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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입생(13)
아넬라가 순식간에 일곱 마리의 마 물을 모두 처치한 직후·
1km의 거리를 정확히 유지하고서 그녀를 관찰하던 미리내 영애는 지 팡이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말았 다·
‘뭐야 이게···
도저히 같은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재능·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격차를 느끼 고 말았다·
‘일곱 마리로는 부족했다는 거 야···?,
아넬라에게서 진정한 힘을 끌어내 기 위해 어지간한 프로 마법 전사조 차도 고전할 만한 물량의 마물을 보 냈건만 가뿐하게 해치워 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허·
그것은 노란색 목소리의 주인 역시 도 마찬가지였는지 헛웃음을 내뱉는
다·
-흐음〜 역시 소문대로의 백유설이 키운 마법사인가? 보통이 아니네~
“이 이제 저는 어떡하면 되죠?”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그녀라면 무 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 생 각하여 서둘러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근처에 마물도 없고 내가 직접 나서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고· 딱 히 방법이 없는걸?
“···예?”
처음이었다·
그녀에게서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 온 것은· 적국과의 전쟁에서도 반드 시 승리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가르쳐 주었던 그녀가 고작 3클래 스의 17세 소녀에게 마음을 접는다 고?
-오해하지 마〜 나는 저깟 꼬맹이 한테 진 게 아니야· 백유설의 강아 지가 생각보다 강했을 뿐이라구〜
“그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 글쎄?
“그런···
-네 친구잖아? 잘 고민해 봐~ 나 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자 잠깐만요!”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워보았으나 이미 기척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미리내 영애는 망연자실하여 그 자 리에서 움직일 생각조차 못 한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아넬라의 비밀을 밝혀내고 그 재 능을 똑같이 자신에게 쥐여주겠다 고·
모든 게 잘될 줄로만 알았다·
스텔라에서 탄탄대로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전지전 능한 힘을 가진 그녀를 의심하겠는 가·
그런데·
“나를 버리고 가다니···
“누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니 어느 덧 바로 지척까지 아넬라가 도달해 있었다· 귀염상의 얼굴에 항상 순진 한 표정을 짓고만 있던 그녀의 얼굴 에 차갑고 싸늘한 냉기가 감돌고 있 었다·
처음 알았다·
항상 웃던 사람이 정색을 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를·
“나는 그게 내가 의도한 게····”
“알아· 누가 시켰겠지·”
아넬라는 자그마한 소형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 고 들어갔으나 스텔라 돔의 보호 마법으로 상처는 입지 않는다·
신체적인 고통은 분명 없으나 가 슴이 불에 데인 듯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배신? 익숙하다·
인간들에게 버려진 폐허에서 하루
하루 죽지 못해 살아왔다·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흑마인의 사회· 배신에 배신이 이어지는 그들 사이에서 아넬라는 유일하게 악취를 풍기지 않았던 한 송이의 꽃이었다·
쓰레기장에서 꽃은 유난히 눈에 띄 기 마련이었고 그녀의 등은 다른 흑마인들이 꽂은 칼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으나 아넬라 는 모두를 믿었다· 자신의 등에 칼 을 꽂으리라 알면서도 등을 보였다·
그게 아넬라였으니까·
배신당하는 삶은 익숙했으니까·
그 수많은 흉터 자국에 고작 하나 쯤 더 생긴다고 해서 아프지는 않 았다·
···그럴 줄로만 알았다·
‘오늘따라··· 조금 아프네·’
흑마인 사회에서 벗어난 뒤 오랜 만에 맞아보는 배신· 백유설과 젤리 엘의 품속에 안주하여 살아온 탓일 까·
예전이라면 가뿐하게 웃어넘겼을 상처 따위가 유난히도 아팠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인간으로서의 나는··· 아직 이런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미리내 영애가 떨리는 눈동자로 그 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어라 할 말은 많았다·
입가에 맴도는 수많은 말들·
그러나 아넬라는 입술을 꾹 닫고 서 말없이 그녀를 지나쳤다·
“아····”
미리내 영애는 차마 떠나가는 그녀 의 뒷모습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애 꿎은 허공을 응시하였다·
노란색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미리내 영애는 비로소 자신
이 벌인 짓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 다·
‘내가 무슨 짓을···
* * *
입학 심사가 끝나갈 무렵·
백유설은 조용히 스텔라 돔 입학 심사 관람석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복도 구석으로 숨었다·
기숙사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여 의치 않았던 탓이다·
“은세십일월· 계십니까?”
정신을 집중하여 이름은 부르니 눈 앞에 은발 노인의 형체가 어른거린 다·
一음 무슨 일이느냐?
자연천기지체가 된 이후 어째서인 지 십이신월과의 유대감이 더욱 상 승하여 언제든 마음대로는 아니었지 만 이렇듯 그들을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다·
“스텔라에 십이신월의 사도 중 한 명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사도? 사도는 많지 않느냐?
“신월교의 사도가 아니라 가호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사도입니다·”
-흐음····
은세십일월은 눈살을 찌푸린 채 주 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근처에서 사도의 기운이 느 껴지지는 않는구나·
,,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
백유설은 급히 말을 이었다·
“여기는 스텔라 돔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공간이 변이되어서····”
-예끼 인석아· 내가 그것도 모르 겠느냐? 엘트먼의 작품이겠지· 하지 만 공간의 뒤틀림 정도로 나의 감각
을 속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래· 네가 무엇을 확인했는지는 몰라도 십이신월의 사도는 전혀 확 인되지 않는구나·
은세십일월의 단호한 말에 오히려 백유설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지?’
틀림없이 천황정팔월의 기운을 직 박구리 안경으로 감지하였다·
미리내 영애· 그녀가 바로 천황정 팔월의 사도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내가 더 궁금하구나· 대체 누구의 기운을 느낀 것이냐?
“천황정팔월··· 입니다·”
i음·
대충 예상한 대답이 나왔는지 은세 십일 월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 그렇다면 네가 느낀 기운은 사도 의 기운이 아니라 ‘숙주’ 일 가능성 이 굉장히 높구나·
“숙주···T
천황정팔월은 원작 게임에서도 직 접 만나본 적이 없어 그 능력에 대
해 상세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 천황정팔월 그녀는 십이신 월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다·
“왜 특이한 거죠?”
-그녀는 유일하게 시조 마법사의 제약에서 벗어난 인물이기 때문이 지·
역시나 처음 듣는 이야기·
-속세에 간섭하지 말라· 이 규칙을 어기고서 수백 년간 아이테르 월드 에서 활동한 유일한 십이신월이 바 로 천황정팔월이다· 그녀는··· 이 세계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려고 하지·
“그런··· 십이신월이 수백 년이나 노력을 기울였으면 진작 넘어갔어야 정상이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에게는 없는 제약을 시 조 마법사께서 그녀에게 걸어두었 다·
“제약이라면····”
-육신의 봉인· 세상에 자신의 모습 을 드러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녀 가 세계를 흔들지 못하도록 막아낸 것이다·
“그렇군요···
십이신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는 백유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상
당히 많았다·
-감정을 다루는 십이신월인 만큼 지성체의 신체에 빙의하는 것쯤이야 가뿐하겠다만 그녀의 능력은 어디 까지나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게 고 작이었고 물리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잠잠할 터다·
은세십일월은 ‘고작’이라고 말했지 만 사실 지성체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능 력이 었다·
단순히 얼음과 불을 다루는 십이신 월의 능력을 보자· 그들이 일으키는 거대한 대재앙이 더 대단하다고 느 껴질 수도 있겠으나 마법학적으로
그것은 인간에게도 불가능한 경지는 절대 아니었다· 도달한 자가 존재하 지 않을 뿐·
하지만 감정과 영혼을 컨트롤하는 분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능력은 고작해야 한 사람의 지성체를 컨트 롤하는 것이 고작이었지·
십이신월들의 능력은 대부분 화려 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누구는 바다를 가르고 누구는 산을 쪼개는 능력을 가졌는데 누구는 고 작해야 한 사람의 인간을 조종한다?
당시에만 해도 참으로 보잘것없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현대에 이 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 었다·
인간들이 구축한 사회는 한 사람의 입김에 수십만 명의 생명이 좌지우 지될 수도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천황정팔월의 능력 은 잘못 악용했다가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터·
아돌레비트의 여왕과 스칼벤 제국 의 황제를 컨트롤하여 전쟁을 일으 키기만 해도 당장 아이테르 월드의 절반 이상이 불바다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다른 십이신월보다도 더
욱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
-그 이후로 천 년이나 지났다· 그 녀는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능력을 갈고 닦는 인물이었지· 아마 한 사 람을 조종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 면 수십 명의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천황정팔월이 스텔라의 신 입생 중 한 명을 자신의 숙주로 삼 았다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그 이유는 나도 모 르겠군· 고작 열댓 살 먹은 어린 소 녀가 세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리내 영애 본명 달레인 리히나 슈타르즈·
현재 전쟁 중인 엘레인 왕국의 ‘성 녀’ 유망주의 한 명이었으나 그렇 다고 그녀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보 기에는 애매하다·
오히려 백유설 본인이라면 홍비연 이나 제레미 스칼벤에게 빙의했을지 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니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은세십일월은 고개를 저었다·
-현대의 마법사들은 그 수준이 지
나치게 높아져서 빙의된 자를 알아 보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마도 외부 와의 접촉이 드물지만 권력을 가졌 거나 가질 가능성이 높은 세계 곳곳 의 인물들을 물색했을 게다·
“그렇군요···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어·
,,예?,,
-그 여자는 워낙 조심성이 강해서 쉽사리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거 든· 스텔라처럼 눈에 띌 위험이 높 은 곳에서 그런 짓을 벌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군·
그 말에 백유설은 곰곰이 생각하다 가 말을 이었다·
“아넬라··· 때문일 겁니다·”
-음?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아넬라 에게 무언가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 은 진작 눈치챘거든요·”
-그렇군· 그 아넬라라는 꼬맹이 덕 분에 조금은 일이 손쉬워졌어· 안 그래도 최근 다른 십이신월들의 움 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던 중이 었다· 천황정팔월의 형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다른 십이신월들의 움직임이 어떻
다구요?”
-그룹을 맺은 모양이더군·
“···예?”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게임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의 엔 딩까지도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일 어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십이신월이 그룹을···r
-믿기기 힘들겠지· 나 또한 그렇 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제외한 여섯 명의 십이신월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은세십일월의 얼굴에 걱정이 고스 란히 드러났다·
-다행스럽게도 꽃서린 엘프왕이 노력해 준 덕분에 금강칠월은 무사 히 우리쪽으로 회유할 수 있었지 만····
만약 여섯의 십이신월이 백유설과 정반대의 목표를 가지고서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힘 들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 된 거야···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원작?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 다·
이제는 원래의 스토리 라인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건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여섯과 여섯으로 나뉜 십이신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 가·
백유설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하 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음 단단히 먹도록 해라· 우리는 너를 증심으로 모였으니· 알겠느냐? 네가 무뎌지면 우리 또한 힘을 쓸 수가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백유설이 고개를 숙 이는데 은세십일월이 갑작스레 당 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一음?
“왜 그러십니까?”
-근처에서··· 다른 십이신월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천황정 팔월 입니까?”
-아니 아니다· 이 뜨거운 기운 은··· 적하유월이 틀림없군·
“적하유월···!”
홍비연의 심장에 저주를 걸어놓고 도망친 그 역겨운 얼굴을 떠올린 백
유설이 표정을 찡그리자 갑작스레 은세십일월이 모습을 감추었다·
-누가 오는군·
뒤이어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백유설이 복도 너머로 모습 을 슬쩍 드러내자 이곳을 한참이나 헤맨 것인지 땀을 뻘뻘 홀리는 청년 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백유설 학생! 여기에 있었구나!”
“예· 무슨 일입니까?”
“홍비연! 홍비연 학생이 갑자기 쓰 러졌어· 열이 끓을 듯이 난다고!”
“···뭐라구요?”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머리가 새하 얘진다고 했던가· 백유설에게는 연 홍춘삼월의 가호가 있어서 그런 안 식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네 이름 을 애타게 불렀어· 지금쯤 이송되고 있을 텐데··· 어어? 백유설 학생!”
청년의 마지막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백유설은 스텔라 돔의 창 문을 부수고서 점멸하여 모습을 감 추고 말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세십일월은 혀를 찼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것이냐
회공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