’
흑마도왕의 아들들은 모두 흑마도 왕과 피가 이어져 있다· 어떤 방식 으로든 여인과 연을 맺어서 아이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블랙킹던은 다르다·
그가 일평생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그에게 육신이 없기 때 문이었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누군가는 그 를 골렘이라고 불렀으며 또 누군가 는 로보트라고 불렀다·
물론 호칭 따위 별로 중요치 않다·
블랙킹던은 흑마도왕의 의식을 떼 어내 만든 분신이며 자신과 똑같은 생각과 사상을 갖춘 자아의 파편이 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언제까지고 흑마도왕의 뜻을 함께 따라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 던 블랙킹던은····
오늘 이 자리에서 마침내 자신을 만든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래· 너희들의 뜻은 잘 알았다·”
흑마도왕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하늘 위에 둥실 떠 있는 아틀 락스의 갑주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랜만이로군··· 사랑하는 연인 이자 나의 보금자리 아틀락스·”
한때 아틀락스의 도움을 받아 얼마 나 숱한 위기를 헤쳐나왔던가· 흑마 도왕이 저것을 착용했을 당시에는 저토록 흉측하거나 거대하지 않았다·
흑마도왕의 체구에 딱 맞는 풀 플 레이트의 모습이 본래의 원형이라고 도 할 수 있었다·
아틀락스의 갑주는 의지를 갖추고 있었다· 누구보다 선한 마음씨와 세 상을 구하고자 하는 용기와 신념까
지· 그것은 아벨라인 슈타베르크와 뜻이 맞았기에 함께하고자 원했다·
“미안하다· 아틀락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아틀락스는 흑마도왕을 떠나 이성 을 잃고 폭주한 뒤 공간을 열고 저 편 어딘가로 사라졌다·
사랑해 마지않던 흑마도왕이 변질 되어 버린 것에 분노하였고 그를 사 랑한 자신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아틀락스에게 의 지와 지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같잖은 9리스크의 흑마인에게조차 조종당하는 의식을 잃은 한낱 갑주
에 불과했을 뿐·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아마도 아틀락스는 격렬하게 저항 할 것이다· 평생토록 사랑했으나 깊 은 배신감을 느꼈던 흑마도왕의 영 혼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나는 너로 인해 죽게 되겠지·’
그러나 괜찮다·
오히려 그렇게 죽는다면 차라리 다 행일지도 모르겠다·
배신하고 상처입혔으니·
그의 손으로 죽는다면····
“내게로 와라·”
····
흑마도왕이 아틀락스의 갑주를 향 해 손을 뻗자 회련은 무언가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화악! 삽시간에 일대의 중력이 두 배 아니 세 배로 무거워지며 요새 가 무너지고 대지가 깊게 패이기 시 작하였다· 회련은 온몸의 뼈가 바스 라지는 것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다행스럽게도 신체에 덕지덕지 둘 러놓은 전설급 유물 아티팩트 덕분 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내가 왜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생
각하느냐? 여유를 부리기 위해? 허 튼 생각이군· 어째서 네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느냐 회련·”
“이 이런! 당장 막아! 막으라고!”
회련이 뒤늦게 소리쳤으나 늦었다· 회련보다도 더 빠르게 사방향의 대 흑마인들이 반응하여 달려들려고 했 으나 이미 흑마도왕과 아틀락스의 일체화는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나는 살면서 여유를 부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언제나 필사적으 로 내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싸우고 승리를 쟁취해 냈지· 바로 지금처럼·”
“서 설마···!!”
콰드득!!
아틀락스의 갑주 내에 집어넣어 놓 았던 9리스크의 흑마인이 허무하리 만치 쉽사리 뭉개지며 시체가 깔끔 하게 소멸되었다·
다름 아닌 그 거대했던 아틀락스의 갑주가 서서히 축소되기 시작한 것 이다!
거대한 성채의 크기에서 성 한 채 정도의 크기로 거기서 대저택 정도 의 크기로 거기서 오두막 정도의 크기로·
마침내는 인간 하나 정도의 크기로
작아진 아틀락스의 갑주는 격렬하게 저항하면서도 흑마도왕의 손에 이 끌려 장착되었다·
철거덕 끼기기직!!!
“음···
갑주의 내부에 수십 수백 개의 칼 날 톱니바퀴가 생성되어 흑마도왕의 몸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아틀락 스가 격렬히 그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고작 그 정도의 고통과 상처 따위 로는 흑마인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
“···설마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 가 모두····”
마침내 연보랏빛의 갑주를 장착하 여 완전체가 되어버린 흑마도왕을 바라보며 회련은 망연자실하게 중얼 거렸다·
“나의 모든 병력을 한 곳에 그러 모아 모조리 몰살시킬 생각이었던 것이군요···
흑마도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으나 투구를 장착하고 있었기에 회련에게는 보이 지 않았다·
우우웅-! 흑마도왕 아니 아틀락 스의 갑주를 착용한 전설 속 대마법 사 아벨라인 슈타베르크가 지팡이를
들어 올려 가동시키지 삽시간에 천 공을 거대한 흰색의 마법진으로 뒤 덮였다·
“아 아아···
이 세상 그 어떤 대마법사도 이토 록이나 광대한 범위에 저런 대규모 의 마법진을 빠르게 영창할 수 없다·
마치·
시조 마법사의 환생을 바라보고 있 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믿을 수 없어· 인류의 힘으로 저 런 경지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다···
인류에게는 명백히 9클래스라는 한
계가 존재했고 그 이상으로는 성장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흑마도왕이 누구던가·
그는 진작부터 한계에 부딪혔으나 훗날 자신을 따라잡을 가능성을 지 닌 이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
하여 그는 자신의 힘을 분산시켰 다· 스텔라의 제7본탑과 블랙킹던을 포함하여 세계 곳곳에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분신을 흩어놓았고 그것들은 비록 처음에는 약한 힘밖 에는 지니지 못했으나 서서히 성장 하여 마침내는 각자 9클래스의 능력 에 또다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흑마도왕이 한계를 뛰어넘 고자 시도했던 방법·
자신을 분리하여 9클래스의 경지를 여러 번 도달한 뒤 다시 하나로 합 쳐진다·
’···비록 실패했지만 말이지·’
분신들은 모두 9클래스에 도달하기 도 전에 죽거나 배신하였다·
스텔라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파편 은 백유설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블 랙킹던은 끝끝내 자신을 배신하였다·
하지만 모든 분신을 잃어버린 것 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 지팡이는 자신의 의지 를 담고 있을 뿐 스스로 생각하지 도 말하지도 못한 채 그저 성장하기 만 한다·
자신과 똑같은 아벨라인 슈타베르 크를 영원한 암흑 속에 가둬놓은 채 그저 마나를 사출하는 기계로 만들 어버린 것이다·
‘나 자신‘에거] 내리기에는 더없이 처절하고 지옥 같은 처벌이었으나·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곳에 나타 나고 있었다·
번쩍 쿠르르릉···!!
천공을 모두 뒤덮은 푸른색의 빛
무리· 그것은 빛마법이 아니었다· 오 히려 흑마법으로 뇌운을 만들어내 하늘을 모두 뒤덮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늘이 어찌 저렇게도 밝게 빛나는가·
그 뇌운 하나하나가 모두 촘촘하게 도 벼락으로 번쩍거리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당신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 다· 그 갑옷은 과도한 마력 소모로 약해진 당신을 파괴할 것이고 설령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신체가 과부하 를 버티지 못하겠지요·”
흑마도왕은 그 말을 듣고서 처음으
로 소리내어 웃었다·
그저 하염없이 웃기만 하는 흑마도 왕이었으나 사방의 대흑마인들은 그 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흑 마력이 별다른 방어 마법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그를 수호하고 있는 것 이다!
“재미있구나 회련이여·”
“무슨····”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적절하 게 죽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아·’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흑마도왕은 죽는다· 회공시월은 그 사실을 일찍이 알았음에도 그를 놓 아주었다·
회련은 그런 회공시월에게 반발심 이 들어서 그에게 복수하고자 흑마 도왕을 멋대로 끌어들여 그의 힘을 강탈하고자 했으나·
그 또한·
회공시월의 계획이었다·
‘아버지····’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회련은 그저 덧없다는 표정으로 멀
거니 흑마도왕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정녕 나를 파멸로 이끌고 자 하였군요···
항상 상상하고는 했다·
자신의 모든 쓸모를 증명하고 마 침내 세계를 재패하였을 때에는·
아버지가 내게 드디어 사랑이란 것 을 해주실 것이라고·
모든 과업을 끝마친 뒤 세상을 완 전히 원래대로 되돌린 뒤·
아버지를 따라서 평화로운 숲길을 거닐며 평범한 아들과 아비처럼 울 고 웃으며 떠들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항상 펼치고는 했다·
*···모두 허튼 생각이었군·’
회공시월에게 있어서 자신은 흑마 도왕의 목숨을 끊어놓을 그저 그 정도 가치의 장기말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이미 수많은 ‘아들’이 있 었고 쓸모를 증명하지 못해 버려졌 으며 그것은 자신 역시도 마찬가지 였다·
회련은 눈을 감았다·
세상이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자 신이 죽는다면 항상 지옥에 갈 것이
라고 확신하며 살아왔음에도 마치 천당으로 이끌리는 듯하였다·
왼쪽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액 체는 과연 눈물이었을까·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처 음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세상이 백(白)으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