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60· 스키장⑴
원작 로맨스 판타지 ‘그 공녀님을 사랑하지 마세요에서 주인공 에이 젤이 남자 주인공들과 함께 스키장 으로 여행을 떠나는 에피소드가 하 나 있었다·
아마도 2학년 2학기쯤으로 기억하 는데 당시에는 스토리가 거의 막바
지까지 진행되어 흑마인들이 세계적 으로 난리법석을 치고 앉아 있는데 무슨 주인공이 여유롭게 스키장이냐 며 어이가 없었던 기억도 남아 있 다·
‘뭐 그땐 그때니까·’
지금은 1학년 2학기의 겨울방학·
에이젤은 풀레임의 주도하에 원작 보다 무려 1년이나 먼저 스키장으로 오게 되었다·
백유설이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풀 레임은 끊임없이 자신이 해야만 하 는 일을 찾아 나섰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
‘에이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
모르프 대공이 죽어야만 했던 그 날의 진실· 에이젤은 2학년 2학기 스키장 여행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 었으나··· 1년 먼저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는가?
이미 백유설의 등장 이후 그녀가 알던 원작 로판은 없다· 그러니 최 대한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을 이용하 여 에이젤을 돕는 게 최선의 선택이 라고 생각하였다·
“풀레임 근데 너도 스키 탈 줄 알 아?”
“응? 당연하지·”
“와 진짜? 나는 처음 타보는데·”
“나는 타봤어· 어렸을 때부터 부모 님이 데려다 주셨거든·”
“와 진짜? 귀족들은 원래 스키장에 자주 다녀?”
“모르는 소리· 평민들도 자주 와· 그냥 너희가 갈 일이 없어서 안 가 는 거야·”
그 소녀의 말마따나 아이테르 월드 에서의 스키장도 현대 한국만큼이나 꽤 유행하는 겨울 스포츠였다·
스키장 근처 콘도리조트의 가격이 정신 나간 수준으로 비싸다는 단점 이 있지만 으레 그렇듯 마차를 타고
시내로 조금만 나가면 싼 가격에 펜 션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니까·
열차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 던 소녀들은 사방을 탁 틀어막고 있 던 터널이 끝나고 시야가 트이자 짧 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저기가 푸른용 스키장이구나·”
“예쁘네···
푸른용 스키장·
블루 드래곤이라는 알파벳이 설산 의 꼭대기에 푸른 형광색으로 빛나 며 둥실 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수십 개의 ‘리프트 볼’이 날아다니 고 무중력 스키를 체험하는 실력자
들의 신나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려 오는 듯했다·
‘진짜 지구랑 비슷하네·’
지구보다 조금 더 마법적인 부분이 가미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정말로 거의 똑같았다·
다만 리프트와 곤돌라의 구분이 없 다는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
리프트 위에 마법으로 보호막을 씌 워놓은 구형 보호막은 푸른용 스키 장만의 특별한 추위 보호 시스템이 었는데 실드는 둥그렇게 만들 수 없 다는 법칙에 걸맞게 저 실드에 충격 완화 시스템은 없으나 보온은 확실
하게 보장된다고 한다·
심지어 리프트에 줄이 달려 있지 않은 부분까지 마법 세계관 그 자체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법선 이 리프트를 연결하고 있겠지·
···나도 이제 완전히 마법人卜네·’
옛날 같았으면 그냥 신기하다고 정 신없이 구경했을 텐데 지금은 마법 적인 무언가를 바라보며 신기하기보 다는 원리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분 석하게 되었다·
“나 스키는 처음이라 너무 기대돼·”
,,나도·,,
“나는 작년에 한 번 타본 게 전부 라서··· 올해 잘할 수 있을까?”
“에이젤· 너는 긴장 안 돼? 스키장 은 처음이라며·”
멍하니 스키장이 펼쳐진 설산을 바 라보던 에이젤은 푸른색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스키를 타본 적은 없지만··· 왠 지 잘 타볼 수 있을거 같아요·”
“하긴 에이젤은 [팔방미인] 특성이 있잖아· 배우면 뭐든 잘하지·”
“부럽다아~ 나는 그런 특성 하나 도 없는데·”
“그런 게 아닌데···
아마도 에이젤은 최근 자신만의 특 별한 마법을 연습 중이었을 것이다·
‘얼음의 신전 소환·’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버 리는 모르프 가문의 특별한 비기·
하나 그 마법은 아직 미완성이었 다· 완벽하게 얼음으로 뒤덮인 그 공간에서 정작 에이젤 본인도 제대 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풀레임이 알기로 원작 로판에서의 주인공 에이젤은 그 마법을 완벽히 다루기 위해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 는 법을 연습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에이젤도 마찬가지일 터· 그 원리가 스키와 상당히 비슷 하여 그녀가 스키를 크게 두려워하 지 않는 것이다·
스키장 근처에 열차가 도착하자 소 녀들은 빠르게 하차하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키를 타 러 찾아온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 다·
“바로 가자!”
“난 밥 안 먹어도 돼·”
”나도· 빨리 타고 싶어·”
몇몇 친구들이 마음을 급하게 먹었
으나 아직은 할 일이 멀다·
“예약한 숙소 먼저 들르고 스키장 비도 렌탈해야지·”
“아···「
“너희 각자 뭐 탈 거야? 전부 스 키타는 거지?”
“응· 그럼 다른 것도 있어?”
“난 보드 탈 건데?”
그렇다·
풀레임은 이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보드를 선호하는 여학생이었다·
비록 아이테르 월드에 환생한 이후 로 단 한 번도 스키를 타본 적은
없지만 전생에는 보드를 즐기는 스 포츠걸 이 었으니 까·
“와··· 보드래· 그거 스키 고수들 만 타는 거 아니야?”
그 말에 풀레임은 어처구니가 없어 져서 헛웃음이 나왔다·
1•스키 고수는 스키를 타겠지·”
“어라 그런가?”
“아무튼 빨리빨리 하자고·”
숙소 방문과 스키 장비 렌탈은 빠 르게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하다보니 시간이 조금 늦어져 식사 까지 끝마친 후에야 간신히 스키장
에 입성·
드디어 스키라는 장비를 처음으로 타보게 된 친구들을 가르치느라 거 기서 또 한참의 시간을 써야만 했지 만 풀레임은 이 순간이 나쁘지 않았 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백유설도 깨어나서 더 이상 마음에 응어리진 고민거리도 없으니 말이 다· 그를 학교에 두고 스키장으로 떠나올 때는 영 불안하고 떨어지기 가 싫었으나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있 어서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각자 핫도그 하나씩 간식으로 챙겨 먹은 뒤 리프트 볼에 마침내 탑승하 여 출발·
푸른용 스키장은 특이하게도 초급 존이 상당히 높은 장소까지 올라갔 는데 그 꼭대기에 거대한 산장이 한 채 지어져 있다·
스키를 타러 온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커피를 마시거나 라면을 끓 여먹을 수 있는 등 휴게소의 역할을 하는 장소였는데 전망대의 풍경이 상당히 끝내줘서 관광 명소로도 유 명했다·
“우리도 저기 가서 사진이나 한번
찍고 올까?”
“좋아!”
10대의 소녀들이 여행을 떠나면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 증거샷 남기기·
추억을 간직하기 위함···은 절대 아니고 일단 사진 찍어서 여기저기 자랑하기 위함이다·
전망대에는 차디찬 바람이 날카롭 게 몰아쳤으나 마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소녀 엘리트 마법사들에게 는 그다지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와중 앳된 소녀들이 머리카락
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채 전망대 위 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상당히 이질 적이고 낯설 수밖에 없었다·
“엄마 저 누나들 신기해·”
“마법사들인가 봐·”
마법이 흔한 세계라지만 어린 나이 에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는 결코 흔하지 않다·
자신들에게 시선이 은근슬쩍 쏠린 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 들은 전망대 위에서 온갖 해괴한 포 즈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다 전망대의 가장 끝으로 가 게 된 풀레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아····”
정말 순수하게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
현대 지구의 자연도 아름다웠으나 거기에 ‘마법적 신비’가 가미된 아 이테르의 자연은 그보다 한층 더 우 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설산과 설산 그 사이에 둥실 떠 있는 거꾸로 된 설산 하나·
마치 구름에서부터 자라있는 듯한 모습의 그 설산은 다른 산과 마찬가 지로 크기가 굉장히 거대했는데 그 곳에 걸친 구름이 떠나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리버스 마운틴이네···「
“’일라 젤리든 리버스 마운틴’이라 고 흐1 저건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 락 안에 드는 가장 큰 리버스 마운 틴 중 하나라고 했어·”
“멋지다아·”
“어떻게 저런 무게를 견디고 떠있 는 거지?”
“글쎄요· 그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더 궁금해지 지만요·”
에이젤이 간만에 눈을 빛내며 일라 젤리든 마운틴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도 마법적 호기심이 상당 히 강렬한 축에 속했으니까·
다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풀레임의 입장에서는 살짝 긴장되면서도 무언 가 씁쓸할 따름이었다·
저 리버스 마운틴에는··· 모르프 대공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숨겨 져 있었으니까·
“자 그럼 우리는 다시 스키나 타 러 가 볼까?”
처음 보는 풍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친구들을 데리고서 풀레임은 전망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풀레임 일행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한 사내가 등을 돌려 그림자처럼 모 습을 감추었다·
이렇게 인파가 많은 데에도 불구하 고 그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 지 못했다·
* * *
청풍명월을 아공간에 고이 보관하 고서 스텔라로 돌아온 백유설은 곧 장 수련에 돌입하였다·
마침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여행을 떠난 덕분에 훈 련장은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깨어나자마자 훈련인가?”
물론 예외는 있다·
굳이 만월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오늘도 스스로의 마법을 갈고 닦는 해원량이 바로 그 예외 증 한 명이 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뒤처졌으니 다 시 노력해야지·”
“어이가 없군· 너는 일 년 동안 잠 들어 있어도 뒤처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하하···
그건 백유설을 몰라서 하는 소리 다· 그는 언제나 항상 주인공들보다 뒤처진 채 쫓아가는 입장이었다·
최근에는 운이 좋게도 기연을 습득 하여 간신히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 었지만 미친 듯이 성장하는 해원량 과 마유성의 옆에서 나란히 달리려 면 단 하루도 쉬어서는 안 된다·
“간만에 대련이라도 하겠나?”
아마 백유설이 잠들어있는 동안 해 원량의 마법 실력은 귀신같이 발전 했을 터· 스스로의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백유설에게는 대련을 할 여 유는 없었다·
“미안· 이번에 새로 터득한 마나 연공법을 더욱 가공하고 싶어서· 이 게 끝나면 한 판 붙자고· 아마 엄청 힘들걸?”
못내 아쉽다는 얼굴의 해원량이었 으나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다·
“그거 기대되는군· 이전에 대련할 때의 너였다면 내 마법을 다섯 합도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좀 무서운걸·”
“이번에 악마를 퇴치했다고 들었 어· 멋진 공적을 세웠더군· 축하한
다·”
해원량은 그리 말한 뒤 훈련장 바 깥으로 빠져나갔다· 아마 다른 대련 상대를 찾기 위해 2학년 아니 지 금은 3학년이 된 선배를 찾아가는 모양이었다·
‘대련이라····’
만약 방금 전 대련에 웅했다면 승 부는 어떻게 됐을까?
더 발전한 해원량의 마법에 제대로 대웅조차 못하고 정말 다섯 수 만 에 당했을지도 모른다·
왜냐·
‘천기일체를 대련 중에 사용할 수
는 없으니까·’
연습 시합을 하겠답시고 뼈와 살을 깎아 먹는 정신 나간 짓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련에서도 천기일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까·’
천기일체의 강화를 고무줄처럼 조 절하는 법·
백유설은 눈을 감고서 자신만의 세 계로 풍덩 빠져들었다·
이제 자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연홍춘삼월의 가히
십이신월의 능력 덕분이다·
그러고 보면 잠들어 있는 동안 십 이신월들이 모였다고 했던가· 그가 깨어나는 순간 곧장 모두 흩어지고 말아서 못내 아쉬웠지만 무슨 사정 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래· 연두림사월의 가호도 있었지·’
자연천기일체를 깨닫기 직전 그는 거대한 산의 형상을 한 연두림사월 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자연 그 자체라고 봐도 좋은 연두 림사월이었기에 백유설의 심장 속에 서 요동치는 자연 에너지를 조금이
나마 통제해준 것·
‘어라 이거 이용해먹을 수 있나?’
원작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안타깝 게도 연두림사월의 가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대신 연두림사월과 관 련된 신물을 손에 넣기는 했으 나··· 마땅히 활용한 적도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아직 은세십일월의 가호와 청동십 이월의 가호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 고 담갈토이월의 가호는 손을 대는 것조차 시도해 보지 못했으나 우선 순위는 확실하게 정해야 했다·
‘연두림사월의 능력을 활용해야해·’
자연 그리고 생명력을 다루는··· 어찌 보면 가장 신비롭다고도 할 수 있는 연두림사월의 능력·
백유설은 곧장 자아의 세계 속에서 자아의 눈을 떠 허공을 바라보았다·
푸른 별 은색 별 연홍색 별 갈색 별 마지막으로 초록색 별이 허공에 서 반짝이고 있다·
‘연홍춘삼월의 가호를 가장 먼저 받은 건··· 역시 큰 행운이었어·’
자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자 내면 에 감춰져 있는 능력을 손쉽게 들여 다볼 수 있었다·
그는 망설임없이 초록색 별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 순간 거대한 나무 한 그루의 형상이 바다 위에 자라나 며 백유설의 세계를 뒤덮었다·
바다와 산 숲과 초원·
자연의 형상을 한 모든 것들이 상 하좌우 방향에 관계 없이 형상화하 기 시작하였다·
일이 슬슬 잘 풀려가는 느낌이 들 자 백유설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 라갔다·
“난 역시 똑똑해·”
뭔가 세상에서 가장 굉장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