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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결석(5)
정체불명의 흰색 아지랑이를 처리 한 뒤 도시의 마법 전사들에게 안 내를 받으며 청설경 마법사관학교로 돌아오니 대우가 달라져 있었다·
이곳의 마법 전사들이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존재였든 아니었든 간에 외지인이 도시의 문제에 발 벗
고 나서서 싸워주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아이테르 월드에서의 생활도 벌써 1년째· 주말이나 휴일마다 틈틈이 학교를 빠져나가 이런 오지에 세워 진 도시 여행을 자주 다녔던 백유설 이었기에 저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는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보상을 원하고 행동한 건 아니었 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쨌든 백유설도 저들에게 원하는 게 있었으니까·
“후우 정신이 없군· 자네들이 싸워 주었다고 했나? 정말 고맙네·”
청설경 마법사관학교의 학교장이자 무려 6클래스의 마법사인 빌렉은 도 시의 습격 때문에 일처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도중이었는지 상당히 진이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마법 전사는 단순히 전투만 하면 그만이지만 행정 계열은 도시 의 인명 피해와 금전적 피해를 보살 피는 중요하고 또 섬세한 역할을 수 행해야 했다·
따지고 따지면 더 골치 아픈 직업 이 사후 처리반이라고 했던가·
저들은 목숨 걸고 싸우지 않는 대 신 마법 전사보다 더 귀찮고 육체적
으로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한다고 들 었다·
“스텔라의 생도라고 했던가···
,,예·,,
백유설은 그에게 회중시계를 꺼내 서 보였다· 그는 그것을 천천히 살 펴보며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아까 싸우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 았다· ···생도라기에는 도저히 믿 기지 않는 실력이더군·”
“그런 얘기 많이 듣죠·”
그는 백유설의 이름표를 빤히 바라 보았다·
“백유설이라··· 중앙 대륙에서 활 발히 활동하고 있나? 가끔 중앙에서 전해져 오는 풍문으로 이름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휴 저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 없 을걸요·”
“그렇군· 그렇다면 자네 뒤에 계시
학교장 빌렉이 꽃서린에게 관심을 갖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 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연정흡인 지체]의 능력이 많이 약화되고 이제 는 제어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해 서 상관은 없지만 그 목소리 자체만
으로도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서 굳 이 티를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 다·
“학교에서 수행 중인 임무의 관계 자입니다·”
“그렇군· 자네의 의뢰인이라면 함 께 행동해야겠지·”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책상을 열어 서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 더니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자네 빙결정 폐광이라고 아나?”
올 게 왔구나·
백유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
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트칼란타의 골 칫덩이 중 하나라고 들었죠·”
“후우 그래·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 는 매년 빙결정 폐광을 정화하기 위 해 훈련을 강행하고 있지· 그래서 어느 정도는 정복해 두고 전진 기 지까지 세워둔 상태다·”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대단할 것까지야··· 아무튼 전진 막사까지라면 얼마든지 자네를 데려 다줄 수 있다· 그곳에서 자네의 동 료들을 만날 수 있겠지· 어떤가 이 번 훈련에 잠시나마 참여해 보는 것
은· 물론 힘든 임무는 강요하지 않 겠네· 자네는 우리 도시를 위해 싸 워주었고 그 보답차 데려가는 것이 니·”
“저야 환영입니다· 도무지 북쪽 길 목을 뚫을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좋네· 임무는 모레 동이 터오르는 새벽녘에 시작된다· 그때 다시 보도 록 하지·”
“알겠습니다·”
빌렉과 대화를 끝마친 백유설은 곧 장 학교를 빠져나왔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져서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차디찬 도시가 새
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여기서 이틀 동안 머물 숙소를 찾 아보죠· 제가 좋은 곳을 기억하고 있어요·”
“···이전에 와본 적이 있나요?”
자주 받는 질문이다·
“사실 제가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 나 있습니다·”
“비밀이요?”
“예·”
그는 일부러 장난이라는 것을 과장 하기 위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사실 미래에서 왔습니다·”
우뚝·
그러자 꽃서린은 멍한 표정을 짓더 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과연··· 그렇군요····”
잠깐만요·
“저 저기요? 농담인데 그렇게 진 지하게 받아들이시면····”
“아하핫 저도 농담이었어요·”
그제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백유설은 속으로 머리를 쾅쾅 두드 렸다· 장난을 치려다 도리어 당해버 리다니 꽃서린이 아직까지는 어려 운 탓도 크겠지만 이런 하수의 말장
난에 넘어간 것은 그의 자존심에 크 나큰 스크래치로 남았다·
‘두고 봅시다···
다음에는 결코 쉽사리 받아치기 힘 든 농담을 준비할 테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그녀는 겉보기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풍기는 아우라에서도 느낄 수 있듯 평범한 인간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아온 연륜이 있다·
온갖 수많은 경험을 해왔을 꽃서린 이 당황할만한 농담을 준비하려면 그녀가 전혀 겅험하지 못한 부분을 공략해야만 한다·
‘명확한 게 한 가지 있기는 한데····’
원작 게임에서 꽃서린은 훗날 ‘주 인공 풀레임’에게 푹 빠져서 완전한 남성체로 변모한다· 그때 밝혀진 사 실 중 하나로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왔으면서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뭐든 잘하고 뭐든 완벽한 꽃서린이 연애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숙맥인 모습을 보여서 의외의 매력을 보여 줬다고 여성팬이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이 부분을 공략하면···!
거기까지 고민하던 백유설은 문득
현자타임이 와서 고개를 푹 숙였다·
농담으로 사람 한 번 이겨보겠다고 원작의 지식까지 대동한다는 게 참 한심스러워진 것이다·
“저기 누님-”
“어머!”
휘잉···!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꽃서린 의 후드가 아주 살짝 휘날려서 얼굴 이 비쳐 보였다·
바람? 아니다· 아주 자그마한 몸집 을 가진 검은 복장의 꼬맹이가 그녀 의 몸을 밀치고 지나친 것·
‘소매치기!’
그것을 직감하기 이전 아주 찰나 의 시간이지만 가슴이 철렁였다·
도시 트칼란타의 한복판에서 그녀 의 얼굴이 살짝이지만 보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보는 눈은 없었겠지····)
그는 그렇게 간절히 빌며 점멸을 사용하여 꼬맹이의 뒷목을 붙잡았 다·
“으아악?! 이 이거 놔라!”
“그래? 일단 네 손모가지부터 자르
고 대화할까?”
“뭐 뭐라고? 이 야만···
“칼이 어디에 있더라··· 잠깐 기 다려 봐 안 아프게 잘라줄 테니까·”
“으아아아악!!”
백유설이 소매치기 꼬맹이를 구석 으로 끌고가는 것을 지켜보며 꽃서 린은 후드를 꾹 눌러서 얼굴을 가렸 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연정흡인지 체]를 평생토록 지니고 살아온 그녀 였기에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닿은 극소수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이 꼭 위험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스치듯 잘못 보았을 수 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사람 이 봤을 수도 있으니까·
‘별일··· 없겠지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당연하지 않 다면 당연하지 않겠지만 숙소는 한 개만 잡았다·
남자가 여자에게 같은 숙소를 쓰자
고 제안하는 것은 굉장히 음흉하고 어찌 보면 실례가 될 수도 있는 것 이었기에 꽃서린을 설득하기 위해 장장 A4용지 10장 분량으로 길게 늘어 뜨려서 주절주절 떠들었으나 꽃서린은 그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 지 어쨌는지 너] 좋아요라며 웃으 며 가볍게 대답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낭만적이고 로 맨틱한 분위기의 호텔을 잡은 건 아 니고 저녁의 쌀쌀한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며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구석진 위치의 낡은 숙소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가격은 둘째 치고 이곳의 치안이
나름대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여관주인이 한때 용병 일을 했던 마법사로서 방호 마법 펼쳐두고 있 어 보기와는 다르게 이 도시에서 가 장 보안이 좋은 숙소다·
물론 여관주인의 방호 마법보다도 감각이 뛰어난 백유설이었으나 혹시 라는 게 있으니 이중으로 안전을 도 모해 두는 게 좋다·
이곳은··· ‘사냥꾼’들이 서식하는 지역이니까·
“하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하 품이 절로 나왔다· 사실 그 사냥꾼
이라는 족속은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종족은 수인· 갯과 수인이든 고양 잇과 수인이든 아무래도 관계없다·
다만 그들은 인류 노예를 취급한 다· 그것도 특히나 인간 마법사 노 예를· 아주 간혹가다 아름다운 엘프 마법사가 노예 시장에 올라오는 경 우도 있었으나 드물다·
애당초 엘프는 납치하기 쉽지 않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으니까·
한 명쯤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 항상 전쟁 혹은 치열한 전투 를 치르는 지역이며 대다수의 사람
들이 얼굴을 가리는 장소·
그런 이유로 트칼란타의 마법사는 사냥꾼들의 먹이감이 되기에 아주 제격이었다·
백유설이 굳이 사냥꾼이라는 존재 를 기억하는 이유야 사실 뻔하다·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의 주인공이 풀레임이고 인간 여성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참으로 노골적인 설정이 라고 생각했다· 새삼 주인공의 특징 만을 콕 집어서 노리는 노예 사냥꾼 이 존재한다니·
현실이 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
해보니 글쎄· 딱히 없을 만한 설정 은 아니다·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 판타지스럽다고 했던가·
아름다운 여성 마법사를 탐하는 상 류층이 없을 법하지는 않다는 생각 이 들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꽃서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백유 설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샤워를 하겠다고 방을 나섰던 그녀는 살색 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철통보안 의 분홍색의 원피스를 착용하고 있 었다·
새삼 애처럼 수건을 두르고 나오는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 이벤트를 바 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 둘밖에 없는 공간인데 너무 철통보안이라 백유설은 살짝 침울해졌다·
“왜 그러신가요?”
“아뇨· 아무것도·”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한테 ‘옷으로 몸을 너무 꽁꽁 감싸고 있어서요’라 고 대답할 수는 없다·
“으음 조금 더 가벼운 옷을 입을 걸 그랬나요? 신체 부위를 내보이는 건 아직 조금 부끄러워서····”
뭔가 마음을 간파당한 것 같아서 급속도로 창피해졌다·
“그나저나 숙소에 들어온 뒤로 계 속 바깥만 쳐다보네요·”
“도시 자체가 글러 먹었거든요·”
“어라 그런가요? 그렇다기엔 학 교장님도 성실하고 좋은 분 같던데 요·”
“···뭐 견해에 따라서는 피라미 드를 네모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요·”
앞에서 보면 세모 위에서 보면 네모·
“아무튼 먼저 주무시죠·”
마침 그녀는 살짝 피곤했는지 아주 작게 하품을 했다·
“백유설 씨는····”
“저는 잠이 별로 없어서 도시 풍경 좀 구경하다 자려구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백유설은 아이테르 월드에 도착한 이후로 항상 세상의 풍경을 두 눈 에 정확히 새겨두며 살아왔다·
지구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아름다 운 이 세상을· 혹여나 원래의 세계 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이 신비로운 세계의 풍경을 머릿속 에 똑똑히 저장해 두기 위해·
그리고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 에는 꽃서린 역시 포함되어 있었기 에 그녀와는 되도록 얼굴을 자주 보 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례지만··· 그럼 저 먼저···
아무래도 체력이 약한 꽃서린은 금 세 잠에 빠져들었다·
잠버릇 하나 없이 고요하게 잠에 빠져든 꽃서린이었지만 백유설은 괜 히 그녀에게 이불을 한 겹 덮어주고 서 한숨을 내쉬었다·
덜컹덜컹!
창문이 거칠게 흔들린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뜨겁 고 짜릿한 감각·
살기는 아니다· 누군가를 죽일 생 각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니까·
’···역시나 아까 누님의 얼굴이 보였던 거겠지·’
그는 꽃서린을 덮은 이불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그녀에게 덮은 이불은 알테리샤가 특별 제작한 아이템으로써 아주 강 력한 봉인이 걸려 있다·
하지만 고작 저 정도로는 독기 가
득한 노예 사냥꾼들을 완벽히 막아 낼 수는 없겠지·
그는 테리폰 소드를 꺼내 들고서 살 벌한 눈으로 숙소를 조용히 나섰다·
달칵!
이윽고 문이 닫히スハ 꽃서린은 슬 며시 눈을 뜨고서 이불을 몸에 감싼 채 몰래 창문가에 다가갔다·
유난히도 달이 차갑게 떠오른 밤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