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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바람에 드리운 그림자(4)
풍제국을 배경으로 한 게이트 내부 는 사람이 모조리 사라지고 없어 아 무것도 남지 않은 적막한 도시처럼 보였지만 모든 장소에 사람이 존재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페르소나 게이트 내부에도 생명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다만 실재하지 않는 NPC로서 정 해진 이야기와 운명에 따라 움직일 바 L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홍비연 은 여간 귀찮았는지 인상을 팍팍 구 겼다· 저건 정말로 기분이 더러울 때만 나타나는 표정이었기에 평소의 백유설이라면 상당히 조심스럽게 행 동했겠으나 지금은 달랐다·
“오··· 이건 150년 전을 풍경으 로 한 모양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백유설이 흥미를 갖고서 시장통에 섞여들어 주변을 관찰하자 홍비연도
힐끔 주위에 시선을 두었다·
풍제국을 자주 와본 것은 아니나 확실히 옷차람이나 건축물의 분위기 가 현대라고 하기에는 구식이었다·
“저기 구륜 가면 보이지? 2세기 전에 유명했던 암살자가 주로 쓰던 가면인데 못된 부자들을 죽이고 돈 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던 의적이라나 봐· 당대 사람들에 게는 영웅같은 느낌이었겠지·”
아홉 개의 바퀴가 그려진 이상한 가면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몇몇 은 심지어 쓰고 다니기까지 했다·
저런 게 뭐가 멋있는지 전혀 이해
할 수 없었으나 애당초 150년 전 낯선 이방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려 드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란 사실 을 금세 깨달았다·
“그럼 여기는 구륜 가면 전설이라 고 부르나?”
“그런 건 아니고· 이건 그냥 소설 이거든· 홍길동이나 셜록 홈즈 같 으····”
“셜록?”
“아니· 그건 됐고· 아무튼 여기에는 별로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가자·”
백유설은 이번에도 홍비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워낙 인파가 북적이
는 시장통이었기에 자칫 떨어졌다가 는 홑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경을 사용한다면 찾는 건 문제도 아니겠지만 시간이 더 이상 소모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가짜 인파의 가짜 소음·
이제 그런 것 따위는 홍비연의 귓 가에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가짜에게 방해받고 싶은 기분은 아 니었으니까·
어떤 마법사의 논리에 따르면 페 르소나 게이트의 NPC들도 사실은 다른 세상에 살아 숨 쉬는 실제의
존재일 수도 있다고 했으나··· 그 건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실제로 살아 있는 생명인지 아닌지 도 모를 존재들에게 신경과 시간을 빼앗기기는 싫었다·
잠시 뒤 시장에서 벗어나자 순식 간에 시간은 밤이 되었고 하늘에는 휘영청 반달이 떠올랐다·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건너 갈 때마다 시간과 장소가 뒤바뀌는 현상이었다·
가령 보름달 아래에서 변신하는 늑 대인간 전설 속으로 들어갈 때는 보 름달이 배경이 되기도 했고 사람들
속에 숨어서 의적을 하는 구륜 가면 소설은 인파가 많은 대낮의 시장이 배경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밤의 설화는 위험하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촐랑대지 말고·”
어차피 백유설은 ‘가이드 라인 메 시ス]’보다도 더욱 안내가 정확한 안 경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나 홍비연 에게 주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작 게임에서 항상 가장 먼저 사 망 플래그를 세우는 인물이었기 때 무
그리고 보통 이렇게 장난치면 홍비 연이 잔뜩 뿔나서 버럭 화를 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긴장감이 풀리 는 게 눈에 보여서 백유설은 일부러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그녀를 자극 하는 편이었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어? 어 나도 알지·”
그러나 홍비연은 투덜대면서도 딱 히 백유설을 무어라 나무라지 않았 다·
욕먹으려고 한 소리였는데 도리어 상대방이 조용히 투덜대기만 하니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상당히 뻘쭘 하다·
백유설은 이번 설화를 천천히 그리
고 신중하게 넘겼다· 흔하디흔한 권 선징악 어린이 전래동화 느낌의 이 야기였지만 막상 내용을 까보면 호 랑이가 지성을 가지고 두 발로 걸어 다니거나 변장도 하고 심지어 목소 리로 사람 흉내를 내는 등 위험 요 소가 잔뜩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강력한 짐승이 인간과 맞먹는 지성 을 가졌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공포 가 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저 자식들 뭐 하는 거야?’
그렇게 사흘 차가 되었을 즈음·
류데릭은 슬슬 백유설의 추격에 지
쳐가고 있었다· 지쳤다기보단 지루 하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 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후배의 뒤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게 이렇 게까지 짜증 나는 일일 줄은 전혀 몰랐다·
‘둘이 데이트라도 하는 거냐고 망 할 자식들····’
이쯤에서 류데릭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백유설은 몰라도 홍비연 공 주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류데릭 또한 2학년 A반으로서 1학 년 신입생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홍비연 공주는 워낙에 유명 했던 탓에 그 성격에 대해서는 빠삭 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저 공주가 저런 성격이었던가?’
칼날을 품은 말로 상대방의 명치를 후벼파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 가·
천사보다도 아름답고 요정보다도 순수한 얼굴에 냉소를 머금고서 자 존심을 짓밟고 독설 가득한 언어로 영혼마저도 갈가리 찢어버리는 지독 한 여자·
그것이 바로 홍비연 아돌레비트 공 주가 아니던가?
‘저게 정말 홍비연 공주라고?’
여태 그가 알던 홍비연 공주는 대 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류데릭의 앞 에 서있는 저 여자는··· 그저 평범 하디 평범한 한 명의 소녀였을 뿐 이었다·
“오리는 신발끈을 어떻게 묶을까?”
“안 궁금해·”
“꽉·”
”푸하하핫·”
화르륵!!
그러나 잠시 뒤 백유설을 향해 날
아가는 불꽃 덩어리를 보며 류데릭 은 스스로의 생각을 정정했다·
‘음 역시 착각이었군·’
폭력적으로 불타오르는 저 모습을 보니 역시나 그가 알던 홍비연은 어 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백유설을 뒤따라 걸 었을까·
달이 지고 떠오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드디어 목적지라 고 할 만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 다·
···여기로군·’
류데릭은 가이드 라인 메시지를 보
며 표정을 구겼다·
설마 이렇게까지 빨리 최종 목적지 에 아주 순탄하게 도착할 줄은 몰 랐기 때문이다·
그저 데이트나 하면서 꽁냥대던 게 끝인 것 같은데 막상 공략 기록을 보며 철저하고 계산적이고 완벽하기 그지없어서 도저히 흠잡을 구석도 없었다·
‘이건 뭐···
류데릭은 한숨을 푹 내쉬고서 백유 설과 홍비연의 채점지를 늘어뜨렸다·
더 이상 무언가 간섭할 기회를 호 시탐탐 노려봐야 자괴감만 들 뿐이
었으니까·
* * *
이 마을에 갇힌 지도 벌써 사흘이 되었다· 아넬라는 슬슬 자신이 이곳 에 어떠한 이유로 갇혀 버렸고 나갈 수 없게 되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결계도 아니고 환영도 아니야·’
풀숲에 숨어 다람쥐마냥 신경을 잔 뜩 곤두세운 채 주변을 경계하는 그 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옷은 죄다 찢겨나가 해졌고 여기
저기 자잘한 상처를 가득 입는 바람 에 핏물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든 옷의 남은 부분을 찢어서 지혈했으나 오히려 덕분에 몸을 보 호할 부위가 더욱 사라지고 있어 다 음에 또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더욱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나가지?’
머리카락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이지 않 았다·
“어디야!”
“저쪽으로 가 봐!”
“제기랄 이 요물년·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해가 떨어질 때까지 찾지 못하면 말짱꽝이야! 서둘러!”
숲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마을 사 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평범한 몸놀림이 아니 었다· 몇몇은 발에 마나를 폭발시켜 먼 거리를 도약하기도 했고 몇몇은 바닥에 스태프로 마법진을 그려 추 격 마법까지 사용했으니까·
그러나 아넬라는 그런 상황을 보면 서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평범한 농부가 마법을 사용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 이상한 상식 같은 게 머릿속 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어째서 마을 밖을 나갈 수 없는가·
아직도 그 의문을 풀지 못했다·
마법적인 힘이 개입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그랬다면 흑마인이자 심 리술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는 아넬 라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다·
‘공간 자체가 뒤틀려 있는 것 같아·’
분명히 마을 밖으로 똑바로 뛰었는 데도 어느 순간엔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마을로 되돌아와 있다·
도망치고 쫓기고 도망치고 쫓기 는 순간의 반복·
그녀를 쫓는 농부는 총 10명 정도 되었고 다섯 명씩 교대로 아넬라를 추격하였기에 그들은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는 슬슬 체력 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사흘째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은 물 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기 때문 이다· 흑마인에게는 사실 식량보다 는 인간의 피가 더욱 필요했기 때문 어1 사실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 저 눈앞에 혼자 방심한 채 돌아다니는 인간 농부 하나를 잡아다 목을 비틀
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쉬운 일이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한들 저런 어 부잖은 농부 따위에게 아넬라가 패 배할 리는 없었다·
아넬라의 완벽한 특성은 인간의 정 신만을 파괴하여 온전한 피를 얻을 수 있게 해줄 터· 체력을 보충하기 만 하면 저깟 인간들 따위에게 쫓길 일도 전혀 없다·
*···그건 싫어·’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벌써 피를 마시지 않은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굶주림과 갈
증을 지금까지 견뎌내 왔다·
이제 와서 고작 이런 이유로 인간 을 직접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이 될 테니까·
‘참을 수 있어····)
흑마인들은 말하곤 했다·
피를 굶은 흑마인은 그 에너지 고 갈 현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주하 여 지성을 잃은 괴물이 되어버린다 고·
하나 아넬라는 그러지 않았다·
괴물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욱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게 가능했다·
‘내가 인간이 되고 있다는 증거야·’
틀림없다·
아넬라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 에 손을 가져갔다· 백유설에게 선물 받은 이후로 불안할 때마다 손에 꼭 쥐고서 기도를 올리던 그 부적을 다 시금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허전하다·
‘아····’
마녀에게 빼앗긴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백유설의 부적·
그 빈자리가 유난히도 크게 느껴지 는 이유는 뭘까·
-어머 재미없게 왜 그러고 있 어〜?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불길한 목소 리· 틀림없는 그 마녀의 말투였다·
아넬라가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쳐 올리는 순간 그녀가 숨어 있 던 풀숲의 나무가 꺾이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우와앗?!”
쿵! 쿠궁!
나무에 부딪치고 바위에 부딪친 아 넬라가 꼴사납게 바닥으로 추락하자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 다·
“이쪽이야아아!!”
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 다· 그러나 여기에 멈춰 있을 수는 없어서 애써 나무를 부여잡고서 힘 겹게 일어난 아넬라는 힘을 쮜어짜 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진
그녀가 멀리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
콰콰쾅!!
허공에 푸른 마법진이 생성되어 아 넬라의 몸에 벼락을 강타하였고 바 닥에서 바위 조각이 솟아올라 그녀 의 사지를 구속하였다·
물벼락에 화염 세례까지·
온갖 마법에 적중당한 아넬라의 몸 이 축 늘어지자 그제야 마을 사람 들··· 아니 스텔라의 1학년 생도 들은 공격을 멈추었다·
a드디어 잡았다아····”
“후우 진짜 더럽게 힘드네·”
“이게 그 가이드 라인 메시지가 말 한 ‘잊혀진 설화인 건 확실하지?”
“응· 선배님이 보증하셨잖아·”
생도들은 바위에 구속당한 채 힘없 이 늘어진 아넬라 근처에 슬그머니 다가갔다·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검은색의 얼룩무늬가 마치 사람 행세를 하는 듯한 모습·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 는 그 모습에 생도들이 표정을 찌푸 렸다·
“주 죽여야 돼? 너무 징그러운데·”
“그럼 어떡하게? 이제 와서 화해하 자고 악수라도 건네게?”
“너는 안 할 거면 나와 있어· 내가 죽이고 추가 점수나 딸 거니까·”
“시 싫어· 나도 같이 해·”
학생들은 살금살금 걸어서 기절한 둣 보이는 아넬라에게 다가갔다· 그 러다 그녀의 손끝과 고개가 움찔 떨 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다같이 뒤 로 물러났다·
“쪼 쫄기는!”
“너 때문에 물러난 거거든!”
생도들은 이미 힘이 다 빠진 요물 따위에게 겁을 먹은 자신들이 부끄 러워져서 도리어 저들끼리 화를 냈 다·
“빨리하고 가자고· 나도 이런 건 기분 나빠서 못 하겠어·”
“요물로 태어난 건 불쌍하지만··· 어차피 가짜 목숨이잖아·”
“맞아· 괜히 가짜에 기분 잡칠 필 요는 없어·”
그리 말하면서도 선뜻 다가가는 학 생이 없자 참다 못한 A반의 남학 생 한 명이 팔소매를 걷어 붙이고서 아넬라에게 다가갔다·
“다 비켜 내가 직접 한다·”
그가 지팡이를 그녀의 머리 위에 갖다 대고서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마지막 기회〜
어디에선가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오더니 남학새의 팔뚝에 자그마한 상처가 생기며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윽!”
순간 올라오는 통증에 남학생이 잽 싸게 물러났으나 바닥에 고인 한 웅큼의 핏물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달콤한 냄새····’
익숙하지만 기분 나쁘기도 하고 그러나 너무나도 갈망하는·
그 혈흔의 향기에 아넬라는 저도
모르게 눈을 뜨고서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닿을 거리 에 그것이 고여 있었다·
‘마법사의 피···
고작 손바닥으로 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적은 양이었으나 아넬라에게 는 충분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정 신을 파괴시키고 마을을 통째로 무 너뜨리기에는 아주 차고 넘치는 양·
-이제 기회는 없어〜! 인간이면 인 간답게! 흑마인이면 흑마인답게! 각 자에게는 ‘정해진 운명’과 역할이
있단 말이야· 너는 주제넘게도 그것 을 어기려고 한 것이고·
-고작 20년도 살지 못한 어린 인 간 따위에게 짓밟히는 그 꼬라지를 봐! 운명을 거스르려 한 대가를 이 제는 알겠니?
들려오는 마녀의 목소리에 아넬라 는 점점 더 몽롱해지는 기분을 느꼈 다·
-운명을 받아들여· 순응해· 부적을 건네준 백유설이 무어라 말했니? 운 명을 바꿀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유혹했니? 그런 거 전부 거짓말인
게 뻔하잖아? 네가 흑마인이니까· 멍청한 흑마인이니까 이용해 먹으 려고!
뚝!
땀이 한 방울 떨어져 핏물과 섞인 다· 아넬라의 시선은 어느 사이엔가 그 핏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셔· 너는 마녀의 자질이 있어· 그것을 마시면 네게 내 피를 나눠 줄게· 인간은 되지 못하지만 최소한 흑마인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줄게·
온갖 유혹이 아넬라의 정신을 파고 들었다·
인간의 피·
마녀의 삶·
그 모든 욕망과 쾌락을 섭취하고 서 나를 괴롭힌 눈앞의 모든 인간 들을 몰살하는 것·
■•상상만 해도 끝내주지 않니?
맞는 말이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짜릿 하고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쾌락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아넬라는····
“···죽여줘·”
눈을 감았다·
-어엉?
“나에게는··· 더 이상 쾌락을 즐 길 영혼조차 남아 있지 않아····”
ースト 잠깐· 무슨 소리니 얘야·
너무 힘들고 지쳐서 쾌락 따위를 추구하기에는 멀리 돌아왔다·
갈기갈기 찢겨진 정신과 닳고 닳은 영혼은 더 이상 그 어떤 쾌락도 즐 길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단 하나 있 다면 마지막 순간이라도 인간으로 서 눈을 감는 것·
‘나는 이걸로 인간이 되는 거야·’
모든 흑색의 유혹을 벗어던지고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나의 꿈은 죽음으로서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인간다운 죽음이 아니겠 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