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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결석(6)
길었던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찾아 왔으나 스텔라의 생도들을 분주하기 만 하다· 팔자 좋게 벚꽃 놀이나 하 러 가자며 칭얼대는 학생은 애당초 스텔라에 들어올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달 뒤에 곧바로 시험 이 시작되기 때문·
언제나 시험을 달고 사는 스텔라였 지만 학기 초반에는 그 분위기가 다 르다· 자신의 클래스에 만족하지 못 한 이들은 더욱 상위 클래스로 가기 위해 이미 상위 클래스인 학생들은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 공부에 열중 하는 것·
거기에 더해 최고의 명문 학교에 들어왔다는 자부심이 섞여 알게 모 르게 너도나도 공부를 하게 되는 분 위기가 형성되어 있기도 했다·
풀레임은 1학년 때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었다·
평민이면서도 톱 클래스에 들어가 는 성적과 시작부터 S반이라는 당당 한 타이틀까지·
그녀가 하루 온종일 공부를 하고 있자면 평민 생도들은 풀레임에게 감명을 깊게 받아서 그녀를 따라 독 서실을 동분서주하고는 했다·
지금은··· 아니다·
하루라도 공부를 빼먹으면 몸에 알 레르기가 도질 것 같았던 시절도 있 었다· 시절이라고 표현하니 너무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불과 한 달 전 의 일이다·
지금의 그녀는 공부에 전혀 집중하
지 못하고 있었다·
조급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이미 어지간한 박사 학위를 딸 정 도로 뛰어난 지식을 갖춘 그녀였으 나 백유설과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 해서는 이보다도 더욱 노력해야 한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집중하지 못하고 서 평일은 물론 남들 다 공부하는 주말에도 외출을 강행하는 이유·
‘은세십일월님의 잃어버린 신물을 찾아내야만 해····’
여명이 떠오르는 이른 아침· 아직 은 하늘이 어둑어둑하기만 하다·
풀레임은 피곤한 눈으로 스텔라의 정문을 빠져나왔다· 이 시간에 왕래 하는 사람은 적지만 몇 명 있기는 있었다· 사설 자동마차 두세 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스텔 라 생도 전용 마차 정거장으로 비척 비척 걸어갔다·
«··?”
“어 오셨네요!”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 의 인물을 만난다· 왼손에는 떡볶이와 치즈고 기만두 접시를 오른손에는 컵라면 과 소스 3종 세트와 새우튀김이 올 려져 있는 쟁반을 들고 있는 그 소
녀의 이름은 에이젤·
푸른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그녀는 양손 한가득 간식거리를 올 려두고서 아침 댓바람··· 아니 새 벽부터 아주 푸짐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너··· 뭐야?”
“네? 에헤헷 제가 요즘 조금 많이 먹죠?”
“아냐· 넌 원래 그거보다 많이 먹 었어· ···다이어트는 안 하냐?”
“네? 글쎄요· 몸무게가 늘기는 하 지만 딱히 살이 찌는 느낌은 없어서 요·”
풀레임은 본능적으로 에이젤의 가 슴과 엉덩이를 확인했다· 왠지 늘어 난 몸무게가 특정 부위로만 이동한 듯한 에이젤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괜시리 살의가 치솟는다·
“한 입 하실래요?”
“···그럴까?”
물론 그건 둘째 치고 분식은 참을 수 없다· 애당초 풀레임도 딱히 식 단 관리를 하지 않는 타입이었으니 까· 2학년 S반의 소녀 삼인방 중에 서 그나마 몸매와 외모를 신경 써서 가꾸는 사람은 홍비연뿐일 것이다·
”근데 너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
냐?”
만두 하나를 이쑤시개로 콕 찍어서 입에 가져가며 묻자 에이젤이 뜨끔 한 표정으로 답한다·
“보통은 이 시간에 어딜 가냐고 묻 지 않나요?”
“네가 싸돌아다닐 데가 어디에 있 다고· 보나 마나 나 쫓아왔겠지·”
“에헤헤·”
“에헤헤? 블루베리 베이글처럼 생 긴 주제에 웃지 말고 대답해·”
“〇으”
—ロ •
그녀는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대충
대충 그럴싸하게 답한다·
“육감?”
“·····”
“아니면 식스센스?”
“그거 같은 말이야·”
“분석적인 사고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감각이라고 해두죠·”
“육감의 사전 정의를 풀이했을 뿐 이잖아····”
“뭐 아무튼· 풀레임 양에게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은 저 밖에 없다는 거죠·”
끄응·”
그나저나 정말 귀신같다·
과연 원작 로판의 주인공이라고 해 야만 하는 걸까· 어떻게 이 시간에 나오리란 걸 알아채고서·
하긴··· 알 만도 한가·
평일 저녁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외출하던 백유설이 주말에도 새벽같 이 일어나서 외출하던 패턴을 풀레 임이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에이 젤이라면 예측이 가능했을 것이다·
시간대를 모르더라도 누구보다 일
찍 일어나서 나와 기다리면 되는 것 이고· 어차피 이른 아침의 이동 반 경이라고 해봐야 비행정도 움직이지 않으니 열차로 향하기 위한 마차 정거장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비행정이 움직일 때까지 그녀 가 오지 않으면 그때 비행정 정거장 으로 이동해도 늦지 않다·
여러모로 별것도 아닌 부분에서 치 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 외로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니 맛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너··· 누가 먼저 이렇게 찍어 먹 기 시작한 거야? 이런 끝내주는 방 법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냥 소스 같은 거 보이면 다 찍 어보는데요? 저는 순대를 초장에 찍 어본 적도 있어요·”
아· 그건 좀·
아침 식사 겸 분식을 모조리 먹어 치운 에이젤은 쓰레기를 봉투에 정 돈하여 분리수거까지 차곡차곡 끝낸 뒤 근처의 쓰레기통에 처리하고 왔 다· 여러모로 깔끔하다· 풀레임이었 다면 대충 아무 쓰레기통에나 한꺼 번에 쑤셔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식사를 끝마친 뒤 잠시간의 정적·
에이젤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풀레 임에게 알약 몇 개를 건네주었다·
“뭐야?,,
“피곤해 보여서요·”
그리 말하며 손거울을 보여준다·
거울 속 풀레임의 눈가에는 다크서 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아서 그것을 가릴 방도 도 없다·
“뭐··· 그렇지·”
눈가를 매만지며 풀레임은 주머니에 서 팔면체의 큐브 같은 것을 꺼냈다·
‘콘스텔라티오의 파편·’
일전에 아레인 기사단장이 ‘별의 서고’를 열람하라며 그녀에게 준 물
건이다· 당시에는 이것을 사용하여 모든 힘이 소모되어 사라진 것으로 보고했으나 모든 빛을 잃은 조각은 그녀가 보관하고 있었다·
당장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 럼 보이지만 풀레임은 이것이 상당 히 중요한 키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별의 서고 그것은 이 세계뿐만 아 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존재했 으나 사라진 모든 역사의 흐름을 모 두 기록한 장소·
즉 모든 세계의 시간선으로 통하 는 문을 열어준 이 파편이야말로 세 상의 섭리를 거스르는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힘을 잃어서 그때처럼 모든 세상의 시간을 엿볼 수는 없겠지만 ‘아주 유사한 행위’는 가능할 것이다·
“흐으음〜 그나저나 마차가 안 오 네요· 오늘 무슨 날인 걸까요?”
“글쎄·”
그러고 보면 이상하다· 보통은 아 침에 막 출근한 사설 마차가 대기하 고 있을 텐데 말이다·
‘택시라····)
어릴 때 혼자 택시타는 것을 무서 워해서 항상 친구를 데리고 타고는 했었는데· 만약 친구가 없다면 아예
걸어다니기도 했고·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랬으니까· 택시가 무서웠으 니까·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 있는다 는 게 어려웠으니까·
멍하니 무름에 팔꿈치를 대고서 얼 굴에 팔을 괴인 채 스텔라의 정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왠지 찌릿!! 하 며 머리에서 무언가 신호가 울렸다·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이것은 천사들이 그녀에게 목소리
를 보내올 때의 느낌이었으니까·
“···응?”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무슨 일인까 싶어 서 고개를 드니 때마침 스텔라의 정 문이 열리며 붉은 장식의 호화스러 운 자동마차 한 대가 빠져나왔다·
“어라 풀레임 양· 저거····”
“그러게· 오늘 무슨 날인가·”
덜커덩!
달리 평범한 마차였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으나 아돌레비트의 마크 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겠다·
이곳에서 아돌레비트 마크를 사용 하는 생도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
덜그럭 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고 요하게 내며 달려가던 마차는 풀레 임과 에이젤의 앞을 매정하게 슈웅 지나치고 만다·
···그러고는 잠시 뒤 후진해서 정거장으로 돌아온 홍비연의 마차·
창문이 내려가며 초췌한 인상의 홍 비연이 슬며시 고개를 비쳐 보였다·
“뭐야 공주님이 웬일이래·”
“···너도 꼴이 말이 아니구나·”
“아침부터 격언 고맙네·”
풀레임은 뺨에 닿는 머리카락을 검 지와 엄지로 쥐어서 빙글빙글 꼬았 다· 홍비연의 상태도 영 좋지 않아 보였지만 자신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을 테니까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대 뜸 말한다·
“타·”
풀레임은 고민할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마차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 을 벌컥 열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일말의 고민도 안 하는구나·”
“응? 친구가 태워준다는데 타야지·”
“치 친구···r
“잠시만요오! 저는 챙길 짐이 많아 서···!”
에이젤도 뒤늦게 황급히 무거운 짐 을 낑낑거리며 가져온다·
분명 공간 확장 배낭일 텐데도 저 렇게 크다는 건 어마무시하게 챙겨 왔다는 뜻이겠다·
“야이 씨 넌 뭘 이렇게 거추장스 럽게 가져왔어?”
짐을 받아주며 풀레임이 나무라자 에이젤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구요· 숙녀는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와인따개는 대체 왜 챙긴 건데···r
“아앗 그건 넣어두세요!”
멋대로 뒤적이던 풀레임에게서 배 낭을 빼앗은 에이젤은 마차의 한구 석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홍비연은 그런 둘의 행태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거 참 짧게도 말하시네· ’그래서
어디에 모셔다 드리면 되겠습니까 풀레임 양?’이라고 물어봐도 되는 거 아니야?”
“내려·”
“오스볼트 정거장으로 갑니다·”
손바닥으로 턱을 삐딱하게 받친 홍 비연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또 어디에서 무슨 이상한 짓을 하 려고?”
오스볼트 정거장은 대륙의 북서부 로 향하는 만큼 학생들이 여행지로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다 른 정거장에 비해 유동 인구도 상당 히 적다·
“뭐 응 중요한 일이지·”
“···지난번처럼·”
“지난번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어·”
그 말에 홍비연은 턱을 괸 채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오디오가 비는 것을 싫어하는 에이젤이 대화 가 단절되기 이전에 물었다·
“그러고 보면 따로 목적지가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태워줘도 괜찮은 건가요?”
“안 괜찮아· 나는 록벨스 정거장으 로 가야 해·”
록벨스 정거장은 오스볼트의 정반 대에 위치해 있다· 본인이 태워주겠 다고 했으니 민폐라고는 말 못 하겠 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왕궁으로 가는 줄 알았어요·”
“그건 아니고···
홍비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신전으로 가 던 도중이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 한 다· 병원도 아니고 신전이라니· 민간
신앙 따위를 죽어도 믿지 않는 그녀 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해열하는 방법이 신전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그녀의 몸은 지금도 펄펄 끓어오르 고 있다· 병원의 어중간한 해열제로 는 소용도 없으니 축복을 받는 것밖 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
그런 홍비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 는지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풀레임 이 대뜸 손을 뻗어서 그녀의 이마를 쿡 찔렀다·
“읏··· 무슨 짓이야·”
평소와는 달리 화를 잘 내지도 못
하고 저항조차 제대로 못한다·
예상대로 상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홍비연의 앞섬을 슬며시 들춰보니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억지로 안색을 유지하는 그 능력도 참 대단하네· 기다려 봐·”
한숨을 내쉰 풀레임은 스태프를 꺼 내서 눈을 감은 뒤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자그마한 마법진이 터져 나 오더니 와장창! 요란스럽게도 박살 나며 날개의 형상을 만들었다·
“마법 참 시끄럽게도 쓰네···
치유 마법을 이렇게나 요란스럽게
쓰는 사람은 전 세계에 풀레임밖에 없을 것이다·
날개의 형상은 흥비연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그대로 그녀에게 덧씌워졌다· 그러자 눈에 띄게 홍비 연의 안색이 화사하게 변하며 상태 가 순식간에 호전되었다·
“너 무슨 저주라도 걸렸··· 아니· 아니야· 신경 꺼·”
아무 생각 없이 말하려던 풀레임은 뒤늦게 홍비연에게 진짜 ‘저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입술 을 닫았다· 그에 홍비연은 의미심장 한 미소를 짓는다·
“역시 넌 특이해· 이미 알고 있으 면서 시치미 떼는 능력은 어린애만 도 못하지만·”
“그래도 신경 쓸 거 없어· 지금 내가 아픈 이유가 저주를 정화하기 위해서거든·”
“···뭐? 저주를 정화한다고?”
원작 로판에서는 그런 내용 없었 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홍비연이 시 한부 인생이라고만 생각했다·
흐·
“그렇···구나
하긴··· 백유설이 그녀를 시한부 로 내버려 뒀을 리는 없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인 풀레임은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가만히 받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이제는 내가 그를 도울 차례다·
풀레임은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