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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새로운 교수님(2)
태초의 세계수 천령나무의 사방으 로 뻗어 있는 태초의 산맥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그 이름답게 수많은 요 정과 신수들이 살고 있었다·
그저 이곳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 도 수명이 늘어난다는 농담마저도 있었으나 100년 전을 기점으로 이
곳은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 는 장소가 되었다·
“쯧 그땐 위태로운 시기였지·”
드워프 제왕 금강팔정·
올해로 318세가 된 그는 현 마법 계의 역사를 모두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200살밖에 되지 않은 엘트먼 엘트윈은 까마득히 어린 나 이였으나 마땅히 어른을 공경하는 말투를 쓰지는 않았다·
“옛날 회상하는 거야? 그러면 너무 늙은이 같잖아·”
“건방지게 굴지 말라 엘트먼 너는
내게 큰 은혜를 입었어·”
**그 두 배로 갚았지· 내 은혜는 언 제 갚을 거야?”
엘트먼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자 금강팔정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니 이번에는 꽃서린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의 짜 증을 반겨주었다·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제왕·”
“처웃지 마라 엘프왕· 엘프의 가식 적인 미소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이 더럽다·”
“네····”
거침없는 막말에 꽃서린이 시무룩 한 표정을 짓자 금강팔정은 양심에 찢겨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크아악! 젠장!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군· 두암리! 두암리 는 어디에 있나!”
“네 보좌관? 위험하다면서 돌려보 냈잖아·”
“젠장할·”
제왕은 거침 숨을 내뿜으며 묵직한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바 닥에 쿵 찍었다·
그러자 먼지 바람이 일어나 휘날리 며 꽃서린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태초의 산맥 심층부·
죽은 거인의 땅·
100년 전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거인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시체는 가히 구름을 뚫고 하늘 에 닿을 정도로 드높았고 그의 몸 통은 위에 나라를 세워도 좋을 정도 로 커다랬다·
온통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 신비로 운 신체를 탐내는 자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거인의 시체를 가져갈 수는 없었다·
하필이면 거인이 죽어버린 위치가 다름 아닌 ‘담갈토이월’이 잠을 청
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쿠궁!!
움찔!
멀리서 들려오는 진동에 금강팔정 과 꽃서린 엘트먼 모두 걸음을 멈 추고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특수 분석팀은 어디에 있나?”
금강팔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엘트먼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답했다·
“알잖아· 마법사들은 이곳에 들어 올 수 없어· 대신 초입에 협회의 마 법사들이 전진 막사를 설치해뒀어· 학회에서는 ‘태동’을 분석하겠답시고
캠프를 만든 모양인데 의미가 있을 지는 모르겠군·”
“태동을 분석하겠다고? 세상에 그 런 부질없는 짓이 더 있나· 잠꼬대 를 어떻게 분석하나?”
“마법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어· 우 리가 아직 하지 못할 뿐·”
“웃기는군· 뭐든 다 가능하면 저 망할 놈의 신월 좀 재우지 그러나?”
“그러려고 찾아왔잖아·”
엘트먼은 뒤를 돌아보았다·
가뭄이라도 찾아온 듯 메마른 땅이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단 한 발을 내딛
는 것조차도 힘겨울 터·
‘지형이 제멋대로군·’
방금까지는 평지였던 장소가 이제 는 60층 건물 수준의 언덕이 되어 있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시야를 가 리고 있던 산은 움푹 팬 크레이터가 되어 있었다·
담갈토이월의 기분 변화에 따라 지 형이 출렁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 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긴장하지 말게·”
엘트먼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본 것일까 금강팔정은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쳤다·
“100년 전에도 이미 한 번 했던 일이다·”
“그건··· 그렇지·”
담갈토이월이 이렇게 태동하는 것 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천 년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잠꼬대를 해왔고 그때마다 요정들이 합심하 여 마법으로 재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태동이 갈수록 심해졌고 100년 전에 이르러서는 대재앙이 발생할 정도가 되어 당시 은거 중이 던 9클래스 마법사가 3명이나 모여 서 막아야만 했다·
엘트먼은 고개를 들어 저 멀
리····
드높은 ‘산봉우리’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본래 태초의 산맥은 네 갈래로 나 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100년 전 하나의 갈래가 더 생겨났다·
죽은 거인의 시체가 워낙에 거대한 탓에 하나의 산맥이 되어버린 것
지금은 그 위에 나무가 무성히 자 라난 덕분에 정말로 산처럼 보였으 나 한때 거인을 마주했던 금강팔정 과 엘트먼 엘트윈은 저곳에서 오랜 친구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다·
“준비하세·”
금강팔정은 그리 말한 뒤 자그마한 배낭에 손을 집어넣어 거의 집채만 한 비석 하나를 꺼냈다·
쿠웅-!
공간확장 마법을 접목시킨 특별한 배낭이었기에 가능한 묘기· 엘트먼 은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간단히 손 짓하는 것만으로 커다란 비석 세 개 를 연달아 소환하였다·
그들이 가져온 비석은 크기도 제각 각 다르고 색깔도 달랐지만 공통적 으로 강력한 ‘봉인의 인’이 새겨スマ 있었다·
하나만으로도 신수를 봉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봉인 비석을 무려 아홉 개나 챙겨왔다·
“엘프왕· 시작하게·”
“···네·”
꽃서린이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 자 바닥에서 세계수의 가지들이 돋 아나며 비석과 비석을 연결하기 시 작하였다·
비석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푸르 르던 하늘이 새카맣게 물들기 시작 하였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세상의 섭리에 영향을 미쳐 태양 빛을 일순간 차단해 버린 것·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녹색····
비석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며 세계 수의 가지로 연결된 부분이 타오르 기 시작하였다·
“읏···广
꽃서린이 고통에 신음을 흘렸으나 안타깝게도 거기에 신경 써줄 여력 은 없었다·
“엘트먼·”
,,알아,,
금강팔정의 신호에 맞춰 하늘로 날 아오른 엘트먼은 봉인식을 전개하였 다· 아홉 개의 비석이 하늘 넓게 퍼
져 나가며 이 일대 전역을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으로 뒤덮었다·
쿠구구구궁···!!
그에 따라 진동이 거세졌으나 늦 출 수는 없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지 체했다가는 100년 전의 재앙이 또 다시 시작될 테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금강팔정은 의문 이 들었다·
과연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봉인하 는 게 옳은 방법인 걸까?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봉인하고 또 봉인하려 애써도 담갈토이월은 더욱 강력한 힘으로 발버둥 치며 깨어나
는데 말이다·
먼 미래 또다시 100년이 지났을 때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담갈 토이월을 잠재우는 게 가능한가·
근본적인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으 나 엘트먼은 그저 웃어넘겼다·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제왕·’
엘트먼은 마치 지금 당장 담갈토이 월을 잠재우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나 는 것처럼 말했다·
‘때가 되면 다 해결될 테니까·’
낙천적인 걸까· 아니면 그에게는 또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
‘모르겠군·’
금강팔정은 공중에 뜬 채로 양손에 한가득 복잡한 마법진을 움켜쥐고 있는 엘트먼을 바라보았다·
•···수상한 놈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놈· 그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당장 재앙을 일으키려는 담갈토이 월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하지만 당장은 협력할 수밖에 없 다· 엘트먼 엘트윈은 수십 년에 걸 쳐 마법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텔라 아카데미를 세운 9 클래스의 마법사였으니까·
만약 엘트먼 엘트윈이 무언가를 바 란다면 그게 뭐든 간에 반드시 이 루어질 것이다·
그에게는··· 그만한 권략과 힘이 있었으니까·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군·’
* * *
2학기는 실습 위주로 돌아가는 만 큼 실내에서 수업하는 시간의 비중 이 굉장히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수업을 실험실 실습실 훈련실 야외 스텔라 돔 등에서 보 내고는 했는데 백유설로서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조용히 공부만 하면 됐던 이론 수업 시간은 그에게 있어 서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 까·
그래서 아주 가끔 있는 이론 시간 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냈다·
“커허····”
“···거기 맨 뒷자리 학생· 설마 지금 자는 건 아니지?”
아주아주 효율적으로 보냈다·
단잠을 청하면서·
교수님들의 눈치에 따갑긴 했으나 어쩌겠는가· 수업을 아무것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을·
게다가 1학년 2학기의 큼지막한 메인 에피소드는 거의 다 지나가서 당장 신경 쓰이는 것들만 예의주시 하고 있으면 되기에 긴장이 살짝 풀 리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또 주무셨나요?”
“어···
수업이 끝난 뒤 에이젤이 다가와 물었다· 내내 잠을 청하느라 몰랐으 나 그녀도 같은 수업을 들었던 모양 이다·
요즘 따라 너무 피곤하네·”
“컨디션도 관리해 가면서 활동하세 요· 요즘엔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 겠지만요·”
“딱히····”
별로 하는 건 없다· 그저 훈련에 훈련을 반복하는 일상이었으니까·
“리오스 본선은 어떻게 하실 거에 요?”
지금 풀레임 팀에게는 하나의 큰 문제가 닥쳐왔다· 가유린에게 이기 겠다고 자존심을 세우다가 그만 본 선에 진출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글쎄··· 솔직히 이제 귀찮은데·”
풀레임 팀은 리오스를 본선 진출까 지 해가며 열심히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제레미의 눈치를 피하기 위해 리오스를 시작했던 풀 레임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에이젤 역시 취미 생활 재미있게
즐겼으니 이제는 다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인드였으므로 사실상 그 누구도 본선 진출을 바라 지 않고 있었다·
“그럼···
“포기해야지 뭐·”
물론 아무런 페널티 없이 포기할 수는 없다·
본선 진출을 포기하는 순간 앞으로 스텔라에서 다시는 예선 경기에 참 여할 수 없으며 프로 업계에 뛰어 들어서도 몇 년간 경기 금지라는 페 널티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더 이상 리오스를 할 생각 은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너무 미안한걸요·”
“뭐가?,,
“저희에게는 한순간 즐기는 스포츠 였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심이잖아요·”
그것도 그렇다·
지구에도 스포츠에 목숨을 거는 사 람들은 많았다· 이 세계 역시도 별 반 다르지 않다·
비록 마법전사와 몬스터가 존재하
는 세계관이었기에 그 무게감이 덜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진 심으로 스포츠에 임하는 그들의 마 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원래의 스토리대로였다면 여기서 ,캐릭터 풀레임,이 본선에 진출하여 우승까지 하는 게 운명이 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 또한 메인 에피소드였기에 ‘풀 레임은 반드시 우승한다’라는 전제 가 깔려 있다· 그 외의 결과는 애초 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단 사실·
이미 메인 에피소드가 몇 번이나 바뀐 마당에 고작 리오스 우승 한 번 못한다고 크게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역시 조금 걱정 되기도 했다·
‘뭐··· 고작 이 정도로 미래가 바 뀌어보]■야 얼마나 바뀌겠어?’
백유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에이젤 과 함께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하였 다· 이번에 들을 과목은 ‘흑마법에 대한 이해와 그 대응법’으로서 이 과목은 교수님들이 우수수 그만두는 바람에 한 번의 수업에 학생이 무려 200명씩 몰려와서 북적대는 수업 중 하나였다·
“너도 이 수업 듣냐?”
“네· 2학기 필수 과목이잖아요·”
“그랬나··· 이제는 뭐가 필수인지 도 모르겠네·”
“학교 수업도 열심히 들으셔야 해 요· 분명히 도움이 될 거에요·”
백유설은 하품을 쩍쩍 내뱉으며 강 의실로 들어섰다·
학생들이 유난히 웅성거린다·
“야야 봤어?”
“진짜 작다···「
“우리보다 동생 같은데?”
“저분이 새로 오신 교수님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동안이지? 9클래 스 마법사 아냐?”
“에이 설마· 그럼 교장 선생님이랑 동급이게?”
뭔가 이상하다·
새로운 교수님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다· 이 시기에 교수가 새로 들 어올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가슴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 백유설은 다른 학생들을 헤 집고서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 강 당에 서 있는 교수라는 작자의 얼굴 을 보기 위하여·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눈을 마주친다·
“···설마·”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단번에 알 아볼 수 있었다·
가장 늙은 마녀이자 마녀의 왕·
스칼렛·
그녀 역시도 백유설을 발견한 것인 지 눈웃음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상황이 단단히 꼬였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