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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아⑴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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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word:
모니터에 떠오른 익숙한 로그인 창·
저도 모르게 옛날 아이디와 비밀번 호를 친 백유설은 아차 싶었다· PC 방을 다니던 당시에는 이 게임을 즐 기지 않았기에 아이디가 없었다·
[로그인 완료]
[로딩 중····]
그런데 생각 외로 로그인에 성공하 여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백유 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장 면을 기대하였다·
언제나 게임의 첫 화면은 ‘스텔라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시작한다·
기숙사의 침대에는 플레이어가 키 우던 캐릭터들이 누워 있었다·
S클래스의 생도들은 혼자 기숙사를 사용하기에 설정 오류가 아니냐며 여러 번 지적이 나오고는 했지만 캐 릭터 선택창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배경이 없어서 10년이 넘도록 바뀌 지 않았던 화면이었다·
“···있다·”
기숙사 정중앙·
단 하나밖에 없는 침대·
그곳에 ‘캐릭터 백유설’이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데미 장 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온몸 을 별빛의 갑주로 두른 채 장검을 침대 옆에 기대어 놓은 청년·
스토리 전개상 아카데미는 진작에 졸업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왜 아직 도 여기에 있는지 문득 의문이었으 나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떨쳐 냈다·
마우스로 ‘캐릭터 백유설’을 더블 클릭하자 [2차 비밀번호 입력]이라 는 메시지가 떴다·
그리고 당황한다·
‘이 이게 뭐더라?’
하도 오랫동안 로그인을 안 했더니 기억이 안 난다· 급하게 주민등록번 호를 입력해 보았으나 틀렸다는 메 시지와 함께 [2번 더 틀릴 경우에 자동으로 로그아웃됩니다]라는 경고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미친····”
잠시 고민하던 그는 퍼뜩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가 떠올라 그것을 입력 했다·
[접속 완료]
그제야 무사히 접속되는 캐릭터·
어머니에게 때아닌 감사 인사를 보 내며 잠시 기다리자 스텔라 아카데 미의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캐릭 터 백유설의 뒷모습··· 그 위로 수 많은 알람 페이지가 주르륵 떴다·
대부분은 커뮤니티 알람과 이벤트 알람이었기에 ‘오늘 하루 보지 않 음’을 체크하고서 모조리 꺼버렸다·
**···아니지·”
애당초 게임에 접속한 이유가 무엇 이던가· 현실의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그랬다·
‘역시 커뮤니티를 둘러봐야···
홈페이지를 몇 번 눌러 익숙하게 자유 게시판으로 향하기 위해 보안 계정을 로그인하니 수천 개가 넘도 록 쌓인 알람이 눈에 띄었다·
“뭐야?,,
저 알람은 나의 게시글에 댓글이 달렸거나 추천 10개 이상을 받았을 경우 오고는 하는데····
“허억·”
알람을 클릭한 백유설은 수천 수 만 개가 넘도록 달린 댓글이 눈이 어지러워졌다·
“이게 뭐야·”
이렇게까지 댓글이 많이 달릴 만한 게시글을 썼던가? 서둘러 확인해 보 니 얼굴이 화끈해지는 제목이 한눈 에 들어왔다·
[흑마룡一 솔플-인증·JPG]
기억난다· 이 게시글은 아이테르 월드에 떨어지기 직전 백유설이 마 지막으로 작성하던 것이었다·
철이 든 지금에 와서 보니 저런 제목을 사용했단 것부터가 창피하고
부끄러웠으나 추천 수만 개에 댓글 도 수만 개나 달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했냐고 계정이 삭제되지는 않았냐고 물어보는 질문이 대다수였 는데 그중 일부는 합성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문가가 등장 해서 아니라고 반박한 모습도 보였 다·
‘설마··· 그날 이후로 사람들의 계정이 모조리 삭제된 건가?’
아무래도 예상이 맞았던 것인지 지 금은 커뮤니티의 게시글이 거의 올 라오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맨 위 에 게임 자체가 서비스를 종료했다
는 공지가 떡하니 띄워져 있었다·
“그럼 난 어떻게 접속한 거야?”
생각해도 알 길이 없었다·
댓글 반응을 일일이 읽어보고 싶었 지만 그런 철없는 행동은 지구에서 살던 시절으로 족하다·
백유설은 서둘러 뒤로가기를 눌러 ‘팁과 노하우 게시판’을 찾았다·
생명의 기운이 노출되었음에도 살 아날 방법은 틀림없이 이곳에 있다·
딸칵!
게시글 검색 기능을 활성화하여 과 거의 글을 모조리 훑어보았다· 대부
분은 기억에 있는 것들이었다· 게임 을 열심히 하던 시절에는 팁과 노하 우 게시판을 항상 옆에 틀어놓고 살 아서 그런 것일까 익숙한 내용밖에 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생명의 기운이 노출되었던 사례가 있었던가?
[검색: 생명력 노출]
[검색: 연두림사월]
[검색: 생명의 뿌리]
정말 무수히 많은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지만 역시나 찾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나마 [생명]이라는 키워드로 검 색하다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예전 에 작성했던 게시글 하나·
[마력누설지체의 다음 단계 자연 천기지체에 대하여····]
추천 수천 개·
댓글 수천 개·
저것은 당시 핫 게시판을 점령한 것은 물론 게임 뉴스에까지 올라갔
을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여태껏 똥캐라고 생각했던 백유설 의 ‘마력누설지체’가 홋날 사상 최 강의 특성 ‘자연천기ス]체’로 진화한 다니·
“어라·”
생각해 보니 자연천기지체 역시 생명력과 연관이 있지 않던가·
마나를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체질 이나 자연의 생명력을 체내로 받아 들여 순환하게 됨으로써 무한한 에 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자연 천기지체’의 설정이었으니까·
“설마··?”
서둘러 게시글을 클릭한 백유설은 자신이 예전에 썼던 글을 빠르게 정 독하였다·
그러다 책상을 쾅! 내려치고 말았다·
“젠장! 쓸모없잖아!”
내용은 참으로 간단했다·
마력누설지체를 극한까지 단련하면 어느 순간 전직 퀘스트처럼 [생명을 초월하여 자연과 일체가 되리니]라 며 의문 모를 메시지가 등장한다·
그럼 뭐가 문제냐·
[F 버튼을 눌러 자연과 교감하시오]
바로 저 문구가 문제였다·
게시글 속 백유설은 ‘저 버튼을 누 르면 캐릭터가 알아서 생명력을 조 율하여 자연천기지체로 진화한다’라 고 작성되어 있었는데····
어디 현실이 버튼 하나로 조작되던 가? 여태까지 무수히 많은 수련을 통해 게임에서는 자연적으로 행해지 던 모든 것을 수동으로 작업하지 않 았던가? 희망이 모조리 사라진 기분 에 백유설은 키보드에 머리를 틀어 박았다·
-흠흠〜 4초 정도 남았나?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고민해 보는 건 어때? 앗 죽었다· 이런 게임은 처음이라 어려운걸·
약올리는 듯한 자아의 말에 백유설 은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처음이라고?”
-웅· 그래도 재미있네?
자아는 FPS 배틀로얄 게임을 즐기 고 있었는데 백유설이 고등학생 시 절에는 줄곧 즐기던 것이었다·
“그게 왜 처음이라는 거야···
이제는 반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 다· 백유설은 멍하니 커뮤니티를 종 료한 뒤 다시금 게임으로 화면을 옮
겼다·
멍하니 키보드를 조작하여 학교 바 깥으로 나가니 붉게 물든 하늘이 눈에 띄었다·
“아····”
그러고 보니 흑마룡 솔플 게시글 을 올렸다는 것은 게임의 배경이 에 피소드 막바지 이후라는 의미였다·
스텔라의 제1본탑 옥상으로 올라가 면 전 대륙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판이네·”
스텔라 아카데미는 비교적 피해를 겨의 입지 않은 듯 멀쩡했으나 대륙 전체가 초토화되어 있었다·
-···헤 그게 네 세상이야?
“어? 뭐 그렇지·
-대단하네· 네 세상에도 흑마룡이 소환되었구나· 최악의 상황은 아무 리 너라고 해도 피할 수 없었나 보 네· 그런데도··· 스텔라를 지켜낸 거야?
“네가 나라면 알고 있을 텐데?”
-어라· 자세히 보니··· 스텔라뿐만 아니라 무사한 장소가 꽤 있잖아?
그는 대뜸 백유설의 모니터로 머리 를 들이밀었다·
-극동부 지방이라든가 남부는 아예
흑마룡의 손길이 닿지 않았어····
“뭐 그렇겠ス]· 거기까지 가기 전에 내가 흑마룡을 죽였으니까· 그래도 대륙이 반파된 건 변함없잖아· 완전 히 쫄딱 망했다고·”
-그렇지 않아·
순간 ‘백유설의 ス1아’가 목소리를 내리깔고서 서늘하게 말하는 바람에 백유설은 몸을 움찔 떨었다·
-네 말대로야· 대륙의 대부분이 파 괴되고 많은 문명을 잃었어·
자아는 멍하니 백유설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그것은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는 듯한 표정이었기에 도저히 저지할 수가 없었다·
-흑마룡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생명이 있어· 마법의 본거지 스텔라 아카데미가 무사하니 마법의 의지를 후대에 이을 수도 있을 것이 고 극동부에 살아있는 사람이 꽤 있 으니 언젠가 먼 미래에는 다시금 이 대륙을 인간이 지배하겠ス]·
이윽고 그는 백유설의 눈동자를 똑 바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의 눈빛 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너는··· 해냈구나· 나와는 달리·
“무슨 소리를····”
-마음이 바뀌었어· 내가 도와주도 록 할게· 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 법·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데··· 뭐 괜찮잖아? 그 대가가 고작 내 영혼의 소멸 정도일 텐데· 나는 가 진 게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슴이 오싹하게 시려왔다·
이쯤되면 눈치챌 수밖에 없다·
“너··· 내가 아니구나?”
그러자 백유설의 자아가 웃는다·
그 미소는 자신과 전혀 닮지 않아
서 여전히 소름이 돋았다·
정신을 차리니 PC방의 시끌벅적 한 소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뒤늦게 주위를 살펴보니 어 느덧 자신은 별빛이 쏟아지는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맞아· 나는 네가 아니야· 네 안에 잠들어있던 ‘또 다른 나’라고 해서 너와 동일인물이라는 법은 없잖아?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이해할 필요는 없어· 사실 나도 잘 모르거든·
그래· 이해할 필요는 없다· 또 다 른 백유설이 나를 돕겠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면 된다·
-저 하늘을 봐· 뭐가 보여?
“하늘?”
백유설은 고개를 들었다·
무수히 많은 별자리의 향연·
찬란하게 반짝이는 은하수는 끝을 모르고 저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뭐가 보이긴··· 별자리가 보이 지·”
또 다른 백유설은 백유설과는 전혀 다른 미소를 지었다·
-그 별들이 네가 구한 생명이자
앞으로 구할 생명이야·
“내가 구한 생명···r
一응· 그런데····
씁쓸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걸린 다· 드리운 그림자가 어찌나 어두운 지 백유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끝없는 죽음과 절망의 파도를 헤쳐 나온 듯한 그 새카만 눈동자 속에 백유설 자신의 얼굴이 비춰 보였다·
-나는 저 하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오싹·
순간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백유설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 으나 그의 모습은 이미 저 끝까지 멀어지고 있었다·
-잘 부탁해· 나의 세계를·
그는 그리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너무나도 멀찍이 떨어져 있기에 표 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으나 그 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네 세계를·
백유설의 세상이 환한 빛으로 물들 며 깨끗하게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