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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호랑이처럼(8)
대륙 서부 사련 사막·
생명이 살아갈 수 없다고 알려진 이 사막에는 아주 독특한 특징이 하 나 있었는데 바로 만월의 거탑이 우뚝 솟아 있다는 점이었다·
수백 미터 길이의 자이언트 웜 수 백 마리가 사막 지하를 헤엄쳐 다니
기에 그 어떤 누구도 이곳에 터전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거늘 해성월 이 이곳에 탑을 세웠을 때는 세상이 얼마나 놀랐던가·
“정말 놀랍긴 하네·”
엘트먼은 자이언트 웜 수십 마리의 시체 위를 허공답보로 거닐며 고개 를 저었다·
자이원트 웜들은 이미 죽은 지 며 칠이나 지난 것인지 시체가 썩어가 고 있었는데 그 위로 날파리 하나 꼬이지 않았다·
이 자이언트 웜들은 과연 무엇에게 죽임을 당한 것일까·
이유야 사실 뻔했다·
엘트먼의 시야에 들어온 사련 사막 은 더 이상 사막이라고 부를 수 없 을 정도로 사방에 돌덩이가 가득했 는데 모래를 먹고 마시며 이곳에서 헤엄치는 것으로 생명력을 보존하는 자이원트 웜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지형 변화였다·
‘갑작스레 지형이 변질되었다고 해 서 찾아와봤더니····’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느냐·
해성월? 그는 아니다·
자이언트 웜을 만월탑의 집 지키는 개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제아무리 마법이라도 사막 지형 전체를 바위산으로 뒤덮어 버 리는 건 하루아침에 벌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바로 근처에 있던 해성월조차 감지 하지 못했던 ‘페르소나 게이트’가 현실과 동기화된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9클래스의 마 법사가 코앞에서 벌어진 페르소나 게이트를 감지하지 못했다?
‘점점 기술력이 늘어난다는 건가·’
마법사들의 감지를 숨겨가면서까지 페르소나 게이트를 자꾸만 열어대는 이유· 엘트먼은 그것을 어림짐작하 고 있었기에 슬슬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진 행이 너무 빨라서 놀랐을 뿐·
···이건 곤란해·’
이렇게까지 흑마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서야 이쪽에서 대응할 수가 없 다· 하다못해 운명의 아이들이 성장 할 때까지는 여유가 있어야만 하거 늘
그는 고개를 돌려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드높은 기둥 하나를 바라보았다·
사회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든 최 대한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래서는 곤란하다·
‘직접 움직여서라도 놈들을 저지 해야겠어·’
그는 눈을 감고서 조용히 냄새를 맡았다· 끈적거리고 역겨운 흑마인 들의 풍기는 마나의 냄새를·
그의 초공간 감각은 먼 거리를 탐 지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탐지기 보다도 세밀했기에 만월탑의 기술력 으로도 감지하지 못한 페르소나 게
이트의 조짐을 파악하는 게 가능했 다·
번쩍!
이윽고 눈을 뜬 엘트먼의 안광에서 빛이 홀러나온다·
‘하나 찾았다·’
곧이어 엘트먼은 그 자리에서 자취 를 감추었다·
사막 모래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 은 싸늘한 바람이 그곳을 휩쓸었다·
* * *
대륙 남부 하월 평원의 연꽃 객 잔·
별구름 상회의 임원 회의를 위하여 안 입던 드레스까지 입고서 참석한 젤리엘은 이 자리에 심히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흘 전 테러가 있었소·”
꽤 심각한 이야기였다·
마법사로 인한 테러였기 때문이다·
“아티팩트 공장을 박살 내고 말았 지· 그들이 무엇에 불만이 있어서 테러를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도 않 았고 범인도 추적하지 못했지만··· 공장이 무너진 건 심각한 일이오·”
“어차피 복구는 금방 하지 않겠습 니까? 고작 아티팩트 양산 공장이니 까····”
“그래서 문제요· 이참에 아티팩트 공장을 줄이는 게 어떻겠소?”
“동의합니다· 이번 분기의 아티팩 트 매출이 20% 이상 떨어졌고 반 대로 아티팩트의 매출은 그만큼 올 랐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아티 팩트를 원하지 않아요·”
“아이템 때문이겠지· 아티팩트 사 업은 이제 한물갔다고밖에 볼 수 없 겠군·”
“어차피 아이템 거래 계약권을 따
냈는데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 겠습니까?”
그에 젤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 을 내쉬었다·
“아직 서민들은 값비싼 아이템을 선호하지 않아요· 성능보다는 가성 비를 고려하는 소비층은 여전히 아 티팩트를 고려하고 있죠· 게다가 아 이템의 매출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에요· 아이템의 특 성상 아주 오랜 시간 사용이 가능해 서 한 번 구매한 가전을 더 이상 찾지 않거든요·”
이는 아이템이 너무 완벽한 탓이었 다· 잘 고장 나지도 않고 튼튼한 덕
분에 한 번 구매하면 어지간해서 바 꿀 필요가 없었는데 젤리엘의 경험 상 이래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가전에는 하자가 있어야 한다·
2〜3년을 주기로 망가지거나 교체 해야만 회사가 문을 닫지 않는다·
일전에 너무나도 완벽한 청정기 아 티팩트를 만든 회사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은 이유가 무엇이던 가· 청정기의 보급이 완벽히 이루어 진 이후에는 소비자들이 더 이상 그 것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템에 하자를 만 들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이템 기술로 가전 가구를 양산하는 것을 자제할 뿐이다·
이는 단순히 젤리엘 혼자만의 의견 이 아니라 알테리샤 학파의 사업을 담당하는 ‘팀 아이템’을 운영하고 있는 고위 임원들이 먼저 제안해 온 의견이다·
알테리샤는 왜 완벽한 아이템에 일 부러 흠을 만드냐며 극구 반대했지 만 결국은 허락했다고 했던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기술력을 자제해야만 한다니·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테러라니····)
사실 테러로 무너진 공장은 임원들 몰래 진작에 아이템 공장으로 갈아 치울 예정이었다· 사업의 일환이 아 니라 그것들을 사회에 기부할 생각 이었던 것이다·
최근 젤리엘이 하도 기부라는 얘기 를 많이 해서 임원들이 ‘기부’ 두 글자만 들어도 발작하는 마당이었기 에 이곳에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좋은 일에 쓰려고 했었기에 젤리엘로서는 참으로 속이 쓰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로 30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 눈 뒤 회의는 종료·
젤리엘은 살짝 피곤함을 느끼며 회 의장을 나섰다·
아마도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평균 나이가 100세 가까이 되는 엘프 임 원들은 지나치게 어린 젤리엘이 아 직 사회를 잘 모른다며 뒤에서 몰래 비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미지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업에 미친 듯이 열정 을 쏟아부었을 때는 싸이코라며 욕 을 얻어먹었고 지금은 회사의 돈을 빼돌려서 자꾸만 사회에 환원하는 탓에 욕을 먹고 있다·
그래도 싸이코라며 욕을 먹는 것
보단 착한 일을 해서 욕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죄를 짓는 것보다는 선행을 하는 게 당연히 나은 것은 둘째치고 나 의 행동에 좋아해 주는 이가 한 명 있으니 말이다·
“아가씨 잠시만···
“무슨 일이죠?”
바삐 복도를 걷는 와중 회사의 보 안을 책임지는 요원 한 명이 그녀에 게 빠르게 다가와 속삭였다·
“테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홀 전의 일이라면 이미 들었어 요·”
“아니오·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아이템 공장 세 곳이 동시에 테러를 당해 가동을 멈췄다고 하더군요·”
우뚝·
젤리엘의 걸음이 멈췄다·
“아이템 공장이 세 군데나···r
“예· 곧바로 마탑에 수사를 의뢰하 였더니 미세하게 흑마력이 검출되 었다고 합니다· 최대한 숨기려고 한 모양이지만 흑마인들이 벌인 짓이라 는 뜻이겠죠·”
“···흑마인들이 굳이 자신들의 정 체를 숨겨가면서 공장을 테러할 이 유는 뭐죠?”
요원은 머뭇거렸다· 그 또한 이유 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대하고 물어본 게 아니 다· 저 질문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나 다름없었다·
젤리엘의 명석한 두뇌는 이 간단한 문제의 답을 금방 찾아냈다·
“아이템 양산 기술이 갖고 싶은 모 양이군요·”
하지만 멍청한 짓이다·
고작 공장 몇 개를 테러한다고 아 이템의 핵심 기술이 넘어가겠는가?
만약 위의 추측이 맞다면 흑마인
들은 아이템을 갖고 싶으면서 아직 어디로 찾아가야 하는지 모르고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가 무의미했 다는 것도 금방 깨닫게 되겠지·
“···본사가 위험하군요·”
별구름 본사에는 알테리샤의 기술 을 전수받은 연금술사들이 있다·
아주 비싼 돈을 들여서 섭외해 왔 다는 사실은 제쳐두고 그들이 본사 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예? 본사가?”
“서둘러요· 당장 연락해서 본사의 보안을 강화하라고 일러두세요·”
젤리엘은 표정을 굳히고서 빠르게 걸었다· 뒷굽이 높은 구두는 이럴 때 너무 불편하다·
폭이 좁은 치마를 확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솟았지만 체면 을 생각해서 꾹꾹 눌러 참았다·
‘상대는 흑마인 테러리스트야·’
공장을 4군데나 폭파시켜가면서까 지 아이템 기술을 탐내는 미치광이 들· 본사의 보안은 어지간한 마탑 저리가라 할 정도로 튼튼하지만 그 래도 불안한 마음을 식힐 수 없었 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
다·
一아 아가씨! 긴급 상황입니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착 석하자마자 윙윙 울려대는 통신 전 화·
젤리엘은 떨리는 가슴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죠···r
-본사가 본사가 마법으로 공중 폭 격을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대공 요격 대책은 완 벽히 해뒀을 텐데요?”
-모르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실드가 꺼져 있어서····
“피해자느 피해자는 얼마나 있 죠?”
-다행스럽게도 사망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연락책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핵심 기술자 몇 명이 납치를 당 한 것 같습니다·
“아···
젤리엘은 상심한 표정으로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몸값이 비싼 기술자를 빼앗겨서?
귀한 아이템 기술이 넘어갈까 봐?
아니 었다·
어쨌든 그 기술자들은 그녀가 고용 한 나의 사람’에 속해 있다·
백유설로 인해 사람이 바뀐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아랫사람을 끔찍하게 챙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아끼고 챙겨주던 사람들이··· 흑마 인에게 납치당했다니·
흑마인들은 변하기 전의 자신보다 도 더 악랄한 미치광이들이다·
젤리엘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서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기술을 모두 뱉어도 좋으 니 부디 무사했으면···
아니 이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만으로 무언가를 바라 는 것은 멍청한 일·
고개를 들어 눈을 희번덕 뜬 젤리 엘은 수화기를 노려보았다·
“히 익·”
그 모습이 흡사 변하기 전의 싸이 코 젤리엘을 보는 것 같아 그녀를 졸졸 따라서 사무실로 들어왔던 직 원들은 팬티에 찔끔 지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젤리엘 은 이내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고·
“회사 내 보안 마법전사 팀에게 연 락하세요· 제가 구출 작전을 지휘하
겠다고·”
그녀는 수화기가 부서져라 꽈악 움 켜쥐며 말했다·
“감히 나의 사람들을 납치한 그 역 겨운 쓰레기 새끼들··· 제가 직접 찢어 죽이겠어요·”
달칵!
젤리엘이 통신기를 부술 듯 내려놓 자 직원들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 다·
“제 장비 당장 준비해 오세요·”
그녀가 그리 말한 뒤 사무실 바깥 으로 나가자 직원들 역시 뿔뿔이 홑 어 졌다·
그러면서 그들은 생각한다·
‘설마 아가씨가 직접 마법전사 팀 을 지휘하실 줄이야···
별구름의 마법 전사팀은 어지간한 최상위 마탑과 비견될 정도로 최정 예 멤버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 무 려 8클래스의 마법사까지 소속되어 있으니 말 다 했다·
거기에 그녀가 챙기려는 수십억 크 레닛의 가치를 호가하는 최상급의 장비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별구름의 마법전사팀을 가 히 무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테러리스트가 누군진 몰라도
다 죽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