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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빙백산맥(1)
“슬슬 영역 확장을 시작해야지·”
북부 극단부 빙백산맥·
백령고원 요새·
설파람 대공은 노란 눈동자를 반짝 이며 말하는 천황정팔월의 말을 순 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영역 확장··· 말씀이십니까?”
그에게 있어 천황정팔월은 신이다·
여동생 산새람의 불치병을 치유해 준 은인이자 백령고원 요새가 뒤흔 들릴 만한 위태로운 사태가 발생했을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 장본인·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난공불락 이라는 타이틀을 자신의 세대에 잃 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설 파람 대공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천황정팔월의 말이 라면 무조건 따르고는 했으나 그럼 에도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 슬슬 네 영역을 넓혀야지·
억울하지 않아? 수십 번의 세대를 걸쳐 평생을 이 차디찬 얼음 속에 서 지내야만 한다는 게· 네가 여기 서 움직이지 않으면 네 후손도 그 후손의 후손도 얼음 덩어리에 갇힌 채 평생 차가운 삶을 살겠지·”
“···어째서 저입니까?”
“지금이 최적기야· 봐 30대에 8클 래스를 달성한 천재 마법사이자 지 휘관이 여기에 있는데 지금이 아니 면 또 언제 하겠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제가 사용 할 수 있는 8클래스의 주문은 고작 하나뿐이고···
“하나도 없는 것과 하나라도 있는 것의 차이는 네가 마법사라면 잘 이 해하고 있겠지?”
“무엇보다도 네 진정한 능력은 바 로 병력을 지휘하는 천부적인 능력 이야·”
태어날 때부터 [왕의 카리스마]를 타고난 설파람 대공은 백령고원 요 새의 병력을 이전 세대보다 몇 배는 더욱 굳건하게 구축하여 현시점에서 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병사력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너는 그 소심한 성격이 문제야·”
“···죄송합니다·”
뛰어난 카리스마와 리더십 거기에 더불어 30대에 8클래스 초입을 달 성했다는 천재적인 재능까지 갖췄으 면서 보수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 이 그에게 있어 큰 단점이었다·
변화를 두려워한다·
진작 빙백산맥 북부의 금역을 토벌 할 수 있는 힘을 갖췄음에도 불구하 고 나아가지 못한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정도의 병력으로도 터무니 없
이 부족할 수 있지 않은가?’
‘아직은··· 8클래스의 주문 하나 만으로는 대단한 도움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르잖아·’
그런 소심한 생각이 머리를 겉돌고 겉돌아 결국 백령고원 요새 지휘관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모두 갖췄음 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말이지·’
천황정팔월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 다· 그녀는 설파람 대공이 어린 시 절부터 그 성격을 옥죄여놓았고 그 결과 카리스마와 소심함이 공존하는
말도 안 되는 성격이 완성되었다·
왜 굳이 이런 짓을 했느냐면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쉽게 정신을 조종하기 위해서였다·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른 강자의 정신은 완벽하게 통제하는 게 불가 능하여 자아를 빼앗을 수는 없으나 자신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는 ‘사냥 개’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너의 소심한 성격과 우유부단 정 도는 내가 커버해 줄 수 있어· 너의 능력과 나의 추진력· 둘이 합쳐진다 면··· 우리는 가히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천황정팔월의 그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 었다·
‘지금밖에는 없어!’
설파람 대공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재능이었기에 천황정팔월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서 그의 정신을 지배하였다·
북부에 위치하여 눈에 띄지 않으나 최고의 병력을 지닌 이 장소에서 태 어난 천재 마법사 소년·
그때는 몰랐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설파람 대공을 뛰어넘는 천재 소년소녀들이 태어날 줄은·
설파람 대공의 [왕의 카리스마]보 다도 한 단계 뛰어난 (제왕의 기백] 을 가진 소년이 무려 둘·
마유성과 제레미 스칼벤·
설파람 대공의 [마나의 축복]보다 도 한 단계 뛰어난 [마나의 사랑]을 가진 소년과 소녀가 무려 둘·
풀레임과 홍비연·
설파람 대공의 [자연의 축복]보다 도 한 단계 뛰어난 [자연의 사랑]을 가진 소녀가 무려 둘·
에이젤과 홍비연·
거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화가 치
솟아 천황정팔월은 들고 있던 컵을 뭉개버리고 말았다·
쨍그랑!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힘조절을 잘못했네·”
그릇 조각을 바닥에 대충 내던지자 시종들이 조용히 들어와 정리하였다·
‘이 무슨 역겨운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의 꼭두각시로 내세울 천재 마 법사를 몇 세기 동안이나 기다려왔 다· 그 최고 적임자로 설파람 대공 을 선택했더니 몇 년 사이에 그보 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들 이 태어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이 자신을 농간한다 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리 말해서 설파람 대공은 저들보 다 한 단계 낮은 재능을 가졌으나 더불어 모든 재능을 갖추기도 했다·
하나의 분야에서는 저들을 뛰어넘 을 수 없지만 모든 분야에서 두루두 루 뛰어난 존재는 여전히 설파람 대 공밖에는 없다·
‘내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어·’
천황정팔월은 손을 뻗어서 설파람 대공의 손을 잡았다·
“설파람 대공·”
“···말씀하십시오·”
“너는 인간으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니?”
그녀는 최대한 다정한 말투를 연기 하였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고 목 소리가 파들파들 떨렸으나 이미 그 녀에게 푹 빠져 있는 설파람 대공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제 꿈은····”
눈을 감고서 고민하던 설파람 대공 은 조금은 재미없는 대답을 하였다·
“이대로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
아가다 죽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대를 이어받아 백령고원 요새를 조용히 지켜내시고 조용히 돌아가셨던 것처럼 나 또한 그런 삶 을 살 것이다·
그것이 그의 소박한 꿈·
물론 북부의 마물들에게서 요새를 지켜내는 것부터가 굉장히 어렵고 막중한 책임이다· 그렇기에 설파람 대공은 다른 무언가에 눈길을 돌리 지 않았다·
자신의 소탈한 성격과 부족한 능력 으로 일을 크게 망칠까 두려워서·
“세상 사람들은 네 이름을 기억하
지 못할 거야·”
“···상관없습니다·”
“아니· 상관있어· 네가 아니었다면 북부에서 벽이 되어 막아주는 백령 고원 요새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중 앙 대륙은 지옥이 되었을지도 몰라·”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수백만 마 리의 마물들을 단 한 마리도 홀리지 않고서 철통같이 방어하는 백령고원 요새·
먼 과거에는 중앙 대륙의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감사를 표 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다·
이제 그 누구도 백령고원 요새를
기억하지 않는다·
굳건히 지옥의 수문장이 되어 버팀 목이 되어주고 있는데 어떤 사람도 그들의 고통과 노력을 알아주지 않 는단 말이다·
“아니요··· 저는 괜찮···
“억울하지 않아?”
문득 천황정팔월의 눈빛이 노란빛 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설파람 대공의 동공이 크 게 벌어지며 생각의 속도가 느려졌 다·
“잘 생각해봐· 저들이 발 뻗고 편 안히 안방에서 과자나 씹고 있을 때
너와 네 소중한 부하들이 피땀 흘려 가며 지켜내는 세상이야·”
“그런데 그들은 너희에게 더 이상 감사하고 있지 않아· 은혜를 모르고 있어· 억울하지 않아? 네 부하들이 죽어 나가도 저들은 눈길 하나 보내 지 않는다고·”
“그 런 건····”
“해결책은 간단해· 네 능력으로 충 분히 가능한 일이야· 그저 요새를 조금만 열어서··· ‘마물들을 중앙 으로 내보내는 거야·’”
자신들의 친구와 가족이 피로 물든
다면 저들은 다시 기억해 낼 것이다·
북부의 지옥을 틀어막고 있던 백령 고원 요새의 존재를·
“그렇게 하면···「
“응 그렇게 하고 네가 구할 거야· 마물 사냥은 너희의 주특기잖아· 중 앙 대륙으로 퍼져 나간 마물을 모조 리 사냥하고 멸망해 버린 땅에 너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꽂는 거야·”
세상에 널리 설파람의 이름을 퍼뜨 리자·
“그것이··· 나의 꿈이スト 너의 꿈 이야· 그렇지 않아?”
설파람 대공은 동공이 풀린 상태에
서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 다· 과연 8클래스 초입에 들어섰다 더니 비록 주문은 하나밖에 사용하 지 못하지만 그 정신력만큼은 완고 해진 모양·
하지만 천황정팔월은 미소를 지었 다· 어렸을 때부터 달콤한 말로 그 를 속여왔기에 그는 자신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국 천황정팔월의 의지를 이겨내 지 못한 설파람 대공은 고개를 끄덕 였고·
그녀가 쾌재를 부르려던 그 순간·
벌컥!
“자 장군님! 비상 사태입니다!”
갑작스레 부하가 난입하고 말았다·
“쳇·,,
“어 어···r
동공이 돌아오며 뒤늦게 정신을 차 린 설파람 대공이 부하를 바라보았 다· 천황정팔월은 슬며시 뒤로 물러 나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뭐 여기서 끝난 건 아쉽지만 암 시는 충분히 먹혀들었어·’
이미 설파람 대공의 머릿속은 천황 정팔월의 명령을 수행하고 싶은 생
각으로 가득 차 있을 터·
다른 무언가에 신경 쓸 여력이 없 을 것이다·
“···무슨 일이지?”
“일전에 푸른 바람 전진 기지를 궤 멸시켰던 그 정체불명의 마물이 모 습을 드러냈습니다!”
‘정체불명의 마물?’
천황정팔월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 했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굳 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 다· 설파람 대공의 기억을 살짝 엿 보면 되었으니까·
,···어라?’
기억을 확인한 그녀는 큼지막한 눈 동자를 껌뻑거렸다·
‘이게 뭐야?’
날카로운 무언가에 깔끔하게 절삭 된 그 흔적들은 그녀로서도 난생처 음 보는 흉터였다·
바람의 칼날 마법이라면 이런 흔적 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 면 칼날 자국 말고도 여기저기 찢겨 나간 자국도 있어야 한다·
‘뭔가··· 이상해·’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천황정팔월 이기에 직감했다·
이건 보통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우선은 저것들부터 급선무로 처리 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요새를 개방하여 그것들에게 길을 터주도록 하라·”
“어 プ
“예 에에?!”
천황정팔월은 얼빠진 소리를 내었 고 병사는 기겁하였다·
그러나 설파람 대공의 굳건한 눈빛 은 변함없이 단 하나의 명령만을 생 각하고 있었다·
‘북부의 마물을 중앙으로 내려보 내 우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
단 하나뿐인 자신의 여신님이 직접 나의 손을 맞잡고 명령하셨다·
이는 거스를 수 없으니·
나의 꿈을 위해 여신님의 꿈을 위 해····
“두 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요새를 개방하여 그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에 게 길을 터주도록 한다· 이상 나는 지휘실로 향하겠다·”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잠깐! 설파람 잠깐 기다···I”
뒤늦게 천황정팔월이 그를 불렀으 나 이미 늦었다·
천천히 설파람의 감정을 녹여내어 강력한 힘을 쏟아부어서 공략한 그 녀의 ‘암시’는 그 무엇으로도 풀 수 없다· 억지로 풀기 위해서는 자신의 남은 힘을 모조리 사용해야만 하는 데··· 그랬다가는 앞으로 몇 년 동 안은 아무것도 못하는 꼭두각시 신 세가 된단 말이다·
설파람 대공이 병력 지휘를 위해 떠나가자 천황정팔월은 허탈한 표 정으로 기둥에 기대었다·
입가에서 바보처럼 자꾸만 헛웃음
이 새어 나온다·
“괜찮···겠지···r
자신으로서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 하는 미지의 존재였지만 그래 봐야 마물이지 않겠는가?
고작해야 마물 따위에 당황할 필요 없다·
‘그 그래··· 이것도 내 계획이야·’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서 자기 암 시를 하였다·
설마 위대한 십이신월인 내가 계 획한 일인데 고작해야 이런 변수에 흔들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