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66· 뒤바뀐 이야기(3)
없다·
”없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마엘라의 마공학 필기노트·’
원작 로판에서 에이젤을 가장 힘들 게 만들었던 첫 번째 원흉·
백유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 들어 메이젠 티렌 교수의 화살받이 를 에이젤 대신 자신이 받았다·
풀레임 역시 그 역할을 얼마든지 대신 할 자신이 있었다·
얼마든지·
그런데·
‘정작 마엘라의 노트를 찾지 못하 면 내 결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온 그날부터 거의 일주일 동안 아르카니움 전역 의 서점을 뒤지고 다녔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때는 벌써 늦은 저녁·
통금 시간이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이 스텔라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는 벌레 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로등이 깜빡이는 거리에서 풀레임은 문득 외로움을 느꼈으나 고개를 저어서 털어냈다·
그러다 s반의 독서실에 불이 들어 와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설마 에이젤이 노트를 이미 발견
했다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원작 로판에서는 강의 전날에 우연 찮게도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적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풀레임 은 독서실의 창문으로 슬금슬금 다 가갔다·
S반의 독서실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은 극히 드물었기에 에이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
아주 낡은 노트 한 권을 흥미진진 한 눈빛으로 읽고 있었다·
‘아직 실험 당일까지는 이틀이 남 았는데···
어째서 그녀가 벌써부터 노트를 갖 고 있는가· 시력에 마나를 집중해서 살펴본 결과 필기의 상태를 보아하 니 이미 노트를 발견한 지는 며칠이 지난 모양이었다·
‘내가 알던 원작과··· 미묘하게 달라·’
시간여행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과거로 떠나오기 전 에이젤이 말 했다· 우리의 사소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알던 과거가 조금씩 변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결과 미래가 아 주 크게 변질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만 할 것이라고·
그게 이런 뜻이었을까·
일주일 전 자신이 에이젤에게 낯 설게 군 대가로 과거의 흐름이 변질 되어 그녀가 마엘라의 노트를 며칠 이나 빨리 발견하는 결과가 탄생하 고 말았다·
···아직이야· 방법은 있어·’
그녀가 노트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실험실에서 그 레시피를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면 된다·
다음 날 오전·
연금술 강의를 듣기 위해 생도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와중 인파 속에서 풀레임은 에이젤을 간신히 찾아내서 붙잡았다·
“저기 잠깐만·”
”··또 뭔가요?”
어제의 일 때문일까 경계심이 한 층 더 짙어졌다· 풀레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 연금술 강의 듣지? 나도 듣는 더1 같이 가자고·”
그러자 두 눈을 깜빡이던 에이젤은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저기 저분들도 모두 연금술 강의 듣는 모양인데 저쪽으로 가시죠·”
“아니 나는 너랑 같이 가려고····”
“저는 그러기 싫네요·”
쌀쌀맞게 풀레임을 떨쳐낸 에이젤 은 그대로 직행해 버리고 만다·
—口 •
사람과 친해지는 법은 무엇인가·
본디 누구와도 고민없이 가까워지 고 친해졌던 풀레임이었기에 누군가 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애당초 저런 싹퉁바가지들을 백유설은 대체 무슨 수로 꼬셔가지 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들었단 말인가?
‘여러모로 대단해 정말로···
어쩔 수 없다·
연금술 강의실·
항상 혼자 착석하는 에이젤의 옆에 착 달라붙어 앉은 풀레임은 그녀에 게 말을 걸었다·
“그거 알아?”
“메이젠 교수님은 뛰어난 연금술사
를 좋아하시는데 그건 사실 거짓말 이야· 교수님은 자신의 레시피를 있 는 그대로 잘 따라오는 학생을 좋아 하시는 거야·”
“아무래도 연금술을 배우려면 교수 님의 눈에 잘 드는 게 낫겠지?”
에이젤이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르겠 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 그것도 있다· 작년에는 선배 한 명이 교수님이 지시하는 레시피대 로 안 했다가··· 어어? 어디 가?”
그녀의 말을 듣기가 싫었는지 에이
젤이 자리를 옮긴다·
“따라오지 마세요· 부탁이니까·”
“어 어··· 응···
저렇게까지 쌀쌀맞게 굴면 풀레임 도 더는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쫓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다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 었겠지···?(
저렇게 보여도 교수님들의 눈치를 엄청 많이 보는 에이젤이다·
만약 자신의 말뜻을 이해했다면 마 엘라의 레시피를 이곳에서 선보이지
는 않을 것이다·
마침내 연금술 실험이 시작되었고 풀레임은 빠르게 메이젠 티렌 교수 의 레시피대로 포션을 연성하였다·
그 과정이 어렵고 복잡했지만 그녀 로서는 작년에 해본 것이었기에 지 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1학년 당시 연금술 강의를 듣던 백유설이 떠오른다·
‘흐흐흐흐 감자 포션·’
‘김치 감자 포션은 최고야!’
그의 첫인상은··· 변태였다·
연금술 변태·
세상에 연금술같은 귀찮고 복잡한 짓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은 난생 처음 봤으니까·
‘이런 걸 몇 번이나 반복했을 텐데 도 그렇게 즐겼다는 걸까···
백유설이 즐겼다고 생각하며 나름 대로 연금술에 집중하니 또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정도면 완벽하 게 메이젠 교수의 레시피 완성·
마엘라의 마공학 필기노트를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면 에이젤 대신 그 레시피의 포션을 연성했겠지만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백유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에이젤 의 불행을 막을 수 있었····
“에이젤· s반에 올라갔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졌구나· 누가 네 마음대 로 실험 재료를 바꿔도 좋다고 했 지?”
•···어?’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익숙한 고함 소리다·
서둘러 그곳을 바라보니 메이젠 티렌 교수가 진심으로 격노한 표정 으로 에이젤의 결과물을 나무라고 있었다·
‘뭐야 어째서···?
,설마···!
풀레임은 서둘러 에이젤의 실험물 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메이젠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포션이 연성되어 있었다·
‘아·’
그렇다· 자신은 나름대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건 착각이었다·
그녀는 진작 마음을 닫고 있었는데 제멋대로 옆자리에 가서 떠들어댄다 고 귀담아 듣기나 하겠는가?
뭐가 잘났다고 그녀에게 아는 체를 해댔다는 말인가·
풀레임의 현실에서 발생했던 과거 와 현재가 오버랩된다·
당시의 백유설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 이렇게 하는 게 더 결과가 좋 잖아요·’
그는 뻔뻔했다· 교수가 눈앞에서 침을 튀겨가며 격노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는 에이젤 대신 메이젠 티렌의 분노를 받아낼 자신이 있었
던 것이다·
그러나 에이젤은 아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한 방 식으로 연금술을 했습니다·”
머뭇거리며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 하는 에이젤· 아직까지는 그녀의 마 음이 꺾이지 않았다는 증거였고 풀 레임은 저 마음을 반드시 지켜내야 만 했다·
하지만····
“건방진 년!!!”
메이젠의 고함이 실험실 전체에 쩌 렁쩌렁 울려 퍼진다·
“네 말은 나의 연성식이 틀리기라 도 했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아차·
풀레임은 그제야 메이젠 티렌 교수 의 진짜 무서운 점을 떠올렸다·
그녀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편이 었고 천재에 의해 자신의 연금술을 부정당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런데 진짜 천재라 불리는 에이젤 이 그것을 부정하니 어떻게 되겠는 가·
‘이럴 수가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
백유설은 메이젠 티렌 교수의 분노 를 적당히 받아넘기면서도 그녀의 성질을 끝까지 건드리지는 않았다·
메이젠 교수가 진심으로 격노할 만 한 도화선을 아슬아슬하게 건들지 않고서 약올렸던 것이다·
에이젤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메이젠 티렌 교수의 연금술 을 부정하고 말았다·
이는····
원작 로판과는 또 다른 전개였다·
‘내가 뭔가를 망친 걸까?’
일단은 메이젠 교수를 진정시켜야
만 한다· 그녀의 정체는 사실 흑마 인으로서 질투심이 그 각성제가 되 어 변이하게 된다·
‘내가 나서야···/
하지만 그녀가 망설이는 人卜이 이 미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으니·
“교 교수님! 진정해 주세요···!”
연금학 조수 알테리샤였다·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그녀는 먼 미래에 최고의 연금술사가 될 예정 이지만 이곳에서는 한낮 조수였을 뿐· 메이젠 티렌의 말에 감히 반박 할 자격조차 없었기에 이는 그녀를 더욱 자극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알테리人上 누누이 말하지 않 았느냐· 내가 수업하고 있을 때 함 부로 끼어들지 말라고·”
이제는 정말로 분노가 극에 다다랐 는지 목소리가 가라앉은 메이젠·
다행스럽게도·
알테리샤는 굉장히 현명했기에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넘어가는 방법 을 잘 알고 있었다·
“교 교수님··· 이런 ’배신자의 자식에게 교수님처럼 위대한 연금 술사께서 화를 내시는 것도 수지타 산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움찔·
학생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에이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고 팔끝이 달달 떨렸다·
···저게 정답이야·’
메이젠 교수가 한번 화내기 시작하 면 밑도 끝도 없이 불처럼 날뛰기 시작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천재를 낮추고 그녀를 띄우는 것 외 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 그렇지····”
알테리샤의 합리적인 대처 덕분에 마음이 살짝 풀린 듯 메이젠 티렌 은 에이젤을 향해 피식 비웃으며 고 개를 돌렸다·
“배신자의 자식 따위에게 내가 무
슨 열을 쏟고 있었는ス 1 원···
그녀는 그리 말한 뒤 다른 학생들 의 실험 결과물을 보기 위해 움직였 다· 학생들이 긴장 어린 눈으로 실 험 결과물을 내보였으나 메이젠은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엉성하게 연성된 결과 물조차도 칭찬한다·
그것은 마치·
‘그래 너희 수준이 이 정도면 잘 했다· 심지어 엉터리 레시피로 연성 한 저 이름뿐인 천재보다도 너희가
낫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의 실험물을 하나하나 볼 때 마다 대놓고 곁눈질로 에이젤을 의 식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 은 채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실험물 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결국 실패했구나·’
이로써 에이젤은 점점 더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이다·
나는 오늘·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 * *
강의가 끝난 즉시 에이젤을 위로 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한 채 풀 레임은 정신없이 달려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달칵!
“허억 헉····”
어찌나 급하게 뛰었는지 뺨에 땀이 흥건했으나 씻을 생각도 못 하고서 근처에 떨어져 있던 노트 한 권을
서둘러 펼쳤다·
‘내가 멍청했어· 이딴 식으로 한다 고 되는 게 아니야· 조금 더 철저하 게 계획해야만 해·’
미래에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사 건들· 그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나 최소한 에이젤과 관련된 큼지막한 에피소드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원작 로판에서 그에 대한 대 처법까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아주 훌륭한 답안지를 기억하 고 있지 않은가?
‘백유설이 하던 방식대로··· 그대 로 따라 하는 거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조리 메모한 다· 연금술 조별과제부터 시작해서 네크로맨서의 습격 사건과 여름방학 의 일까지····
,,아·,,
하나하나 백유설의 대처법을 메모 해 나가던 풀레임은 어느 순간 자신 의 펜이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모르겠어·’
그러다 깨닫는다·
특정 몇몇 사건은 백유설이 세간에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해 결해 버렸음을·
도대체 어떻게 그곳에서 무슨 사 건이 발생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풀레임은 언젠가 그가 이야기해 주 리라 믿고서 넘어갔다·
실제로 몇몇 사건은 백유설이 직접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꽤 많은 큼지막한 사건들은 그 전말 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다·
홍비연과 에이젤을 지켜야만 하는 데····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무능하다·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지···?’
노트를 조용히 내려놓은 풀레임은
의자에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서 아무것 도 떠오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