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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개학(3)
미래의 천재 마공학자 라칸의 합류 이후 연금성의 기술은 눈이 부실 정 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이야기는 곧바로 발생하지 않았다·
라칸은 이제 막 마공학의 첫걸음을 뗀 상태였으니까· 물론 워낙 천재였
던 덕분에 짧게는 반년에서 일 년 사이에 그의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 나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직 공부 를 시작하는 단계였다·
“자 이게 필요하다고 했지?”
뛰어난 마공학자를 구하여 기분이 좋아진 알테리샤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새하얗고 커다란 구슬을 건네 주었다·
저것의 본래 이름은 ‘포스 베슬’·
사념체를 다루는 마법사만이 제작 할 수 있는 탓에 현대 마법 기술로 는 더 이상 생산이 불가능한 물건·
학기 초 네크로맨서의 심장을 찌
르고서 얻어낸 전리품이다·
그 당시에는 기술력이 부족하여 저 귀중한 물건을 얻고서도 제대로 활 용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다르다·
[(임시)아공간 포켓]
알테리샤의 연금마공학이 충분히 발달하여 이제는 저것을 통해 아공 간 포켓 즉 ‘인벤토리’라 불리는 사 기적인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게 되 었다·
지금도 공간 확장 배낭을 애용하고 는 있으나 무게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결국 민첩이 생명인 내게 있어 서 약간의 중량도 부담이 되었고
전투 시에 근접전을 주로 하였기에 상당히 거슬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 다·
그러나 인벤토리를 이용하면 확실 하게 모든 것이 간편해진다· 심지어 배낭을 소지하지 못하는 장소에서도 마음껏 아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이걸로 아공간을 제작한다고?”
알테리샤는 그 반짝이는 분홍색 눈 동자를 빛내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 을 지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 견할 때면 언제나 저렇듯 천진난만 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는 한다·
“일단은 그렇죠·”
“대단하네··· 아공간은 공간 계열 마법사 중에서도 수준이 높은 분들 만의 전매특허잖아·”
“솔직히 그런 분들과 비교될 만큼 대단한 물건은 아니에요·”
“그래도· 공간 계열 마법사가 아니 면서 아공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 가 대단한 거지·”
그건 그렇긴 하다·
다만 아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념계열 마법사에게서 포스 베슬 을 얻은 뒤 공간계 마공학자에게서 ‘디멘션 인챈트’를 얻어내야만 한다 는 아주 귀찮은 과정이 필요했을 뿐·
위의 두 과정이 지극히 어렵고 심 지어 거기에 발전된 연금마공학 기 술을 보유한 연금마공학자가 추가로 더 필요했으니 평범한 마법사가 입 수하기에는 상당히 난이도가 있다·
“그나저나 2학기부터는 스텔라에 출근하시나요?”
“으응···
원래 알테리샤의 직업은 스텔라 아 카데미의 연금술 학과 조수다· 정확 히는 메이젠 교수의 조수·
그러나 메이젠 교수가 사라지고 연 금마공학을 발표하면서 연금성에 근 무하게 되자 스텔라에서도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원작 게임에서도 나온 전개였 으므로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 나 알테리샤는 영 미안한 표정이었 다·
“미안해· 학교에 계속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제 계속 연금서에 서 근무할 것 같아·”
“잘됐네요· 여태까지의 꿈을 여기 서 이룰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미 이룬 것 같기는 하지만·”
알테리샤는 방금 웃으며 그리 말하 더니 깜빡했다는 듯 서둘러 사무실
구석에서 상자를 가져왔다·
그녀는 항상 중요한 물건을 상자에 다가 차곡차곡 쌓아놓고서는 자신의 손에 잘 닿는 위치에 박아두는 습관 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선물을 주려 는 모양이었다·
그 예상이 맞았는지 알테리샤는 팔 찌와 피어싱 혹은 단검이나 천 조 각 등을 꺼내며 자랑스레 말했다·
“이건 선물!”
“오···
잠깐 직박구리 안경으로 살펴보니 확실히 자랑할 만한 성능이었다·
하나하나가 전투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은 아니었지 만 불리한 전투를 조금 더 무난하 게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본디 아이템이라는 게 그런 용도 가 대부분이다· 아이템 자체에 사기 적인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서 지팡 이 하나 휘적 휘두른다고 적이 몰살 당하고 그러는 일은 거의 없다·
사용자가 강한 힘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물건이 바로 이 ‘아이템’이라는 장비였다·
“저번에 준 물건들은 완성품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는데··· 이 번에는 확실하게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요·”
그것을 주섬주섬 받아 챙기자 알테 리샤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 술을 떼었다·
“그 요즘··· 나도 바쁘게 지내기는 하지만··· 신문도 많이 읽고 그러 거든···
“네?”
“나도 이제 인맥도 엄청 늘어났고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소식이나 이야기도 가끔 들려와·”
“어···
그녀는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걱정
스럽다는 듯한 감정을 가득 담아서 조심스레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서 네 이야기가 들려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건지는 모르 겠지만 조심히 다녀· 그리고··· 시 간에 여유가 생기면 연금성도 자주 찾아오고· 이제 나는 스텔라로 돌아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너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 간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이거든·”
그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하긴 알테리샤와는 학기 초반부터 함께 붙어 다니며 논문도 쓰고 공부
도 하고 학회 발표도 하며 가장 처 음으로 친해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솔직히 알테리샤가 실제의 내 나이와 동갑내기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굉장히 편하게 대했고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지금은 지나치게 시간이 부 족해지면서 제대로 찾아오지도 못하 니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어 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어머· 내가 무슨 소리래·”
알테리샤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 고서는 후다닥 가운을 입었다·
“나 나는 이만 회담 약속이 있어 서 가 볼게! 다음에 또 보자!”
쾅!
요란스레 문을 닫고서 나가버리는 알테리샤를 바라보며 나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솔직한 사람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었는데 새로운 모습을 발 견해 버린 것만 같다·
* * *
스텔라로 돌아온 나는 곧장 교장실
로 직행했다·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을 플레이할 때면 스텔라 아카데미를 작은 국가 혹은 규모가 방대한 마탑으로 표현 되기도 하여 교장을 일개 학생이 만 나서 면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으나 일전에 나는 미리 약속 을 받아둔 덕분에 문제는 없었다·
제 1본탑·
스텔라 아카데미의 핵심 전력이 모 두 모여있는 이 거대한 탑의 꼭대기 에는 교장 선생님만을 위핸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평범하게 평수로만 따져서도 100
평은 가뿐히 넘어가겠지만 엘트먼 엘트윈 특유의 공간확장 마법을 통 해 본탑의 내부 규모 자체가 넓어져 서 거의 체감상 운동장만 한 크기처 럼 보일 때도 있다·
이는 엘트먼의 기분에 따라 크기가 줄어들 때도 있고 더 늘어날 때도 있어서 매일 청소부만 고생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어디에선가 들었다·
“이렇게 면담하는 건 간만이네· 여 름방학 동안은 잘 지냈어?”
엘트먼은 ‘릴트티’를 건네며 웃음 기 띤 얼굴로 물었다· 저 흉악하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괴상한 차를 대체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는 모르
겠다만 일단은 교장이 주는 것이므 로 받아 들었다·
“예 뭐··· 보람찬 방학이었죠·”
“응· 그런 것 같네· 그 잠깐 사이 네 눈빛에 별이 두 개나 더 늘었 어·”
“···예?”
내가 눈깔에 야광별 스티커라도 붙 이고 다녔던가?
“그래서 네가 먼저 면담을 요청했 다는 건··· 드디어 그게 준비됐다 는 이야기일까?”
엘트먼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 는데 하필이면 외모가 또 10대라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속내는 굉장히 시커멓겠지만·
“이겁니다·”
알테리샤가 마침내 완성한 회심의 역작 [(임시)아공간 포켓]을 건네자 엘트먼은 붉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그것을 살펴보았다·
“이야··· 대단한데· 영혼에 공간 을 새겨넣는 방식인가· 음음 이 정 도라면 확실히 가능하겠어·”
제아무리 마법의 최고 정점에 도달 한 9클래스라도 결국 그들 역시 끝 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9클래스의 마법사가 되었기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욱 많아진다고 했던가·
여타의 마법사들은 10이라는 한정 된 세계에서 7〜8 정도의 마법만을 깨우쳐도 ‘세상 이치의 대부분을 알 았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하지만 저들은 9클래스에 도달하는 동시에 100 혹은 1000의 세계를 깨닫고 말아서 자신들의 존재가 한 없이 하찮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9클래스에 도달한 대마법사 들은 역사적으로 일명 ‘현자 타임’ 이라 불리는 것을 극심하게 느끼는
바람에 속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 세상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은거하여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이 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스텔라의 교장이나 삭월탑 및 만월 탑의 마탑주처럼 사회적으로 활동하 는 이들이 오히려 특이 케이스다·
“좋아· 곧바로 시작할 수 있겠어·”
“정말인가요?”
“그래· 물론 너도 알겠지만 이거··· 굉장히 아프다?”
“어····”
알고는 있다·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에서도 아공 간을 새길 때면 캐릭터가 비명을 지 르는 연출이 나오면서 체력의 대부 분이 푹석 깎여 나갔으니까·
그 정신력 막강한 주인공들조차 비 명을 지를 정도이니··· 대체 얼마 나 아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나 내가 가진 연홍춘삼월의 가호와 심 력을 굳게 믿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바로 시작해 주세요·”
“좋은 선택이야· 나도 빨리 해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거든· 상의 탈의하고서 이쪽으로 누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서 엘트먼의
지시에 따라 침대에 누웠다·
아프기야 더럽게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
* * *
노을지는 저녁 아르카니움의 거리 에는 꽃피는 청춘으로 가득하다·
아르카니움의 5대 명문 마법 학교 의 ‘마법 전사 생도’들은 교내에 마 련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게 필수 였지만 그 외의 마법학부 학생들에 게는 필수가 아니다·
대부분은 아르카니움이나 혹은 위 성도시에 싼값으로 숙소를 마련하여 등하교를 하였고 아마 저 학생들도 그런 평범한 학생들일 것이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어딘가 목적지를 나아가는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오고가는 도로의 정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지켜 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온통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쓴 채 얼굴은 거의 보이지도 않아 음침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으나··· 어째서인지 학생들은 아무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툭!
“웅?”
누군가 그의 어깨에 부딪혔다·
“왜 그래?”
친구가 묻는다·
“응··· 글쎄· 어서 가자!”
그러나 부딪힌 학생은 자신이 부딪 혔다는 사실조차도 금세 망각해 버 린 채 친구와 함께 다시 가던 길을 향해 나아갔다·
흑색의 로브는 붉은색 안광을 가늘 게 뜨고서 학생들을 하나하나 지켜
보더니 새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여기에도 없군 마녀는·
틀림없이 이곳에 ‘마녀’가 있을 것 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여 찾아왔거늘 어째서인지 그 어디에서도 마녀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허탕인가····
흑색의 로브는 이내 안개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고 이제 그 자리에 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런 와 중에도 학생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웃으며 그 거리를 배회할 뿐이었다·
“···흐음·”
그리고 골목 사이에서·
그 흑색의 로브를 남몰래 지켜보던 마유성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재미있는 아저씨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웃음기 가득 한 얼굴로 흑색의 로브가 서 있던 자리를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지 켜 보았다·
그러나 그의 행각은 오래 갈 수 없었다· 흑색 로브와는 달리 마유성 이라는 인간은 너무나도 눈에 띄는 존재였기 때문에·
“야야 저기 마유성 님 아냐?”
“실물이 더 미쳤네·”
“잠깐만· 나 눈알 좀 꺼내서 닦고 제대로 볼래·”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하는 학생들 을 보며 마유성은 어색하게 웃은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마녀는 질색인데····’
아르카니움에서 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그 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