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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변화(3)
아이테르 월드 북서부 크잔 산맥·
워낙에 지형이 험준한 데다가 몬스 터가 들끓는 장소였기에 사람이 잘 찾지 않았으나 그런 위험 지역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회색 머리칼의 소 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고 있었 다·
소년은 몸집보다도 커다란 흑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아빠 의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그 꼬라 지가 어색했으나 흑마인 특히 ‘흑 마신교’의 교도들이 보았다면 감히 어색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 이다·
‘혹마신교주 회련·’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흑마신교·
압도적인 흑마법 기술력으로 흑마 인 세력의 절반 이상을 흡수해 버린 그 거대한 종교의 교주가 바로 이 어린 소년이었다·
그 정체를 아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아마 소년을 직접 마주 하더라도 정말 교주가 맞는지 의심 부터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좋겠네요·”
회련은 우울한 표정으로 입술을 희 미하게 끌어 올려서 미소 지었다·
입술과 코는 호흡기와 비슷한 마스 크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 는 그것이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우우우웅!!
회련이 손짓하자 허공에 공간이 울렁거리며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기술도 적용하지 않았기에 근 처에 마탑이 있었다면 곧바로 사이
렌을 울려대며 달려들었을지도 모르 나 이곳에 마탑을 짓는 미친 마법 사는 요즘 시대에 없다·
잠시 지나니 공간의 일그러짐은 곧 거대한 공간의 구멍이 되었다·
‘페르소나 게이트’
구멍은 단순한 원형이 아니라 구의 형태였다· 이곳으로 통한다면··· 어딘가 또 다른 이면 세계로 통할 터·
여태껏 그 어떤 마법사도 페르소나 게이트가 어느 이면 세계로 통하는 지 그 정체를 짐작도 하지 못하였으 나 흑마신교주 회련은 다르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이면 세계를 불러올 수 있었고 그로 인 해 완성된 페르소나 게이트는 완전 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이제부터 회련이 하려는 것은 간단 하다· 페르소나 게이트에 강대한 마 나를 주입하여 폭주시킨 뒤 이 현 실과 동화시키는 것·
아이테르 대륙의 마법사들은 잘 알 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수십 년 에 걸쳐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여 인 적이 닿지 않는 위험 지대를 수많은 이면 세계의 조각을 가져와 현실 동 화하는 과정을 끝마쳤다·
즉 지금 아이테르 대륙의 10% 이 상은 이미 다른 세계로 물들어 있다 는 것·
“크흐흐 멍청한 마법사 놈들···
회련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흑마 인 신도 한 명이 음습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는 꽤 고위 신도였음에도 그다지 지능이 높지 못하여 회련이 신임하지 못하는 인물 중 하나였는 데 충성심 하나만큼은 인정할 만하 여 곁에 두고 있었다·
“세계를 지키네 뭐네 하면서 정작 눈에 닿지 않는 곳은 쳐다보지도 않 는다니· 어찌나 미련합니까·”
“그렇지요· 마법사란 원래 태생부 터 위선적인 존재였으니까요·”
“하지만 마법사들이 멍청한 덕분에 교주님이 아이테르 대륙을 점거하는 것도 머지 않은 일이 되겠군요!”
그렇다·
흑마신교의 신도들이 그를 맹렬하 게 믿고 따르는 이유는 회련이 세 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력 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련은 그 어떤 흑마인조차 다룰 수 없었던 페르소나 게이트를 완벽하게 다뤘고 강력한 힘과 능력
을 지닌 흑마도왕조차 제패하지 못 했던 아이테르 월드를 그만의 기술 로 서서히 물들여가고 있지 않은가·
흑마신교주 회련은 말했다·
세상의 50% 이상이 페르소나 게 이트로 물드는 순간 모든 게 시작 될 것이라고·
“맞지요· 세계 정복··· 저에게 주 어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회련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세계 정복이라·
사실 그에게 그런 것 따위는 그다 지 중요하지 않다·
회련에게는 세력이 필요했고 마침 머리는 나쁘지만 힘은 강력한 흑마 인들이 눈에 띄었으며 그들을 현혹 시키기 가장 좋은 유혹이 세계 정복 이었기에 그것을 이용했을 분이다·
“돌아가세요· 곧 동기화가 시작될 텐데 당신들은 버티지 못할 겁니 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흑마인들을 돌려보낸 회련은 곧이 어 발생한 ‘동기화’ 과정을 지켜보 았다· 이 근방의 모든 공간이 잠시 회색으로 물들었다가 다시금 알록 달록한 색깔을 되찾는다·
본래는 삭막한 바위산이었거늘 페 르소나에 동기화된 이후 나타난 것 은··· 그야말로 절경·
단풍잎으로 붉게 물든 이 풍경은 늦여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저 광경이야말로 회련이 찾고 또 찾았던 ‘완전한 이면 세계의 조각’ 이었으니까·
“···그나마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멀쩡한 공간이라서 다행이군요·”
그는 마스크를 벗은 뒤 이세계의 공기를 받아들였다· 아이테르의 공 기보다도 훨씬 더 상쾌하고 시원하
다· 아마도 저쪽 이면 세계에는···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모든 세계에는 반드시 마법사 가 존재해야만 했기에 아마도 그들 은 오래전 서로 전쟁을 치르다 자멸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쪽이건 간에 마법사가 없는 세계란 참으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세계일 것이다·
적어도 회련이 생각하기에는 그렇 다·
동기화를 마지막까지 확인한 회련 은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이곳의 변화를 마법사들은 몇 개월 뒤에나
알아차릴 것이다· 그때는 이미 모든 페르소나의 흔적이 지워진 뒤였기에 원인을 알아내기엔 늦었을 것이다·
마법사들은··· 페르소나 동기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것 이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 누 구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바보 같은 마법사들· 너희는 세계 를 구할 자격이 없어·’
회련은 눈을 내리깔며 허공에 손짓 했다·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의 몸 을 집어삼켰다·
흑마신교주가 떠난 뒤 남은 것은 페르소나 동기화로 인해 아름답게
변한 크잔 산맥의 절경뿐이었다·
* * *
한편 흑마인들과 교전중인 젤리엘 을 돕기 위해 백유설이 하월 평원으 로 향한 이후·
세 명의 소녀는 돌아가라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서 기어이 바다로 향했다·
레비앙 해안 항구도시 리스본드·
천 년 전 해적왕에게 내려진 저주 때문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이후로
는 아돌레비트 가문의 별장 취급이 나 받았던 이곳은 1년 전 바다가 녹아내린 이후로 활발하게 항구도시 로서의 명예를 되찾아가기 시작했 다·
벌써 수십 개의 워프 흘 게이트가 설치된 것은 물론 도시의 상층부에 위치해 있던 절벽은 아예 비행선 정 거장으로 개조되고 있었고 바다에 는 해상 열차의 선로가 길게 깔려 있었으며 수십 척의 화물선이 항구 에 정박해 있다·
이 항구도시가 제대로 흑자를 내기 시작할 무렵이면 아돌레비트의 GDP 가 스칼벤 제국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경제적인 예상도 있었지만····
지금 소녀들에게 그런 현실적인 문 제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오 여기가 너희 집 별장?”
풀레임은 아돌레비트 왕가를 ‘너희 집’이라는 아주 가벼운 표현으로 칭 했지만 이제 와서 홍비연도 그런 것 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별장이라지만 자주 찾아오지는 않 아·”
도시의 상층에 세워져 있는 이 푸 른색의 성 ‘천화빙궁’은 아돌레비트 가문의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연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곳은 레비앙 해안의 저주를 파헤 치기 위한 일종의 연구 시설이었는 데 영원히 얼어붙은 이 저주의 비 밀을 파헤친다면 아돌레비트의 저주 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 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화빙궁이 별장 으로써의 기능밖에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셨습니까 공주님·”
그녀들이 성으로 들어서자 제복을 입은 수십 명의 마법 기사들이 양옆
에 늘어섰다· 그 한가운데로 걸어오 며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사내·
성주 블랙 마탈레·
해적왕의 후손이나 조타수를 잡은 시간보다도 경제학 쪽으로 더욱 연 이 깊은 그는 고작 일 년 사이에 항구도시를 그 이름에 걸맞은 위상 으로 올려놓은 능력자였다·
그런 그가 홍비연 파벌의 최측근으 로 붙은 것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이리라·
홍비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응· 내 친구들과 함께 잠시 쉬어
가고 싶은데·”
“물론이지요 공주님· 안내해 드리 겠습니다·”
이제 보니 성 곳곳에는 아이템의 기술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항구 도시가 이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 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템이 잘 유통되지 않았던 1년 전 당시에 홍비연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아이템의 거래권을 따내어 리스본드에 전폭적인 지지를 했으니 까·
지금은 아예 아이템 기술로 이루어 진 화물선까지 제작하고 있다고 하
니 마탈레의 그 빠른 속도는 여왕 홍세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오오···! 야 에이젤! 여기로 와 봐! 여기 뷰 쥑이는데!”
홍비연과 마탈레가 격식을 갖춘 인 사를 나누는 사一이 이미 풀레임은 계단을 도도도 타고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는 바 다의 장관이란 정말 눈부시게 아름 다웠다· 특히 바다 위에 지어진 기다 란 다리는 해운대 광안리의 다이아 몬드 브릿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추억이네·’
아마 저 다리 또한 밤이 되면 은 은하게 빛나서 모두의 마음을 훔쳐 갈 것이다·
리스본드가 관광지로서의 기능을 아직도 잃지 않은 이유가 저토록이 나 아름다운 것들을 지어가며 가치 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겠スI·
‘대단한 남자긴 하네···
변변찮은 귀족 신분조차 없으면서 도 아탈렉 공작가보다도 훨씬 더 도 움이 되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아마 홍비연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 른다면 마탈레는 귀족 작위를 받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 예쁘네요··· 오늘 저희 이
곳에서 머무는 건가요?”
“으”
“얌전히 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왜? 얌전히 쉬다 갈 거야 걱정하 지 마·”
“0으···”
—ロ ・
에이젤은 자신의 하늘색 머리카락 을 빙글빙글 꼬더니 곁눈질로 마탈 레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에 근심걱정이 가득하다·
필히 무언가 문제가 있으리라·
아마도 홍비연은 그 문제를 알고서
바다 이야기가 나온 겸 이곳으로 찾 아온 것이고
아마 정말로 뭔가 문제가 있다면 홍비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내 문제니까 너희는 신경 끄 고 얌전히 놀기나 해·’
정말로 쉬러 온 그녀들에게 무언가 휘말리게 하는 것이 민폐라는 것을 이제 홍비연도 잘 안다·
아마 진심으로 그녀들이 끼어들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겠는가·
이미 그녀들은 단단히 엮일 대로 엮여 버렸는데·
“너도 비슷한 생각이구나?”
“···아마두요·”
에이젤이 바보처럼 웃자 풀레임도 어깨를 으쓱 올렸다·
“맞아· 나도 그냥 쉬는 건 솔직히 재미없거든· 차라리 뭔가 콰쾅! 하 고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갑자기 항구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물선이 이리저리 뒤집히고 무언 가 터지는 소리까지 울려 퍼진다·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 한 갈색빛 문어 괴수 하나·
풀레임은 혀를 차며 지팡이를 쥐었 다·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나오라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요·”
에이젤 또한 지팡이를 쥐고서 창문 에 발을 걸치 スト 그 모습을 바라보 던 홍비연이 고개를 저었다·
“공주님· 바다에 6리스크의 괴수가 출현했다고···!”
“괜찮아요· 제가 처리하고 올 테니 까 잠시 기다리세요·”
결국 홍비연도 이야기를 끝까지 나
누지 못한 채 지팡이를 쥐고서 걸음 을 돌렸다· 창문을 경박하게 뛰어넘 는 에이젤 풀레임과는 달리 그녀는 품위 있게 정문을 통해 나선다·
한시도 쉴 새가 없어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