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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고결한 영혼(7)
나무화란의 과수원은 본디 관광지 였고 휴가철이 다 지난 비성수기라 지만 워낙 대도시였던 탓에 여전히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평범하게 여유를 느끼고 싶어서 찾 아왔던 제3의 세계수에서··· 설마 모
든 정령과 신령과 신수와 요정과 엘 프를 다스리는 존재 엘프왕 꽃서린 을 만나게 될 줄은·
나무화란 중앙 광장·
과수원에서 가장 높은 장소는 아니 었지만 평평하게 깎인 분지의 형태 인 데다가 주변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관광객이 가장 자주 찾는 장소인 이곳에 평상시보다 더욱 많 은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웅성웅성·
“뭐야?,,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 거야?”
“쉿 이벤트는 무슨 이벤트야! 엘프
왕이 직접 여기에 행차하셨다는데?”
“진짜로? 아니 평상시에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던 분이 갑자기 왜?”
엘프왕 꽃서린은 일반인들에게 있 어서 베일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존 재에 가까웠다·
소문에 의하면 그 어떤 엘프보다도 아름다운 탓에 얼굴을 보는 순간 반 해버릴 정도여서 일부러 감추고 다 닌다고 하는데··· 얼굴은커녕 세간 에 모습을 공개하지를 않으니 진실 을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제3세계수 나 무화란의 과수원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엘프들이 특별한 의식을 치 를 때만 사용한다는 제단을 중앙 광 장에 소환하여 그 위에 홀로 올라섰 다·
여전히 검은 드레스로 온몸을 칭칭 감싼 채로 흰색 가면을 쓰고 있어서 엘프왕의 외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 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상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온몸을 가리고 있음에도··· 엘프왕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이유 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그녀에게서 은연중에 풍겨 나오는 [연정흡인지체]의 능력이라 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꽃서린은 떨리는 목을 가다듬었다·
저주가 많이 약화된 덕분에 얼굴을 가렸다는 전제하에 얼마든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도 상관은 없었으나 워낙 숨어서 살았기 때문일까 여전 히 이렇게 많은 인파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세계수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고서 야 흑마 침식이 되는 원인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사아아···
세계수의 잎이 흔들리며 초록색의 오로라가 하늘을 서서히 뒤덮기 시 작하자 웅성이던 사람들은 입을 꾹 닫고서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와···
그저 자연의 경치를 만끽하고 싶어 서 나무화란에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보다 더욱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들과는 별개로 꽃서린은 표정을 찌푸리고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一 아파·
– 돌아가·
-흐トス] Uト·
••미안해·
– 괴로워·
머릿속을 맴도는 어린아이의 목소 리· 그것은 틀림없는 나무화란의 비 명이었으나 꽃서린은 그에게 말을 제대로 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무화란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 지 못하는 탓에 소통이 되지를 않는 것이다·
“으읏···!”
입술에 피가 나도록 꽉 깨물고서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려고 해보아도 나무화란이 자꾸만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꽃서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 었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어디가 아픈 지를 말해야···!
쨍그랑-!!
,,흑!,,
애써 정신을 집중하여 간신히 의 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 순간 나무화란이 꽃서린의 의식 을 뿌리치고 말았다·
극심한 괴로움을 버티지 못하고서 정신력을 아예 차단해 버린 것·
털썩!
꽃서린이 바닥으로 쓰러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자 재빠르게 기사들이 제단으로 올라와 그녀를 부축하였 다·
“폐흐卜 괜찮으십니까?”
“아···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들 어 올린 그•녀는 서서히 옅어지는 녹 색의 오로라를 바라보았다·
세계수가 대화조차 거부한 채 발버 둥 치고 있다는 증거·
“예쁘다···
“우와아!”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예 쁘게만 보일 뿐이라는 사실이 꽃서 린을 더욱더 가슴 아프게 했다·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쥐고서 고개 를 푹 숙였다·
세계수에게서 대답을 들어야 어떻 게든 치료할 수 있을 텐데 그마저 도 못하다니·
“폐하····”
“제가 직접 찾아서 치료해야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꽃서린은 성큼성큼 제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기사를 소집해서 뿌리를 오염시키 고 있는 원인을 찾으라고 지시하세 요 저는 따로 찾아볼 테니·”
“명령을 받습니다·”
꽃서린의 명령이 떨어진 즉시 기사 들은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고 주변 에서 대기하던 기사들은 그 수신호 를 알아듣고서 각자의 기사단을 지 휘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세계수는 넓고 웅장하며 복잡하다·
이 거대한 나무를 어느 세월에 다 수색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잡히지
않았으나 최대한 감각을 펼친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가장 먼저···
세계수에서 가장 드높은 곳·
그곳부터 천천히 수색하여 내려올 생각이었던 꽃서린은 제단의 아래쪽 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백유설 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다 뒤늦게 그와 함께 잎하넬을 만나기로 약속했었다는 사실을 생각 하고서 쓰게 웃었다·
함께할 생각에 즐거웠는데·
하지만 즐거운 시간은 잠시 미뤄 둘 때다· 지금은 세계수를 구해야만
했으니까·
“미안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 요? 금방 사건을 해결할 테니까요·”
“아뇨· 같이 움직이죠·”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제가 원인을 찾은 것 같거든요·”
“네?”
아직 사건의 발단 이후로 아무것 도 하지 않았을 텐데 벌써부터 원인 을 찾았다니· 믿기 힘든 말에 꽃서 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백유설이 뒤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정 그러시면 잠깐 같이 가 보실래요? 잎하넬의 정원으로·”
아마도 백유설의 생각이 맞다면 지 금쯤 그곳에는 결계가 쳐져 있을 터· 어차피 혼자서는 진입하는 것조 차 불가능하다· 최소한 2학년 2학기 에서 3학년 초반이라면 결계를 뚫을 만큼의 아이템과 능력이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나약하다·
‘차라리··· 꽃서린이 있어서 잘된 일이야·’
당시의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오롯 이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 때 문에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은 감이
있었으나 지금은 9클래스의 마법사 와도 맞먹는 힘을 낼 수 있는 꽃서 린이 곁에 있지 않던가?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앞당겨졌으나 치트키가 함께하고 있는 마당에 두 려워할 건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게 있다면···
아무래도 ‘신령살해자’가 잎하넬의 앞에 나타나는 것은 조금 두려웠다·
신령살해자를 마주한 사람은 플레 이어 중에서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 였고 그만큼 최악의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야겠어·’
항상 설마설마 싶었던 일이 항상 일어났던 만큼 이번에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백유설은 꽃서린을 잎하넬의 정원으로 이끌었다·
부디 침식도가 심하게 진행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스텔라 아카데미의 학생 중에는 귀 족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귀족가의 자제들은 가문의 행사 때
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빠지는 일이 있었는데 합당한 사유가 있다 면 최대 나흘까지 수강처리를 받는 게 가능했다·
즉 일주일 한 주를 통째로 빠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흘이라는 최대 기간의 휴가 를 받는 학생은 드물다· 그 정도까 지 대규모의 행사를 하는 귀족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비연이 누구던가·
아돌레비트 왕가의 공주가 아니던 가·
당당하게 주말을 포함하여 나홀의
휴가를 받아낸 그녀는 왕가의 전용 비행선을 타고서 아르카니움을 떠나 왔다· 창밖으로 떠다니는 구름을 바 라보며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긍정하셨습니다· 공주 님 또한 왕가의 일원이니 정화의식 에 참여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고 하 였습니다·’
모르프란 숲의 정화의식은 홍시화 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일 터·
그곳에 홍비연이 간섭하는 것은 분 명히 불리한 양상을 만들어낼 텐데
도 오르칸 공작은 그것을 너무나도 손쉽게 받아들였다·
달리 꿍꿍이가 있는가?
홍비연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자 신과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 착석한 사예란 오르칸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
자신보다 나이가 고작 2살 더 많 을 뿐인데도 그녀는 감정을 숨기는 데에 능숙했고 언변이 능수능란했 으며 정치에 익숙했다·
순수 마법만으로 따지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으나 인간으로서 그
녀를 평가하자면··· 배울 점이 상 당히 많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사예란은 정적이었고 언젠가는 척 결해야만 하는 존재였으니·
‘내가 여왕이 되기 위해서라면··· 적에게서조차 배울 점을 찾아내야만 하는 게 맞겠지·’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말이 떠올랐 다· 배울 점이 있다면 거지에게조차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누가 했던 말이더라·
분명히 아이작··· 모르프····
흐음·”
그러다 퍼뜩 에이젤의 그 재수없이 온화하고 평화로운 면상이 떠올라서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공주님· 디저트를 드시겠습니까?”
왕가의 승무원이 그녀에게 물어왔 으나 대답조차 않고서 고개를 흔들 었다· 디저트는 무슨·
어차피 맛도 못느끼는····
“···아니ス]· 케이크와 달콤한 코코 아를 가져와줘·”
그러다 최근에 부쩍 혀에 감각을 집중하면 ‘맛’이라는 게 아주 희미 하게나마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그건 정말로 희미했고 맛이라고 하 기에 일반인 기준에서는 그저 혀에 무언가가 닿는 감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혀의 감각이 서서히 원래대로 되돌 아오고 있다고·
그녀는 미각을 잃은 그날부터 맛을 느끼는 데에 필사적이었다·
어떻게든 혀에 닿는 그 행복한 감
각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결과가 바로 이것일까·
“가져왔습니다·”
승무원이 달콤한 초코 케이크와 코 코아를 내어놓자 그녀는 포크로 그 것을 푹 찍어서 입술에 가져다 대었 다· 이게 대체 뭐라고 긴장까지 될 일인가 싶다·
입안에 케이크를 넣고서 신중하게 집중해서 맛을 느껴본다·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 다· 오히려 맛은커녕 역하고 물컹한
식감 때문에 구역질이 쏠릴 지경이 었다· 심지어 그녀는 미각을 완전히 상실한 게 감각이 뒤틀린 것에 가까 워서 역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지배 했다·
“우욱···
결국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 케이크 를 뱉은 그녀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하아 망할····”
맛을 느끼지 못하는 이상 케이크처 럼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하는데 맛이 조금 느껴진답시고 시작부터 너무 과감하게 도전했던 게 문제다·
‘이번에는 왜····’
분명히 이전에는 맛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대체 왜 뭐가 달라 서 맛을 느꼈던가?
그러다 문득 ‘맛’을 오래간만에 느 꼈을 때 누구와 식사를 했었는지에 대해 떠올려 버렸다·
그러고서는 새어 나오는 헛웃음·
함께 식사하는 사람에 따라 미각이 달라진다니·
‘그건··· 말이 되지 않아·’
그녀는 그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이런 쓸데없는 잡생각까지 들 정도 라니· 최근 들어서 자신이 너무나도
바뀐 것 같아 스스로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어· 나갈게·”
화장실에서 나가니 사예란이 예의 그 무덤덤한 눈빛으로 자신을 기다 리고 있었다·
홍비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로 돌아가 착석하였고 사예란 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미각이라·’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으 나 사예란은 그것을 굳이 입 밖으 로 내지는 않았다·
홍비연 공주는 정적이었으니 도울 필요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