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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리그 오브 스피릿(8)
살짝 곱슬진 단발 머리카락에 옅은 주근깨 축 처진 눈빛에 검은색 눈 동자· 작은 키에 평범한 인상까지·
스텔라 2학년 D반 조예린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소녀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스텔라에 입학한 이상 조예
린도 고향의 학교에서는 가장 눈에 띄고 빛나는 학생이었으나 이곳에서 는 특출나게 공부를 못하는 것도 잘 하는 것도 아닌 그저 학생A였을 뿐 이다·
성격도 모나지 않고 타인에게 공 격 마법을 시전한다는 그 자체가 두 려웠던 탓일까 그녀에게 마법전사 는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향에서 부모님과 스승 님 그리고 친구들이 기대하는 중인 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다 눈을 돌린 곳이 바로 ‘리그 오브 스피릿’이었다·
남들을 공격해도 누구 하나 상처 입지 않고 끝낼 수 있는 스포츠·
조예린은 그것에 이끌려 리오스 동 아리에 들었으나 거기에서도 그녀 는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이 리 치이고 저리 치일 뿐이었다·
그저 언젠가 팀이 생기길 바라며 홀로 연습만 하던 어느 날·
‘조예린 생도? 네 팀이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학생들과 ‘마 오룬 화이트’라는 이름의 팀을 맺게
되었다· 남자 2명 여자 2명으로 구 성된 그들은 스텔라 마법전사 학과 의 생도가 아니라 기술 과목 전형으 로 편입했다고 그랬다·
“얘가 그 2학년 생도?”
“마법전사 지망생치고는 좀 어리바 리한데?”
“냅둬· 싸움만 잘하면 되지·”
그들은 네 명 모두 서로 아는 사 이였는지 조예린을 대놓고 왕따시 키고는 했는데 그것에 익숙했던 그 녀는 스스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 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예린이 영 신경
쓰였나 보다·
“야 이 모자란 년아! 마법전사 생 도 맞아? 너 때문에 졌잖아!”
“빠릿빠릿하게 백업 좀 오라고! 상 승 라인은 항상 네가 보강해 줘야 하는 거 몰라?”
“아오 답답한 새끼·”
시도때도 없이 날아드는 욕설·
네가 잘못한 거잖아· 미니맵에 보 였는데 네가 눈■치채고 피했으면 되 는 거잖아·’
조예린이 생각하기에 스스로가 잘 못한 점은 하나도 없었으나 워낙 소심했던 탓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나 흘렀음에도 그 들의 왕따는 변하지 않았고·
[패배! 마오룬 화이트 팀]
교내 선발전에서 패배한 지금 역시 도 질책의 화살은 조예린에게 날아 와 꽂혔다·
”모지리 새끼·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막냐? 내가 들어가면 빠르게 달 려들어서 백업 오라고 몇 번을 말 해!”
“그땐 내 앞에 적팀 나이트가 방어 선을 치고 있었잖아· 내 상황을 보 고 네가 들어갔어야····”
“지금 내 잘못이라는 거냐? 이 미 친년이! 내가 담당 교수님한테 말하 면 넌 당장 끝인 거 알지?”
“그 그건···
“에라이 씨· 그놈이 편입으로 들어 왔어야 5명이 딱 돼서 저 모자란 년을 안 쓰는 건데·”
“야야· 그 얘긴 그만둬·”
편입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팀원이 화들짝 놀라며 말렸다· 그만큼 민감 한 사안으로 보였으나 이미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조예린에게는 아무래 도 좋은 이야기였다·
‘벌써 2연패···
이미 선발전에 나가기는 글렀다·
여기서 전승을 거둬야 간신히 3순 위 안에 들어갈 텐데 제대로 팀워 크도 이뤄지지 않는 이 팀에게는 불 가능하겠지·
올해도 그렇게 선발의 꿈이 좌절되 면 조예린으로서는 리오스를 깔끔 하게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경기가 끝난 선수들은 휴게실에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안내 메시지를 들으며 경기장에서 터덜터덜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나오던 조예린은 그림자가 드리우자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앞머리가 눈가를 거의 가리고 있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내 상대방이 누군지 깨닫고서 눈을 동 그랗게 뜨고 말았다·
‘백유설?’
생각보다 키가 훨씬 더 크고 예전 보다 성숙한 얼굴을 가진 그 소년의 이름표에 ’1 학년 S반 백유설’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예린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화제의 그 학생이 갑자기 여기에는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어? 나요?”
“예· 조예린 선배님이요· 근데 웬 존댓말 씁니까?”
“아 아아! 그 미안····”
“미안할 건 없죠·”
이 바보! 조예린은 속으로 스스로 를 욕했다· 그래도 선배씩이나 돼서 후배한테 너무 멍청한 모습만 보이 는 게 아니던가·
“그 우리 이번에 만나는 게 두 번 째였던가···r
조심스레 선배로서 화제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백유설이 고개를 갸웃 했다·
“처음 아닌가요?”
“아 아냐· 1학기에 만난 적 있어· 그 식당에서 내가 식판을 떨어뜨렸 는데 네가 점멸로 나타나서 잡아줬 어····”
“아·”
그걸 어떻게 기억해· 백유설은 속 으로 그 말을 삼키고서 웃었다·
“예· 그럼 구면이네요·”
“응· 근데··· 무슨 일이야?”
“사실 선배님한테 드리고 싶은 말 씀이 있어서 찾아왔거든요· 조예린 선배님 선발전에서 2연패 하셨죠?”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시무룩해하자 백유설이 주변 눈 치를 살피고서 조예린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화들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뒤로 빼기도 전에 백유설이 작은 목소리 로 속삭였다·
“선배님· 이기고 싶지 않으십니 까?”
“어 어?”
“선배님에게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 이 보입니다· 판단력도 좋고 본인의 전투 피지컬도 괜찮은데 팀에 짓눌 려서 활약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나는 잘····”
“아뇨· 틀림없습니다· 선배님 저 모르세요? 저 백유설입니다· 대가리 굴러가는 게 기가 막힌다구요·”
“아아! 맞아! 신조차 모독하는 사 상 최대의 천재!”
“···그런 별명은 어디서 들었습니 까?”
“응? 그냥 신문에서·”
“아무튼 그건 됐고· 제가 선배님의 장점을 살려서 이기는 법을 속성으 로 알려드릴게요·”
그러자 조예린이 머뭇거리며 뒤쪽 의 눈치를 살폈다· 그곳에는 네 명 의 학생들이 모여서 실실거리고 있 었는데 마오룬 화이트 팀이었다·
“쟤들이 그 마오룬 지역에서 왔다 는 친구들입니까?”
“응··· 나는 그저 꼽사리일 뿐이 야· 원래 들어오기로 했던 학생 한
명이 편입되지 못해서 나를 넣었나 봐·”
“아 맞네· 그 친구 지금쯤 영원 굴 레의 쳇바퀴에서 구르고 있겠구나·”
“쳇바퀴?”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이 렇게 하죠· 다음 경기 상대가 패트 리스 팀인 건 알죠?”
“제가 전략을 세밀하게 짜드릴 테 니 단독 행동을 해보세요· 혼자 달 려드는 거예요·”
“뭐 뭐어? 그랬다가는···!”
“그랬다가는 쟤들이 가만두지 않는 다구요? 뭔 상관입니까· 어차피 여 기서 지면 팀 나갈 생각 아니었어 요?”
“아···!”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짚는 백유설 의 말에 조예린은 눈을 깜빡거리며 놀랐다·
“그리고 지금 이대로 싸우면 어차 피 다음 경기도 집니다· 질 거라면 제 말 믿고 도박이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조예린은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눈 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단독행동을 한다고 쳐도··· 나를 따라와줄까?”
“따라오죠· 어쨌든 선배님도 팀이 고 한 명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 저 친구들도 알 겁니다· 쟤들은 지금 선배님보다 더 이기고 싶어서 안달 나 있을걸요?”
“정말···r
조예린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지만 백유설은 확신했다·
여기서 저들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 하면 흑마인으로서 무슨 짓을 당할 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먼저 들어간다니····”
그녀는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 다·
본인의 주도하에 한타가 벌어진다?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팀원도 본인도 낯설겠 지·
하지만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조예린 선배는 원래 이쪽 팀에 있 을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지·’
원작 게임에서는 조금 더 좋은 팀 에 소속되어 타고난 전략가로서 팀 을 이끄는 역할이었는데 원작이 비 틀리는 바람에 비어버린 혹마인의 자리에 끼어들어서 제대로 된 활약
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만 한다면 팀 이 승리할 당위성은 충분할 터·
“그럼 여기부터···
백유설은 하나씩 하나씩 대진표에 따라 앞으로 조예린이 만나게 될 팀 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여 알려줬다·
시간은 꽤 걸렸지만 조예린은 백유 설의 생각을 전부 이해하였고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귀중한 선물을 주 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 이래도 돼···? 우리는 전부 경쟁자의 입장이잖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뜬금없이 찾아와서 경쟁자를 도와 주는 이유는 또 뭘까·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변명하면 오히려 더 수상하다·
“그냥 뭐 돕고 사는 거죠· 아무튼 화이팅입니다· 꼭 본선 진출하십쇼·”
백유설은 그리 말한 뒤 금방 사라 졌고 조예린은 그가 분석해 놓은 전략을 종이에 메모하여 품에 꼭 끌 어안았다·
‘나도 이길 거야!’
맨날 패배만 하는 삶은 질렸다·
스텔라에 들어왔으니 뭐라도 좀 바 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자!”
소심하게 낮은 데시벨로 기합을 넣 었으나 이내 누가 보았을까 소심해 진 그녀는 어깨를 쭈그리고서 후다 닥 자리를 옮겼다·
성격은 금방 바뀌지 않는 모양이 다·
그래서· 다른 팀을 도우러 갔
다 오셨다구요?”
에이젤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 로 되묻자 백유설은 빵을 먹으며 답 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거든·”
“으으으음··· 당신에게 항상 사정 이 있는 건 알겠지만 저희 팀의 회 의 시간이나 다름없는 저녁 식사까지 빼놓고서 다른 팀을 도왔다니····”
“어차피 상관없어· 그 팀이랑 우리 팀이 대진표상으로 만나지 않거든·”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 다·
만약 마오룬 화이트 팀과 대전해야
만 하는 상황이 나왔다면 백유설은 풀레임을 설득해 게임을 조작하여 일부러 패배했을지도 몰랐을 테니 까·
하지만 단순히 한 번 패배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사실은 금방 알았 다·
마오룬 화이트 팀의 성적은 심각할 정도로 저조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하늘이 도운 것 처럼 조예린이라는 미래의 훌륭한 선수가 그 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
그녀에게 살짝 입김을 불어넣는 것 만으로도 마오룬 화이트 팀은 이제
부터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유설은 레이딘 교수의 부탁을 완 전히 들어주게 되는 셈·
이제 그는 백유설의 부탁 ‘아넬라 편입’을 반드시 들어줘야만 하는 입 장이 되었다·
“뭐 어때· 우리는 이미 승점 잔뜩 땄잖아· 여유 좀 가져도 돼·”
풀레임은 그리 말하며 기지개를 켰 다·
그보다는 다음 경기가 중요했는데 거기서 가유린의 ‘에메랄드 스텔라 팀’과 조우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원작 로판에서는 에이젤과 가유린 이 만나서 붙게 되고 최후에는 에이 젤이 승리하여 감정선을 극복하는 내용이었고 원작 게임에서는····
풀레임이 다 때려 부수고 다닌다·
리오스 파트의 컨셉 자체가 남주와 의 감정선보다는 주인공의 액션 씬 에 더욱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 다음 경기 시작했어요·”
에이젤의 말에 풀레임과 백유설은 고개를 들었다·
[에메랄드 스텔라 VS 투데이 멤버스]
둘 다 네임드 팀으로서 어느 쪽이 본선 경기에 진출한다고 해도 이상 하지 않았다· 하지만 풀레임과 백유 설은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 다·
“가유린 쪽이 지겠지·”
“에 그런가요? 저는 에메랄드 팀 이 더 강팀이라고 생각했는데····”
・コ렇긴 하지· 근데 져·”
이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가유린의 실책으로 팀이 패
배하게 되고 승점이 아슬아슬해진 상황에서 풀레임의 팀과 만나게 되 는 게 바로 운명이었다·
[승리! 투데이 멤버스 팀]
[패배! 에메랄드 스텔라 팀]
예상대로 에메랄드 스텔라 팀은 후 반부 운영을 가유린의 단독 행동으 로 말아먹었고 어처구니 없게 패배 하고 만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졌다 가는 본선 진출의 희망이 좌절되는 상황·
그 희망을 철저하게 짓밟는 게 바
로 ‘주인공의 역할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풀레임에게만 중요 하지 백유설에게는 딱히 어찌 되든 상관은 없는 일이라서 깊게 생각하 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마오룬 화이트 VS 블랙 서커스]
긴장한 듯 스태프를 쥐고서 와들와 들 떨고 있는 조예린과 이번에도 지 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는지 똥 씹은 표정의 흑마인 4명·
그 상대팀 역시 이번에 지면 끝장 인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기겠지·’
경기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적극 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조예린을 보면서 백유설은 확신을 가졌다·
* * *
하월평원 연꽃 객잔·
“자· 이게 작년도 기출문제예요· 이 건 올해 모의고사 모음집이구요· 또 이건 주문 작법서랑 해법서고 이건 마법다중설계학 이론에 대한 다중적 관점에 대한 논문인데 올해 논술
주제라고 하니까 익혀두도록 해요·”
쿵! 쿵! 쿠웅!
차곡차곡 쌓여가는 두터운 서적들·
아넬라는 멍한 표정으로 공부를 하던 손을 멈춘 채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자 이만하면 됐죠? 저는 아가씨 의 심부름을 해야 해서 이만·”
“잠시만요!”
돌아가려는 시녀를 급히 붙잡자 그 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왜 그러세요? 오렌지 주스 드릴까요? 아니면 사탕?”
“저는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묘하게 취급이 열받는다·
백유설의 부탁으로 인해 젤리엘의 별구름 상회에 얹혀 살게 된 것도 좋고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좋았는 데·
공부의 진도가 빠르다·
그것도 너무 빠르다!
“올해 편입이 목표라고 하셨잖아 요? 젤리엘 아가씨는 백유설 씨의 부탁이라면 뭐든 진심으로 들어주시 는 편이라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았 어요· 아 곧 있으면 스텔라 출신 과외 선생님도 오실 거예요· 아직 젊으신 분이고 연구하느라 바쁘신데
연구실을 빌미로 매수하셨대요·”
어머 이건 비밀인데· 라며 능청스 럽게 말한 시녀는 후다닥 도망쳐 버 렸고 아넬라는 절망이 드리운 얼굴 을 책상에 콩! 박았다·
“공부··· 싫어···
왜 인간이 되면 해피 라이프가 한 가득일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새파란 하늘에서 나비와 다람쥐와 고양이와 함께 꺄륵거리며 뛰어 노 는 상상을 해왔던 자신이 멍청하게 만 느껴졌다·
인간이란 살아남기 위해서 죽을 때 까지 공부하며 일하는 종족인 것을·
“으아아아아···「
아넬라는 자신의 입에서 영혼이 빠 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때 어디에선가 젤리엘의 환영이 나타나 영혼의 멱살을 쥐어 자신의 입으로 다시 틀어박는 모습이 그려 졌다·
그녀는 아넬라를 스텔라에 입학시 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을 것이다·
“살려줘어어····”
오늘도 연꽃 객잔의 어디에선가 어 떤 소녀의 곡소리가 들려오고는 했지 만 젤리엘 아가씨가 꼭꼭 숨기는 바
람에 그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