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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개학(7)
제아무리 스텔라가 실습만 열었다 하면 허구한 날 습격당하는 포지션 이라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이번 실습 역시 마찬가지로 원작에 서조차 간단하게 넘어갔을 정도로 크게 비중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에피소드는 원작 게임에 서 일종의 전환점으로 쓰였는데 2학 기에서 주로 등장하게 될 빌런들의 흔적을 각각 만나볼 수 있었다·
흑마법사 네크로맨서 마녀 등등·
마법계열의 특징을 가진 저 흑마인 들은 각각의 은신처에 개성이 있다·
흑마법사는 ‘흑색 마탑’·
네크로맨서는 ‘공동묘지or던전’·
마녀는 ‘오두막’·
물론 위의 개성은 절대적인 표본이 아니다· 마녀가 모여서 마탑을 세웠 던 사례도 있고 흑마법사가 던전을
만드는 일도 상당히 잦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들의 은신처에는 그 개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증거가 반 드시 존재한다·
‘혹마법사의 던전 근처에는 반드시 썩어 문드러진 식물이나 동물의 사 체 광기에 물든 짐승 등이 자주 발 견된다···
백유설은 졸린 눈으로 주변의 환경 을 슬쩍 살펴보았다가 고개를 돌려 구석에 쪼그려앉아서 무언가를 뒤적 거리는 풀레임을 바라보았다·
“뭐 하냐?”
“찾았다· 던전 입구·”
“축하한다·”
“반응이 왤케 미적지근해?”
사아아-!
바람이 불어와 나뭇결이 흔들린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그 흔한 산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 고 풀숲을 흔드는 작은 동물의 기척 도 없으며 벌레조차 모습을 감춰 버렸으니 어찌 수상하지 않을까·
“너무 문제가 쉽잖아·”
¹¹으음 그건 그렇긴 해·”
진짜 흑마법사가 이렇게까지 수상 한 티를 팍팍 낼 리는 없으니 딱
봐도 학생의 수준에 맞춰서 분위기 를 조성해 놓은 것이리라·
하지만 과연 모든 은신처가 다 그 럴까? 그럴 리가·
분명히 S반을 겨냥한 은신처는 꽁 꽁 숨겨놓고서 찾을 수 없도록 최대 한 애썼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백유설은 그런 것을 찾을 생각이 없다· 아마도 해 원량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애쓸 것이고 마유성은 그를 따라다 니며 재미있는 게 뭐 없나 흥밋거리 만 찾을 것이고 에이젤과 홍비연은 각자도생할 것이고·
아니지·
특정 에피소드에 따라 에이젤이 조 금 흥미로운 물건을 이 실습장에서 발견하기도 했던가·
그러나 그것 역시도 당장 큰 사건 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루하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실습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긴장이 확 풀려 버렸다· 애당초 학교 수업을 진지하게 들을 생각은 없다만 그래 도 점수는 꼬박꼬박 얻어야 한다·
스텔라에서 퇴학을 당하네 어쩌네 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면?
그래서 모든 게 평화로워지고 백 유설 자신 또한 평범한 삶을 살아가 게 된다면?
‘그때가 되면 너는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어젯밤·
풀레임이 무심코 던졌던 질문·
그건 백유설이 평상시에도 꾸준히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으나 다른 이 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으니 머릿속 을 꽤 복잡하게 만들었다·
“자 따라와· 다음엔 네 분량도 채 워줄 테니까·”
“엉···
그런 이유로 지금 현재 풀레임이 백유설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평상시에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고생하니까 최소한 학교에서만큼은 고생을 덜 하라고 도와주는 것이다·
“이쪽으로 와· 붉은 단풍이 진 숲은 교수님들이 볼 수 없댔어· 내가 대신 찾아줄 테니까 따라오기만 해·”
일종의 시스템 오류·
원작 로판에서는 에이젤과 다른 한 명의 서브남주가 이 실습 도중 알콩 달콩 데이트하는 장면을 교수님들에 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저 ‘시스템 오 류’라는 설정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냐·”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흔들리는 단풍잎은 사람의 감성을 묘하게 자 극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나 이미 감 성이 메말라버린 백유설에게는 귀찮 은 나뭇잎일 뿐이었다·
그는 하품을 쩍쩍 내뱉으며 앞서나 가는 풀레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단풍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 글 웃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걸어간다· 참 젊고 에너지도 넘친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음?’
멍하니 풀레임의 뒷모습을 바라보 던 백유설은 뒤쪽에서 느껴지는 인 기척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인기척은 순식간에 그 기척을 지워 버렸지만 백유설의 육감을 속일 수 는 없었다·
‘또 뭐야?’
본인의 흔적을 잠깐이지만 노출시
켰으니 프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미행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백유설 의 신경을 상당히 건드렸다·
‘원래 아무 사건도 없어야 정상이 겠지만···
그는 슬쩍 풀레임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번 에피소드는 아무런 일 도 없다· 그래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에피소드’가 정 상적으로 진행된 적이 있던가·
비틀리고 뒤틀리고 앞당겨져서 언 제나 그를 당황시키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내가 너무 안이했던 거지·,
조금 빠르게 걸어서 풀레임과 합류 한 백유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뒤에 따라붙었어·”
“···그래?”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방금 그거 첩보 영화에 나오는 보 디가드 같아서 살짝 설렜어·”
“헛소리 말고·”
또 뭐가 귀찮게 구는 건지는 모르 겠으나 일단 상대를 포착한 이상 가 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다·
“먼저 앞서 나가고 있어· 내가 살
펴보고 올게·”
“아냐· 이번에는 나도 도울게· 어차 피 여기는 스텔라 돔이잖아·”
“흑마인이면 어쩌려고· 걔들은 스 텔라 돔에서도 때릴 수 있는 거 몰 라?”
“뒤에서 빛만 쏴재낄게!”
“···마음대로 해라·”
어쨌든 크게 위험한 상대가 아니라 는 생각이 들었기에 백유설은 건성 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테리폰을 꺼내 들었다·
일전에 망가져 버린 테리폰은 알테 리샤의 손을 거치면서 조금 더 튼튼
하게 고쳐져서 사용에 문제는 없다·
풀레임의 귓가에 숨결이 닿을 정도 로 바짝 달라붙은 백유설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단은 뒤에서 따라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해·”
“으 웅· 근데 그 어····”
“왜· 문제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조용히 흐1 더 가까이 왔다·”
바람이 멎었다·
인기척은 갑작스레 선명해졌고 그 것을 공격 신호로 간주한 백유설이
테리폰을 활성화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너희 둘· 지금 뭐 하는 거지?”
“··어?”
“···응?”
그곳에는 적··· 이 아니라 풍하랑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뭐 뭐야···r
허겁지겁 테리폰을 거둬들인 백유 설이 당황하여 묻자 풍하랑의 표정 이 점점 더 굳어갔다·
“왜 당황하지?”
“어? 아니 뭐· 나는 적이라도 나
타난 줄 알았거든·”
“스텔라 돔은 안전하다· 이번에 확 실하게 시스템 보완을 했다고 교수 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뭐··· 그렇긴 하겠지·”
그러든 어쨌든 붉은 단풍의 장면이 교수들에게 송출되지 않는다는 버그 는 여전한 것 같지만·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S반은 무 조건 개인행동을 하게 되어있어· 그 런데 너희 둘은 팀을 이룬 것으로 보이는데····”
풀레임과 백유설은 서로를 바라보 았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어서 서로 어 깨를 으쓱 올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가자니 풍하 랑은 틀림없이 교수님들에게 고발할 것이고 감점을 어마어마하게 받을 것이다·
“에효···
벌써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감 점을 받을 생각에 백유설이 우울한 한숨을 내쉬자 하는 수 없이 풀레 임이 먼저 나서서 변명했다·
“야 오해가 있나 본데 그런 거 아 니야·”
“···아니라고?”
“어· 솔직히 말해봐· 내가 누구야?”
“···풀레임·”
“나야· 학년 2등 풀레임· 근데 내 가 런닝을 한다고?”
“네가 아니라···
“그럼 얘는 누군데?”
그녀는 백유설을 엄지로 가리켰다·
대답할 것도 없이 백유설이었기에 풍하랑은 입을 다물었다·
비록 그는 성적이 중위권 정도로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백유설이 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증명은 충분했다·
여태껏 스텔라의 1학년 신분으로 신문 기사에 이름을 올린 횟수만 몇 번이며 흑마인을 몇 번이나 사냥했 던가· 실전에 투입된 어지간한 마법 전사보다도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백유설이··· 런닝을 한다?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너도 그렇 게 생각하지?”
납득하기 싫었으나 이미 납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풍하랑은 천천 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건 해야만 했으니까·
흐卜지 아직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 다· 이 상황에서 죽도록 묻기 싫었
으나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질문·
“그렇다면··· 왜 붙어서 다녔던 거지?”
그 말에 풀레임은 백유설의 눈치를 힐끗 살폈고 결국 이 변명을 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내질러 버렸다·
“보면 몰라? 단풍나무 아래에서 몰 래 데이트 중이잖아· 이 눈치 없는 자식아·”
“···그렇게 된 거였나·”
“어· 그러니까 네 갈 길이나 가· 우리가 점수 좀 얻자고 시시하게 컨 닝 따위나 할 것처럼 보여?”
백유설은 괜히 양심에 찔렸으나 풀
레임이 워낙 뻔뻔하게 나가서 그 역 시도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다·
“맞는 말이군· 내가 실례했다·”
스스로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인 정한 풍하랑은 아주 살짝 고개를 숙 여 사과하고서 그대로 등을 돌려 단 풍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뒷모습이 무겁고 씁쓸하게만 느 껴지는 이유는 대체 뭘까·
* * *
실습이 종료되었다·
1 등은 압도적인 점수로 해원량이 가져갔다· 교수님들이 작정하고 찾 아내지 말라고 숨겨놓은 ‘흑마법사 의 고대 던전을 발견했다고 한다·
2등은 에이젤· 위와 마찬가지로 찾 기 힘들게 조성해 놓은 ‘마녀의 오 두막’을 찾았다는 이유였는데··· 여기서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여 교수님에게 보고하였으나 별일 아니라며 가볍게 넘어가 버렸 다·
그리고 3위는··· 풍하랑·
필사적으로 흑마인의 거처를 찾아 뒤적이던 그는 마침내 네크로맨서가
숨겨놓은 공동묘지를 발견하였고 흑 색의 마나를 탐지하여 죽은 자들의 원혼이 깃든 무덤을 정화하기까지 해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은 기분이 드 는 것은 어째서일까·
’···데이트라고 했던가·’
풀레임이 스스로 그렇게 말했을 정 도면 사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백 유설 또한 부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그녀의 말대로 저 둘은 컨 닝 따위를 할 정도로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뛰어난 탐색 능
력을 가지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성적은 그냥저냥 무난하게 10위권 에 걸친 두 명의 남녀·
왜 그랬을까·
당연하지만 진지하게 실습에 임하 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둘이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1학기에 풀레임과 백유설의 열애설 으로 학교 내에서 소문이 돈 적이 있었으니까·
다만 그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 거늘 어째서 이번에는 감정이 요동 치는 걸까
‘포기하자·’
그는 깔끔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 했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서 하늘로 날아오르던 풀레임을 목격한 그 날 자신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애써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자존심에 핏대를 세웠으나 그건 멍 청하고 미련한 짓이었다·
사실이다·
나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게 맞다·
그러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미 임자 있는 여인을 탐내는 행 위는 천하의 쓰레기나 다름없다고·
비록 아버지는 위대한 일을 해내지
는 못하셨지만 풍하랑의 가슴 속에 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고 단 한 번도 그분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 다·
백유설과 풀레임은 몰래 재화합을 하였고 소문나는 것이 싫어서 그것 을 비밀로 숨겨두고 있다·
둘의 뜻이 그렇다면 풍하랑 또한 그들을 존중할 것이다·
그는 멀찍이 서서 풀레임과 백유설 을 바라보았다· 남들 다 점수판에 모여서 순위를 확인하고 있는데 저 둘은 점수 따위는 애초에 상관도 없 다는 듯 저들끼리 노닥거린다·
“야 끝나고 밥이나 먹을래?”
“네가 사·”
“너 돈 많잖아· 좀 사 줘·”
“거지야·”
“에휴 이 누님이 산다 그래·”
지금 당장은 백유설이라는 거대하 고 압도적인 라이벌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기에 포기한다지만 훗날 백 유설이 빈틈을 보여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낚아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