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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바람에 드리운 그림자(2)
한편 백유설과 홍비연을 뒤쫓던 류 데릭은 뒤에서 모습을 감춘 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뭐가 이렇게 빨라?’
평범한 1학년이었다면 가는 도중 페르소나 속 괴수나 몬스터 등과 조 우하거나 엑스트라 스토리에 휩쓸려
서 시간을 버리는 게 정상일 터·
하지만 백유설은 마주하는 모든 설 화와 전설을 최단 시간이 클리어하 거나 아예 지름길을 찾아서 무시해 버리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전력 질주로 쫓지 않으면 놓쳐 버릴 지경이었다·
‘소문대로 미친놈인 건 확실하군·’
유난히 특출난 1학년이라는 사실 정도는 소문으로 익히 들어서 잘 알 고는 있었다· 그런데 저 정도일 줄 이야· 직접 보고 나서야 백유설이 얼마나 정신 나간 이력을 가지고 있
는지를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백유설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 면 선배로서 ‘아주 약간의 도움’을 주려고 했거늘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이 상황이 류데릭으로서는 상 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아직은 괜찮아·’
그는 허공을 웅시하여 가이드 라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어느 요괴의 이야기]
확실하다· 백유설은 아직 저 이야
기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애당초 현상 분석을 제대로 끝마쳤는지도 의문이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설화와 전설은 해당 장소와 연관이 있어·’
예를 들어 도시에서 빨간 마스크 를 쓰고 돌아다닌다는 괴담이 존재 한다고 쳐보자· 그런 괴담이 숲이나 시골로 옮겨갈 수가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몇몇 일부의 설화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이야기 는 특정 장소를 맴돌고 있다·
즉 백유설이 페르소나 게이트의 클
리어를 위한 설화를 찾기 위해서는 이런 도심지가 아니라 ‘빈민촌’을 찾아서 돌아다녀야만 했다·
‘이 이야기는··· 촌구석에서 발생 한 것으로 추측되니까·’
류데릭은 천천히 가이드 라인 메시 지에 적힌 잊힌 이야기를 읽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낙엽이 지는 것 을 보고서 불꽃이 피는 계절이라고 말하였다· ■이가 듣기에는 조금 특 이한 말이었다· 낙엽이 지 ■ 가을에 는 불꽃이 피어나기엔 너무나도 쌀 쌀한 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하여 몇 몇 글자가 빠져 있었지만 읽는 데 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백유설· 너는 이 정도까지 해석하 지는 못했겠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류데릭의 가문은 과거 9리스크의 페르소나 게이트를 장장 20년에 걸 쳐서 공략한 류 가문의 후계자다·
페르소나의 해석에는 도가 텄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으니 제아무리 백유설이 뛰어나다고 한들 자신보다 더 좋은 계산식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천재라 불리는 홍비연과 반 디연조차 아직 가이드 라인 메시지 를 꺼내지 못한 데에 비해 자신은 벌써 엔딩까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 지 않은가?
‘그렇게 더 헤매라고 백유설·’
이 선배님이 도와줄 수 있도록·
‘음 근데 갑자기 왜 천천히 가는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서두르던 백유설 은 어째서인지 속도를 늦추고서 홍 비연과 나란히 걸으며 게이트를 느 긋하게 돌파하였다·
아니 사실 느긋한 것도 아니다·
아까 전에는 위태위태하게 이야기 를 억지로 통과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안정적이고 완벽한 방법으로 공략한다는 느낌이었으니 까·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군·’
오히려 아까보다 지금의 백유설이 더욱 무섭게만 느껴지는 건 류데릭 이 신중한 학구파였기 때문일까·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해·’
홍비연과 얼굴을 맞대고서 저들끼 리 무언가를 고민하는 꼬라지를 보 고 있자니 어쩐지 배알이 뒤틀렸다·
그 이유는 아마도 홍비연 공주가 상당한 미인인 탓이겠지·
‘기다리기도 지루한데···
류데릭은 억지로 백유설에게서 시 선을 뗀 다음 가이드 라인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백유설을 뒤쫓느라 미처 끝까지 확 인하지 못했으나 여유가 생긴 지금 이라면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불꽃이 피는 계절 그 마을에는 한 아이가 있었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끔찍한 형
체를 가진 그 아이는 마을에서····]
···아넬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찬바람 불어오는 어느 숲속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숲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건 아니고 오두막처럼 최대한 꾸미고자 노력하였으나 완전히 실패 하고 만 판자 더미가 그녀의 침대였 다·
“ 〇 으·グ
머리를 부여잡고서 일어난 아넬라
는 황당한 눈으로 판자 더미를 바라 보았다·
“이딴 걸 지금 집이라고 만들어 놓 은 거야···?”
어린애가 엉성하게 조립해 놓은 듯 한 이 판자집은 간신히 바람이나 피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태롭게만 보였다·
그런데 더 특이한 점은 판잣집 내 에 생필품이나 쓰레기 등이 가득했 다는 것· 즉 이곳에서 살던 누군가 는 이 쓰레기 집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생활해왔다는 말이 되겠다·
“누가 이딴 데서 사는···
그렇게 말하고 보니 아넬라 자신 의 처지가 이 판잣집의 주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다 무너진 나라의 폐허에서 비바람 정도만 간신히 피할 수 있는 구멍 뚫린 천장을 보금자리 삼아서 지내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아넬 라였으니까 말이다·
‘그건 됐고··· 여긴 어디야?’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본다·
새카맣게 변해버린 하늘·
마녀의 왕·
빼앗긴 부적·
‘그리고··· 나는 뛰어내렸던가?’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몽롱해져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아넬라는 숲길을 따라서 걸었다·
새카맣던 하늘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화창하다· 가을 하늘이 높다 더니 어릴 땐 몰랐던 어른들의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우 힘들어·”
숲길은 험했고 사람이 다니던 흔적 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내려가는 데에도 한참이었다·
대체 이런 데서 판잣집을 지어놓고 살 생각을 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걸었을까·
시골의 비포장 자갈길을 만나게 된 아넬라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것을 따라 걸었다·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논밭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노랫소리처 럼 들려오는 기분이다·
“어?”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었다·
웬 할머니가 과일을 떨어뜨렸는지 주섬주섬 바구니에 담고 있었는데 아넬라는 그 모습을 지나치지 못하 고 허겁지겁 달려갔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면서 과일을 쥐어 바구니에 넣 으려는데 갑작스레 할머니가 그녀의 머리에 감자 하나를 집어 던졌다·
퍽!
“켁!”
“이 이 요물 놈이 여기가 어디라 고 기어 내려와!”
“예 예에···?”
“당장 썩 꺼지지 못할꼬!”
그러면서 아넬라가 쥐었던 과일을 신발로 힘껏 밟아서 터뜨린다·
“역겨운 게 묻었어! 역겨운 게!”
퍽! 퍽! 퍽퍽!
아넬라를 밟는 것도 아니고 아넬 라가 쥐었던 과일을 죄다 짓밟아서 터뜨리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그녀 는 자신의 심장이 저 과일처럼 터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왜 왜····”
“인간도 아닌 게 어디서 인간 행세 야! 당장 꺼져어어!!!”
할머니가 고함을 버럭 지르자 여 기저기서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각자 곡괭이와 삽 등을 들고서 이곳 을 향해 뛰어왔다·
“요물 년이 내려왔다!!”
“당장 쫓아내!”
“자 잠깐! 저는 요물이 아니···!”
거기까지 말하려던 아넬라는 목에 서 말이 턱 걸리고 말았다·
‘아니야?’
정말로?
아넬라는 인간이 아닌 흑마인이다·
요물이라는 단어는··· 그리 정확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린 말도 아니었다·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으니까·
“꺼져! 당장!”
“마을에서 나가!”
퍽! 퍼억!
돌멩이와 감자 과일과 계란 등을 얻어맞으며 아넬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로 그곳을 벗어났다·
마을 사람들의 고함이 더 이상 들 리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 았다·
한참을 달렸다·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그녀가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 것처럼 완전히 지쳤을 때쯤·
신체의 한계로 인해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아넬라는 몸을 힘겹 게 꿈틀 비틀어서 대(大)자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흐흐···
까닭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쁘네에···
하늘에서 별이 반짝인다·
참 오래도 달렸다·
한쪽 손을 들어 눈을 가린 그녀는 고개를 양옆으로 크게 흔들었다·
‘그래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여태껏 흑마 제어술의 도움을 받아 흑마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서 잘도 인간 사회에 녹아들었다·
본래였다면 인간들의 근처에 얼씬 도 못했을 텐데·
이게 정상이다·
인간들에게 멸시받고 두려움의 대
상이 되는 그런 역겨운 존재·
“하아····”
이제 와서 새삼 기죽을 필요는 없 다· 어째서 흑마 억제술이 풀려버렸 는진 모르지만 이 정도는 감안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후우 돌아가자·”
어쨌든 임무는 끝마쳤다·
마녀의 동향에 대해서도 알아냈고 목숨까지 건졌으니 이번 임무는 성 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한 아넬라는 자리에서 일 어나 터덜터덜 자갈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걷고·
그렇게 다시 해가 떴을 때·
“···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그 마 을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모 몬스터···T
열 명 정도 되는 마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일순간 그들이 스텔라의 교복을 입 은 10대 학생들로 보였으나 착각이 었다는 듯 3~40대 농사꾼의 모습으 로 되돌아왔다·
움찔
아넬라가 뒷걸음질을 치자 농사꾼 들이 당황하여 떠들었다·
“뭐 뭐야· 저거 괴물이잖아·”
“어떻게 해야 돼? 죽여?”
“너무 흉측해··· 꼬 꼭 싸워야 해?”
“이게 그 잊혀진 설화인 건 확실한 데····”
“모 몰라! 일단 공격해!”
농사꾼들은 일순간 곡괭이나 낫 등 을 지팡이처럼 아넬라에게 겨누고서 불꽃과 얼음 송곳 등을 발사했다·
화르륵!!
콰쾅!!
어째서 농기구에서 마법이 튀어나 오는가· 아넬라에게는 더 이상 그런 의문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비록 인간에게 미움받고 있으나 인 간을 해치기 싫었던 아넬라는 그저 정신없이 뒤돌아 도망쳤고 마을 사 람들은 그런 그녀를 뒤쫓았다·
“야! 괴물이 도망치잖아!”
“쫓아가서 죽여!”
“미친! 너무 빨라!”
“안 돼!”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 능
력으로 또다시 전력 질주하여 도망 친 아넬라는 어느 숲속 옹달샘 앞에 도착하여 쓰러졌다·
“하악 하아···「
얼굴을 모래에 파묻은 채 아넬라는 거친 숨을 억지로 몰아쉬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도망쳤는가·
그래 아넬라는 두려웠다·
인간들의 공격이 무서웠나?
우스운 소리· 저 정도는 간지러울 뿐이다· 농기구 따위에 맞는다고 흑 마인이 죽지는 않는다·
다만·
미움받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심장이 터질 정도로·
——1 •
넘어진 충격으로 상처를 입을 정도 로 아넬라는 연약하지 않았으나 어 째서인지 다시 일어서기가 무서웠 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영영 일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저 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흑마인이라서···?)
아넬라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아 그래·’
나는 미움받는 게 당연하다·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나는 인간이 될 수 없으니까·
‘이게··· 결국 내 운명이니까·’
유난히 쌀쌀하여 영혼마저도 추워 지는 밤바람을 맞으며 아넬라는 눈 을 꼭 감았다·
별빛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