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화
303. 한우주 7
KJ 로펌 이문영 변호사의 사무실.
유명 드라마 작가 유선정이 미친 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윤호 이 인간 미친 거 아냐? 고작 매니저 따위가 내 전화를 끊어?”
쾅!
유선정은 앉은 소파의 팔걸이를 거칠게 내려쳤다.
“내 자존심 어쩔 거야!”
둔탁하게 울리는 팔걸이 원목의 울림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이문영 변호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작가님. 일단 고정하세요.”
유선정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고정?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 애초에 당신이 일을 제대로 했어 봐! 그럼 화낼 일도 없었잖아!”
변호사 인생이 욕받이 무녀와 크게 다를 바 없다지만 유선정 같은 진상을 만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속으로 이를 갈며 이문영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계은숙 작가의 입을 막으라는 미션에 실패하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자가 시놉시스를 훔친 게 맞아.’
처음 수임을 받을 때만 해도 유선정의 말을 믿었다.
스타 작가인 그녀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
KJ 로펌의 대표가 늘 말하던 그 말을 믿었어야 했다.
‘의뢰인의 말을 믿지 마라. 절대로!’
그렇다고 이대로 변호사 커리어를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문영이다.
그때였다.
“이 변호사! 뭐 해? 내 말 듣고 있어? 정말 이대로 있을 거냐고!”
이문영이 정신을 차렸다.
“작가님! 계은숙 작가가 법정에서 증언이라도 하면 시놉시스 저작권 등록만으로는 방어가 힘들어져요. 혹시 다른 반박 거리는 없나요? 유 작가님이 썼다는 걸 증언이라도 해줄 PD나 CP라도?”
유선정이 짜증을 버럭 낸다.
“반박? 그딴 걸 내가 왜 해야 해? 어차피 보조 작가의 말을 믿을 사람은 없으니까 이 변호사는 그냥 찍어눌러! 그러라고 돈 주잖아. 요즘 KJ 변호사들 수준이 왜 이래 정말?”
이문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작가님! 아무리 KJ라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진 못해요!”
“이 변호사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고?”
“작가님!”
순간 유선정이 이문영을 째려본다.
“얘가 지금 어디서 눈을 부라려? 새파랗게 어린 걸 변호사라고 대우해주니 겁대가리가 없어 아주!”
그때였다.
이문영 변호사의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5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들어온 남자는 바로 KJ 로펌의 공동 대표 중 한 명인 김태진.
부장판사를 끝으로 자기 로펌을 설립한 그는 5년 만에 KJ 로펌을 업계 최고로 키운 입지전적인 남자였다.
“진정 좀 하시죠. 유 작가님.”
유선정은 어쩔 수 없이 언성을 낮췄다.
“알았어요. 그나저나 김 대표님! 나 변호사 좀 바꿔 줘요! 얘는 도저히 안 되겠어.”
“우리 이 변호사가 뭔가 실수를 했습니까?”
“무능력도 실수라면 실수죠. 돈만 처먹으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잖아요.”
김태진이 이문영을 바라본다.
“이 변. 유 작가님한테 업무적으로 실수한 거 있어?”
이문영이 변명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뇨.”
유선정이 노려봤지만 이문영은 솔직히 답했다.
“혹시 유 작가님이 불법적인 걸 지시하던가?”
“······.”
이문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 김태진의 눈이 이채로 번뜩였다.
의뢰자가 보는 앞이라고 대표에게도 비밀을 지켰기 때문이다.
만족한 김태진은 고개를 끄덕이다 유선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작가님. 그러면 이 변호사와의 수임을 해지하시겠습니까?”
“그래요! 그리고 김 대표가 직접 맡아줘요. 비용은 두 배로 지불 할 테니까.”
김태진 대표가 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일단 하나씩 처리하죠. 법적으로 명확히 하기 위해 녹음을 시작합니다. 지금 이 시각 부로 이문영 변호사는 유선정 작가님의 저작권 소송 대행업무 수임에서 손을 뗍니다. 계약 해지는 지금 이 시각을 기준으로 발동합니다. 클라이언트께서도 동의하십니까?”
유선정이 씨익 웃는다.
“그래요. 동의해요. 그게 절차일 테니까. 그럼 김 대표가 이번 일을 맡아요?”
김태진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녹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힘들겠습니다.”
“뭐라고요?”
김태진은 무표정하게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이걸 좀 보시죠.”
김태진의 폰에선 <연예가 방방곡곡>의 너튜브 실시간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 이게 뭐예요?”
김태진은 말없이 5분 전 영상으로 시간을 돌렸다.
영상에서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소연회장의 단상이 나왔다.
단상 위에는 이지연 작가를 비롯해 한우주 계은숙 김솔잎 작가와 함께 정윤호가 앉아 있었는데 이지연 작가가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한 작가가 유선정 작가의 작품을 훔쳤다고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요! 도둑은 오히려 유선정 작가니까!
기자들이 웅성거린다.
-이지연 작가님! 그게 사실입니까?
-당연한 소리! 한 작가의 작품은 내가 참여할 작품인데 설마 내가 남의 걸 훔친 작품에 손을 댔겠어요? 몇 마디 말만 나눠보면 아는데?
이지연 작가는 자신이 보조 작가로서 주요 에피소드 몇 화를 맡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 탓에 폭발적인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천하의 이지연 작가가 신인인 한우주 작가의 보조 작가가 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연이어 계은숙 작가가 말을 잇는다.
-일주일 전에 한 작가가 KBC 작가실에 들러 시놉시스를 주고 갔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유선정 작가의 주장과 상반되는 주장을 하시는데 증거는 있습니까? 날짜가 안 맞는데요?
-전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간단한 감상평을 제 다이어리에 남겨둬요. 혹시라도 나중에 PD님이나 다른 작가님에게 추천하려고요. 일주일 전에 한 작가의 ‘화란전’을 보고 감상평을 남겼습니다. 백업 서버에 동기화되어 있으니 날짜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고백을 마친 계은숙 작가가 눈물을 짜낸 순간 플래시가 연신 터져 나왔다.
연이어 한우주 작가가 A4 용지를 들어 올리며 외친다.
-그리고 이번 작품뿐 아니라 지난번 ‘아름드리나무 아래서’도 제가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건 유선정 작가님이 마음대로 수정한 대본과 다른 진짜 엔딩 본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윤호가 외친다.
-유선정 작가님의 전 보조 작가님 두 분도 자기들 작품을 뺏겼다고 지금 막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기자님들께는 보도자료를 첨부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들은 특종 기사에 들떠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순간 김태진이 영상의 플레이를 멈췄다.
“꽤 많은 걸 숨기셨더군요. 유 작가님.”
유선정이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손사래를 친다.
“아냐! 아냐! 이 미친 것들이 날 모함하는 거야! 아니! 김 대표! 이거 믿는 거 아니지? 당신 내 변호사잖아!”
김태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방금 계약 해지에 동의하셨습니다만?”
“아 아니 그건 새로운 계약을 위해서 해지한 거잖아!”
“글쎄요. 하여간 저희 KJ 로펌은 더는 유 작가님의 변호를 맡은 곳이 아닙니다. 변호를 원하시면 새로운 로펌을 알아보시죠.”
유선정이 발끈해 삿대질한다.
“야! 김 대표! 너 이제까지 나한테 받아먹은 게 얼마인데 이럴 거야? 앙!”
유선정이 발악을 하자 김태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기 여자 경호원 네 명만 보내줘요.”
날뛰던 유선정은 아차 하고 읍소작전으로 나섰다.
“기 김 대표······ 아니 김 대표님! 수임료 더블 아니다 세 배로 줄 테니까 제발 이 사건 맡아줘요. 아까 걔들이 한 말 전부 다 거짓말이라니까?”
하지만 김태진은 눈도 끔뻑하지 않았다.
이내 여자 경호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동안 돈 많이 안겨 주셨으니 몸 성하게 아래로 모셔.”
“예! 대표님!”
여자 경호원 네 명이 유선정에게 달라붙자 유선정이 발작을 하며 저항한다.
“야! 놔! 이거 안 놔? 너희들 전부 고소할 거야!”
유선정의 외침에도 여자 경호원들은 눈도 끔뻑하지 않고 유선정을 달랑 들어 올려 밖으로 끌어냈다.
“김 대표님~ 수임료 10배 줄게요! 제바~~아~~알!!”
밖으로 번쩍 들려 나간 유선정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유선정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김태진이 이문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변!”
“예 대표님!”
“쓰레기를 상대할 땐 빨리 손을 터는 것부터 익혀 둬. 클라이언트가 시킨다고 불법의 선을 넘으면 쓰나?”
이문영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 죄송해야지. 상대랑 붙어 보기도 전에 진 거니까.”
김태진의 말에 이문영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 그 순간.
김태진이 의아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연예계 수임을 맡으려면 굴렁쇠의 정 팀장 저 사람을 주의 깊게 봐.”
“예? 정 팀장은······ 왜요?”
김태진이 폰을 들어 올렸다.
“한번 봐봐. 저쪽에서 확전을 원치 않는다면서 보내온 거니까.”
김태진 대표의 폰에 적힌 문자를 읽은 이문영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거기에는 자신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위법 사항들과 증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으니까.
“매니저라고 무시한 결과다. 절대 만만한 상대 아니니까 기억에 새겨 둬.”
이문영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일개 매니저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패배감을 느껴야 했다.
* * *
성공적으로 인터뷰를 끝낸 뒤 한우주 작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
KJ 로펌의 김태진 대표에게 문자를 받았다.
[김태진 대표 : 자네 뜻대로 해줬으니까 이 변호사를 소송에 거는 건 없던 일로 하지.]
소회의장에 들어가기 직전 이문영 변호사가 KBC에서 했던 말들을 녹음한 음성을 보냈었다.
변호사법 위반. 위증교사 등의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는 자료를 보냈고 KJ와는 싸우기 싫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자 KJ 로펌의 김태진 대표는 영리하게 유선정 작가를 손절해 버렸다.
만약 KJ 로펌이 승리를 위해 끝까지 이 문제를 끌고 나가면 힘들 뻔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KJ의 영향력이 사라진 탓인지 언론들도 브레이크 없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유선정 작가의 상습적인 작품 도둑질 드디어 꼬리가 잡히다!]
[범죄의 시작 그리고 끝.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한 유선정의 범죄들.]
[파렴치한 그녀. 제자의 재능을 훔치기 위해 권력까지 동원한 유명 작가.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
······
조수석에서 기사를 읽는 한우주 작가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진짜 끝났어요! 팀장님!”
“예. 끝났습니다.”
한우주 작가가 기쁜 기색으로 기사를 보고 또 본다.
자신을 얽어매던 족쇄가 사라진 탓인지 날 만난 후 어떤 때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한우주 작가의 집 근처에 도착해 차를 멈춰 세웠다.
“조만간 작업실을 준비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한우주 작가가 주춤거리다 날 빤히 올려본다.
“그런데요 저기 정 팀장님······. 둘이 있을 땐 편하게 불러주시면 안 되나요? 저 올해 23살밖에 안 되었는데······.”
곤란한 표정을 짓자 한우주 작가가 말한다.
“배우들한테는 편하게 부르시잖아요! 저도 이제 굴렁쇠 소속이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고요?”
“이제부턴 작가님의 손끝에서 나오는 대본에 수많은 배우와 제작사들의 생계가 걸리게 됩니다. 나이를 떠나서 그 모든 걸 책임지시는 작가님께 편히 대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 작가의 손에 달린 목숨은 한둘이 아니다.
작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그 모든 이들의 생계를 책임진 최전선에 선 사람이 드라마 작가였다.
그렇기에 입봉만 하면 연장자들에게도 대접을 받는다.
부담될 순 있겠지만 이 문제는 한우주 작가 스스로가 이겨내야 하는 문제였다.
50편짜리 <화란전>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최소 150억.
그 돈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이젠 그녀의 손에 들리게 되었다.
“잘하실 겁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서’도 성공했잖습니까? 자신감을 가지세요.”
고개를 끄덕인 한우주 작가가 나와 악수를 하기 위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덥석.
갑작스레 조수석에 앉은 한우주 작가가 팔을 껴안았다.
작은 키의 그녀였기에 조수석에 앉은 채로는 그게 끝이었다.
“매니저님! 진짜 고마워요! 덕분에 진짜 작가가 됐어요. 저 진짜 잘할게요!”
떨쳐내려 생각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난 팔을 빼지 않은 채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이제 다 잘 될 겁니다. 작가님.”
그렇게 난.
한우주 작가가 마음을 다잡을 때까지 한참이나 그녀를 달래야만 했다.
* * *
인터뷰가 끝난 다음 날.
<신의 이름으로>의 11화 시청률은 29.7%
시청률 상승폭이 약간 줄었지만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에서 조금이나마 상승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덕분에 유진이의 얼굴은 아침부터 활짝 개어 있었다.
“진짜 이러다가 30% 넘겠는데요?”
“당연히 넘지! 언제 넘나 문제일 뿐이야.”
유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차기작 대본은 언제 나와요?”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아~”
현재 촬영 중인 작품이 후반부에 접어들었기에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진이의 곁에는 미소가 똑같이 두근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삼촌. 이번에도 나도 나가요?”
“미소도 출연하고 싶어?”
“응! 또 나가고 싶어요!”
난 미소와 시선을 맞춘 뒤 물었다.
“대신에 오디션을 봐야 해. 괜찮겠어?”
시험을 봐야 한다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미소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응! 나 오디션 나가서 1등 할 거예요!”
떨어질 거라고 1도 생각지 않는 표정이다.
“그래? 그러면 미소 뜻대로 오디션에 나가 당당히 합격해서 따내자!”
“네!”
그때 유진이가 묻는다.
“오빠. 근데 감독님은 누가 맡아요?”
“생각해 둔 분이 있어.”
“누구요?”
“아직은 확실치 않아서. 정해지면 말해줄게.”
현재 MBS에서 사직서를 던지기 직전인 오복희 PD가 내가 생각하는 후보 중 하나였다.
“자자 곧 상봉이 올 건데 준비부터 하자.”
한우주 작가의 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에 회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이수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수찬아. 왜?”
-형님! 큰일 났습니다! 날새가 잡혀갔습니다!
“뭐?”
김동수의 지시로 최은태 회장의 아들을 찾고 있는 그가 누군가에게 잡혀가 버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