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59· 겨울방학(7)
트레드 시티의 밤은 언제나 화려한 불빛의 향연으로 꺼질 줄은 모르는 법이었으나 오늘처럼 정신없는 저 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천사였다·
눈부신 날개를 펄럭이며 고층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천사를 보았을 때 얼마나 기겁했던가·
그다음 갑작스레 건물이 진동하면 서 무너지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도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그 부근으로 몰려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트레드 시티의 건축 기술이 뛰어나 다는 사실을 믿은 것일까·
혹은 겁을 상실해 버린 것일까·
“진짜 천사 맞아?”
“에이 마법사겠죠· 천사는 전설 속 에나 있던 존재잖아요·”
“무슨 쇼라도 하는 건가···r
시민들이 풀레임의 모습을 보고서 의문을 품고 있을 때 트레드 시티 에서도 가장 고급이라고 알려진 파 라다이스 호텔의 천장이 뚫리며 이 번에는 흑색의 물질이 나타났다·
“미친! 저게 뭐야!”
“자 잠깐···
“저거 설마···!”
그쯤부터 사람들은 슬슬 이 상황 이 평범한 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 닫기 시작했다·
끔찍하게 생긴 뒤틀린 박쥐 날개에 는 실핏줄이 심장의 고동 소리에 맞 춰 요동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스
멀스멀 새어 나오는 흑색의 기운을 보고도 ‘흑마인’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에 둔감한 사람이리라·
“나 난 도망칠래!”
“젠장· 대체 무슨 일이야!”
반신반의하며 신기한 구경거리랍시 고 사진을 찍어대던 시민 중 절반이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원체 범법도시로 유명한 장소인지 라 흑마인이 종종 출현하고는 했지 만 저렇게까지 강력한 힘을 가진 존 재는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던 것·
거기에 더해 스텔라 기사단의 제복
을 입은 마법사들이 공중으로 날아 올라 악마를 향해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하니 실제상황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파앙-!!
악마의 날갯짓 한 번에 거대한 파 동이 일어나며 시민들이 죄다 뒤로 나가떨어졌다· 스텔라 기사들의 마 법은 그대로 소멸되거나 위력이 반 감되었고 플라이 마법을 제대로 유 지하지 못하는 5클래스의 마법사 대 부분이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맙소사··· 스텔라마저···
세계 최강의 기사단으로 불리는 스
텔라 기사단마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다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저 흑마인이 여타의 흑마인과는 다른 힘을 지니 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 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젠장 수비대는 뭘 하는 거야···?”
“마법 전사들이 출동하고 있대!”
“맨날 술이나 진탕 퍼마시면서 밤 마다 카드나 치는 그 자식들이 온다 고 뭐가 달라지기나 할까?”
“나는 이 도시를 떠야겠어·”
흑마인을 막을 마법사가 없다고 생 각한 시민들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
는 그때 푸른색의 섬광 한 줄기가 악마를 관통하였다·
-··!!
직후 발생한 초음파·
인간이 인지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터지는 괴성에 호텔 근처 에 있던 몇몇 시민들이 귀에서 피를 홀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월영교의 이단심판관이スト 이제는 악마라고 불러도 좋을 카에나의 절 규를 들으며 백유설은 테리폰 소드 를 털어냈다·
,위험할 뻔했어·,
입고 있던 환자복의 일부가 찢겨져
나갔다· 스텔라의 코트가 없어서 방 어력이 낮아졌다지만 천기일체의 방 어력을 맹신한 실책이었다·
‘아직은 공격이면 공격 방어면 방어 둘 중 하나밖에 못 하는 건가···
이 느낌을 굳이 비유하자면 방패로 몸을 감싸서 방어하다가 공격 타이 밍이 오면 방패를 상대방에게 휘두 르는 느낌이었다·
신체를 에워싼 마나를 검과 신체에 동시에 두르는 것은 아직 불가능·
즉 검을 휘두르는 도중 악마의 공 격에 단 일격이라도 스치면 즉사할 것이다· 마나를 전혀 두르지 않은
그의 신체는 일반인 수준이었으니 까·
하지만····
‘여태까지와 별로 다를 것도 없네·’
천기일체의 방어력을 활용할 수 없 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사실 원래부 터 그래왔지 않던가?
알테리샤의 아이템 개조 덕분에 아 주 약간의 방어력을 손에 넣었지만 고작해야 3클래스 수준이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실드 하나만으로 여태 얼마나 많은 역경을 헤쳐 나왔 던가·
그 옛날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을
플레이하던 시절 ‘캐릭터 백유설’의 플레이어로서 유명해지자 어느 게임 웹 사이트의 기자가 온라인으로 취 재를 요청했던 적이 있다·
Q· 캐릭터 백유설은 방어력이 초 급자 수준으로 약하다고 알려져 있 는데 대체 어떻게 플레이하십니까?
거기서 백유설의 대답은 온 커뮤 니티를 활활 불타오르게 했으니·
A· 안 맞으면 됩니다·
그렇다·
방어력이 약한 게 무슨 상관이랴·
점멸이라는 뛰어난 기동성을 가졌 으니 공격을 모두 피하면 그만 아 니겠는가?
[점멸]
가볍게 발을 굴러서 백유설이 모습 을 감추자 그 자리에 그림자가 솟 구쳐 올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공격 도 이미 몇 초 전에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육감이 예민하게 발달하였다·
– 키아아아아!!
박쥐의 날개가 펄럭이자 붉은 기운 이 일렁이며 허공에 구체가 떠올랐 다· 마치 심장처럼 두근거리던 그것 들은 백유설을 향해 쇄도하였으나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구체를 흘려내는 순간 느 껴지는 강렬한 위화감·
‘폭발!’
백유설은 즉시 연속으로 점멸하여 자리를 벗어났고 그 자리를 순식간 에 붉은 점액이 뒤덮었다·
치이이익····
건물 외벽이 삽시간에 녹아내릴 정 도로 강력한 산성·
‘지성이 없는 게 아니었나?’
구체를 발사한 다음 터뜨리는 수준 에 지성을 운운하는 것도 웃긴 일이 지만 이미 짐승의 수준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혹마인의 전략이라기엔 지 나치게 똑똑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백유설은 카 에나의 눈빛을 마주하게 되었었다·
홍비연의 아름다운 루비색 눈동자 와는 또 다른··· 끔찍하고 혐오스 러운 새빨간 안광이 백유설은 흉흉 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벤트 보스: 이단심판관 카에나]
[패턴 3페이즈에 돌입하면 악마화 가 진행되며 폭주가 잠잠해지며 어 느 정도 이성을 되찾습니다』
예전에 게임에서도 상대해 본 기억 이 있다· 당시에는 카에나가 패시브 로 발산하는 [데빌 프레셰라는 기 운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모든 능력 치가 저하되어 성수를 비롯한 대응 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데빌 프레셔는커녕 허공에서 랜덤 으로 발사되어 플레이어들을 열받게 만들었던 악마의 속박 사슬이나 필 드 장악 따위의 권능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상의 심장에 ‘신성의 심판’ 마법이 각인되어 권능이 일부 제한됩니다·]
‘그렇군·’
일전에 풀레임이 발사했던 마법이 카에나의 가슴팍에서 빛나고 있다·
[신성의 심판 마법의 해제까지 남
은 시간 8분 49초]
무려 9분이나 남았다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애당초 내 천기일체의 그 절반밖 에 남지 않았으니까!’
분석은 끝났으니 더는 지체할 시 간이 없다· 견제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백유설이 대뜸 점멸하여 달 려들자 카에나가 그림자를 사방으로 쏘아 보낸 뒤 마치 새장을 치는 것 처럼 감옥을 형성하였다·
그의 움직임이 눈으로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을 알아 냈으니 그것을 제한하려는 것!
하지만 백유설은 그림자마저도 테 리폰 소드의 섬광으로 베어내며 전 진하였다·
점멸 점멸 또 점멸·
카에나의 그림자 다발은 호텔 전체 를 둘러쌀 정도로 거대했으며 악마 화가 된 지금 조금이라도 스치는 순 간 실드조차 녹여낼 정도로 치명적 이었으나 단 하나도 백유설에게 명 중시키지를 못했다·
마치 수백 마리의 뱀이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그에게 들이대는 듯하여 지켜보는 사람의 심장이 더 욱 조여올 정도였으나 정작 본인은 아예 그림자 위를 타고 질주하는 묘 기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신발의 깔창이 그림자에 닳아서 사 라지려고 했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자연의 마나를 발바닥에 집중하였다·
검에 마나를 끌어모은 채 신체에 실드를 코팅하는 것은 불가능했으 나 온 신경을 집중하여 발바닥만큼 은 간신히 감싸는 게 가능했던 것·
‘조금 더 안쪽으로···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그림자가 썰려 나간다· 악마의 날개가 펄럭이 면서 핏빛의 마법진이 형성되어 허 공을 검붉은색으로 수놓았지만 백유 설은 그마저도 모조리 베어 넘겼다·
“···저게 인간이란 말이냐?”
스텔라 기사단 백유설 호위팀의 총 지휘관 텔릭스는 지팡이조차 늘어뜨 린 채 입을 벌리고서 그 광경을 바 라보았다·
인간이 맞는가·
그 물음을 카에나를 향한 것이 아 니었다·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도저히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무위를 펼치 고 있는 백유설을 향한 것이었다·
애당초 카에나의 그림자가 저렇게 쉽게 잘려 나가던가?
아니 그렇지 않다·
6클래스의 기사들이 온 신경을 집 중하여 마법을 사용해야 간신히 그 림자를 터뜨릴 수 있지 않았던가·
“대 대장님· 백유설 학생··· 신체 에 실드를 전혀 두르고 있지 않아 요· 저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괜찮다고 감히 확신할 수는 없었으 나 백유설은 원래부터 마법을 사용
하지 않았다· 그 간단한 실드조차도·
누가 보아도 위태로웠으나·
“괜찮을 거예요·”
“호 홍비연 공주··· 학생?”
상처투성이의 홍비연이 살짝 붉은 색으로 물든 은색 머리칼을 뒤로 쓸 어 넘기며 말했다·
“정신을 잃었을 때라면 모를까 눈 을 뜬 이상 저 정도의 악마는 상대 도 아니겠죠·”
“뭐?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
그 질문에 홍비연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악마와 백유설을 바
라보았다·
“그냥 보고 있으면 그런 확신이 생기지 않나요?”
“에이젤 학생···
홍비연의 불꽃에 타버린 것인지 온 통 숯검댕이가 되어버린 에이젤이 옷을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여태까지 항상 그랬으니까·”
그렇다· 저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 고 있자면 누구라도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채찍처럼 휘몰아치는 수백 마리의 그림자 뱀을 하나하나 썰어내거나 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인간 마법
사로서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점멸 마법을 저렇게나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데 말이다·
“대장님··· 저 태어나서 저런 전 투는 처음 봅니다····”
“그 어떤 마법사도 저렇게 싸우지 는 않아요···
그는 세계 최고의 마법학교 스텔라 의 재학생이었지만··· 적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여 검을 휘둘러 악 마를 베어내는 모습은 결코 마법사 라고 할 수 없었다·
“기 사·”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얼핏 들었다·
백유설과 그 기사도에 관련된 이야 기를· 당시에는 그저 우스갯소리라 고 생각하여 홀려들었다·
‘세상에 검을 사용하는 기사는 이 제 없다·’
‘이제는 그 정신만이 이어져 내려 와 기사는 모두 지팡이를 들게 되었 다·’
그것이 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텔릭스는 오늘부로 확실하 게 알 수 있었다·
“여태 우리가 기사의 이름을 달고 다니던 게 창피해지는군···
이 세상에 진짜 ‘기사’라고 칭할만 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고·
서걱-!
섬광처럼 쏘아진 빛줄기 하나·
그 잔상이 사라진 직후 무언가를 베어낸 듯한 백유설이 모습이 뒤쪽 에 나타났고·
···툭!
악마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어느 도시의 어느 고층 건물 옥상·
난데없이 나타난 악마는 새하얀 검
을 쥐고서 나타난 기사에 의해 죽음 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것은··· 전설도 설화도 아니다·
새로이 쓰여 나가는 역사이スヒ 마 법으로 물들었던 오랜 시대의 변혁 을 알리는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