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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빙백산맥(6)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할까?
십이신월로서 근엄하게 ‘그 방법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하 면 순순히 먹혀들까?
온갖 사념이 천황정팔월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도저히 무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 가 아니었다· 여기서 말을 물렀다가 는 자신의 판단력이 마란칼츠보다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지적 우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천황정팔월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우 위가 무용지물이 된다·
그녀의 지식이 쓸모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마란칼츠는 고민의 여 지 없이 천황정팔월을 내치거나 혹 은 공격하여 힘을 빼앗으려고 할 테 니까
‘으으으! 그건 안 돼!’
싸움은 싫다·
아니 애당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인의 힘으로 직접 싸워본 적이 없 다· 신월으로서의 능력은 전투에 적 합하지 않았고 마법은 배울 생각조 차 해본 적이 없다·
그건 열등한 인간들의 학문이었으 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야!’
빙백산맥의 모든 도시를 페르소나 게이트로 뒤덮겠다니 미친 짓이 따 로 없다·
“마법人卜 잠깐 내 얘기 좀···
그러나 천황정팔월이 입술을 떼었 을 때는 이미 마란칼츠가 마법의 캐 스팅을 끝낸 뒤였다·
“아뷸라! 카타로쿰!”
쿵!!
마란칼츠가 지팡이를 내리치며 주 문을 외치スト 빙백산맥 전역으로 회 색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아 아뷸라? 카타?’
익숙한 단어다·
수백 년 전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주문 중 하나였으니까· 마법은 알지 못해도 언어를 해석하는 것 정도는
십이신월인 그녀에게 아주 쉬운 일·
‘세상이여 빛을 잃으라·’
그리고·
“아뷸라··· 네메하륨!”
‘세상이여 회색으로 물들어라·’
쿵!
마란칼츠가 지팡이로 재차 바닥을 내리치니 이번에는 흑색의 파동이 빙백산맥을 뒤덮었다·
“하 하하···
끝이다· 이제는 진짜로 끝이다·
천황정팔월은 완전히 헝클어진 머
리카락을 정돈할 생각도 못한 채 동 공 풀린 눈으로 지상을 바라보았다·
‘미쳤어 이건 미친 짓이야···
biPP一!!
백령고원 요새 그 꼭대기에서 마 치 생성된 보라색의 구체 하나· 그 저 사람의 머리만큼이나 아주 자그 맣던 그것은 풍선처럼 서서히 부풀 어 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요새 전체를 뒤덮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보라색의 구체는 마침내 지상을 모 두 집어삼키고 돔의 형태가 되어 사 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하층부의 도
시까지도 모조리 집어삼키고 말았 다·
“아아···
아연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천황정팔월·
해일처럼 퍼져 나가는 페르소나 게 이트의 파도를 평범한 인간들이 막 을 수 있을 리는 없다·
“해결입니다 신월이시여·”
마침내는 북부의 모든 도시를 집어 삼킨 페르소나 게이트를 보이며 마 란칼츠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제야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9클래스의 마법사들은 하나씩 어딘 가가 고장 나 있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마란칼츠에게는 어떤 감정 하나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단점이지 만 그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족쇄 를 벗어 던지게 해주었고 아주 합리 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 최고의 판단이지 않은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괴생명 체를 모조리 처리하는 방법·
그것들을 죄다 다른 차원에 가두면 되는데 말이다!
“이건 이 크기의 페르소나 게이트 는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r
“흐음? 신월이시여· 당신이라면 아 실 줄 알았습니다·”
“뭐?,,
“당신께서는 페르소나 게이트가 무 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이다·
무ス】(無智에서 오는 침묵은 그녀 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고 마란 칼츠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면 세계··· 다른 차원을 끌어
오는 힘 맞잖아·”
“그렇지요·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 습니다· 그 힘을 사용하는 흑마법사 조차말이죠·”
“···실은 다르단 거야?”
“허허 아주 다르지는 않지요· 비슷 합니다· 다만 그 ‘이면 세계’가 생 각보다도··· 가까운 곳에 눈•에 훤 히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겠지요·”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흑마탑은 언제나 하늘이 붉게 물든 채 별자리가 반짝이고 있 다· 노인은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며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별을 관측해왔다·
“···설마!”
“그렇습니다· 이면 세계는 곧 저 하늘의 별자리입니다· 별은 무수히 많은 세계를 나타내고 있지요·”
천황정팔월은 순간 뒷걸음질을 칠 뻔한 것을 참았다·
“&낱 인간이 거기까지 알아냈다 는 말이야?!’
그 정도라면 이 세상을 구축하는 진리의 문턱까지 접근한 것이나 마 찬가지·
‘그런데도··· 문턱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다는 말이야?’
노인은 진리의 문턱에서 대체 무엇 을 보고 절망하였는가·
“9클래스의 마법사는 곧 별자리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인간·”
그는 나지막하게 말하며 하늘을 바 라본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별에 가까워졌다고 한들 결국 저곳 과의 거리를 좁힐 수는 없지요·”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다고 한들 별자리에 얼마나 가 까워지 겠는가?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하늘에서 인
간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그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신에게 있어 지상에서 밤하늘을 바 라보는 인간이나 산꼭대기에서 밤하 늘을 바라보는 인간이나 똑같이 땅 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낱 미생물 일 테니까·
“···그렇군·”
그 말을 듣고나서야 그녀는 노인이 왜 진리에 닿기를 포기했는지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깨달은 것이다·
진리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으나 인 간으로서는 그곳에 절대로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포기했던 그 꿈을 천 황정팔월이 일깨워주었다·
“자 이제 말씀해 주시지요·”
“신월에 도전하였고 희박한 확률이 나 별에 근접한 마법사··· 그의 이야기를·”
천황정팔월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 * *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탁 트인 하늘 사이로 내리쬐는 태 양빛을 머금고서 출렁이는 바다·
대륙 북서쪽 바랑카 절벽·
“와아···
시야에 전부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 로 끝없이 펼쳐진 절벽 위에 선 에 이젤은 자연의 위대한 장관에 눈을 떼지도 못한 채 입을 쩌억 벌렸다·
“아름다워····”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며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이 다· 분명 이 장소에 서 있음에도 불
구하고 세상이 멀게만 느껴졌다·
자연의 신비로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빚어낼 수 없 는 거대한 조각상·
마음 같아서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한 장만을 걸친 채 맨발로 절벽 위 를 거닐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는 이 곳에 놀러온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절벽 어딘가에 하 늘로 향하는 기둥이 있단 말이야?”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은 꽤 자유분 방한 패션의 홍비연은 자신의 관자 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풀레임이 임시로 걸어준 축복의 효
력이 아주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 는지 두통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것·
“기둥이 있다구요?”
“있어· 엄청 커다란 게·”
“네에···?”
에이젤은 푸른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서 다시 절벽을 바라보았다·
탁 트인 시야·
저 멀리까지 보이는 수평선·
그 어디에도 기둥은 없다·
“바보들아· 당연히 눈에 보일 리가
없지· 떡하니 있었으면 지금쯤 마법 사들이 한 숟갈도 안 남기고 죄다 갉아 먹었을걸?”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어떻게 찾아?”
“일단은 이걸 가져오긴 했거든·”
풀레임은 빛을 잃은 큐브 조각 하 나를 꺼냈다· 일전에 아레인 기사단 장에게서 건네받은 ‘콘스텔라티오의 파편’·
그것을 보니 작년 여름방학 때 백 유설의 비밀을 알아냈던 일이 떠올 라 소녀들은 잠시 침묵하였다·
“우리는 그때··· 백유설이라는 사
람의 삶을 보았어· 하지만 관측하는 것만이 가능했을 뿐 개입은 불가능 했지· 지금은 달라·”
“다르다구요···?”
“응· 진짜 시간을 여행할 거야· 아 마도··· 백유설처럼 말이지·”
“백유설처럼····”
시간 여행·
떨림이 명확한 그 단어에 에이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아마도 아버지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
풀레임은 에이젤과 홍비연을 번갈 아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그 어떤 상 황에도 쉽사리 개입해서는 안 돼·”
그녀는 특히 에이젤을 바라보며 한 번 더 강하게 강조했다·
“과거에서 발생한 사건은 결코 바 꿀 수 없어· 그건 ‘백유설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야· 명심해·”
그렇다·
백유설조차 미래를 바꾸지 못하여 현실을 보호하기 위해 과거를 속이 는 선택을 하였다·
“과거는 바꿀 수 없어· 절대로·”
에이젤의 귓가에 그 말이 댕댕 종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과거는 바꿀 수 없어· 과거는····’
안다· 알고 있다·
이제 와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건 백유설을 아버지를 모욕하는 짓이다·
“···명심할게요·”
에이젤이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풀레임은 만족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각자 흩어져서
찾아보자· 찾은 사람은 내가 나눠준 이 브로치를 눌러서 신호를 보내· 스마트폰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백유설이 개발해 주지 않으려나·”
“스마트폰이 요?”
“어·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는 수첩 같은 건데 서로 멀리서 대화할 수 있어· 마법 같지?”
“마법으로는 그런 걸 못 하는데요?”
이 세계에서는 ‘과학 같지?’라고 말하는 게 정답이려나·
“아무튼 수백 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장소니까 쉽게 찾을 수는 없
을 거야· 하지만 내 생각에 너희 둘 은 조금 다를지도 몰라· 너희 둘은 ‘특별한 운명’을 지녔고 나는····”
풀레임은 뒷말을 삼켰다·
특별한 운명·
그것은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존재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실재 여부를 믿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좋아 그럼 각자 출발!”
뒷말을 흐리고서 풀레임은 밝게 웃 으며 큐브를 쥔 손을 크게 흔들었고·
그 순간·
세상이 어둡게 점멸하였다·
··!!
소음이 사라졌다·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폭발음도 없었다·
그저 밝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회 색빛으로 물들었고··· 무언가가 이 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소녀 들은 동시에 바다 한가운데를 바라 보고 있었다·
기둥이 있었다·
그래 말 그대로 기둥이었다·
하늘과 바다를 잇는··· 아주 거대 한 은색의 기둥이 대지의 중심에 꽂 혀 있었다·
왜 저것을 여태 보지 못하였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 대한 물체였다·
소녀들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 다· 소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목소리 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그녀들은 서로 눈빛을 한 번 씩 교환하고서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절벽 위를 달려서 도약하였다·
각자의 등 뒤에 펼쳐지는 붉은색 푸른색 황금색의 날개·
세 명의 소녀가 회색의 세상에 펼 쳐진 은색빛 기둥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아주 조금 떨어진 하늘에서 회공 시월은 허공을 움켜쥔 채 날아가는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황정팔월 꽤 쓸 만하군·’
풀레임이 자의로 이곳에 오도록 만 들 줄이야· 어떻게 그녀가 이 장소 까지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저곳에서 시간을 역행하여 자 신의 진정한 운명을 깨닫는 순간····
또 다른 운명을 지닌 ‘백유설’이라 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 져 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