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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이공간(2)
한편 천황정팔월과 자력일월이 백 유설을 보겠답시며 스텔라 아카데미 의 정문에 서성거리던 그 시점·
백유설이 아레인 기사단장에게 직 접 사과까지 하며 무장 해제를 요구 했기에 아예 비행정까지 총동원해서 소집하던 병력을 해제하려던 스텔라
는 또 다른 긴급 전보를 받았다·
“···아르카니움의 상공에 괴수 떼 가 지나갈 것이라고?”
“예· 수천에 달하는 괴조 무리가 이동하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유는? 괴조들이 저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아마도··· 근방의 도시에서 혹마 인들 간의 전쟁이 벌어지려는 게 아 닐까 싶군요· 그곳에서 대량의 포탈 이 열리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감히·”
아레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 다· 일전에 스텔라의 보안이 한 번
뚫렸다고 흑마인 놈들이 스텔라를 너무 단단히 무시한다·
“감지되는 흑마력으로 보아 상당히 큰 규모의 전쟁이 될 것으로 예상되 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포탈은 모두 열렸나?”
“아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출격하면 늦 지 않게 도착해서 놈들을 모조리 요격할 수 있다는 뜻이겠군·”
아레인이 뒤쪽의 부관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천황정팔월과 자력 일월을 상대하기 위해 출동을 준비 중이던 기사단이 신호를 받고서 비
행정을 띄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십이신월 때문에 병력 을 소집한 것이었으나 그것이 헛된 일은 아니게 되었다·
십이신월 덕분에 흑마인들의 전장 을 가장 먼저 휩쓸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십이신월에게 아무런 뜻이 없 을 리는 없고· 어쩌면 우리가 흑마 인들의 전쟁을 막아주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레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십이신 월에게 존경을 표했으나 안타깝게 도 그건 절대 아니었다·
십이신월이란 상상보다 훨씬 생각 이 없는 존재였으니까····
“전면전을 준비하라· 혹마인 두 파 벌이 모두 덤비더라도 압도적인 힘 으로 찢어버릴 수 있도록·”
결국 십이신월을 막기 위해 편성 되었던 어마어마한 병력은 도심지에 서 벌어지려고 하는 흑마전쟁을 막 기 위해 출동하였고·
이는 앞으로 벌어질 흑마전쟁의 판 도를 크게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 * *
메인 스토리와는 관계없지만 꽤 많 은 플레이어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퀘스트 [잠자는 숲속의 엘프]·
당연히 모든 스토리를 ESC 버튼 연타로 스킵해 버렸던 백유설답게 위의 퀘스트도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직박 구리 안경에는 내용이 모두 저장되 어 있었다·
다만 백유설이 신경 쓰던 점은 그 어떤 플레이어도 ‘자력일월’이 퀘스 트에 포함되어 있다고 명시하지 않 았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력일월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 은 채 숨어 있어야만 했을 테니까·
대화를 통해 이번 퀘스트가 잠자는 숲속의 엘프라는 사실까지 알아낸 백유설이었으나 자력일월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고 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실은 지금 내가 바깥에 돌아 다니고 있는 것도 회공시월에게 명령 을 받은 덕분이거든· 원래 같았으면 지금쯤 천황정팔월을 회유하든 명령 을 수행하든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그렇게 불안합니까?”
-다 당연하지! 아직 너를 완벽히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네가 100%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고··· 결국에는 나 스스로도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놓기는 해야 할 거 아냐·
어린애의 외견이라고 생각해서 은 연중에 정말로 애처럼 보았던 경향 이 없잖아 있나 보다·
그냥 막연히 도와주면 되겠거니 싶 었는데 여러모로 타당하고 합리적인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명령이 뭔지는 말해줄 수 없습 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에라 모르 겠다 싶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서 내 뱉었다·
-흑마도왕· 그 자식 목을 따오래·
그 말에 순간 어이가 없어진 백유 설은 입을 다물었다·
흑마도왕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였던가? 아니 애초에 그 래도 되는 게 맞나? 십이신월이 그
렇게까지 세상에 간섭을 했다가는 분명히 제약이 걸려서 몸이 버텨나 지 못할 것이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뭐 뭐어? 내가 흑마도왕보다 약 하다는 이야기야?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붙어봐야 알겠죠·”
-붙어봐야 안다는 말도 실례야! 난 십이신월이라구!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애초에 세계의 왕좌를 노릴 정도로 강력한 존재를 죽이고서도 몸과 정신이 버 틸 거라고 생각합니까? 시조 마법사
가 당신에게 걸어둔 제약은 생각 안 해요?”
-으 응? 그건 회공시월이 잠깐 동 안만 없애준다고 했는데····
백유설은 머리가 아파졌다·
십이신월의 ‘제약어] 대해서는 이 미 다른 십이신월들과 이야기를 나 누며 어느 정도 그 테두리를 파악한 채였다· 즉 자력일월이 생각하는 것 처럼 회공시월이 그 제약을 마음대 로 ON/OFF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뭐 뭐야 그 한심하다는 표정은·
-후후· 내가 잘 아는 표정이ス】!
한심한 자력일월과 더 한심한 천황 정팔월의 목소리였다·
“그런 적 없습니다·”
연흥춘삼월의 가호가 있으면서도 일부러 한심하다는 티를 팍팍 내던 백유설은 얼굴을 쓸어 올리고서 표 정을 빠르게 바꿨다·
“잘 들으세요 자력일월· 회공시월 은 당신을 버렸습니다·”
-···에?
“뭐 놀랄 것도 없잖아요? 애초에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약점을 쥐고 흔들던 대상인데 토사구팽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요· 쓸모가
다하면 그대로 버리는 거죠·”
-나 난 그래도 십이신월인데· 쓸모 가 고작 그 정도일 리가 없는데어卜
“그래도 십이신월이라서 쓸모 있게 사용하려고는 했네요·”
“■으응···?
“무려 흑마도왕을 처리하고 치워 버릴 계획이었던 거잖아요? 딱 쓸모 만큼 쓰고 버린다· 그게 회공시월의 생각인 겁니다·”
말하면서도 참 기가 차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십이신월인데 장 기말로 쓰고 버릴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ス]· 애당초 ‘같은’ 십이신월이 라고 부르는 게 맞나?
그 부분에도 살짝 의문이 있다·
회공시월은 여타의 십이신월과는 무언가 다른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 으니까
*···그리고 정말 흑마도왕을 없앤 뒤 희생하려고 했는지도 의문이야·’
정말로 그런 단순한 계획을 회공시 월이 세웠을까?
자력일월이 이렇게 도망칠 거라고 는 생각 못할까?
만약 자력일월이 생각보다 단순하
지 않고 아주 조금이지만 의심이 있어서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인질 따위 모르겠고 일단 내 목숨 이 중요하다며 내뺀다면?
수많은 가능성이 백유설의 머리를 빙글빙글 회전하며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역시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은 방학 동안에 이면 세계를 연 구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면 세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십이신월이었으니까·
“뭐 좋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죠·”
-어어? 바 바로? 바로 간다고?
“문제 있습니까?”
-아니··· 나는 네가 이렇게 곧바 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너도 따로 할 일이 있을 거 아냐?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백유설은 그게 뭐 어떻냐는 듯이 자력일월을 바라보며 답했다·
“하지만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다 른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십이신월 의 일을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는 것 정도는 알죠·”
一그 그렇구나·
자력일월은 무언가 감동 먹은 표정 이었으나 백유설로서는 정말로 위의 말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만약 눈앞의 저 꼬맹이가 십이신월 이 아니었다면 대기표를 뽑아서 건 네줬을 것이다· 나 이렇게 할 일이 산더미니까 기다리라고·
“일단··· 바로 갈 거긴 한데 도움 이 살짝 필요합니다·”
– 도움?
“예· 이야기를 듣자하니 자력일월 님의 그 동생분은 ‘버려진 열두 번 째 세계수^ 있는 것 같은데· 맞습
니까?”
-버려진 세계수···? 그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맞을 겁니다·”
맞을 수밖에· 해당 퀘스트는 그 지 역에서 벌어지는 것이니까·
“숲이 자의식을 갖고서 들어오는 모든 침입자를 공격하는 곳은 거기 밖에 없으니 틀림없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그 자체로 천혜의 요새로군요· 다 른 누군가가 그 엘프를 구하러 들어 가기도 벅찰 테니까요· 회공시월이 동생을 방치해 두는 데에도 다 이유
가 있던 겁니다·”
-아 그런 거였구나···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하네· 그 정보만 듣고 벌 써 그런 걸 유추하다니····
“중요한 건 제가 그 숲에 들어갔다 가는 뼈도 못추린다는 거죠·”
– 뭐어?
-그게 무슨 소리야?
천황정팔월과 자력일월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십이신월의 신체야 숲이 간섭할 수 없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숲 전 체가 의식을 갖고 공격하면 누구를 공격하고 자시고 버틸 수가 없습니
다· 게다가 숲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서 길을 미로처럼 꼬아버릴 테니 제 대로 찾아가기도 힘들겠죠·”
자력일월은 백유설의 말을 반쯤이 나 이해한 것인지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보였다·
사실 이해를 바라고자 말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숲으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버려진 세계수에서도 길을 잘 찾 을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데려갈 겁니다·”
역시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력한 후보는 꽃서린이었으나 그녀 에게 항상 도움을 바라기는 힘들다·
엘프라는 한 종족의 왕을 고작 길 잡이로 데려다가 쓰겠다는 것도 상 당히 양심없는 생각이다·
젤리엘은 숲에 능한 하이엘프였으 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안 된 다·
엘프왕이 아닌 이상 순수한 엘프의 기운은 버려진 세계수의 반발심만 사게 될 테니까·
‘아니· 애당초 인류라면 누가 접근 하더라도 반발할 거야· 꽃서린이 아 닌 이상···
다른 방식을 떠올리スト·
길잡이를 찾는다는 생각은 포기해 라·
오히려 이 경우에는··· 조금 더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의 접근을 필요로 했다·
*···숲에 이것저것 쓸 만한 필드 가 상당히 많이 있군·’
현재의 백유설은 접근조차 불가능 했지만 게임이 고일 대로 고여 버린 현대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그 숲을 일종의 ‘생활 채집터’로 쓰고는 했다·
버려진 세계수의 숲에는 어마어마 한 양의 희귀 광물과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전설급 원석 이 잠들어 있던 것이다·
만약 이것을 빌미로 한 집단을 움 직일 수 있다면?
돈· 돈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
젤리엘의 별구름 상회를 비롯하여 희귀 원석이라면 눈을 까뒤집고 움 직이며 최첨단 과학장비와 병력 집 단을 동원하여····
말 그대로·
자의식을 가진 버려진 세계수의 숲 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불태워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
백유설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집
단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연금성·’
비록 알테리샤가 지금은 순수한 얼 굴을 하고 있으나 그녀도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금세 눈이 불꽃처럼 타오를 것 이다·
숲 따위 연금술사로서 얼마든지 태 워 버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