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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흑마도왕(3)
결론적으로 회련의 계획은 99%가 완벽하게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흑마도왕이 지룡을 너무나도 쉽게 해치운 것은 계산 밖이었으나 흑마 연합장을 희생시키고 자신이 18년 이 넘도록 모아둔 에너지를 방출시 켜 흑마도왕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데에 성공했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치명상을 입은 흑 마도왕의 힘을 마유성이 계승받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승 능력 을 회련이 인터셉트하는 것·
완벽했다·
흑마도왕이 예상치 못하게 강했지 만 그마저도 계산 가능한 수치였다·
마유성은 흑마도왕이 전투 도중에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에 이곳으로 돌아왔고 블랙킹던이 왕위를 물려 받으라며 일장연설을 펼쳐서 그를 거의 완벽하게 설득했다·
정말 마무리 단계였다·
모든 게 끝이었단 말이다·
“어째서···r
흑색의 거성의 성문 앞까지 도달한 마유성이 대뜸 목걸이의 능력을 사 용하여 사라지는 것을 본 회련은 지 팡이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왜···r
그는 도저히 마유성의 저 돌발행동 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런 건 그의 계산에 없었다·
저기에서 마유성이 갑작스레 왕위 계승을 포기하고 스텔라 아카데미로 귀환할 확률은 〇%에 수렴할 터·
회련이 망연자실한 눈으로 마유성 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자 뒤 쪽에서 크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핫! 역시 내 아들이로군·”
상처 입은 흑마도왕·
가슴의 절반이 찢어진 채 왕좌에 앉아서 간신히 숨통만을 유지하면서 도 웃을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사내였다·
거의 다 죽어가는 주제에 웃는 꼬 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사실 상 이번 전투는 회련의 패배·
회련은 흑마도왕에게 치명타를 가 할 수 있었으나 마무리하는 것은 불 가능했고 앞으로는 더 이상 그에게 저만한 상처를 입힐 자신이 없었다·
즉 이번 기회에 흑마도왕의 능력 을 빼앗지 못한다면 그가 세웠던 모 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 다는 말이었다·
“교 교주님!”
“···알아왔나?”
흑마 신도들이 허겁지겁 회련에게 달려오자 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예··· 마유성이 갑자기 돌아간
이유가····”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스 스텔라에 심어둔 정보통에 따 르면··· 그 백유설과의 약속 때문 이라고 합니다···
우드득!
그 이름이 나온 즉시 회련이 주먹 에 쥐고 있던 단검이 우그러졌다·
“백유설··· 백유설이라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
회련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 다· 이번 계획에서 백유설이 관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어째서 백유설의 개입으로 모든 게 흐트러진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회련은 몰랐을 것이다·
백유설이 1년도 더 전부터 마유성 과 친해지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돌 려놓기 위해 애써왔다는 사실을·
그러한 점을 간과한 회련은 이번 계획을 아주 제대로 실패한 것이다·
반대로 백유설은 저도 모르게 회련 의 계획을 망침으로써 마유성의 흑 마타락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고·
”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
회련은 흑마도왕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음을 흘리고 있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자 보아라· 나는 이렇게나 상처 입 었음에도 너에게서 이겼다·
이렇게 말하는 듯 보였다·
“살려줄 때 돌아가도록· 내 상처가 조금이라도 더 회복된다면 너희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까·”
흑마도왕의 조롱 어린 협박에 회련 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우선은 신전으로 복귀한다·
이후의 계획을 다시 세워야겠어·”
흑마도왕의 능력을 빼앗지 못한 것 은 크나큰 실책· 그의 능력이 있어 야만 흑마도왕을 죽여서 왕위에 오 를 수 있으니까·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겠군····’
회공시월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아들’과 만 나왔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한다·
자신 또한 결국 실패할 뿐인 그런 아들이 되는 것인가?
‘아니· 나는 달라! 다른 놈들과 다 르다고!’
회련은 주먹을 움켜쥐면서 거칠게
성채의 해자를 짓밟았다·
“두고 보자 백유설···
아버지께서는 백유설을 건들지 말 라고 하셨으나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사사건건 그가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는 이상 제거하는 것만이 정 답으로 생각되었다·
* * *
스텔라 아카데미로 돌아온 마유성 은 약속 시간에 무려 4분이나 지각 하고 말았다· 목걸이의 텔레포트는 지정된 위치로만 이동하기에 약속장
소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던 것·
“4분 42초 지각이에요·”
에이젤의 뾰루퉁한 말투에도 마유 성은 그저 웃으며 넘겼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마유성 의 모습에 백유설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 일 있었냐?”
오늘의 저녁 메뉴는 떡볶이·
거기에 차돌을 곁들인 폭탄보다도 매운맛 떡볶이였다·
에이젤이 눈물 콧물 질질 홀려대면 서도 매운 떡볶이를 포기 못 한 채
먹고 있자 마유성은 그녀에게 티슈 를 건네주었다·
“글쎄···
“좋은 일 있는 거 같은데?”
“하하 좋은 일이라· 그러면 안 되 는 거지만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다른 관점에서는 안 좋은 일이 되겠지만 말이야·”
“뭔 개소리야?”
마유성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 다· 떡볶이같이 이리저리 튀는 음식 을 먹으면서도 그는 고급스럽다·
“아버지가 크게 상처 입으셨어·”
에·”
그 말에 떡볶이를 먹던 에이젤은 물론 백유설의 손동작도 정지했다·
“아 아버지가요?!”
흑마도왕의 정체를 모르는 에이젤 은 유난히 호들갑이었지만 그의 아 버지가 누군지 알고 있는 백유설은 더더욱 창백해진 표정이 되었다·
‘흑마왕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고?’
원작에서도 분명 그런 전개가 있기 는 있었다· 하지만 시기상 아직은 그러면 안 된다·
조금 더 뒤에 그러니까·
마유성이 졸업할 때쯤에 왕위 계승 문제로 흑마도왕이 크게 다치게 되 고 그것을 계기로 마유성이 흑마도 왕이 되는 엔딩이 존재했다·
풀레임이 주인공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마유성은 메인 히로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런 그가 타락하는 엔딩은 곧바로 배드 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피하는 전개였 다·
그런데 백유설은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자세히 좀 이야기해 봐· 아버지가
대체 왜 상처를 입으신 건데?”
“글쎄··· 아버지도 마법전사···라 고 할 수 있거든· 그런데 최근 어떤 흑마인과 다투다가 다치셨나 봐· 그 래도 생명에 큰 지장은 없으시대·”
이상하다·
만약 흑마도왕이 크게 상처 입었다 면 그 상황을 만들 만한 흑마인 후 보는 총 세 명밖에 없다·
그들이라면 상처 입은 흑마도왕을 결코 살려두지 않고 마무리했을 터·
어째서 크게 상처만을 입은 채 살 아남았는지 그리고 대체 누구와 싸
운 것인지·
백유설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 었다·
‘하지만··· 꼭 나쁘게 홀러간 것 도 아닌 모양이군·’
마유성이 이 자리에 앉아서 실실거 리며 떡볶이를 먹고 있다는 것 자체 가 왕위를 이어받는 전개까지는 닿 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하마터면 어마어마한 실수를 범할 뻔했어· 항상 신경 쓰고 있었어야 했는데·’
백유설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자 마유성이 의아스럽다는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심각해?”
“당연히 친구의 아버지가 상처입었 다는데 안 심각하냐? 너 같으면 웃 을 수 있겠어?”
“어··プ
백유설이 그냥 툭 내던진 말에 마 유성은 벙찐 표정이 되었다·
“친구····”
“에휴 아무튼 아버지 잘 쾌차하시 라고 전해드리고·”
그리 말한 뒤 다시 떡볶이를 포크 로 찍는 백유설을 보며 마유성은 환 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꼭 전해드릴게·”
* * *
쏴아아-!!
그날 저녁·
가을비가 거세게 쏟아지는 와중 풀 레임은 도서관을 찾았다·
최근 풀이하는 마법의 문제가 거의 7클래스 수준에 달하였는데 스텔라 의 전공 서적으로는 더 이상 공부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질
끈 묶고서 우산을 펼쳤다·
그러다가 우뚝 걸음을 멈춰 세우 고서는 우산을 살짝 거둬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찌릿!!
머리털이 곤두서는 감각·
익숙하다· 이건 천사들이 말을 걸 어올 때 느껴지는 감각이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몇 개월 전 천황정팔월과 만난 이 후·
아니 또 다른 과거의 시간대에 다
녀온 이후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일이 뜸해졌다·
마치 무언가가 전파를 차단하는 것 만 같았다·
물론··· 이제 더 이상 천사의 목 소리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백유설의 말에 의하면 저들은 천사 같은 화려한 존재가 아닌 밤하늘의 별자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잘생긴 얼굴과 날개조차 모두 거짓으로 만들어진 형체·
솔직히 그들이 왜 자신에게 접근했 는지 궁금했으나 이 이상 저들과 대 화를 계속 했다가는 정신이 오염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이런 곳에서 뭐 하시나요?”
풀레임이 멀거니 서 있자 예상대 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다·
찌릿하는 감각이 느껴지면 그 이 후에 반드시 무언가 일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건 풀레임 에게 항상 옳은 방향을 제시한다·
마침 마차가 필요했는데 찌릿하는 감각이 느껴짐과 동시에 홍비연이 마차를 끌고 나타나서 태워준다든지 하필이면 길을 잃었는데 때마침 지 리에 능숙한 이가 나타나 길잡이를
해준다든지·
“안녕하세요·”
상대방은 스텔라의 조교로 추정되 는 여인이었기에 풀레임은 먼저 공 손히 인사를 전했다·
“도서관에 들어가야 하는데 잠겨 있어서요·”
“아하 그거라면 문제없어· 열쇠를 내가 갖고 있거든·”
그에 풀레임은 힘없이 웃었다·
정말 상황 좋게도 열쇠를 가진 사 람이 그녀의 앞에 나타날 건 또 뭐 란 말인가·
“자 열어줄게·”
도서관의 문을 열어준 조교는 그대 로 돌아갔다·
이제 도서관에 홀로 남게 된 풀레 임· 그녀는 물이 뚝뚝 흐르는 우산 을 바깥에 떨어뜨린 채 불조차 켜지 않고서 도서관에 들어섰다·
번쩍! 천둥까지 치는 것인지 불꺼 진 도서관에 음울한 분위기가 펼쳐 졌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도서관 중앙홀의 의자에 힘없이 걸 터앉은 풀레임은 멍하니 천장을 올 려다 보았다·
천장은 스테인글라스로 반투명하여
비가 오는 날에는 유난히도 바깥세 상이 잘 보이는 날이다·
사실 그녀가 이러고 있는 데에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찌릿!
한참을 기다리니 또다시 익숙한 감 각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어라? 풀레임 너 이런 데서 뭐 하고 있냐? 귀신인 줄 알았네·”
예상대로 백유설이 나타나서 그녀 를 반겨주었다·
정말 ‘우연찮게도’ 불 꺼진 도서관 에서 단둘이 만나게 되다니·
풀레임은 이 상황을 자신이 의도했 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하였다·
그래서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 유설에게 터덜터덜 걸어간 다음 단 한 발자국만 더 가까워지면 머리가 닿을 만한 거리에서 그를 올려다보 았다·
“뭐 뭐야?”
그녀의 머리카락이 젖어 있어서 그 런지 유난히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말없이 백유설을 올려다보던 풀레 임은 눈을 감고서 그의 가슴에 머리
를 박았다·
“모르겠다···
,,엥?,,
“그냥 너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거기까지 말한 뒤 풀레임은 그의 가슴에서 머리를 떼고서 도망치듯이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최근 풀레임은 자신의 상태가 점 점 더 이상해져간다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